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앤더의 실력은 놀라웠다. 자신에게 달려드는 코볼트 두 마리를 순식간에 제압한 것이다. 쏘라딘도 그 뒤를 따라 자신의 워해머를 휘두르며 전투에 가담했고 리아도 자신의 파이어볼트로 이들을 지원했다. 베르나는 자신의 가방에서 숏보우(Shortbow)를 꺼내어 활을 쏘기 시작했지만 능숙하지 못했다. 짧은 시간에 코볼트 다섯 마리가 쓰러졌지만 코볼트들도 물러서지 않았고 오히려 수풀 속에서 코볼트들이 더 나오기 시작했고 슬링(Sling)으로 공격하기 시작했다. 코볼트들은 전진해서 싸우고 있는 앤더를 향해 덤벼들었고 잘 싸우던 앤더도 힘이 부치기 시작했다. 쏘라딘이 힐링 워드(Healing Word)로 앤더를 지원해 주었지만 네 마리의 코볼트가 둘러싸자 점점 뒤로 밀리기 시작했다.

 “망할 녀석들, 비겁하게 떼거지로 덤비다니! 한 놈씩 덤비란 말이다!”

 네 사람은 점점 오두막 안으로 포위되기 시작했다.

 “상자를 내놔라! 상자를 내놔!”

 코볼트 악을 쓰며 외쳤다. 하지만 앤더도 쉽게 포기하지 않았다.

 “웃기지마라! 상자는 내거라구!”

 그러나 말과는 다르게 앤더의 힘이 점점 빠지고 있었다. 근접한 코볼트들은 어찌어찌 상대가 되었지만 멀리서 날아오는 슬링의 돌맹이가 치명적이었다.

 “이러다가 우리가 당하겠군요. 차라리 상자를 내주는 것이…….”

 리아가 걱정스럽게 말하자 쏘라딘이 강하게 거부했다.

 “무슨 소리! 이런 놈들에게 당하느니 차라리 끝까지 싸우겠소!”

 “왜 이렇게 많은 거야! 으악, 이쪽으로 오지마!”

 베르나도 자신에게 다가오는 코볼트에게 화살을 날리면서 말했다. 화살은 허무하게 하늘로 날아갔다.

 “젠장, 활은 왜 이모양야!”

 코볼트는 신나게 베르나에게 붙어 단도로 공격하기 시작했다. 상황이 불리해져가자 리아도 점점 침착함을 잃어가기 시작했다. 공격 주문이 코볼트를 빗나가기 시작했고 급기야는 파이어볼트로 공격하다가 돌부리에 걸려 넘어졌다. 수풀에 가까이 있던 코볼트 한 마리가 그 모습을 놓치지 않았다. 넘어진 리아를 지켜보던 코볼트는 커다란 돌맹이를 슬링에 걸어 자신있게 휘휘 돌리고 있었다. 돌은 점점 속도를 내기 시작했고 가속도가 붙은 돌이 마침내 슬링의 끝을 떠났다.

 “꽥!”

 어디선가 빠른 속도로 화살이 날아와 코볼트의 머리를 꿰뚫었다. 가속도가 붙은 돌은 허무하게 하늘 위로 사라졌다.

 “누구냐!”

 코볼트들이 놀라는 사이에 다시 화살이 날아왔다. 이번에는 베르나에게 덤벼들던 코볼트가 힘없이 쓰러졌다.

 “아주 꼴 좋구만, 코볼트놈들! 맛좀 봐라!”

 코볼트들이 당황하기 시작했고 앤더는 그런 코볼트들을 사정없이 공격했다. 화살이 코볼트에게 계속 정확하게 날아들자 후방의 코볼트들이 도망가기 시작했다. 네 사람은 다시 힘을 내어 화살의 도움을 받아 코볼트들을 공격했고 살아남은 코볼트들은 모두 숲 속으로 도망쳤다. 그러자 수풀 속에서 나타난 것은 활을 든 아드릭이었다.

 “제가 적절한 시기에 도착한 것 같군요.”

 일행은 모두 깜짝 놀랐다. 아드릭이 참전한 덕분에 전투는 종료되었고 쏘라딘은 란달의 의뢰, 오두막의 시체, 코볼트의 습격등 지금까지의 상황을 그에게 이야기해 주었다. 설명 중간에 베르나가 끼어들어 자신이 멋지게 잠긴 문을 열었다는 것을 적극적으로 알렸다.

