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Masque of the Red



5


 남자가 죽어 있는 오두막은 한 사람이 살아가기에는 아늑할 만한 공간이었다. 문을 들어서자 바로 잿더미만 남은 벽난로가 보였고 왼편 벽면에 한 사람이 자기에는 넉넉한 침대가 하나 놓여 있었다. 문의 오른편에는 식탁이 보였으며 식탁 위에는 먹다 남은 빵과 사과가 남아 있었다. 사과는 이미 갈변하여 말라 비틀어진지 오래였다. 식탁 옆으로 집 주인이 쓰는 서랍장 하나가 창문 아래에 놓여 있었다. 오른쪽 구석에 한 남자가 죽어 있는 하프시코드가 놓여 있었다.

 네 사람은 한동안 방안에 선 채로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그러다 가장 먼저 쏘라딘이 하프시코드에 쓰러져 있는 시체로 다가가 살펴보기 시작했다.

 “등에 칼로 찔린 상처가 있군. 상처부위가 크지 않은 것을 보면 단도의 크기인 것 같은데. 오, 이런…….”

 쏘라딘은 얼굴을 확인하기 위해 엎드려 있는 시체를 살짝 들어보았다. 얼굴은 상처로 엉망이 되어버린 상태였다.

 “꺅! 너무 끔찍해요!”

 보고 있던 베르나가 소스라치게 놀라며 소리를 질렀다. 쏘다린은 잠시 살펴본 후에 다시 본래대로 시체를 엎어놓았다.

 “아무래도 등의 상처가 가장 치명적이었던 것 같소. 사망한지 하루나 이틀정도는 지난 것 같은데.”

 베르나는 오두막에 들어온 이후로 가장 많은 소리를 질렀지만 그녀의 호기심은 가장 강렬한 힘을 발휘하고 있었다. 그녀는 어느 새 쏘라딘의 옆으로 와서 근처를 계속 살피고 있었다.

 “오두막 안의 물건은 최대한 건드리지 말고 조사를 해보도록 하죠.”

 리아가 애써 침착하게 말했지만 그녀의 미간은 주름이 생길 정도로 찌푸려져 있었다. 그녀는 자신이 서있는 자리에서 한 발도 움직이지 못하고 있었다.

 “앗, 여기 좀 보세요. 하프시코드 왼쪽 건반 쪽에 피 묻은 모양이 이상해요.”

 베르나가 가리킨 곳에 마치 피로 글자를 쓴 것 같은 모양이 보였다.













 “이건 드워프의 언어로군요.”

 리아가 곧장 알아보았다. 그러자 쏘다린이 글자를 읽어보며 바로 말했다.

 “첫 세 글자는 RED. 다음은 좀 겹쳐져 있지만 MASK인 것 같은데. 그리고……. HEL? 마지막 글자가 좀 이상한데? 앞의 세 글자는 ‘H’ ‘E’ ‘L’이 확실하지만 마지막 글자는 일치하는 것이 없소. 아무래도 P를 쓰려다가 혼돈해서 잘못 쓴 것 같군.”

 “그렇죠 P를 쓰려면 왼쪽의 꼬리가 없어야 하죠.”

 드워프의 P는 의 모양이다. 하지만 이것은 왼쪽에 이상한 꼬리가 붙어있다. 마치 드워프의 F인 를 쓰다 만 것 같은 모양이었다. 하지만 F라고 쓰면 단어가 성립이 되지 않는다. 리아가 다른 언어들의 글자들을 머릿속에 떠올렸지만 유사한 모양의 글자는 생각나지 않았다. 엘프의 언어에도 비슷한 글자는 없다. 물론 마지막 글자만 엘프의 글자로 쓰는 것도 그 자체로 이상한 일이긴 하지만. 게다가 앞의 글자들은 정확히 드워프 언어로 해독이 되는 상황이다. 

 “정말 이상하군요. 먼저 죽은 자는 아무래도 인간(Human)으로 보이는데 어째서 드워프 언어를 여기에 남겼을까요?”

  리아가 먼저 의문을 제시하자 쏘라딘이 대답했다.

 “그렇군. 이상한 일이야. 어쩌면 드워프의 언어를 좋아했는지도 모르지.”

 “그럴 수도 있겠군요. 하지만 더 이상한 건 남긴 말의 의미에요. Red Mask는 그렇다 치고 마지막이 P라면……. Red Mask Help. 죽어가는 순간에 붉은 가면에게 도와달라고 요청한 걸까요? 아니면 붉은 가면을 도와라? 굳이 그런 단어를 쓸 필요가 있을까요?”

 “죽어가는 급박한 상황에서 제대로 판단하기란 어렵지 않겠나. 아마 그래서 마지막 글자도 애매하게 남은 것이겠지.”

 “아, 어쩌면 그럴 지도 모르겠어요.”

 리아가 갑자기 뭔가 깨달은 것처럼 박수를 쳤다. 그녀가 귀를 쫑긋거리고 말하기 시작했다.

