겁스였고, SF 플레이였음. "돈만 주면 어디건 찾아가서 물건을 배달한다"를 모토로 하는 성간 택배회사에 고용된 PC들이 여기저기 돌아다니면서 수상쩍은 물건도 갖다 주고, 우주괴물과도 싸워보고, 우주 배경에서 있을 법한 위험 상황(산소 부족, 저중력 장애, 기압 차 등등)도 두루 겪어보고... 하는 내용. PC 구성은 전직 우주해적 출신 파일럿(내 캐릭터), 전직 해커 출신 전자 담당 기술자, 전직 경찰 출신 경호원, 의료용 로봇.
내 캐릭터는 원래 중앙 성계에서 도망친 범죄자들이 주로 모여 드는 변방의 작은 행성의 왕자였는데, 이 행성은 옛날 지구의 바이킹스러운 문화를 갖고 있었음. 그래서 왕자들도 다른 행성 정부의 상선들 대상으로 해적질하면서 부와 명성을 쌓는 게 왕위 계승 조건 중 하나였는데, 내 캐릭터는 누군가의 배반으로 인해 부하들과 함께 감옥에 갇힘. 사형 날짜를 받아놓고 있었는데 왠 남자가 찾아와서는 '내가 널 보석으로 빼줄테니 대신 XX라는 성간 택배회사에 취직해서는 가끔 내가 부탁하는 물건을 운송해 달라'는 거래를 제안. 그 거래를 수락해 예의 택배회사 우주선 파일럿으로 일을 하면서 남자의 부탁을 들어주는 한편, 아직 풀려나지 못한 옛 부하들을 해방시키는 동시에 그 남자의 정체와 진의를 캐낸다는 목적을 갖고 있었음.
성격적으로는,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타입 캐릭터인 '두뇌 명석한 근육질 마초'. ST 17에 IQ 14, 카리스마 2단계 보유. 단점으로는 명예원칙:바이킹(명예원칙:해적도 강화판)과 광포, 의무감:동료가 있었음. 손 닿는 곳에 무기가 없으면 좀 불안해진다는 버릇과 어우러져서 우주 시대의 흉폭한 바이킹 전사라는 컨셉과 동시에, 겉보기와는 달리 수학이나 천문학, 박물학 등의 고급진 학문을 익히는 걸 좋아하고, 등을 맡기고 함께 싸우는 동료를 아낀다는 설정이 있었음(그런 쪽 기능도 얼추 갖춰져 있었고. 심리학도 찍었던 거 같은데 잘 기억이 안 난다). 한 줄 요약하면... 전투 시에는 피를 뒤집어 쓴 채 웃으면서 진동 블레이드로 적의 해골을 쪼개고, 전투가 끝나고 나면 샤워한 뒤 안경 끼고 위상수학 문제를 풀거나 원시 행성의 생태계를 다룬 다큐멘터리를 보면서 쉬는 컨셉.
이전 플레이에서 이미 리더 역할 캐릭터를 한 적 있어서... 그 플레이에서는 리더 역할은 다른 PC에게 맡기고, 나는 한 발 물러나 "어이 선장, 이 결정이 최선이라고 생각하나" "지시를 내리라고, 결단력을 보여" 운운하는 대사를 하며 은근히 리더를 시험하는 스타일로 가려고 했는데 선장 캐릭터의 플레이어가 빠지면서 얼떨결에 리더 역할을 다시 떠맡게 됨.
다른 PC들과의 케미도 좋았고(해커에게는 허약하다고 갈구면서도 지켜주는 역할, 경호원과는 서로 까면서 노는 악우 비슷한 관계, 의료용 로봇에겐 깡통이라고 갈구면서도 상대가 피노키오 컴플렉스가 있다는 걸 눈치채고는 대등한 인간으로 대해주는 등) 전체적으로 만족스럽게 잘 플레이해서 엔딩 봤다.
역시 진정한 배드애스는 문무겸비였던 것인가
초반 일부만 로그가 남고 나머지가 거의 다 소실됐다는 게 그 플레이 끝나고 몇 년이 지난 지금까지 아쉬움. 재미있었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