 “저도 우연히 이곳으로 온 것은 아닙니다. 몇 가지 정보들이 있어서 숲을 순찰하고 있던 참이었지요. 란달의 의뢰 같은 것 때문에 경비대원을 신경 쓰실 필요는 없습니다만, 란달이란 사람이 뭔가 비밀을 가지고 있는 것 같아 수상합니다. 오두막 조사는 여러분들이 자세히 하신 것 같으니 도시로 빨리 돌아가도록 하지요. 서두르지 않으면 밤이 될 겁니다.”

 이에 다섯 명은 네버윈터로 돌아갔다. 가는 길에 베르나는 아드릭에게 자신의 활을 보여주었고 아드릭은 활이 고장난 것을 확인해 고쳐주었다. 베르나는 아드릭에게 활에 대해 이것저것 물어보면서 계속 재잘대며 신나게 떠들었다. 네 사람이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며 돌아가는 가운데 리아는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


 네버윈터로 돌아오자 자정무렵이 되었고 술집에서는 한참 난장판이 펼쳐지고 있었다. 이런 어마어마한 소음 속에서도 대화를 하고 있다는 것이 신기할 지경이었다. 다섯 명은 서둘러 란달이 머물고 있는 방으로 향했다. 아드릭이 문을 두드렸지만 방 안에서 아무런 기척도 느껴지지 않았다. 그러자 앤더가 참지 못하고 다시 문을 두드렸다.

 “이봐요. 란달? 자는 거요? 잠깐 일어나봐요. 비상사태란 말이오!”

 그러나 여전히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술집은 어마어마하게 소란스러웠지만 방문 앞은 숨쉬는 소리도 들을 수 있을 정도로 고요한 느낌이 들었다. 리아는 이러한 차이가 기묘하게 느껴졌다. 언젠가 느껴본 고요함이다. 그래 오두막에 들어갈 때의 느낌이 확실해.

 “이상해요. 문을 억지로라도 열어봐야 할 것 같아요.”

 리아가 말했다. 앤더가 문을 걷어차려는 자세를 취하자 쏘라딘과 아드릭이 그를 말렸고 그 사이 베르나가 술집 주인에게 열쇠를 받아왔다.

 “여는 것은 이 베르나님이 전문이지요.”

 베르나가 문을 열었다. 딸깍! 소리가 너무 큰데? 리아가 갑자기 외쳤다.

 “베르나, 잠깐! 문을 열지 말아요!”

 “네? 갑자기 무슨…….”


 펑!


 베르나가 말을 끝내기도 전에 방 안에서 거대한 폭발이 일어났다. 폭발로 인해 부서진 문짝이 베르나를 향해 날아들었지만 그녀의 타고난 반사 신경 덕분에 아무런 피해를 입지 않았다.

 “아이고! 죽을 뻔했잖아!”

 투덜대는 베르나 앞에 펼쳐진 방안의 풍경은 끔찍했다. 폭발로 인해 방은 그을음으로 가득했으며 침대 위에는 검게 탄 시체가 한 구 놓여 있었다.




7


 가게 안으로 들어오는 따사로운 햇살이 기분을 좋게 만들어주는 아침이었다. 적어도 에스벨레 그레이케슬(Esvele Greycastle) 그 상자를 보기 전까지는 기분 좋은 아침이었다. 

 그녀가 네버윈터에 잡화점을 연 것은 이제 겨우 한 달 남짓 정도 되었다. 도시에 가게를 하나 열기까지 그녀는 다양한 삶의 모습을 겪으며 지내왔다. 모험가로서의 험난한 삶도 있었고 기계 기술자로서 수많은 지식을 갈구하던 시기도 있었으며 한 사람을 열렬히 사랑하기도 했다. 하지만 횃불처럼 타오르던 젊은 시간들은 이제 소중한 기억들로 남기고 가게의 주인으로서 안정적으로 살아가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다. 그 시절들은 너무나 위험했다.

 “안녕하세요? 새로 연 가게라더니 아주 깔끔하게 잘 되어 있군요.”

 조금만 더 이 따뜻한 햇살을 편안하게 느끼고 싶었는데. 갑자기 나타난 경비대원 아드릭에 의해 그녀의 노곤하고 몽롱한 시간은 끝나고 말았다.

