걍 나도 오랫만에 끄적끄적.


키퍼와 탐사자 사이의 정보 차이

전에도 말한 거 같은데, 이게 CoC에서는 그냥 폼으로 마스터가 키퍼라 불리고 플레이어 캐릭터가 탐사자라 불리는 게 아니라, 키퍼는 시나리오 내의 "진실"을 감춰두고 탐사자는 그 실마리를 찾아서 진실에 도달해야하는 뭐 그런 물건이 전제되고 그 때문에 그런 명칭으로 부르는 거임. 그러니까 끝에 가면 "사실 신화생물이 있었군요 ㅎㅎ"같은 거지 본질은 추리물의 접근 방식을 갖다 쓴다... 이거임. 그러다보니 사실 이게 레일로드를 탈피한 물건이 나오니 어쩌니 해도 잘 뜯어보면 탐사자들이 결국 "진실"에 도달하지 못하고 끝나거나 혹은 신화생물에게 반쯤 관광을 당하고 도망가는 방식의 엔딩을 그냥 시나리오 데이터 내의 엔딩으로 처리해 주는 정도에 그치기 쉬움.  


적당히 봐주기

CoC의 키퍼 - 탐사자의 관계는 위에서 설명한 대로 조낸 일방적임. 키퍼는 진실도 알고, 신화생물은 또 킹왕짱 세고.... 그러면 이 관계에서 TRPG를 잘 돌리는 방법은 뭐냐, 당연히 갑 오브 갑인 키퍼가 "적당히 봐주는" 거임. 안 봐주면 "지하실의 쇼고스" 같이 쉽고 간단한 대참사가 벌어지거든... 그래서 "CoC가 잘 돌아가는" 방법의 예가 좀 제시되었던 오리엔트 특급 공포 캠페인을 보자. 이거 캠페인은 원 표현을 좀 빌리자면 팔다리와 이성이 막 없어지는 물건이고, 그 때문에 캠페인 시작시 키퍼가 탐사자들하고 "얼마나 너희를 빡세게 굴려도 되나"를 논의해 보는 것을 제안함. 물론 이 과정에서 키퍼가 "진실"을 공개하지 않는다는 원칙은 그대로 유지되고, 사실 이런 거 없이 키퍼가 막 해도 되긴 됨.


또한 이 캠페인에서는 그 외에도 키퍼가 "탐사자들이 알 수 없을" NPC를 사용해서 얘들을 위기에서 구하거나 얘들이 잃어버린 물건을 찾아 전달하거나 뭐 그런 식으로 적당히 봐주면서 베이비시팅을 하라고 대놓고 제시함. 쉽게 말해서 진실을 독점하는 이상, 충분히 봐주면서 탐사자들이 거기 도달할 기회를 주어야 한다는 거. 또한 잊어먹기 쉬운 건데 '그게 충분했는가'는 너님이 아니라 탐사자들이 봤을 때가 기준이라는 거임. 대개 CoC같이 진실을 감추고 진행하는 물건이 '키퍼 / 마스터가 얼마나 사디스틱한 놈인지' 드러내는 장치가 되는 이유는 이런 것들을 충분히 생각하지 못해서라고 생각함. 개인적으로 이 캠페인을 엄청나게 좋아하고 그러진 않는데, 2판 버전은 확실히 CoC 캠페인 중에서 가장 키퍼가 이것저것 배우면서 다루기 편하게 나온 물건 중 하나라고 봄.


조언의 내용 생각하기

"조언"이라는 건 결국 탐사자들을 특정한 방향으로 유도하거나 혹은 뭔가를 하지 못하게 하거나, 아니면 새로운 선택지를 제공하는 거잖아? 근데 위에서 봤지만 CoC에서는(다른 추리물도 그렇겠지만) 그 특정한 방향은 일단 "진실"쪽이어야 함. 그렇지 않다면 딱히 그렇게 유도해 줄 필요가 없어. 어차피 너님이 정보를 안 주면 탐사자들은 헤메게 되어있거든! 그리고 이런 걸 돌릴 때의 목표는 일단 탐사자들이 "진실"에 접근하는 것이지, 의외의 결말에 당혹해하는 탐사자들 얼굴을 보며 낄낄대는 게 아니잖냐? 그렇기 때문에 조언의 용도는 대체로 막 나가는 탐사자들을 통제하는 것이나 아니면 얘들이 생각 못한 것을 일깨워 주는 수준에 그쳐야 한다고 생각함. 왜냐면 위에서 말한대로 굳이 엉뚱한 방향으로 유도할 필요는 없는 거고, '시나리오 외적인 요소'인 조언으로 "진실"로 유도해야 한다는 건 바꿔 말해서 그 전까지 시나리오 내에서 제시한 단서가 부족했다는 게 되거든. 물론 7판에서는 후자가 좀 많이 줄어든 거 같다고 생각하는데, 왜냐면 지나간 단서 같은 거 확인하는 데 쓰는 Idea Roll이 딱 그런 용도의 메커니즘이거든? 그래서 그냥 Idea Roll만 잘 써보게 해도 "이야기 진행이 막히거나 틀어져서 유도해야 하는" 상황 대부분의 수습이 가능함. 7판에서 바뀐 것 중에 다른 건 다 까더라도 이거하고 기관총 룰 갈아치운 거는 깔 수 없다고 봄.


의 공개 '조금 일찍' 하기

"진실" 갖고 장난칠 때 중요한 점은 진실은 진행 도중에, 그러니까 최종 결전이든 뭐든 그 진실을 갖고 쇼부를 봐야 하는 상황이 오기 전에 미리 탐사자들에게 공개되어야 한다는 거임. 예를 들어 생각해보자. 추리 만화 같은 거 보면 클라이맥스쯤 되서 탐정이 "수수께끼는 전부 풀렸다!"면서 사건을 해설하지? 근데 추리물 TRPG의 탐정은 플레이어들임. 그러니까 직간접적으로 얘들에게 진상에 도달할만한 단서를 주고, 안 되면 머리채 잡아다 끌면서 진실을 알려준 뒤에 클라이맥스로 넘어갈 필요가 있음. 아니면 아예 모험물에서 주로 나오는 클리셰답게 도중에 악역이 "흐하하 수고했다 병1신들아"하며 진실을 드러내고 탐사자들을 위기로 몰아넣은 뒤 자신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떠나면 탐사자들이 위기를 탈출한 뒤에 뒤를 쫓아서 끝장을 보는 방식도 괜찮아. 악역이 말이 좀 많아지겠지만, 적어도 진실을 드러내는 데 별 지장이 없는데다 확실히 최종 결전이 벌어지는 시점은 진실이 드러난 이후가 되니까 괜찮은 거지. 혹은 해설역으로 다른 NPC나 일기장 같은 수단을 쓸 수도 있겠고. 물론 진실을 파악한 시점에서 "이건 미친 짓이야, 난 여기서 나가겠어!"하고 탐사자들이 도망쳐도 요새 트렌드 상으로는 큰 상관은 없을 것 같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