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개인적인 생각 끄적끄적.


샌드박스는 위험해

나는 샌드박스를 할 거야! 라고 결심했다면 일단 아포칼립스 월드를 해라. 초보인 너한테는 아마 그것보다 편한 답이 없지 않나 싶음. 

피아스코는 마스터가 필요없잖아. 물론 네가 샌드박스를 전부 통제할 수 있을 거라고는 아무도 안 믿을 테고. 


시나리오를 잘 고르기

일단 시나리오를 잘 골라야 함. 가장 무난한 건 역시 퀵-스타트를 고르거나 그 외에 룰북에 실린 시나리오 같은 걸로 시작하는 거임.

아래 경험담에 나오는 시나리오는 솔직히 그런 면에서 좋은 건 아니었다고 생각함. 좋은 초보자용 시나리오란 대개 구조가 간단하며,

그 안에 나오는 정보를 마스터가 플레이 내에서 플레이어들에게 충분히 제시할 수 있어야 하며, 최종적 결말까지 도달하는 난이도가

그다지 어렵지 않아야 함. 위의 시나리오는 시나리오 내의 정보, 특히 "악의 포인트"를 마스터가 제대로 제시하기 쉽지 않다는 데서

일단 발목이 잡히겠지.


시나리오를 잘 읽기

마스터는 일단 시나리오를 잘 읽어야 함. 아주 잘. 예를 들어서 나는 아주아주아주 간단하게 시나리오를 리뷰하지만, 실제로 그거를

플레이할 때는 실제 시나리오 내용만 쌩으로 갖고서 하는 게 아니라 내가 시나리오를 읽으면서 추가로 이것저것 덧붙이거나 편집해서

플레이 준비를 하게 됨. 근데 뭔가 덧붙이고 편집하려면 잘 읽어야겠지? 그럴 거 없이 그냥 뭐든지 설명하면서 친절하게 떠먹여주는

시나리오는 대개 퀵-스타트 수준에서나 볼 수 있는 거임. 어떻게 덧붙이고 편집할 지는 아래를 보자.


장면을 나누어 분석하기

시나리오의 전개를 배경이 되는 곳 / 시간대 등을 기준으로 장면으로 나누어 보는 게 좋음. 왜 좋냐고? 그야 네가 그 장면을 묘사하며

플레이를 할 때 어떻게 해야 할 지 분석하기 쉽기 때문임. 예를 들어서 위의 시나리오에서도 일단 "탐색" 항목에서 각 장면에서 벌어질

일들을 제시해 놓았음. 근데 이렇게 정리된 걸 보기만 하는 게 다가 아니고 마스터는 나름대로의 "분석"을 해서 무엇을 어떻게 묘사하면

좋을까라든가 상황을 어떻게 연출해야 할까 그런 걸 미리 준비해 두라고 이렇게 하라는 거임. 예를 들어서..... 


제시된 상황을 좀 더 자연스럽게 바꿔보기

위 시나리오의 "교무실"을 보자..... 여기 교무실에서는 수화기를 들면 이'골로냑의 목소리를 들려주는 무료 서비스가 진행된다고 하는데,

여기서 '아 그렇구나' 하고 넘어가면 안 됨. 대체 어떤 놈이 폐건물에 있는 전화기를 이유 없이 손에 들어서 귀에 대 보겠냐? 그러니까 이걸

실제로 활용하려면 약간의 "컨버전"을 해야 한다는 거임. 예를 들어서 교무실 앞을 누가 지나간다거나, 누군가 들어와서 빈 방을 뒤지거나

나가려고 할 때 교무실 전화가 울리는 거지. 그러면 깡 좋은 누군가가 받아볼 수 있겠고, 그렇지 않으면 계속 울리면서 불안한 분위기를

만들다가 누가 끊어버리려고 하면 갑자기 스피커폰으로 전환되면서 이'골로냑의 목소리가 들린다거나 그렇게 처리하면 됨. 쉽게 말해서

자연스럽게 연출할 수 없는 것은 자연스럽게 고쳐야 한다는 거임.