 “이건 일종의 다잉 메시지(dying message)를 남긴 것이 확실합니다. 어쩌면 우리가 아직 모르는 무언가의 약자일지 가능성도 있는 거에요. 그렇다면 HELF건, HELP건 둘 다 특별한 의미를 가질 수 있게 됩니다. 검토할 만한 사항이에요.”

 “일리가 있는 말이긴 하네만 난 그냥 도와달라고 쓴 것으로 밖에 보이지 않네. 아니, 오히려 아무런 의미가 없을 수도 있지. 우리가 과하게 의미를 부여하는 것일지도 몰라.”

 리아와 쏘라딘이 각자의 의견을 주고받았지만 내용의 진전은 특별히 없었다. 그동안 베르나는 자신의 모든 감각을 동원하여 열심히 오두막을 조사하고 있었다. 앤더는 조사하는 것에는 그리 흥미가 느껴지지 않았다. 이런 곳에서 한가롭게 토론이나 벌이고 있다니! 앤더는 당장이라도 밖에 괴물이 나타나길 바랐고 그들과 한바탕 대결을 하고 싶었다. 하프시코드? 참으로 낭만적이로군. 앤더는 음악과는 늘 거리가 멀었다. 여유롭게 하프시코드나 치고 있을 바에는 몸을 움직이며 자신을 단련하는 것이 더 훌륭한 일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말라깽이 남자들이 여자들을 어떻게든 꾀어보려고 하프시코드를 뚱땅뚱땅 치고 있는 꼴은 앤더가 가장 싫어하는 모습 중 하나였다.

 바닥에 납작 엎드린 상태로 수색을 진행하던 베르나가 갑자기 벌떡 일어났다.

 “역시나! 하프시코드라니, 아주 고전적인 수법이지. 어이 거기 힘만 쓸 줄 아는 바보 같은 아저씨 이리로 좀 와 봐요.”

 “뭐야? 이 건방진 꼬맹이가?”

 앤더가 씩씩대며 다가가자 베르나가 바닥을 가리키며 말했다.

 “이것 봐요. 여기 하프시코드가 있는 바닥에 흠집이 나있단 말이지. 이건 이 하프시코드를 최근에도 계속 옮겼다는 얘기거든. 분명 이 바닥에 비밀 통로 같은 게 나있을 것이 확실하다구요. 베르나님의 직감이라고 할까.”

 그러자 리아가 베르나의 말에 동의했다.

 “베르나씨의 말은 일리가 있어요. 저도 계속 이 시체에게서 미묘한 이질감이 느껴졌거든요. 하프시코드를 밀고 바닥을 조사해 보는 것이 좋을 것 같군요.”

 쏘라딘이 하프시코드에 쓰러진 시체를 벽난로 앞으로 잘 눕혀 놓자 앤더가 하프시코드 쪽으로 다가가 하프시코드를 당겼다. 앤더가 힘을 많이 주지 않았음에도 하프시코드는 부드럽게 창가로 당겨졌다.

 “역시나 바닥에 비밀통로가 있군.”

 베르나가 능숙한 솜씨로 나무 바닥을 들어냈다. 그러자 지하로 내려가는 사다리가 보였다.

 “역시 나의 직감은 보통이 아니라니까. 자, 이번에도 힘 쎈 아저씨가 한 번 들어가 보시죠? 문도 벌컥 여시던데.”

 “쳇, 어디 겁먹을까보냐.”

 앤더가 제일 먼저 성큼성큼 사다리를 내려갔다. 사다리에는 특별한 함정은 없어서 앤더는 가뿐하게 바닥으로 내려갈 수 있었다. 빛이 들어오지 않아 사다리 주변 외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사다리엔 아무것도 없어요. 너무 어두워서 뭐가 있는지 하나도 안보이는데.”

 “인간은 어둠 속에서 무력한 법이지요.”

 다크비전(Darkvision)을 가진 리아가 가뿐하게 사다리를 내려와서 주변을 둘러보자 횃불 보루가 보였다. 그녀는 작은 파이어 볼트(Fire Bolt)로 횃불을 밝혔다. 밝혀진 지하실 내부는 복잡한 기계장치를 만드는 작업대와 여러 도구들이 널브러져 있었다. 어디 쓰는 지 알 수 없는 정교한 기계들이 빽빽하게 들어차있었으며 책상 위에는 도면으로 보이는 스크롤들이 가득 쌓여 있었다. 오른쪽 벽면의 책장에는 두꺼운 책들이 가득 꽂혀 있었다.

 “집 주인은 함정을 만드는 데 꽤나 능숙한 사람이군요. 이 책들도 기계와 관련된 책이에요.”

 리아가 책상 위의 도면을 집어 들었다. 도면들은 결코 간단한 것들이 아니었다. 리아는 나름 기계와 관련된 책을 접해 보았지만 무엇을 만드는 장치인지 예상조차 할 수 없는 도면이었다. 특히 라디아늄 농축기(Radianium Concentrator), 반응기(Reactor)라는 전혀 생소한 제목들이 도면에 적혀 있었다. 책장에 가득 꽂힌 책들도 마찬가지였다. 기계제작뿐만 아니라 다양한 지식들을 가지고 있는 수준 높은 책들이 가득했다. 만약 집 주인이 있었다면 시간을 허락받고 열심히 읽어보고 싶은 생각이 들 정도였다.

