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뻘글을 쓰고 싶어졌으니 뻘글을 씀.
오늘 다뤄볼 이야기는 AW 계열 물건을 하다 보면 떠오르지 않을 수 없는 "플롯"에 관한 문제. 원래 아포칼립스 월드 계열은
그 기원인 아포칼립스 월드부터 첫 세션 항목을 설명할 때 대놓고 "미리 특정한 캐릭터나 스토리라인을 정해두지 마라"
(DO NOT commit yourself to any storyline or particular characters)고 하고 있었음. 대신 플레이 도중의 대화를 통해서
얻는 정보를 바탕으로 위험요소(Threat)와 국면(Front)을 만들고, 그 국면이 점점 시간이 지남에 따라서 상황이 악화되거나
해소되고.... 뭐 그런 식의 구조를 가지고 있음. 문제는 이 방식으로 뭔가 재미있게 하려면 "플레이 도중의 대화"의 산물들이
쓸만하거나 마스터가 이것저것 상황 처리를 잘 해야 그럭저럭 돌아간다는 건데, 현실은 별로 그렇지 않단 말이지.....
여러분은 여관에 모였습니다. 잠깐, 근데 여관이 뭐죠?
소제목을 보면 다들 어떤 심상이 떠오르지? 현실은 그런 거야. 뭔가 좀 떡밥을 풀어보라는 의도로 꺼내는 말 한 마디는
누구 상상력이 더 막장스럽나를 경쟁하는 대결의 방아쇠가 되기 일쑤며, 정작 그런 대결이 끝나고 나서 시간이 좀 지난 뒤에
던져진 떡밥을 골라서 쓰면 처음 떡밥 꺼낸 놈은 까마귀 고기로 모자라서 뼈까지 꼭꼭 씹어먹은 반응을 보이고, 다른 놈들은
남이 던진 떡밥과 그로 인한 플롯이 마음에 안 든다면 떡밥이 상했으니 갈아달라고 뒤에서 반쯤 징징대기 십상이겠지.
그러니까 이딴 놈들을 데리고 뭘 해야하나 회의가 들 수 있는데.... 아포칼립스 월드는 원래 다들 약빨고 달리는 물건이니까
그냥 막 달리면 돼. "포스트 아포칼립스 상황으로 인한 문화 변질 훼손"이라는 궁극의 마약을 빨고 맞대응하면 사실상 어떤
개소리라도 어느 정도 내가 대응이 가능하거든! 알기 쉬운 예로 매드 맥스 : 분노의 도로를 보자. 원래 멀쩡한 군인이던
조 무어 씨는 사이비 교주 겸 독재자 임모탄 조가 되었고, 임모탄 조의 영역에서 "물"은 많이 마시면 난폭해지기 때문에
배급을 통제하는 물질인 "아쿠아 콜라"가 되었음. 이제 이해했지?
문제는 던-월 같은 경우는 별로 그렇지 않다는 거다. 대개 어느 정도 질서와 틀이 잡힌 세계를 배경으로 하며, 그 때문에
이렇게 이독제독 정책을 펴는데 한계가 있을 수 밖에 없음. 설마 넌 "포도주"를 "유대인이 물을 가공해서 만드는 음료"라고
재정의할 거냐? 물론 할 수야 있겠지만, 그러면 여관에 모이는 애들(추가로 모 종교의 신도)이 그걸 보고도 자중해 줄까?
AWE를 플롯에 싸서 즐겨보세요
그리고 너희를 더 눈물나게 할 이야기를 해 보자. 사실 AWE는 기본적인 플롯이 멀쩡히 있어도 돌리는 데 별 문제가 없음 ^^
그냥 빈센트 베이커가 아포칼립스 월드에서는 그러지 말라고 써 놓았을 뿐이고 던전 월드도 그렇게 적은 걸 따라하는 거야.
과거의 추억을 떠올리자 눈에서 마구 땀이 나고 손이 부들부들 떨렸다면 미안해. 딱히 뭐라 위로해 줄 말이 없구나.
간단한 예로 트레물루스(Tremulus) 같은 경우는 플레이셋을 통해 위험 요소라든가, 국면이라든가 배경 설정이라든가
뭐 그런 걸 처음부터 정해놓고 들어가게 됨. 혹은 이번 주의 괴물(Monster of the Week)의 경우도 기본적으로 "미스터리"의
핵심이 되는 요소들은 키퍼가 짜세요라고 함. 당연히 여관에 모이는 것보다는 훨씬 더 정상적인 플레이를 할 수 있겠지?
