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이야기할 소재는 "레일로드"를 포장하는 법.
레일로드란 쉽게 말해서 PC들의 선택이 시나리오 진행에 큰 영향을 주지 못하고, 이미 큰 틀이 정해진 기-승-전-결로 가게 되는
그런 구조임. 대개 "자유도"라는 말에 혹해서 입문했거나 "실패도 사실 하나의 분기점에 불과한" 서사성이 강조되는 여러 룰 등의
영향으로 요새는 이거 싫어하는 사람 좀 늘어난 듯. 일단 레일로드가 까이는 주 원인들에 대한 설명부터 하고 대응책을 보자.
알기 쉽게 요약하면 대부분 레일을 까는 놈이 어설픈 게 잘못임.
이유없는 제한
그냥 선택지를 줄 것 처럼 해 놓고는 정작 그걸 고르면 그건 안 된다고 막아버리는 거. 특히 제목처럼 마스터가 구체적인 이유를
댈 수 없으면 그렇게 막히는 반감이 더 커지기 쉬움.
<간단한 예시>
"슈코"가 아무도 없는 저택을 살펴본다고 치자.
슈코 "그럼 석탄창고부터 살펴볼게요"
키퍼 "석탄창고의 문은 아무리 밀어도 열리지 않습니다."
슈코 "잠깐만요. 이거 안 잠겼다면서요."
키퍼 "냅. 근데 안 열려요. 아무튼 안 열림."
(이하생략)
다만 이 방식은 비교적 손쉽게 땜빵이 가능한데, "그 당시에는 알 수 없었던" 이유를 이후에 구체적으로 제시하면 문제가 자연히
해결되기 때문임. 예를 들어서 위의 상황은 CoC 모 시나리오의 일부고, 거기서는 탐사자가 납득할만한 이유를 따로 제시해 줌.
선택의 무효화
선택 결과를 처리하는 가장 안 좋은 방법. 자신이 한 선택이 무의미해지는 게 기분 좋을 사람은 아무도 없음. 모 카드게임에서도
플레이어들은 대개 상대가 내 생물을 찍어죽이는 거보다 아예 나오는 걸 무효화하는 걸 더 싫어했다고 하더라.
<간단한 예시>
"브루스"가 "조셉 커 시장"을 암살하러 왔다가 뜬금없이 금고를 발견했다고 치자.
브루스 "좋은 금고군요. 한 번 따서 내용물을 확인해야겠어요"
마스터 "네. 근데 실패하면 경보장치가 작동해요."
브루스는 판정에 성공했지만, 마스터는 그게 마음에 안 들었음. 그래서...
마스터 "네, 브루스가 금고를 열자 안에는 아무 것도 없고 시장의 웃음소리와 경보음이 방 전체에 울려퍼집니다..."
브루스 "???"
(이하 생략)
쉽게 따라갈 수 없는 전개
대개 억지로 끌고가는 반전이나 급전개 이야기임. 사실 반전을 눈치 못 채서 아 그렇구나하는 건 영화나 추리소설 등
내가 구경하는 입장에서나 먹히는 거고, RPG에서 그런 전개를 겪으면 "속은 느낌"밖에 안 드는 상황이 더 일반적임.
그리고 여기서의 "따라갈 수 없다"는 두 가지 의미인데, 전개의 내용을 못 따라가는 거하고 그 여파를 못 따라가는 거.
이 경우 유명한 사례를 들어보자...
<간단한 예시>
PC들은 "애버크롬비"라는 노인의 의뢰로 오거 소굴에서 짐꾸러미를 가져온다거나 실타래를 찾아온다거나 그랬는데...
사실 애버크롬비는 미친 악당이었고 파티를 꼬셔서 존나 짱센 괴물을 만드는 걸 거들게 한 거였음. 그래서 인근 마을은
파티조차 손을 못 댈 수준으로 강한 괴물에게 큰 피해를 입음.
이 경우 파티는 반전을 눈치채지 못했고, 그게 드러나자 대응할 수단도 없었음. 이게 배경이 배경이라 그렇지 TRPG라면
이따위 전개는 솔직히 용납되기 좀 그랬을 거임. 결국 나중에 "대응할 수단"을 주는 셈치고 존나 짱세던 괴물을 적당히
너프해서 파티가 때려잡고 수습할 수 있을 정도로 약화함.
뭐 이따위로 레일로드를 안 좋게 만드는 요소들을 봤으니 다음은 레일로드를 괜찮게 만드는 수법을 몇 개 보자.
시나리오 갖다 쓰기
초보 마스터가 "아 님 왜 이리 레일로드스러움?"이라는 비난을 피할 때 쓰기 가장 좋은 방법. "시나리오 따라하는 건데
뭘 더 바래요?"라고 답하면 되거든. 물론 좋은 시나리오는 자체적으로 탈선 상황에 대한 해결책을 준다는 점에서도 읽고
갖다 쓸 가치가 있음.
이 분야의 원탑은 전에도 소개했지만 실제 레일로드임을 아무도 부정하지 않는... 기차여행 2판으로
웬만한 이탈 상황에 별개의 대응책을 제시하며, 대안 전개로 끝내버리는 방법도 간간히 제시함. 초보자에게 추천 못하는
유일한 단점은 그 규모가 아닐까 싶은 물건. 영알못 초보에겐 외전격 시나리오들 / 부록 포함해 코어 룰북 2배 쯤 되는
분량 자체가 폭력이 아닐까 싶음.
