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뻘글은 시나리오 구조 관련 잡설. 특별히 모 시나리오를 예시로 뜯어서 제시해 본다.
이거는 아무래도 니들이 안 돌릴 거 같거든!
도입부 - 기
도입부는 "탐사자들이 직접 살펴봐야만 할 뭔가"를 제시해야 하는 부분이고, 여기서는 탐사의 당위성을 이끌어내는
동시에 비현실성을 어느 정도 제한하면서 이야기를 시작해야 함.
탐사의 당위성
CoC는 원래 "탐사"를 해야하는 물건으로 튀어나온 거임. 그러면 시박 탐사할 대상이 있어야 할 테고, 그런 탐사를
꼭 탐사자들이 해야 하는 당위성이 필요함. 이 부분을 생각하지 못하면 플레이 초반이나 시작하기 직전에 누군가가
"경찰한테 신고해야 하는 거 아냐...?" 아니면 "아니 왜 성조숙증 쇼타 꼬맹이한테 이런 걸 조사하라고 시켜요?"같이
눈치없는 발언을 해서 키퍼나 다른 탐사자의 아주 소박한 꿈에 대못을 박게 될 수 있음.
예를 들어 개인적으로 최고의 초보자용 시나리오라고 생각하는 암흑의 끝자락(The Edge of Darkness)을 살펴보자.
이 시나리오에서는 골골거리는 노인네가 하나 있고, 모든 탐사자 캐릭터는 이 노인과 연관이 있다는 전제로 만들어짐.
키퍼는 여기서 이 연관관계의 내용을 조율함으로서 탐사의 당위성을 끌어올릴 수 있음.
비현실성의 제한
엥 이게 무슨 소리야...? 할텐데 사실 크툴루 신화는 어반 판타지 양판소나 일본식 전기물 그런 거 아니다....
신화생물들은 "현실"이라는 위장막 뒤에 은폐하고 있고, 대외적으로 꼬리를 잡히지 않게 상당히 신경 쓰는 애들임.
따라서 카오시움 물건 같은 거 보면 도입부는 충분히 "있음직한 이야기"로 시작하는 게 일반적임. 그렇게 시작한 뒤
점점 깊게 파 보면 이게 생각보다 좀 묘한 거 같다....고 느끼게 하는 거고.
그러면 다시 암흑의 끝자락으로 돌아가보자.
노인은 탐사자들 모두를 자기가 입원한 병원에 모으고, 황당한 이야기를 하기 시작함. 자기가 대학교 때 좀 노는 오컬트
동아리에 꼈는데, 그 동아리 회원들이 웬 시골 오두막에서 괴상한 존재를 소환한 다음에 다들 겁을 먹고 도망쳐버렸고,
그래서 그놈이 아직까지 거기 남아있다는 거임. 그리고 이 노인은 자기가 죽으면 그놈을 오두막에 속박한 주문이 풀리니
그 전에 탐사자들이 가서 그놈을 역소환해달라고 요청하고 탐사자들에게 상자를 하나 줌.
여기서 비현실성을 깎고 싶다면 노인이 치매끼를 보인다거나 하는 식으로 묘사하면(제3자의 발언으로) 나름 괜찮을 거임.
하지만 위에서 당위성을 부여한 이상 노인을 만족시키려면 어쨌든 가긴 가야 하는 상황이 됨. 이렇게 해서 탐사자들은
"말 같지도 않은 이야기를 하는 조금 치매끼 있는 노인의 심부름을 하게 됐다"는 도입부가 완성되었다.
탐사 밑작업 - 승
그렇게 탐사를 시작하면 이제 정보를 얻을 차례다. 사실 이 쪽 분야를 아주 잘 설명하는 룰은 CoC가 아니라 추리물 전용
룰셋인 GUMSHOE인 거 같지만 뭐 어쩔 도리가 없음. 일단 개인적으로 키퍼로서 탐사자들에게 제공해야하는 정보들은
기본 정보 / 덜 중요한 정보 / 떡밥으로 나눔. 개인적으로는 탐사하러 가는 과정을 승이라고 치는데, 탐사를 몇 단계로
나누어서 진행할 거라면 좀 만만한 난이도로 탐사할 초반 부분을 여기에 포함시켜도 될 것 같음.
기본 정보
일단 뭘 해야하는지는 도입부에서 견적이 나왔으니 이걸 구체화시켜서 정보를 제공해야 할 차례임. 대체로 내 기준에서의
"기본 정보"란 가기 전에 조사해서 알아낼 수 있는 정보 중에서 스토리 전개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정보들이 여기에 속함.
탐사자들이 모르고 넘어갈 거 같다면 기본적으로 제시해 줄 만한 NPC를 조사 도중에 등장시키는 식으로 쥐어주도록 하자.
