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병원에서 돌아와 '음 한 오후 3시까지만 자야지' 생각하며 누웠는데 왜 때문에 이 시간이지....
암튼 밀린 글들을 읽다 보니 메이지의 비극성은 뭐냐는 글이 있길래, 내가 파악하고 있는 각 라인 별 비극성의 핵심이 어떤 건지에 대해 간략히 정리해 볼까 함. 각 라인의 주인공 팩션(뱀파이어라면 카마릴라, 메이지라면 트래디션이라는 식) 기준.
뱀파이어:산 자의 피를 마심으로써 산 것도 죽은 것도 아닌 자신의 존재를 유지한다는 모순. 한 때 사랑한 것들이 늙고 낡아 죽고 사라지는 걸 혼자 남아 지켜봐야 하는 고독. 자신의 정신과 사고방식은 뱀파이어가 되었을 당시에 정체되어 있는데 시간이 흐르고 세계가 변하는 걸 보며 느껴야 하는 소외감.
워울프:숙명적으로 패배할 것이 예정된 전장에 나서서 절대 이길 수 없을 적과 싸워야 하는 비장함, 그렇게 싸워도 아마존 우림이 파괴되고 남극 빙산이 녹아내리는 걸 막지 못한다는 절망감, 어쩌면 이 모든 희생과 투쟁들이 사실은 잘못된 것 아닐까하는 의구심, 스스로의 오만과 분노 때문에 저질러 온 과거의 죄업들.
메이지:'세상의 온당한 모습'이 무엇인지 규정할 수 있는 절대적인 힘을 갖고 있으면서도, 그 결과를 모두 예측하고 책임질 수는 없다는 한계. 현대문명 자체의 권화나 다름 없는 적대 조직만이 아니라 이 세상 자체가 자신들을 억누르는 상황에서 무엇을 추구해야 할지에 대한 고민, 자신이 추구하는 이상을 어디까지 타협할 것인지에 대한 의문.
체인즐링:아르카디아라는, 모든 것이 밝고 아름답고 순수한 이상향에 대한 기억을 갖고 있으며 어느 정도 그 힘을 끌어다 쓸 수 있지만 정작 자기 자신은 그딴 거 없는 팍팍한 현실에 갇혀 있는 육체를 가진 존재로서의 갈등. 삶을 위해서 그러한 이상향의 기억과 희구, 초자연적 힘을 포기해 가야 하는 과정. 체인즐링 더 드리밍이라는 게임 자체가 '어린 시절의 동심이 나이를 먹어가며 퇴색하는 것에 대한 아쉬움'과 '오직 어린 시절에만 느낄 수 있던 즐거움'에 대한 회한과 그리움에 대한 은유라고 볼 수도 있다.
레이쓰:더 없이 소중했던(하지만 마음만큼 신경써주지 못했던 경우가 많은) 주변 사람들, 끝내지 못한 일들, 반드시 이루고 싶었던 미래의 목표 등을 남기고 죽어 버린, 그리고 현실에 영향을 미칠 수단이 극히 제한된 유령으로서의 미련과 고뇌. 곧 다가올 '망각'에 삼켜져서 이 세상에서 완전히 떠나가게 될 거라는 불안감.
헌터:온갖 괴물들이 정체를 숨기고 인간사 배후에 숨어 있다는 깨달음에서 오는 공포심과 그에 저항할 수 있는 건 자신 뿐이라는 의무감. 괴물들과 싸우고 평범한 이들을 지키기 위해 자신의 돈과 시간과 노력을 갖다 바치면 바칠수록 일반 사회에서 소외되는 현실. 점점 심해지는 악몽과 피해망상과 집착. 결국 가장 큰 힘을 얻기 위해 인간으로서의 자신을 포기하고 정체 모를 어떤 존재의 꼭두각시가 되야 한다는 운명.
머미는 룰북을 안 읽어봤고, 데몬은 영 아리까리해서 패스함.
ps=겁스 동인도 pbp는 곧 잇겠습니다
이런 글은 개념글로 날려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 메이지 비극성 물어봤던 사람임. 답변 ㄳ
근데 그러면 플레이 가능한 팩션인 테크노크라시는 애초에 비극이란게 업는건가 ㅜㅜ
ㄴ테키의 경우 인류 전체의 안전을 지킨다는 이상과 정작 그 이상을 위해 하는 일은 대중 통제와 우민화를 펼치면서 수면자들을 눈먼 양떼로 만들어 우리 속에 가둬놓는 거라는 현실과의 충돌, 오직 자신들의 관점에 의거한 일방적이고 오만한 '계몽'을 남들에게 강요하며 수많은 다양한 관점들을 말살하고 있다는 것이 주된 비극성이 되겠지. 물론 플레이어 입장에서 그에 대해 문제의식을 갖고 있어야 비극이 되겠지만.
ㄴ플레이어가 '그 많은 다양한 관점'이 위험하고 옳지 않으며 교정되거나 소멸되어야 할 것이라 생각하고, 테키가 하는 일이 대중통제와 우민화가 아니라 전 인류를 위험한 사상과 관점으로부터 보호하고 계몽으로 인도하기 위해 필요한 조치라고 생각한다면 비극이 처음부터 성립이 안 되겠지 ㅇㅇ
5.254// 답변 ㄱㅅ... 근데 이러면 마게는 판본이 가면 갈수록 테키의 비극성을 희석시키는 느낌인데
ㄴ그게 내가 리바이즈드 이후 바뀐 테키 설정을 안 좋아하는 이유임. 예전 테키에게는 '악역으로서의 간지'가 있었거든.
그런데 지금 테키는 그러한 악행을 예전보다 훨씬 덜 하게 된 데다가, 그나마 하는 것도 정당화할 만한 건덕지가 너무 많달까... 구 쨍의 핵심 컨셉인, '강력한 힘을 갖고 있지만 온갖 자기 모순과 한계에 번민하는 비극적인 괴물들'이라는 전제에서 혼자 따로 놈.
ㅇㅇ. 예전에는 개새끼들이었는데 이젠 뭐... 그냥 일처리가 좀 과격할 뿐인 동네 경찰 아조씨 느낌이잖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