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II : The Cask of Amontillado


1


 “이 와이너리가 최고의 품질을 유지하고 있다는 건,” 알톤 몬트그레이프(Alton Montgrape)는 잔에 담긴 와인을 단번에 끝까지 들이켰다. 워낙 급하게 들이킨 나머지 그의 하얗게 세어버린 턱수염 끝에 붉은 와인이 묻었다. “나 알톤은 엄청난 고집불통라는 뜻이지. 그러니까 제안에 대해서는 더 이상 듣지 않도록 하지.”

 재미있는 하플링이로군. 알톤의 이야기가 끝나자 티플링(Tiefling)인 펠라이아(Phelaia)는 미소를 지으며 입맛을 다셨다. 와인 빛깔의 매력적인 입술 사이로 분홍색의 혓바닥이 잠시 나타났다 사라졌다.

 “이정도 금액에는 만족하지 않는다. 역시 보통 분은 아니네요. 그럼 더는 제안하지 않겠어요.”

 펠라이아는 잔에 담긴 아몬틸라도를 바라보았다. 창 밖에서 지는 저녁놀이 아몬틸라도를 비추자 진한 붉은 빛이 감돌았다. 붉은 빛은 언제나 펠라이아를 흥분시켰다. 어떤 방법으로 이 와이너리를 소유할까. 어차피 나의 목표가 된 상태에서는 절대 빠져나가지 못해. 펠라이아는 천천히 아몬틸라도의 맛과 향을 음미하며 들이켰다. 천천히 천천히. 파멸은 그런 식을 시켜야 재미있는 법이다. 원피스 속에 반 정도 가려진 펠라이아의 꼬리가 살랑살랑 움직였다.


 네 사람의 모험가가 몬틸라 마을 광장에 도착한 것은 네버윈터를 떠난지 3일째 되는 낮이었다. 오두막이 있는 지역은 위험했기 때문에 네 사람은 조금 돌아가는 길을 택했다. 덕분에 숲에서 코볼트 무리를 만나는 경우는 없었으며 그저 늑대 다섯 마리와 곰 두 마리를 상대했을 뿐이었다.

 몬틸라 마을은 네버윈터 숲 근처에 위치한 자그마한 마을이었다. 마을의 한 가운데 자리 잡은 몬틸라 광장을 중심으로 주요 건물들이 위치해 있었고 외곽으로 대부분은 거주지였다. 주요 건물이라고 해봤자 마을회관, 여관, 술집, 잡화점 등이 전부였고 대부분 1층짜리로 지어진 소박한 건물들이었다. 그들은 가장 먼저 마을회관으로 향했다. 자그마한 마을회관 건물 안에는 의자에 꽉 끼어서 일어나지 못할 것 같은 뚱뚱한 남자가 책상 앞에 앉아 서류들을 정리하고 있었다. 네 사람이 회관에 들어서자 그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그들을 반갑게 맞이했다. 그를 힘겹게 지탱하던 작은 의자는 반동에 의해 쓰러지고 말았다.

 “어서 오십시오. 환영합니다. 전 몬틸라 시의 시장 마르콘 마리발디(Marcon Marivaldi)라고 합니다. 그냥 시장이라고 부르십시오.”

 리아가 가르다인의 서신을 꺼내들자 마르콘 마리발디의 눈빛이 반짝였으며 더욱 반갑게 네 사람을 환영했다. 그리 덥지 않은 날씨임에도 마르콘은 계속 땀을 흘렸다.

 “아름답고 평화로운 몬틸라 마을에 잘 오셨습니다. 이렇게 멋진 모험가분들이 경비대의 사절단이라니 아주 든든하군요. 몬틸라는 온화한 기후로 여러 작물이 잘 자라고 특별히 포도가 최고랍니다. 포도는…….”

 “아, 그런 말은 됐고, 코볼트 얘기나 해주시죠.”

 마르콘이 신나게 떠벌리기 시작하자 앤더가 귀찮다는 듯이 말했다.

 “아, 그렇습니까. 그래요 코볼트. 그놈의 망할 코볼트 놈들, 갑자기 우르르 나타나서는 자기네도 이 동네에 살고 싶다고 아주 난리를 치고 있습니다. 아주 골칫거리가 따로 없어요. 그런 괴물들과 같이 어울려 살아야 하다니 말이 됩니까? 도시(city)로 승격되어야 할 몬틸라의 수치라고 할 수 있지요. 여러분들이 그 코볼트 놈들을 좀 쫓아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코볼트는 언제부터 이 주변에 나타났나요?”