사족 붙이지 않기
사족은 쓸데가 없어서 사족인 거. 그러므로 내가 그걸 멀쩡한 선택지로 만들 능력이 안 된다면 그냥 추가하지 않으면 됨.
예를 들어서 위에서 "브루스"는 하라는 암살은 안하고 금고털이짓을 하다가 마스터가 꼬장을 놔서 망했는데, 이럴 거면
마스터가 그냥 금고가 있다는 묘사를 안 하는 게 훨씬 나았다 이거임.
<간단한 예시>
"리츠코"가 마스터가 되어 "아미", "마미"를 데리고 플레이를 한다고 치자.
아미 "자, 아미가 금고를 땄어. 안에는 뭐가 있을까?"
마미 "음훗후→♪ 기대된다구→!!"
리츠코 '어디 보자... [에이본의 서]라, 이거 단편에는 필요 없을 거 같네. 돈다발로 바꿔야지(시나리오를 읽으며)'
리츠코 "금고에는 오래된 일기장하고, 만 엔 다발이 들어있었어."
(이하 생략)
추가 목표 설정
주로 RTS 캠페인 등에서 썼고, 요새는 "업적" 요소로 볼 법한 방식. 간단히 말해서 "해야 하는" 기본 목표를 주고,
"안 해도 되는" 추가 목표를 같이 주는 거. 그래서 쓸데 없어 보이는 일거리를 보여주고, 그걸 같이 하면 이야기의
진행에는 큰 도움은 안 되지만 그럭저럭 쓸만한 보상을 주면 된다 이거임.
<간단한 예시>
"티미"는 드레노어로 가서 사악한 "우들러"를 조져야하는데, 도중에 주민들이 멀록에게 잡혀간 "아서스 왕자님"을
구해달라고 함. 아서스를 안 구해줘도 상관은 없지만, 구해주면 보상으로 "마법검 서리한"를 얻게 됨. 이런 경우의
선택은 당연히 자유일테고.
우회로 만들기
이거는 쉽게 말해서 PC들이 "엉뚱한 선택"을 해도 그게 결국 예정된 상황으로 이어지게 만들라는 거임. 근데 그런 걸
잘 할 자신이 없으면 그냥 선택지 자체를 지우는 게 훨씬 나은 전략이 될 수 있음. 근데 이미 저질렀고 다시 원래 방향으로
돌릴 방법이 안 떠오르면 일단 보상을 준비하면서 시간을 끌어도 됨. 혹은 시간 문제를 언급해서 돌아가게 유도할 수도
있는데 잘 먹힌단 보장은 없을 듯.
<간단한 예시>
"정크랫"과 "로드호그"가 막다른 골목에서 "지나치게 강해진 메이코패스"와의 최종결전을 해야 하게 됐다고 치자.
정크랫 "저건 뭐야? 그냥 메이가 아닌 거 같은데, 일단 튀자!"
로드호그 "뭐 저런 게 다 있어...?"
그렇게 해서 둘이 폭발물로 벽을 부수고 도망친다면, 마스터는 그걸 그 자리에서 막을 게 아니라 시간이 좀 지난 뒤에
메이코패스가 추적해 왔다 / 둘의 목표를 메이코패스가 손에 넣었다 등의 선택지로 결국 둘을 메이코패스와 싸우게
만들 수도 있다는 거임. 대신 그만큼 양념을 잘 쳐서 합리화해야겠지.
적절한 이유 붙이기
"사실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다" 식으로 불합리한 전개를 사후 정당화하는 거. 다만 이거는 반전이나 지나친 급전개를
수습하기엔 좀 어려운 편이고, 그런 건 그냥 처음부터 설명을 잘 하거나 "처음부터 상황에 의심을 갖게" 만드는 게 좋음.
<간단한 예시>
다시 "슈코"의 저택조사를 보자.
키퍼 "네, 갑자기 석탄창고의 문을 부수고 젤리같은 뭔가가 나와 이쪽으로 꿈틀거리며 올라오기 시작했습니다."
슈코 "자...잠깐 이게 무슨...?"
키퍼 "뭐긴 뭡니까 창고에 있던 괴물이죠. 일단 이성 판정부터 좀.."
(이하 생략)
이게 룰에 따라서 레일로드가 더 어울리는 게 있고, 샌드박스가 더 어울리는 게 있는데 일단 뭐가 더 좋고 나쁘다를
그 외의 기준으로 어렵다고 보고, 그러니까 그냥 적당적당히 둘 중 맘에 드는 스타일로 하면 되는데 최소한 포장은
좀 해보면 좋겠다는 생각에서 끄적여 봄.
이 글은 신데마스 / 아이마스 / DC코믹스 / 세계에서 가장 성공한 MMORPG / 크툴루의 부름 / 워크래프트 3 /
오버워치 등과 관계가 있을지도 모르겠다. 일단 폴아웃 4하고 시공의 폭풍과는 관계 없음.
정보추+패러디추
재미쪙
예시의 상태가
내 예시야 늘 이랬는데
우들렄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