또 다시 암흑의 끝자락으로 돌아가서....
노인이 준 상자에는 오두막의 소유 문서와 열쇠, 금으로 장식된 이집트식 상자, 노인이 있었던 오컬트 동아리의 행적이 적힌
가죽 표지의 문서가 들어있음. 여기서 당연히 오두막의 소유 문서와 열쇠, 가죽 표지의 문서 내용은 필수 정보가 되겠지?
덜 중요한 정보
알아도 그만, 몰라도 그만인 정보. 일단 알고 있으면 도움이 되지만, 모른다고 해서 그냥 일방적으로 개털리는 상황이 되지도
않아야 함. 좀 더 구체적으로 제시해 보자면, 이 범주의 정보를 몰라서 얻는 패널티는 목숨이나 팔다리 같은 게 아니라 추가로
시간을 소모하는 등 추가적인 자원을 소모하는 방향으로 해야한다고 생각함.
여기서는 금으로 장식된 이집트식 상자가 비교적 덜 중요한 정보를 담고 있음. 역사나 고자학, 이집트학, 혹은 오컬트 판정을
통과해야 얻을 수 있는 정보긴 한데 그냥 신격체들 언급 좀 하고 노프루-카라는 고대 이집트 중왕국의 왕에 대한 정보만 조금
얻을 수 있음. 물론 몰라도 상관은 없다.
떡-밥
현 시나리오에서 별로 도움이 되지 않을 만한 정보는 여기에 속함. 물론 탐사자들은 여기에 매달릴지도 모르는데, 그런 경우
일단 간단한 정보를 조금 주고 끊었다가 나중에 다시 활용하도록 하고, 단편이라면 아예 이런 떡밥은 안 주는 게 정신건강에
편할 거임. 단편에서 막 쓸데없는 떡밥 잡고 뒹굴뒹굴하는 거 보면 참 그렇다....?
역시 암흑의 끝자락으로 돌아가서...
여기에서는 미스캐토닉 대학 도서관에 벌레의 신비(De Vermiis Mysteriis)가 있다는 정보를 탐사자들에게 줄 수 있음.
문제는 우와아아앙 나 이거 읽을래 하면 아미티지 교수의 승인이 있어야 한다고 하는데.... 간단히 말해서 키퍼가 안 내주면
된다. 뭐 "현재로서는 어렵겠군요"나 "그 책은 지금 대출 예정입니다" 같이 슬쩍 돌리면 됨. 뭐 장기플 할 게 아니라면 그냥
이름 구경이나 해라 ^^ 같은 개념이지.
정보의 추가
정보의 추가는 일단 탐사를 하러 가는 과정에서 이루어지기 시작해야 함. 탐사를 가면 대체로 "그냥은 못 돌아오는" 상황이
되기 쉽기 때문에 가능한 많은 정보를 출발 전에 쥐어줄수록 탐사자들의 마음이 편해질 거임.
이 부분은 오두막에서 가까운 마을의 잡화점에서 아주머니와 수다를 떨다가 어제 이웃집 아낙네가 안 들어와서 사람들이
수색에 나섰다든지 오두막에서 "가깝다"는 마을과의 거리가 사실 2km가 넘는다든지 뭐 그런 이야기를 들을 수 있을 거임.
본격적인 탐사 - 전
이 부분은 이제 슬슬 초자연적인 뭔가의 꼬리를 밟기 시작하는 부분. 그리고 이쯤 되면 이제 돌아갈 길을 슬슬 통제하면서
어찌어찌 쇼부를 볼 수 밖에 없는 구도로 이끌어야 한다는 의미가 되기도 함. 또한 밑작업하던 시기와 비슷하게 정보를
쥐어주는데, 대신에 여기서 얻는 정보는 스킬 자원의 한계로 활용하는데 제한이 붙을 수 있음.
또 정보의 추가
사실 초자연적인 요소보다 오히려 이게 선행되어야 함. 탐사를 통해서만 얻을 수 있는 특별한 정보를 주면서 탐사자들이
좀 더 많은 행동과 생각을 할 기회를 제공해 주는 거. 물론 정보의 질은 위와 마찬가지로 셋으로 나뉜다.
여기서는 아예 집 어딘가에 역소환 주문에 필요한 것들이 적힌 문서가 존재하고, 추가로 부랑자 하나가 최근에 여기에
몰래 들어왔었다는 것을 알 만한 단서가 좀 주어짐. 추가로 이븐 가지의 분말도 존재하는데, 이에 대한 정보를 모르는
탐사자들은 이게 뭔지 알 수 있을 리가 없다.... 써 보기 전에는 말이야. 또한 가급적 초자연적인 존재와 마주치기 전에
최대한 많은 정보를 주고 조우시키는 게 여러모로 불만이 안 나옴.