 리아가 묻자 마르콘은 주머니에서 손수건을 꺼내 이마에 흐르는 땀을 닦았다. 손수건이 순식간에 축축해졌다.

 “코볼트 무리가 이 주변에 나타난 건 꽤 예전 일입니다. 아마 1년도 넘었던 것 같은데……. 그냥 나타나고 사라지고 하는 정도로는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정말 문제는 한 달 전 무렵인가 자기를 이킨(Eeekin)이라고 부르는 코볼트 놈이 나타나서 마을에서 살고 싶다고 제게 문의한 겁니다. 아주 어이가 없는 일이죠. 저는 단칼에 거부했고 빨리 먼 곳으로 떠나라고 말했지만 이킨 놈들의 무리는 계속 마을 근처에서 어쩌구 저쩌구 떠들면서 눌러 앉더군요. 그리고 지속적으로 마을에 나타나서 살게 해달라고 아주 애걸복걸을 하는 겁니다. 마음 같아서는 당장 쓸어버리고 싶었지만 뭐, 그게 가능할까요. 마을에는 여러분들과 같은 영웅도 없고 마을 사람 수도 많지 않고. 그래서 어쩔 수 없이 멀리 쫓아내지도 못하고 마을 근처에 골칫거리로 남아있는 겁니다. 가장 큰 문제는 그 이킨인지 뭔지가 나타나고부터 마을 근처에 이상한 괴물들이 밤에 나타난다는 소문이 돌기 시작한 겁니다. 코볼트 비슷하게 생긴 괴물이 나타나서 가축들을 죽이고 농작물을 엉망으로 만들어 놓는다는 건데, 괴물은 무슨 괴물. 그 코볼트 놈들이 마을에서 받아주질 않으니 겁을 주려고 난리치는 것밖에 더 되겠습니까! 아주 못되먹은 것들입니다. 여러분들이 제발 그 코볼트 놈들을 퇴치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마르콘은 이마에서 땀을 뻘뻘 흘리는 데다가 입에서도 침이 한가득 튀고 있었다. 리아는 혹시라도 자신의 근처에 마르콘의 침이 튈까봐 최대한 거리를 두고 물어보았다.

 “코볼트들이 어디서 몰려온 것인지는 아는 바가 없으신가요?”

 “코볼트 놈들이야 어디 동굴에서 몰려나온 것들이 아니겠소? 그 놈들은 동굴에다 함정이나 설치해 놓고 지들끼리 낄낄거리며 노는 한심한 족속들이지. 맨날 드래곤 타령이나 하고 말이야. 놈들이 믿는 드래곤인지 뭔지가 이 몬틸라 시를 공격하라고 지시했을 지도 모릅니다.”

 리아는 마르콘의 말하는 태도가 마음에 들지는 않았지만 그의 행동은 충분히 이해할만했다. 보통은 마을을 지키기 위해서 코볼트 따위를 받아들이지는 않는 것이다.

 코볼트에 대한 이야기가 끝나자 마르콘은 몬틸라 마을이 빨리 도시로 승격되어야 한다며 열변을 토하기 시작했다. 그는 몬틸라의 와인 산업은 이제 거대하게 발전할 것이며 페이룬 대륙의 전체 경제에 영향을 미치게 될 것이란 주장을 한 시간 가까이 쏟아내었다. 앤더와 베르나가 그의 말을 막으려고 노력했지만 그는 스스로 진장하기 전까지 막무가내로 주장했다. 땀과 침의 폭풍으로 무장한 그의 연설이 끝나자 네 사람은 겨우 마을회관을 빠져나올 수 있었다.

 “코볼트들과 제대로 싸워서 빨리 몰아내야 되겠군요. 하루 푹 쉬고 코볼트들을 때려잡은 다음 어디서 나타났는지 심문해 봅시다.”

 앤더가 씩씩하게 말했으나 베르나가 바로 의견을 냈다.

 “코볼트 무리가 얼마나 많을 줄 알고 막 덤벼요? 난 저 말콘지 뭔지 하는 촌장 좀 별루에요. 이킨인지 뭔지 하는 코볼트에게 가서 얘기를 해보면서 상황파악을 해야 할 것 같은데요.”