다만 빈센트 베이커는 그걸 별로 마음에 들어하지 않은 것 같아. 그보다 막 이것저것 땜빵되면서 진도를 꾸물꾸물 나아가는
뭐 그런 과정 전체를 즐기라는 거였겠지. 물론 그걸 너희가 "진짜로" 즐길지는 잘 모르겠지만 말이야....
물론 아예 고삐를 놓아버리면 통제가 안 되기 때문에 마스터가 선을 그어야 하는데..... 이게 "어느 정도의 조율"이 필요하다는
소리는 누군가가 "합당한 기준"을 제시해 달라고 하면 대개 슈뢰딩거의 고양이나 모 당의 투트랙 전략에 버금가는 막장성을
가질 수 있게 된다. 그래서 어디까지 어떻게 그어야 해? 당연히 어찌어찌 그어봐도 모두가 동의해 준다는 보장 역시 없어....
그러니까 그런 걸로 혈압 올리고 플레이 폭파될 바에는 그냥 기본적인 플롯을 쓱싹 준비하고 적당히 감춰두었다 상황에 따라
살짝 개변하면서 푸는 게 낫지 않나 싶을 때도 있음. 물론 누군가는 "이거는 다 제대로 안 읽어서 그런 거거든요 빼액!"할텐데,
그럼 안 읽은 놈을 데려다놓고 구연동화하듯 룰북이라도 읽어줄 거야...?
그러니까 그 샌드박스가 아니라고
그럼 이제는 역으로 레일로드 위주로 돌아가는 RPG들의 소위 "샌드-박스" 시나리오에 대해서 생각해 보자. 언뜻 보기에는
"샌드박스"물이 잘 돌아가니 그와 비슷한 던-월도 잘 돌아가야 하지 않을까 싶은데 현실은 덜 그런 거 같다. 왜 그럴까?
답은 간단함. 이런 RPG들에서 제공하는 "샌드박스" 시나리오물은 사실 "선형 플롯"만 없을 뿐이지, 모래상자의 "벽" 역할을
하는 요소들은 충분히 갖추고 있기 때문임. 대부분 "샌드박스" 시나리오는 사실 "중심"이 되는 사건 / 장소 / 사물이 존재하고,
이걸 매개체로 해서 벌어질 수 있는 다양한 이벤트들과 그 여파를 마스터 / 키퍼나 플레이어들이 취사 선택하는 쪽에 가까움.
그러니 그런 것도 없어서 아예 마스터 / 플레이어들의 대화로 플레이 내의 "현실"을 재정의하면서 만들거나 기존의 요소를
수정하고 그래야하는 AW나 던월의 구조를 적어도 그런 "벽"은 탄탄하게 제공되는 이런 것들과 비교하면 사상누각에 가까운
수준이 될 수 밖에 없음. 노가리 좀 까다보면 없었던 과거도 생겨나며 알던 현실도 뒤바뀌는데 그게 샌드박스냐, 모래더미지.
그렇기 때문에 그냥 던-월은 다른 판타지 RPG물에서 제공하는 샌드박스 시나리오에 비해서 훨씬 더 틀어지기 쉽다고 생각함.
반면 AWE 기반의 다른 작품들, 그러니까 "밤의 마녀들"이나 전에 소개한 "매쉬드" 같은 경우는 세계관 / 캐릭터의 방향성 등
여러 부분에서 변하지 않는 "벽"을 세워주는 쪽이고, 훨씬 이게 더 전통적인 샌드박스에 가까운 형태가 된다고 생각함. 그리고
이러한 벽이 있으면 바탕으로 플레이어들이나 마스터가 그 "벽"을 기반으로 좀 더 무난하게 이야기를 풀어나갈 수 있다 이거임.
3줄 요약
원래 AWE의 "현실을 규정하는" 과정은 위험하고 불안정한데 포스트 아포칼립스에선 잘 먹힘.
사실 파생작들 보면 AWE 기반인데도 마스터 / 키퍼가 플롯을 짜게 하고, 그래도 잘 돌아감.
다른 동네 "샌드박스" 하고 비교해도 아포칼립스 월드는 안전장치가 허술한 편이라 생각됨.
AWE 같은 거 해본 다른 사람들의 의견도 좀 받아보자.