 “저기 문이 하나 더 있어요.”

 날렵하게 내려온 베르나가 벽면에 보이는 문으로 쪼르르 다가갔다. 자신이 가지고 있던 도구들로 한참을 씨름하더니 철컥 하며 문이 열렸다.

 “생각보단 쓸모 있는 꼬맹이로구만.”

 가장 늦게 내려온 쏘라딘이 흐뭇하게 바라보며 말했다.

 “역시 난 보통 로그가 아니란 말이지 후훗.”

 베르나가 신나게 문을 열자 좀 더 고급스러운 도구들이 가지런히 놓인 방이 나타났다.

 “오호, 이런 것들은 꽤나 좋아 보이는 도구인데? 애쉬란 사람은 상당히 손재주가 좋은 사람인 것 같아요. 어라 요 상자에는 뭐가 들었을까?”

 베르나가 조금 큰 귀중품상자(Strongbox)를 하나 발견하더니 다시 자신의 도구로 상자를 열어보기 시작했다. 문을 여는 것과 거의 비슷한 시간이 흘렀지만 성과가 없었다.

 “어허, 남의 물건을 그렇게 막 열어봐도 되나.”

 쏘라딘이 걱정되는 투로 말했다. 베르나는 주변의 도구를 몇 개 가지고 오더니 다시 상자를 여는 데 열중했다. 아무리 도전해도 상자는 열릴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휴, 애쉰지 뭔지 꽤 나 고수인데요? 이건 포기에요.”

 엄청나게 집중해서 잠금장치를 풀고 있었는지 베르나는 땀이 줄줄 흐르고 있었다.

 “뭐 좋은 거라도 들어 있을 거라고 생각하나? 자 다 둘러 봤으면 어서 마을로 돌아갑시다. 지금 부지런히 가지 않으면 한밤중에 도착할거란 말이오.”

 앤더가 다시 툴툴대기 시작했다.

 “앤더씨 말은 맞아요. 베르나, 상자를 들고 밖으로 나가죠.”

 리아가 앤더의 말에 동의했다.

 “이 상자를 들고 간다고요? 왜요?”

 “아무래도 그 상자가 란달씨가 필요한 상자인 것 같아요. 제가 받은 란달씨의 편지는 봉인이 좀 허술하게 되어 있더군요. 그래서 살짝 기술을 발휘해서 티내지 않도록 봉인을 열고 편지를 읽어보았어요.”


 놈이 다시 부활한 것이 확실해. 그들은 벌써 나를 찾아냈고 죽이려 들었어. 아마도 우리에게 복수하려고 드는 것이겠지. 나는 지금 크게 다친 상황이어서 직접 움직이기 어려우니 내가 보낸 모험가들 편에 상자를 보내주면 좋겠네. H가 다시 모여서 싸울 수 있을 때까지 부디 몸조심하길.

- R


 “상자를 보내달라는 말이 확실히 적혀있어요. 그리고 여기 H가 다시 모여서라는 표현이 나오는데……. 자, 베르나, 이 열쇠 부분을 보세요.”

 리아가 상자 앞부분의 열쇠 구멍을 가리켰다.






 “이게 뭐 어때서요. 가만, H 모양이잖아!”

 베르나가 깜짝 놀랐다. 상자를 여는 데에만 집중해서 열쇠 구멍의 모양에는 전혀 관심을 갖지 않았던 것이다.

 “이미 애쉬란 사람은 죽었으니 이 상자를 란달씨에게 전달하고 이야기를 더 들어봐야 될 것 같군요.”

 셋은 리아의 말에 동의하고 밖으로 나갔다. 베르나가 들기에는 상자의 무게가 무거운 편이어서 앤더가 상자를 맡기로 했다. 네 사람은 서둘러 1층으로 다시 올라갔다. 어느 새 해는 저물어 저녁이 되어가고 있었고 방 안은 붉은 빛으로 물들었다.

 “아무리 그래도 애쉬란 사람을 잘 묻어주어야 좋지 않겠소?”

 쏘라딘이 걱정을 하자 리아가 담담하게 말했다.

 “아니 그대로 두고 떠나는 것이 좋을 것 같네요 앤더씨 말대로 시간도 부족해요.”

 앤더가 리아의 말에 동의하며 다시 재촉했다.

 “자자, 어서 갑시다. 저 사람을 묻어주는 것은 나중에 해도 됩니다.”

 앤더가 앞장서서 오두막 문을 박차고 나려고 하자 갑자기 낯선 소리가 외치는 것이 들렸다.

 “저 놈들이 나온다!”

 “상자를 찾아라!”

 고요하던 수풀 속에서 코볼트 떼들이 나타나 네 사람을 포위했다.

 “오호라, 이놈들! 얼마든지 상대해주마!”

 앤더가 호기롭게 외치며 허리춤에서 자신의 롱소드를 꺼냈다.






(계속)




오늘은 여기까지 올리고 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