 리아도 의견을 제시했다.

 “베르나의 말도 일리가 있고, 전 근처에 있는 아몬틸라도 와이너리란 곳에 방문해 보고 싶군요. 아직 정확한 연결고리를 찾지는 못했지만 오두막에 와인병이 있었다는 점이 계속 마음에 걸려요.”

 그러자 쏘라딘이 정리했다.

 “싸움은 신중히 해야 한다는 점에는 나도 동의하네. 정보를 더 많이 얻어야 어떻게 행동할지 더 명확해 질테니까. 먼저 숙소에 짐을 좀 풀고 이 지역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본 후 코볼트 무리에게 한 번 가보도록 하지. 리아가 말한 와이너리까지 가 본 후 코볼트와 싸우는 것을 이야기해 보아도 늦지는 않을 것 같군.”

 넷은 오후에 각자 마을을 돌아다니며 정보를 얻고 장비를 준비하기로 했으며, 해가 진 다음 다시 여관에 모여 각자의 의견을 교환하기로 결정했다.

 “조사니 뭐니 이딴 건 영 지루하단 말이야.”

 앤더가 투덜거렸다.


2


 네 사람은 몬틸라 마을의 유일한 숙소인 ‘몬틸라 여관(Montilla Inn)’에 머물게 되었다. 그들은 각자 방에서 짐을 정리하기로 했고 가장 먼저 밖으로 나온 것은 리아였다. 리아는 여관주인에게 잉크와 펜촉 그리고 빈 마법책(Spellbook)을 구입할 만한 곳이 없냐고 물었고, 주인은 케리의 잡화점(Kerri's General Goods)을 알려주었다. 케리의 잡화점은 광장에서 조금 떨어진 주거지 사이에 조용히 자리 잡고 있었다. 리아가 잡화점의 문으로 들어서자 망토를 두르고 긴 나무막대를 들고 있는 남자 엘프가 인간 주인과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손님이 오셨군요. 그럼 전 이만 가보도록 하겠습니다.”

 주인과 대화를 나누던 엘프가 잡화점을 나섰고 리아는 짧은 순간이지만 그의 생김새를 관찰했다. 하얀 피부의 자신과는 달리 검게 그을린 피부를 가진 엘프는 상당히 탄탄한 체격을 가지고 있었다. 야외에서 오랫동안 생활했는지 손등은 상당히 거칠게 보였으며 쥐고 있는 나무 막대 또한 매우 단단해 보였다. 아마 리아와 같은 하이엘프(High elf)가 아닌 우드엘프(Wood elf)인 것이 확실해 보였다.

 “어서 오세요. 마을에 새로운 얼굴을 보니 아주 반갑네요. 전 케리라고 해요. 보시다시피 잡화점 주인이죠.”

 주인인 케리가 리아를 반갑게 맞았다. 케리는 체격이 좋고 활발해 보이는 여자였다. 인간(Human)인 것 같기는 한데 귀가 조금 긴 걸? 리아가 잠시 귀를 쫑긋거리며 생각하는 동안 케리는 계속 말을 이어갔다.

 “방금 지나간 친구는 판(Phann)이란 친구에요. 마음씨 좋은 우드엘프지요. 아무래도 손님은 판처럼 숲 속에 사는 엘프는 아닌 것 같고, 귀한 집 자제분인 것 같은데? 어디서 오셨죠?”

 “네버윈터시에서 왔습니다. 경비대 권한으로 이 근처 코볼트 무리에 대해서 조사를 하고 있습니다.”

 “코볼트 조사를 하러 나왔다구요? 오, 이런. 판을 보내지 말았어야 하는 건데. 방금 전 판과 코블트들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어요.”

 케리가 아쉬워하며 리아에게 말했다. 리아는 다시 한 번 귀를 쫑긋거렸다.

 “어떤 이야기를 하신거죠?”

 “판은 마을 외곽에 살고 있는 좋은 드루이드에요. 사는 곳은 호테나우 산자락 끝 부근이지요. 최근에 호테나우 산 근처에서 이상한 붉은 빛 액체들이 흘러나온 다고해서 걱정이 아주 많아요?”

 “붉은 빛 액체?”