아포칼립스 월드와 그 새끼들에서 원래 스토리 요소들을 짜지 말라고는 안 해. 국면과 위협이 바로 그런 준비된 스토리 요소고(첫 세션 제외). 플롯이라고 하면 그 스토리 요소들이 어떤 순서로 펼쳐지는가를 말하는거야. 그걸 미리 정해놓지 말라는 것이지. '플롯'이 있는 AWE 게임으로 제시한 몬윜의 경우에도 미스터리의 실체를 정해놓는거지
플롯을 미리 짜놓지는 말라고 함
그냥 첫번째 세션=캐릭터 메이킹+인연 을 잘만드는게 중요한거 같은데 거기에 시간을 쏟는건 세션이 아니라고 생각하는게 큰거같음 - dc App
그럼 "괴물을 죽이면 다음 미스터리로 이어지는" 장기 미스터리같은 예제는 플롯을 짠 거라고 볼 수 없다는 건가?
그리고 나는 "무대를 완전하게 만들어 놓고"서 거기서 발생할 결과를 "예상하면서 맞춰나갈 수" 있다면 이미 플롯이 어느 정도 깔린 게 아닐까 싶음. 아포칼립스 월드나 던-월에서는 "완전한 무대"도 없고 "예상할 수 있는 가능성"도 훨씬 낮으니까 똑같이 놓기에는 좀 "미완성"이라고 보고. 다른 쪽을 비교해 보면 CoC 등에서도 이미 그런 방식으로 "될 수도 있고 안 될 수 있는 상황"을 제시하는 시나리오가 적잖은데 그런 걸 플롯이 없다고는 안 하잖아. 마지막으로 미스터리 만드는 요령 설명할 때 "Steal a plot from somewhere else"라고 아예 "플롯을 따 오라"고 한 걸로 기억하고.
아월이나 던월이나 각각 수십년 쌓인 클리셰를 가지고 플레이하는 건데 한국은 그게 없고 그 중에서도 던월의 경우는 더 그렇겠지.
차라리 트레물루스쪽을 그럴싸하게 할 수 있는 풍토가 아닐까? 굉장히 기형적이라보지만.
Monster of the week는 안 봐서 모르겠지만, 괴물이랑 미스테리를 미리 정해뒀다고 해도 던월에서 국면과 위협요소를 정해놓은 것과 어느정도 비슷한 역할을 할 거라고 생각함. 던월썰의 문제는 국면을 안 짠다는 게 아닐까 (중장편을 안 돌리니까). 던월도 국면 짜서 돌리면 어느 정도 틀은 나옴.
그리고 여관에서 시작하는 것부터가 룰북이랑 틀림. "PC들 일부 또는 전부가 긴박한 상황에 처한 장면에서 세션을 시작합니다"가 던월 룰북에 나오는 내용임...
여튼 AWE가 플롯을 정해놓지 않는 걸 원칙으로 삼는 건 맞고, 그런 면에서 전통적 시스템의 '샌드박스'보다 더 이야기가 특이하게 뻗어나갈 가능성이 있음. 그런 면에서 포스트 아포칼립스 장르랑 잘 맞는다는 면에는 동의함. 한편 같은 판타지라도 특이한 배경설정이 뻗어나갈 수 있다면 괜찮을 듯도 싶고 (전에 누가 했던 과거의 신들에 의해 갇힌 세계 설정 같은 식이나)... 해보니까 고대해도 AWE랑 잘 맞는 것 같더라.
좀더 틀이 있는 RPG를 원한다면 밤의 마녀나 사이버펑크 룰 Sprawl 같이 좀더 좁은 장르의 AWE 시스템을 해도 좋겠지... 진짜 플롯을 정해놓고 하고 싶다면 AWE를 할 필요가 없을 거고...
그런 의미에서 토악질을 하고 있는 사제는 DM의 잘못된 마스터링을 바로 잡아주고 있는 훌륭한 플레이어라고 할 수 있겠군. 최소한 누가 토악질을 하고 있으면 어느 정도 긴장감은 마련이 될 거 같아. 최소한 PC들이 상황 파악 정돈 굴릴 수 있겠지.
AW와 DW의 근본적인 차이에 대해서는 깊히 공감함. AW에선 모든 게 막장이 되어도-이미 세계 자체가 막장이니 그럴싸하지. 아무거나 이렇게 저렇게 규정지어버려도 문명이 망했으니 어디 이상한 놈이 그렇게 이름 지었다고 하면 그만이고. DW는? 아포칼립스형 중세 시대를 그린다면(누메네라냐?) 괜찮을지도 모르겠군.
이게 Monster of the Week는 드라마 시즌제 같은 방식이야. 미스테리=국면에 가깝긴 한데, 대개 드라마 1화 분량으로 기본적으로 세션 하나에 미스테리 하나 뚝딱 해먹는 방식이라 기승전결 쇼부를 비교적 구체적으로 볼 수 밖에 없다고 봄. 그리고 여관은 당연히 여관썰 패러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