 “무슨 일이죠?”

 에스벨레는 약간의 짜증을 담아하지만 드러나지 않도록서 그에게 대답했다. 이른 아침부터 경비대원이 나타나다니. 경비대는 한때 선망하던 단체였지만 그것조차 과거의 쓸데없는 기억일 뿐이다. 손님에게 이래서는 안 되는데. 에스벨레는 자신의 불쾌함을 최대한 드러내지 않아야겠다고 생각했다.

 “기계를 아주 잘 다루신다고 들었습니다. 이 상자를 열어주실 수 있겠습니까?”

 아드릭은 상자를 꺼내어 에스벨레에게 보여주었다.

 그 상자다. 너무나도 익숙한 그 상자. 상자는 묘한 마력이라도 뿜어내는 듯 그녀를 꼼짝 못하게 묶어두고 있었다.

 “에스벨레씨?”

 “네? 네, 네. 물론이죠. 상자를 여는 것은 제 전문이니까요. 이리 주세요.”

 에스벨레는 아드릭에게서 상자를 건네받고 자신의 작업대에 올려놓았다. 어째서 이 상자를 경비대원이 가지고 왔을까?

 란달에게 무슨 일이라도 생긴걸까?

 에스벨레는 자신의 도구로 상자를 열기 위해 노력했다. 절묘한 장치로 만든 상자였기에 여는 것은 쉽지 않았다. 아니, 에스벨레는 이미 자신이 이 상자를 열 수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란달의 상자를 여는 것은 그녀의 실력으로는 불가능했다. 그녀의 이마에서 땀이 배어나오기 시작했다. 이것은 집중해서 흐르는 땀이 아니다. 오히려 두려움에 가까운 식은땀이다.

 “보통 상자가 아니군요……. 상자를 열기 위해서는 시간이 좀 더 필요할 것 같은데 제가 보관하고 있어도 될까요?”

 “얼마나 걸릴 것 같습니까?”

 “아마 일주일은 걸릴 것 같아요.”

 “그냥 부술 수는 없습니까?”

 부순다고? 에스벨레는 정교한 잠금장치를 만든 사람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고 생각했다.

 “아마 불가능할거에요. 특수한 금속으로 만들어져 있어서. 그리고 너무 과한 힘을 가하면 안의 내용물도 부서질 우려가 있어요.”

 “음 일주일이 걸리는데다가 부술 수도 없다……. 그렇다면 곤란한데요. 아무래도 다른 곳에 의뢰를 더 해봐야겠군요.”

 에스벨레는 알고 있었다. 이 상자는 누구도 열지 못한다. 오직 란달만 열 수 있는 상자였다.

 “이 상자를 열 수는 없어요. 이건 보통 상자가 아니에요. 이 상자를 어디서 구하신거죠?”

 “그건 말할 수 없습니다. 상자를 어디서 구한 것인지 알 필요가 있나요?”

 에스벨레는 순간 당황했지만 계속 말했다.

 “음……. 아무래도……. 어떤 기술을 썼는지 알 수도 있으니까 그렇죠? 제가 보기엔 상자를 만든 사람은 보통 기술자는 아닌 것 같아요. 제가 연구하면 분명히 열 수 있을 겁니다. 제게 맡겨보세요.”

 하지만 상자는 아드릭의 것이 아니었기 오랫동안 맡길 수는 없었다.

 “이것 참 아쉽군요. 경비대에도 사정이 있어서 오래 맡길 수는 없습니다. 어쩔 수 없이 다른 곳에 문의해봐야겠군요. 그럼 이만.”

 아드릭은 재빨리 상자를 들고 가게를 나섰다. 에스벨레는 땀방울이 자신의 등을 타고 내려가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다. 그녀는 지금 오직 한 가지 생각에 집중하고 있다.

 그 놈이 돌아왔다.


 리라 그레이(Rela Grey)를 차로 내놓다니. 게다가 폰틸(Pontil) 지방의 홍차까지 공수해 올 필요는 없잖아? 리아는 불만을 가지면서도 따끈한 김이 올라오는 잔을 흐뭇하게 바라보았다. 리아는 햇살의 온기가 기분 좋게 만들어주는 잘 꾸며진 테라스에 앉아 생각에 잠겼다. 저택의 서재에서 책에 파묻혀 공부하고 있을 때 늘 홍차를 마셨다. 집을 나와 떠돌던 이래로 오랜만에 맡아보는 향이었다.