 “네, 붉은 빛 액체라고 하는데 판의 말에 따르면 무슨 용암이 흘러내려오는 것 같기도 하다더군요. 그 액체가 주변을 계속 오염시키면서 동식물들에게 해를 끼치는 것 같아요. 사슴들이 마을들에 떼로 나타나는 일도 생겼고. 코볼트들도 혹시 그것 때문에 무리지어 온 게 아닐까 생각하고 있죠.”

 붉은 빛 액체의 정체는 도대체 무엇일까? 케리의 말대로 생각해보면 코볼트들은 붉은 액체를 피해서 이곳으로 도망쳐 온 것은 아닐까? 아니, 이것은 하나의 가설에 불과하다. 하지만 코볼트 무리들에게 가서 물어볼 거리가 하나 더 생긴 것은 확실했다.

 “이런 다른 엉뚱한 얘기만 계속했네. 뭘 사러 오셨죠?”

 “빈 마법책과 잉크, 펜촉을 구입하려고 합니다.”

 “아가씨 마음에 드는 물건이 있으려나 모르겠네. 여기는 영 시골 촌구석이라.”

 케리가 카운터에서 나와 물건을 찾기 시작했다. 원래 영웅의 쉼터에서 빈 마법책을 한 권 더 구입하여 사본을 만들려고 했지만 갑자기 여행을 출발하는 바람에 사본을 만들 여유가 없었다. 그녀가 마법을 쓰기 위해서는 그날 쓸 마법을 미리 준비해서 외워놓아야 했고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마법책이 필요했다. 하지만 모험을 겪고 나서 한 권의 마법책만 가지고 있는 것은 불안하다고 느꼈고 그녀는 몬틸라 마을에서 쉬는 시간을 얻었을 때 재빨리 사본을 하나 만들어 놓아야겠다고 생각한 것이다. 마을에서 마법사용 물품을 팔 일이 별로 없는지 그녀가 물건을 찾는데는 시간이 더 소요되었다.

 “어머 미안해요. 분명 책을 여기다 놓은 것 같았는데. 잠시만요.”

 “괜찮아요, 천천히 찾아 주세요.”

 리아는 여유롭게 가게를 둘어보았다. 그리 크지 않은 가게지만 없는 물건이 무엇일까 생각이 들 정도로 다양한 물건들이 진열되어 있었다. 가방, 바구니, 담요, 물통, 양초, 지렛대, 빗자루, 나무막대, 가죽자루, 횃불, 램프, 기름 플라스크, 망치, 삽 등등 당장 눈에 보이는 물건들의 종류도 세기 어려울 정도로 다양했다. 주인이 꽤나 부지런하게 보이는 걸. 가게를 이리저리 둘러보던 리아는 카운터 쪽에도 눈길이 갔다. 위에는 물건 주문과 관련된 종이와 스크롤이 몇 개 놓여있었다. 리아는 그 중 하나를 읽어보았다. 주문자는 드루이드 판. 판은 그녀에게서 가죽으로 된 담요들을 여러 개 구입할 예정으로 보였다. 판매자는 케리 그레이캐슬이었다. 그레이캐슬? 리아의 귀가 다시 한 번 쫑긋했다.


 산등성이에 해가 걸리면서 몬틸라 마을의 광장은 붉게 물들기 시작했다. 방금 전까지 화를 내며 짜증을 내던 사람들도 순식간에 온화해 질 만한 그런 기분 좋은 저녁놀이었다. 몬틸라 광장의 나무 그루터기에 멍하니 앉아 있던 앤더는 크게 하품을 했다.

 “정말 따분하군. 빨리 싸울 거리가 있어야 신이 나지 이거야 원.”

 특별히 조사할 마음이 없던 앤더는 몬틸라 마을을 한 바퀴 돌자 금방 지루해지고 말았다. 여기저기 방황하던 그는 결국 광장의 한켠에 자리 잡은 나무 그루터기에 멍하니 걸터앉았다. 드문드문 마을 사람들이 지나갔으며 아이들도 몇 명 뛰어갔다. 낯선 사람이 앉아 있어서인지 사람들은 앤더를 힐끔힐끔 쳐다보며 지나갔지만 특별히 말을 걸어오는 사람은 없었다. 사람들에게 질문을 하며 조사하러 다니는 것은 앤더와는 영 맞지 않는 일이었다.