인카운터 맛보기
일단 좀 덜 위협적인 인카운터를 하나쯤 양념으로 던져주면 좋다. 좀 덜 위협적이라는 것은 이후에 나올 인카운터와
비교해서 "상대적"인 거. 예를 들어서 크툴루 스타스폰 둘하고 싸우는 시나리오라면 중공군 소대 하나쯤은 확실하게
덜 위협적인 게 맞겠지?
여기서는 위에서 얻은 정보로 확인된 "여기에 왔었던 부랑자"가 사실 떠나지 않고 탐사자들이 오는 걸 알아차리고는
어딘가에 숨었다는 전개로 감. 이놈은 딱히 누굴 죽이고 그럴 생각은 없으므로 이놈은 그냥 탐사자들을 기절시키고
도망칠 뿐으로 끝남. 근데 약하니까 충분히 제압이 가능할 거임.
초자연적인 요소
그리고 이제는 슬슬 초자연적인 요소가 나올 준비를 하면 됨. 물론 위에서 봤겠지만 그런 게 탐사 시작부터 까꿍! 하고
튀어나오는 그딴 건 사절이고, 일단 튀어나온 뒤에는 상황을 어떤 식으로든 "돌이킬 수 없게" 만들어야 함. 대신에 그 전에
간보기 밑작업을 하면서 탐사자들의 신경을 긁는 거 정도는 괜찮다고 봄. 그러니까 초반에는 뒤에서 움직이다가 그 실체는
충분히 탐사가 진행된 시점에서 드러내는 쪽이 좋다 이거지. 코빗도 침대나 단검 등을 주작하고 뒤에서 움직이다 나중에야
싸우게 되잖냐?
이 시나리오에서는 신화생물이 "기습"해오면서 존재를 드러내는데, 아주 재수없으면 기습 대상이 그 자리에서 끔찍하게
죽어나감. 그리고 이 놈이 첫 조우 이후에는 직접적인 충돌을 피하는 대신에 은신처 외에도 집 바깥의 일정한 범위를
돌아다닐 수 있다는 점을 보여주면서 분위기를 암울하게 만들고 이놈을 역소환할 의식을 할 수밖에 없게 만들면 됨.
경찰권의 제한
CoC에서 경찰을 누군가 떠올리는 경우, 가장 중요한 것은 경찰권은 키퍼가 쥔다는 거임. 따라서 경찰 그런 거는 안 나오거나
나와도 탐사자들 이성이나 날려버리는 매개체가 되도록 활용하자.
당연히 이 시나리오에서는 1920년대에 전화도 없는 오두막에다 마을까지 2km가 넘는 위치인데 경찰이 오면 이상하겠지?
물론 이거 기본 시나리오가 재미없다고 여기는 놈들은 아컴에서 핑계 대서 경찰이 여기까지 쫓아오게 만들더라고 ^^
당연히 이성을 날려버리는 매개체나 혹은 추가적인 조력자 등으로 알아서 활용하면 됨.
초자연적인 요소와의 대결 - 결
우리의 친구 신화생물 - 내지는 끝판왕이 슬슬 모습을 드러냈고 이제는 이놈을 방해하던지, 조지던지 혹은 도망가던지 해서
쇼부를 봐야 할 상황이 됨. 그러면 시나리오가 끝나는 거지!
충분한 정보의 제공 확인
일단 탐사자들에게(네 기준 말고 탐사자들 기준에서) 상황을 수습할 방법이 확실하게 제시되어 있어야 하고, 그것에 대해서
파악할 시간도 주어져야 함. 그 전에는 최종 결전의 구도로 굳이 몰고 갈 필요가 없음. 몰고 가 봤자 좋은 소리 듣기 힘들고.
막 도중에 중언부언 덧붙여야 한다면 굉장히 꼴사납게 여겨질 수 있음.
여기서는 다행히도 집 안에 의식에 필요한 재료와 방법이 설명된 문서가 다 있음. 따라서 사람 수만 키퍼가 적당히 맞춰주고
시간만 맞추면 바로 의식을 실행할 수 있기 때문에, 즉시 최종 결전에 돌입하기에 별다른 무리가 없다고 보면 됨.
결전의 긴장감 부여
긴장감을 어떻게 줄 것인가? 이에 대해서도 생각해 볼 필요가 있음. 긴장감을 주지 못하면 이게 "최종 결전"으로서의 의의가
퇴색되거든. 막 실수하면 죽거나 다친다거나, 상대가 막 초자연적인 힘으로 위협한다거나 그런 식의 상황을 제시해 줌으로서
긴장감을 좀 올려볼 수 있고, "호러"를 추구한다면 당연히 그래야 함.