 홍차의 향은 언제나 독서의 즐거움을 떠올리게 했다. 홀리미온가의 저택에서 태어난 그녀는 언제나 책을 읽기 좋아했던 독서광이었다. 어려서부터 똑똑하고 공부를 잘했던 리아는 세상의 다양한 마법지식을 공부하여 대마법사가 되는 것이 꿈이었다. 리아가 성인이 되어 마법대학으로 진학해 공부하겠다고 말하자 아버지인 로렌(Rolen)은 그것을 결사적으로 반대했다. 로렌은 리아가 빨리 좋은 집안과 결혼하여 자신의 가문을 든든하게 만들어주길 원했고 리아는 그러한 아버지의 계획을 도저히 참을 수 없었던 것이다. 결국 그녀는 자신이 스스로 돈을 벌고 강한 마법사가 되기 위하여 가출을 단행했다. 집의 지원 없이 홀로 모험가로 살아간다는 것은 만만치 않은 일이었지만 집에서 아버지의 잔소리를 듣는 것 보다는 훨씬 나은 삶이다. 그녀는 판델린 시 근처의 판델버의 광산에 여러 많은 옛 마법서적이 있다는 소문을 듣고 그곳으로 향하기 위해 준비를 하고 있었고 그나마 숙박비가 저렴한 영웅의 쉼터에 묵고 있었던 것이다.

 란달이란 사람은 도대체 어떤 사람일까? 밤중에 괴물의 습격을 받고 엉망이 된 채로 쉼터에 나타났던 것이다. 그의 이름부터 이상했다. 란달 이븐우드란 이름은 아무래도 엘프를 떠올리게 한다. 자신과 같은 귀족 하이엘프(High Elf)로 보이진 않았으며 아무래도 숲 속의 우드 엘프(Wood Elf) 정도는 되어 보였다. 하지만 그의 모습은 영락없는 인간(Human)이었다.

 왜 괴물에게 쫓기고 있던 것일까? 왜 그는 자신의 정체를 경비대에 드러내지 않았을까? 란달은 리아가 몰래 이야기를 듣고 있다는 것을 알아챌 정도로 예민한 감각을 가진 자였다. 그의 제안은 비밀스러운 면이 많았고 심지어 오두막에는 사람이 죽어있었다. 죽은 사람은 상자를 남겼고 코볼트는 그 상자를 노리고 있었다. 아드릭. 그 녀석은 왜 또 거기서 나타난거람……. 활 솜씨나 자랑하고 말이지.

 상쾌한 바람이 살짝 불자 홍차의 향기가 다시 그녀를 편안하게 만들어 주었다. 지금 그녀가 있는 곳은 어린 시절 종종 놀러오던 경비대장 가르다인의 저택인 것이다. 영웅의 쉼터에서 폭발이 일어난 이후로 경비대가 술집으로 모여들었고 결국 그 장소에 있던 증인과도 같은 네 사람은 경비대에 조사를 받기 위해 온 것이다. 본격적인 조사가 시작될 무렵 아드릭이 나타나 경비대장의 저택으로 네 사람을 데려갔다. 갑자기 왜 이곳으로 또 오게 된 걸까. 리아는 미간을 찌푸렸다. 란달은 죽었고 그가 잠시 머물렀던 저택에서는 습격을 당할 뻔 했던 걸 생각하면 짜증이 난다.

 “어허, 왜 그렇게 표정을 찌푸리고 있나. 예쁜 얼굴에 나처럼 주름이 가득해지겠는 걸.”

 경비대장 가르다인이 리아가 앉아 있는 테라스로 들어왔다. 햇살이 그의 굳건한 얼굴에 비춰지자 무수한 주름들이 제각각 그림자를 만들어 내고 있었다.

 “가르다인님 오랜만에 뵙겠습니다.”

 리아가 자리에서 일어나려고 하자 가르다인이 손을 내저으며 앉았다.

 “거참 일어날 필요 없어. 예의 차리는 건 아버지나 비슷하구만 그래. 어때, 홍차 맛은 괜찮나? 아드릭이 어렵게 구했다고 하더군.”