 오늘 밤만 지나면 코볼트들과 한판 싸울 수 있겠지. 자그마한 코볼트 정도야 순식간에 제압할 수 있으니까. 그는 자신의 상상 속에서 코볼트들과 한 판 대결을 벌였다. 자그마한 코볼트들이 하나하나 앤더에게 나가떨어지고 결국 대장 코볼트는 벌벌 떨면서 앤더에게 항복할 것이다. 그를 사로잡아서 말코인지 뭔지 하는 촌장에게 잡아다 바치면 그는 영웅이 되어 네버윈터로 돌아갈 수 있을 것이다. 이 얼마나 멋진 시나리오인가.

 “멋진 전사님은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하세요?”

 앤더의 상상을 지우는 여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목소리는 저음인 것 같으면서도 콧소리가 섞인 듯한 묘한 느낌이 드는 소리였다. 앤더는 깜짝 놀라 자리에서 일어났다.

 “누구세요?”

 앤더가 놀란 고양이처럼 일어나자 그 모습이 우스웠는지 여자가 미소를 지었다.

 “마을에서 못 보던 멋진 분이 계서서 말이죠. 저도 마을을 지나는 모험가랍니다.”

 모험가라니, 우리말고도 다른 사람들이 있긴 있군. 앤더는 자신에게 말을 건 여자를 자세히 살펴보았다. 부드럽게 어깨 아래로 내려간 머리칼 사이로 매력적인 눈이 드러났으며 두툼한 입술과 풍만한 가슴이 한 눈에 들어왔다. 자신도 모험가라는 여자의 말에 앤더는 반가운 마음이 들었다.

 “모험가라니 정말 반갑군요. 전 앤더 브라이트우드라고 합니다.”

 어느새 활짝 웃으며 말하는 앤더를 바라보며 여자가 말했다.

 “저도 반가워요. 혹시 아직 저녁 식사를 하지 않으셨다면 같이 드시겠어요? 전 펠라이아라고 해요.”


 위일 앤 워어(Weal and woe). 쏘라딘은 기도를 마쳤지만 마지막의 단어는 생생하게 기억이 났다. 위일(Weal)은 미래의 점(Augury)을 쳤을 때 나타나는 좋은 결과였고 워어(Woe)는 나쁜 결과를 의미했다. 두 개가 동시에 나왔다는 것은 좋은 일과 나쁜 일이 동시에 일어난다는 뜻이었다. 두 개가 동시에 일어난다는 것은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 것일까. 하나는 좋은 것, 또 하나는 나쁜 것이니 그냥 보통이 아닌가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삶은 수학이 아니다. 좋고 나쁜 것이 둘 다 일어난다고 해서 0(zero)은 아닌 것이다. 두 사건은 모두 일어난다.

 쏘라딘은 조금은 아리송한 채로 기도를 마치고 밖으로 나왔다. 방금 전 쏘라딘은 미래의 점을 보는 마법을 쓴 것이 아니라 그저 티르의 신에게 기도를 올린 것이었다. 그럼에도 마지막에 미래를 점치는 단어들이 머릿속에 강렬하게 남아있었다. 어쩌면 일종의 계시일지도 모른다. 좋은 일이 생긴다면 그대로 받아들이면 되지만 나쁜 일이 생긴다는 것은 분명 주의할 문제였다. 쏘라딘은 자신의 워해머를 등에 단단히 고정한 상태로 여관 밖을 나섰다. 기도를 시작한 지 오래되지 않았다고 생각했지만 이미 해가 떨어지는 저녁 무렵이었다.

 “이런, 다들 정보를 얻느라 고생하고 있었을 텐데. 빨리 하나라도 조사해 봐야겠어.”

 쏘라딘은 재빨리 마을 광장 주변을 둘러보았다. 워낙 작은 마을이고 저녁 무렵이 되어서 그런지 마을 사람들은 거의 보이지 않았다. 이를 어쩐다……. 그때 지팡이를 짚은 건장한 엘프 남자가 마을회관에서 나와 광장을 가로질러 걸어가고 있었다.

 “이 보시오. 혹시 이 마을 주민이십니까?”

 쏘라딘이 엘프에게 다가가 물었다. 걸어가던 엘프는 굳은 표정으로 쏘라딘을 바라보며 대답했다.

 “이 근처 숲에서 살고 있으니 마을 주민이라고도 할 수 있지요. 무슨 일이시죠?”