여기서는 신화생물이 막 오두막을 흔들고 산성 액체를 안에 흘려보내고 부수려드는 등 자기가 못 들어가는 거 때문에 대신에
탐사자들을 방해하려고 별의 별 수를 다 쓰게 되는데 그걸 잘 묘사할 필요가 있고, 마지막에는 이놈이 안으로 강제 이동되서
특정한 위치에 고정되지만 대신에 접근하면 확찢해버리니 주의해야 함. 그리고 이 과정에서 희생자가 나오거나 오두막 벽에
구멍이 뚫리면 점점 더 긴장감이 커질테고 말야.
결말
결말은 이 "최종 결전"을 앞에 놓고 보인 탐사자들의 행동에 따라 달라짐. 기본적으로 실패하면 추가적인 희생이 나오고
이성이 더 깎이는 게 일반적이지만(혹은 그 전에 다 죽었거나), 성공한다면 이성을 좀 회복하고 추가로 시나리오 진행 도중에
얻은 정보 등으로 보상을 받을 수 있을 거임. 다만 이거도 뜬금없이 나오는 건 좀 그렇고 충분한 근거를 제시해주면 좋을 듯.
마무리
나는 CoC를 좀 클래식하게 카오시움 텍스트 위주로 시작했기 때문에 좀 고리타분해 보일지 모르겠다만, 적어도 내가 보는
시나리오의 구조는 이런 식으로 돌아가는 게 맞다고 생각함. 근데 대체로 쨉스 시나리오 번역본은 별로 이런 거 같지는 않았다...
이거지. 그보다는 초자연적인 요소를 카오시움 놈들보다 좀 템포를 빠르게 등장시킨 이후에는 일종의 전기물에 가까운 전개로
가지 않나 생각되더라고.
일본인들이 크툴루룰로 전기물놀이한다는 내 추정에 확신을 더해주는 글이군
근데 역시 목숨과 직결된 가장 중요한 정보는 총포점 위치 아녀?
윳툴루보면 추정할 필요가 없어 보이지 않았어?
자가용과 Drive Auto 스킬이겠지. 예시 시나리오 신화생물부터 물뎀 면역이거든.
저거 한 2년전에 다번역해놓고 최근와서야 돌릴 짬 생긴지라 데드맨스탐프랑 이거 중에 뭐부터할지 고민중임.
갠적으론 할배 대학시절 오컬트 단체 이름보고 쫄았었다.. 제대로 중2병 걸렸었나봐
물뎀면역이라니 이런 시발
둘다 Yog-sothoth 포럼에서 추천 순위 상위권이니 걍 꼴리는 대로 하면 됨. 다만 데드맨 스톰프는 인종 문제를 좀 쓰까서 생각해 본 뒤에 돌리는 걸 추천.
경찰 나와도 캐릭들 이성 박살내는 용도로 쓰라는게 뭐 이런거임? 경찰 부를라고 겨우겨우 깡촌에 하나있는 전화 붙잡아서 112 눌렀는데 들리는건 괴물딱지가 "아저씨랑 비밀친구 할래? ^^"하는 거라던지
아니면 플레이어 캐릭터가 반쯤 미쳐서 밑도끝도 없이 이상한 소리 하니까 경찰이 "이럴거면 전화 마세요"라고 끊는다던지
등장하면 장기자랑/ 사교도 똘마니고 안 나오면 비밀친구 / 통신두절.
아...
자기가 지금 시달리고 있는게 경찰이 와도 못 이기는 미친 상대라는걸 드러내주는 장치인가
대개 그렇지. 혹은 탐사자의 기행을 제재하려고 팝업시킬 때도 있어.
좋은 글이네. 이런 건 추천을 줘야 되는데.... 근데 도입부에서 탐사자 캐릭터가 시나리오 내용이랑 연계가 되려면, 마스터가 미리 시나리오 내용 따라서 캐릭터 배경이나 핸드아웃을 줘야 할 듯. 플레이어가 그거 따르기 싫어하면 좀 골치 아프고--; 이것도 뭔가 잘하는 요령이 따로 있으려나...
그렇지. 덕분에 시나리오 시작 상황이 어떻게 되어 있느냐가 중요해지고, 그 때문에 대놓고 특정 상황을 제시하는 경우 아예 Pre-generated, 그러니까 예제 캐릭터를 제시해서 웬만하면 얘네 써 봐라라고 하는 물건도 있음.
예를 들어서 본격 소비에트 배경 시나리오의 경우 대개 "탐사자"의 위치를 차지할 수 있는 NKVD 요원이나 그 비슷한 위치로 플레이할 것을 권장하고, 그러라고 아예 예제 캐릭터도 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