 그런 것으로 저를 굳이 불편하게 만드실 참인가요. 리아는 차마 자신의 생각을 입 밖으로 내지는 못했다.

 “정말 감사합니다. 생각지도 못한 선물이군요.”

 리아는 정중하게 감사의 말을 전했다.

 “거참, 그 집안사람 아니랄까봐. 말투도 똑같구만. 네 아버지도 마찬가지였어. 우리가 한참 여행을 다닐 때 말이야……. 맞다, 그 때 우리가 아마 드래곤을 잡았을 때였지. 그때가 참 좋았단 말이야. 늘 의견이 맞지 않았지만 희한하게도 전투에 들어가면 어째 죽이 잘맞는 파티였지. 드래곤을 잡을 때도 말이야…….”

 “저, 그 이야기는 저도 많이 들어서 잘 알고 있습니다. 죄송하지만 저를 이렇게 따로 부르신 이유가 뭔지 궁금하군요.”

 가르다인이 동그래진 눈으로 리아를 쳐다보았다.

 “흠흠. 그래. 그럼 본론으로 들어가도록 하지.”

 가르다인이 자신의 홍차를 들이켰다.

 “도대체 홍차는 왜 마시는지 모르겠군. 아무튼, 지금 경비대는 영웅의 쉼턴지 뭔지 앞에 나타난 괴물들의 정체를 조사하고 있다는 것은 잘 알고 있겠지? 죽은 괴물들을 조사해 본 결과 그 놈들은 코볼트인 걸로 밝혀졌어. 코볼트라는 놈들을 잘 알고 있나? 도마뱀 머리를 하고 강아지들 같이 종종거리며 다니는 것들 말이야. 원래는 별 볼일 약해빠져서 잔머리나 쓰는 놈들인데 이상하게 덩치가 커지고 힘이 세진 형태로 괴물이 된 거야. 게다가 침을 질질 흘리는 꼴이 아주 끔찍하지. 괴물들을 관찰한 한 위저드는 코볼트들이 어떤 이상한 힘에 의해 변형 된 것이 아닌가하는 추측을 내놓기도 했어. 자세한 것은 우리도 아직 조사해보아야 하지만. 녀석들의 정체가 어찌되었든 우리 경비대는 괴물들을 막아야할 의무가 있지. 아무래도 그런 놈들이 나타나면 치안이 불안하고 위험하니까. 그런데 마침 네버윈터 숲 너머에 몬틸라 마을(Montilla Village)에서도 코볼트들이 자꾸 나타난다는 소식이 들어왔더군. 몬틸라 마을은 이곳에서도 그리 멀지가 않으니까 뭔가 관련이 있을 것 같긴 하네. 문제는 우리 경비대는 네버윈터를 지키는 데만 해도 병력이 부족하단 말이지. 이놈의 경비대는 언제나 예산부족, 인력부족에 시달리는 게 일상이지. 하여튼 귀족이란 놈들은 공공의 이익에는 관심이 없고 지들 이익만 따지려고 드니 말이야 이전에도…….”

 “그러니까 저희들이 코볼트들에 대해서 조사해달라는 말씀이시군요.”

 “하하, 그렇지. 바로 그거야. 기왕이면 예비 경비대 신분으로 조사를 해줬으면 하는 거지. 폭발 사건으로 죽은 란달이란 녀석이 뭔가 관련되어 있는 것 같긴 한데……. 방에서는 특별한 증거는 찾아내지 못했네. 자네들에게 보상금을 주기로 했다고 들었는데 아쉽게도 시체에서는 돈이 발견되지 않았어. 만약 발견했다면 내가 나눠주라고 지시했을 텐데 말이야. 이 모든 일들의 뒤에 도대체 뭐가 숨겨져 있는 걸까. 궁금하지 않은가? 최근 들어온 소식에 따르면 몬틸라 마을 근처에는 아예 코볼트 무리가 나타나서 자리를 잡고 살게 해달라고 난리를 친다더군. 당장은 병력이 부족해서 처리하기가 어렵다네. 그리고 그 몬틸라 마을 대표란 놈이 하는 말은 다 믿을 수가 없어서 말이지.”

 “이런 복잡한 일에 말려들 수는 없어요. 게다가 경비대원 신분이라니……. 검토하기 어려운 일이에요.”