 판은 쏘라딘이 드워프인 것이 불편했는지 예의를 차린 사무적인 말투로 대답했다. 쏘라딘도 상대가 엘프라는 사실이 조금은 껄끄럽게 느껴졌다.

 “네버윈터 경비대의 부탁을 받아 코볼트들에 대해 조사하고 있는 쏘라딘이라고 하오. 혹시 이 주변에서 코볼트들을 본 적이 있습니까?”

 “이런, 경비대, 경비대. 경비대가 이젠 코볼트들을 조사하다니 대체 무슨 속셈입니까? 촌장이 그들을 공격해 달라고 요청하기라도 한 겁니까?”

 엘프의 목소리가 한껏 상기되었다.

 “그런 것은 아니오. 다만 정확히 무슨 일이 벌어지는 것인지 조사하는 것뿐이오.”

 “당신네들의 말은 믿을 수가 없습니다. 저 코볼트들은 끔찍한 학대를 피해서 여기까지 도망쳐온 불쌍한 것들이란 말이오. 지금 호테나우 산 근처 숲이 어떻게 되었는지 알고나 있는지 모르겠군! 코볼트를 조사하기 전에 정체 모를 붉은 용암이나 조사해 보시오!”

 엘프는 화를 내고는 제 갈 길을 계속 걸어갔다. 쏘라딘은 판이 왜 화를 내는지 영문도 모른 채 그가 사라지는 뒷모습을 바라보고 있었다.

 “이게 나쁜 결과인건가?”

 쏘라딘이 중얼거렸다.


 해가 거의 넘어갈 때쯤 되어서야 베르나는 자신의 방을 나왔다. 베르나는 지금까지 방에 틀어박혀 ‘더 빠르게 손을 움직이려면(How to make hands faster)’이란 책을 읽고 있었다. 이 책에는 다양한 형태로 잠긴 상자를 열 수 있는 방법, 눈에 띄지 않게 설치된 함정을 제거할 수 있는 기술, 처음 보는 기계들도 어느 정도 다룰 수 있도록 만들어 주는 기계의 기본 작동 원리 등이 수록되어 있었다. 베르나는 간단한 정도의 자물쇠 열기나 함정 해체는 할 수 있었지만 그것은 제대로 배워서 하는 것이 그저 경험으로만 터득한 기술이었다. 오두막에서 도저히 열리지 않는 상자를 만난 순간 그녀의 장치에 대한 탐구열이 서서히 끓어오르고 있었던 것이다. 그녀는 오두막에서 두 권의 책을 몰래 가져왔다. 한 권은 방금 전까지 방에서 열심히 읽었고 나머지 한 권은 ‘마법 장치는 어떻게 사용하는가(How to use magic device)’란 책이었다. 마법에 대한 지식이 전혀 없는 베르나에게 ‘마법장치는 어떻게 사용하는가’란 책은 읽기에 아직은 무리였다. 베르나는 나중에 리아에게 마법에 대해서 배워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두막에서 가져온 상자는 도대체 어떤 구조로 되어있는 것일까? 베르나는 다시금 상자를 떠올리며 지금까지의 일들을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일단 상자를 만든 사람이 누구인지 가장 궁금했다. 상자를 만든 사람에게 상자의 구조에 대해 배울 수 있다면 좋을 텐데. 어떤 사람인지는 모르지만 보통 실력을 가진 사람은 아닐 것이다. 오두막에 죽어 있던 애쉬란 사람이 상자를 만든 사람일까? 지금까지의 상황으로 보면 그것이 가장 유력하다. 애쉬의 오두막의 지하에는 복잡한 도면과 다양한 기계장치가 굴러다니고 있었던 것이다. 집 주인은 기계에 대해 일가견이 있는 사람이었음이 확실하다. 그런 사람이 죽다니 베르나에게는 매우 아쉬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어쩌면 그와 관련있는 란달이란 사람도 그에 못지않은 실력자였을지 모른다. 하지만 란달 역시 폭발로 인해서 죽음을 맞이했다. 란달 역시 상자를 원했다. 상자의 주인은 애쉬인걸까 란달인걸까? 베르나의 궁금증은 꼬리를 물고 이어졌지만 정확한 결론은 내릴 수 없었다.