 리아의 목소리가 평소보다 더욱 또렷했다.

 “이런, 하여간 엘프들은 원……. 아니면 이 집안이 유난을 떠는 건지……. 얘야, 나는 고상한 엘프 아가씨에게 부탁하는 것이 아니란다. 사실 너희들은 여기 용의자 신분으로 잡혀온 것이니까 말이야. 그래, 원래는 지금 여기서 홍차를 마시고 있을 때가 아니란 말이야. 저 지하 감옥 철창 속에서 말라빠진 빵이나 씹고 있을 때라고.”

 “용의자라니 말씀이 심하시군요.”

 “허, 당연히 용의자라고. 너희들은 주인 허락도 없이 오두막을 무단으로 침입했을 뿐만 아니라 시내 한가운데서 폭발 소란을 일으켰지. 그 자리에는 까맣게 탄 시체도 하나 있었다고. 리아, 너는 괴물들의 난입 사건과 관련된 무리와 같이 어울리고 있는 거야. 맞아, 자네들이 네버윈터 숲 오두막에서 나오는데 그 안에 사람이 죽어있었단 보고도 들었는데……. 어쩌면 너희 일행은 살인 사건과 관련이 있거나 코볼트 무리와 관련이 있을 수 있단 말이야. 자, 이정도면 네 사람은 충분히 수상한 자들이야. 우리가 당장 감옥에 처넣어도 할 말이 없다고. 어때 엘프 아가씨?”

 “제 아버님에 대한 반감을 가지고 이렇게 저를 대하시는 거라면…….”

 “아니, 아니, 그게 무슨 소린가. 자네 아버지는 아주 깊은 우정을 나눈 친구라고 하하! 나는 오히려 엘프 아가씨를 경비대 소속으로 만들어 안전하게 보호하려는 거지. 이제 상황을 좀 이해하겠지? 몬틸라 마을에 가서 코볼트 놈들이 어디서 왔는지, 그리고 오두막에서 죽은 자의 정체는 뭔지, 란달이란 자의 정체는 무엇이고 왜 폭발 사고로 죽었는지, 이런 것들을 정확하게 밝혀내기만 하면 되는 거야. 어때 모험가로서 아주 흥미롭지 않은가?”

 흥미로운 것은 사실이다. 그래서 리아는 그들의 말을 엿들었고 무리에 끼어들었으며 여기까지 온 것이다. 하지만 이런 식으로 감시하려 드는 것은 영 맘이 내키지 않는다. 굳이 ‘예비 경비대원’이란 꼬리표를 붙이고 모험을 시작해야 하는 걸까.

 “휴……. 어쩔 수 없군요. 조사를 시작해 보도록 하겠어요. 하지만……. 예비 경비대원이란 건 사양하도록 하겠습니다.”

 리아는 굳은 표정으로 홍차를 들이켰다. 불쾌한 기분이 조금은 안정되었다.

 “경비대니 뭐니 그런 건 아무래도 좋지. 그건 그냥 별 의미 없는 명칭일 뿐이네. 그럼 준비를 마치는 대로 몬틸라 마을로 출발하도록 하게. 아드릭도 같이 동행하도록 명령하겠네.”

 “말씀은 감사하지만 아드릭은 동행하지 않아도 될 것 같아요. 지금 동료들만으로도 충분하다고 생각합니다.”

 숲 속의 오두막에서도 아드릭이 갑자기 나타났다. 아니, 그것은 갑자기가 아닌 감시일지도 모른다. 그 덕분에 오두막의 일도 가르다인의 귀에 바로 들어가게 된 것이다. 누군가의 보호를 받으며 오냐오냐 성장하고 싶은 마음은 없다.

 “하하, 아드릭이 섭섭해 하겠구만. 자자, 준비가 되는 대로 출발하도록 하게. 몬틸라는 영웅을 기다리고 있다고.”


 가르다인과 대화가 끝내고 리아는 자신의 동료들을 찾았다. 그들은 가르다인이 차려준 식사를 맛있게 먹으며 신나게 떠들고 있었다. 그들은 자신들이 어떤 상황인지 전혀 관심없이 그저 차려진 빵과 고기를 먹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태평한 친구들로 괜찮을까? 가르다인 앞에서는 자신있게 이야기했지만 슬몃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어 리아잖아. 어디에 있던거야? 얼른 이쪽으로 와서 식사를 하라구.”

 앤더가 입 속에 음식을 가득 넣은 채로 떠들었다. 리아가 가장 싫어하는 부류 중에 하나였다. 입 속에 음식이 있으면 다 먹고 말하시지. 돌던 입맛도 사라져버릴 판이었다.

 “그러지말고 이쪽으로 와서 좀 들게나. 양고기가 냄새도 나지 않고 아주 부드러워. 그리고 여기 엄청나게 맛있는 와인이 있다네.”

 쏘라딘이 식탁 위의 병을 하나 들어 리아에게 보여줬다.

 “아몬틸라도?”

 아몬틸라도 와인은 몬틸라 마을 근처의 와이너리에서 만들어지는 고급 와인이었다. 하지만 리아는 가르다인씨의 집에서 와인 본 적이 없었다. 가르다인은 와인을 ‘포도 주스’ 따위로 취급하는 사람이었다.

 “이건 사실 제가 가지고 온 거랍니다.”

 씨익 웃는 입술 양끝에 홍조가 가득한 베르나가 자랑스럽게 말했다.

 “아몬틸라도! 아주 비싸고 고급인 술이지요. 이렇게 좋은 요리를 대접받고 있으니 좋은 술이 필요하지 않겠어요? 이런 집에 와인이 없다니 도대체 말이 안 되는 이야기지.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제가 가지고 있던 아몬틸라도를 특별히 개방했다, 이 말씀입니다요!”

 “베르나가 이런 취미가 있는지 몰랐어요? 어디서 산거죠?”

 리아가 보기에 베르나가 술에 크게 관심 있는 사람은 아닌 것 같았다.

 “이거? 킥킥킥. 거 오두막에 갔을 때 한 눈에 알아보고 하나 슬쩍 해 왔죠. 어때요 솜씨하나 끝내주게 좋죠? 킥킥킥. 어라, 어라? 왜들 그렇게 날 쳐다봐요? 왜? 다들 그렇게 신나게 마셔놓고?”

 만찬은 분위기가 어색해지려 할 때 아드릭이 나타났다. 네 사람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여러분 식사는 마음에 드셨습니까? 여러분의 장비는 밖에 준비해 놓았습니다만, 이 상자 문제는 해결되지 않았군요.”

 아드릭은 앤더가 오두막에서 챙겨온 상자를 식탁 위에 올려 놓았다.

 “나름 이 도시에서 잠금장치 기술자라고 알려진 에스벨레씨의 가게에 가보았지만 여는데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릴 것 같다는 군요. 일단은 여러분들이 보관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그냥 부셔버리는 게 나을 수도 있겠구만? 어때요?”

 앤더가 상자를 번쩍 들어 올리자 아드릭이 그를 막았다.

 “에스벨레씨의 말에 의하면 간단하게 부서질 상자가 아니고 오히려 안의 내용물이 파괴될 수도 있다고 하더군요. 여러 가지 사건과 관련된 증거물이기도 하니 부수지 말고 잘 가지고 있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자, 앤더씨께서 잘 보관해 주시지요. 그리고 폭발 사건은 좀 더 조사가 진행된 다음에 결과를 말씀드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오, 이런. 아몬틸라도를 한 잔씩 하고 계셨군요?”

 아드릭이 식탁 위의 병을 집어 들었다. 네 사람은 표정이 굳어졌다.

 “아몬틸라도를 좋아하시나요? 아드릭님?”

 베르나가 조심스럽게 아드릭에게 물었다.

 “아니오. 마침 여러분들이 가실 몬틸라 마을 근처에는 아몬틸라도가 유명한 와이너리가 하나 있거든요. 자, 이제 경비대의 정식 조사단 여러분, 출발 준비를 하시지요.”

 아드릭의 이야기를 듣자 리아의 머릿속에서 무엇인가 꿈틀대는 것이 느껴졌다. 끊어져 있는 몇 가지 사실들이 이어질듯 이어지지 않는 느낌이었다. 연결되어 있어. 하지만 아직 고리가 부족해. 몬틸라 마을로 향하면 이어지는 실마리를 찾을 수 있을까? 잔속에 담긴 아몬틸라도가 기묘한 붉은 빛을 내고 있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