 복잡해진 머리를 좀 식힐 셈으로 베르나는 여관 밖으로 나갔다. 해가 넘어간 몬틸라 광장은 지나가는 사람들의 실루엣만 보일 정도로 이미 어둑해진 상태였다. 뭐라도 좀 먹을까하는 생각으로 베르나는 ‘놀라운 포도(Amazing Grape)’란 간판을 달고 있는 술집(Tavern)으로 향했다. 잰걸음으로 술집으로 향해 걸어가는데 술집 문이 열리고 남녀 한 쌍이 다정하게 나오는 것이 보였다. 광장은 어두워 사람을 제대로 확인하기 어려웠지만 술집 앞은 내부의 조명 덕에 어느 정도 식별이 되는 상태였다. 그녀의 눈에 들어온 것은 앤더와 처음 보는 한 여자였다. 저 바보는 뭐하는 거야? 이유는 알 수 없었지만 베르나는 민첩하게 어둠 속으로 몸을 숨기고 두 사람이 향하는 곳을 바라보았다. 저 여자는 티플링이로군. 티플링을 믿으려면 반드시 세 번은 만나보아야 한다. 그것이 베르나가 러스칸에서 배운 것이었다. 티플링은 사람을 끌어들이는 매력이 있었고 세 번 만나는 동안에 그들이 뒤통수를 치지 않으면 좋은 사람으로 믿어도 된다. 그 말은 역으로 세 번 이내에 반드시 음흉한 속내를 어떤 형태로든 드러낸다는 말과도 같았다. 티플링 옆에 서있는 앤더는 기분이 좋았는지 큰 소리로 웃고 있었다. 베르나는 어둠 속에 자신의 몸을 숨기면서 두 사람의 이야기를 몰래 엿들었다.

 “아주 멋진 이야기에요. 앞으로 흥미로운 일이 전개될 것 같은데요? 이런 영웅과 함께 다니는 분들은 어떤 분일까?”

 “음……. 일단 쏘라딘이란 드워프 분이 있는데 아주 듬직한 분입니다. 티르의 신전에서 오랫동안 사제 일을 하신 클레릭인데 아주 강직한 분이란 것이 느껴지죠. 그리고 위저드인 리아는 아주 똑똑한 여자 같아요. 이렇다 저렇다 말을 잘 하는데 가끔은 무슨 말을 하는지 못따라갈 때도 종종 있어요. 아마 귀족 집안 출신에 공부를 엄청나게 열심히 해서 그런 것 같기도 하고. 똑똑한데다가 예쁘게 생겼으니 부러울 것 없이 다 갖췄다고 볼 수 있죠.”

 “어머, 그런 분이 계셨다니? 그럼 앤더씨도 리아씨에게 매력을 느끼시겠군요?”

 앤더가 깜짝 놀라 손을 저으며 말했다.

 “아아, 아닙니다. 그저 동료의 입장에서 본 것이죠. 매력이 있는 건 맞지만 관심이 있고 그런 건 아닙니다. 뭐, 사실 아름다운 걸로만 따지자면 펠라이아씨가 더 아름다우시다고 할까…….”

 펠라이아가 미소를 가벼운 미소를 지었다. 입술 사이로 혀가 잠시 나타났다 사라졌다.

 “그럼 동료는 두 분? 세 분이 경비대 소속으로 이곳에 조사를 오신 거군요?”

 “아, 여자 꼬맹이가 하나 더 있긴 한데 이상한 녀석이라서 별로 도움이 안 돼요. 베르나라는 하플링인데 도둑질이나 하는 아주 버릇없는 녀석이 있죠. 어쩌다 보니 경비대와 엮여버려서 같이 다니고 있긴 하지만 별로 내키진 않아요.”

 “어머, 그래도 같이 다니는 동료인데 잘 해주셔야죠?”

 “그러게 말입니다. 제가 오히려 보호자가 되어서 잘 교육해줘야 할 것 같은 생각이 들어요.”

 저 망할 자식. 어디 두고 보자. 베르나는 주먹을 쥐고 부르르 떨었다. 두 사람은 광장을 천천히 산책하는가 싶더니 베르나 일행이 묵고 있는 여관 방향으로 가고 있었다. 베르나의 눈이 번쩍 떠졌다. 어라, 왜 두 사람이 여관으로 들어가는 거야?




(계속)







본격적인 소설이라기보단 디앤디 플레이하듯 보면 될거같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