구체적인 묘사 준비하기

묘사 역시 시나리오에서 주는 것만으로는 불충분하게 느껴질 때가 있음. 예를 들어서 위의 시나리오에서는 "계단을 올라가면 이상한 느낌이

들고 도깨비불이 나타난다"고 했음. 근데 이 상황은 "이성 판정"을 해야 하는 상황임. 따라서 도깨비불이 "충분히 괴상하게 느껴질 수 있도록"

내가 묘사를 더 보충해야 할 수 있다는 거지. 예를 들어서 "갑자기 당신의 몸 주변에서 빛이 나더니 허공에 파란 불꽃이 여러 개 일어납니다.

불꽃들이 당신의 주변을 빙빙 돌면서 슬쩍 당신 가까이를 지나갈 때마다 머리 속에 괴상한 목소리가 들려옵니다...." 뭐 이런 식으로 말이지.


쓸데없는 사족 붙이지 말기 / 없애기

뭔가 시나리오 내에서 의미를 가질 수 없다면 그것은 사족임. 그리고 그걸로 뭐할 거냐고 누가 물어보면 너는 답할 수 없을 테고.. 멍청하게

보일 것이 분명함. 그러므로 시나리오 내에서 별 의미가 없는데 쓸데 없이 진지해 보이는 것들 = 쓸데없는 사족은 시나리오 구성시에 깔끔히

정리하는 것이 여러모로 정신 건강에 좋음. 체호프의 총 이야기를 생각해 봐라. 도중에 사용되지 않을 총은 굳이 "총"이라는 점을 강조하면서

등장시켜야 할 필요가 없는 거야.


스크린 뒤에 필요한 것들을 준비해서 모아 놓기

초보들이 착각하는 게 스크린은 그냥 주사위 주작질 하는 거 감추려고 쓴다고 생각하는데, 실제로는 더 많은 의미를 가짐. 예를 들어서 내가

상황 변수가 될 만한 게 나올 때마다 체크해두는 노트와 필기구라든가, 특정 상황에서의 판정법이라든가 그런 식으로 무대에는 보이지 않아야

하는 무대 장치와 같은 것들을 전부 스크린 뒤에 두는 거임. 예를 들어서 아래 짤을 보자.



CoC 6판 시절 스크린의 "안쪽", 그러니까 키퍼가 보는 쪽임. 쉽게 말해서 기본적인 룰을 헷갈릴 때 룰북을 찾지 않고 깔끔하게 이걸 보면 됨.

사실 스크린은 대부분 이런 목적으로 쓰는 거고, 그런 거 필요 없다는 놈들은 대개 머릿 속에 주요 룰을 집어넣었거나 따로 메모하는 자식들임.

그러니까 너는 해당 사항이 안 된다고요. ORPG의 경우는 그냥 옆에 책 펴놓거나 메모해두면 되겠지? 이렇게 준비가 잘 되어있을수록 여러 상황에

대한 대처가 빨라지고 유연해지게 됨. 쉽게 말해 필요한 거 챙겨두면 굳이 따로 안 찾아봐도 되니 편하다는 거지.


돌발 상황에 대처할 준비를 해 놓기

초보 마스터가 플레이 도중 가장 곤란해지는 건 플레이어들이 자기 생각대로 안 움직일 때임. 좋은 방법 중 하나는 시나리오 내의 그런 상황에

대해서 혼자 머릿속으로(혹은 메모장과 필기구를 준비해서) 시뮬레이션을 좀 해보는 거. 그러면 일단 성공하든 실패하든 "예상 범위 내의" 문제로

처리될 수 있음. 플레이 때 그런 게 안 나오면 좋은 거고 나와도 일단 그렇게 시뮬레이션을 해 본 게 있으면 도움이 된다 이거지.


그 다음으로, 어쨌든 상황이 벌어지면 거기에 대응해서 할 일은 상식적이거나 아니면 초자연적인 뭔가를 동원해서 그 상황을 수습하는 거임.

예를 들어서 위의 시나리오에서 학교에 들어간 뒤에 누가 문이 잠긴 것을 확인했다고 치자. 그러면 유리창도 안 깨지고 문도 못 부수겠는 상황이

아무래도 정상은 아닌데.... 그런데 누군가가 담력시험의 제안자한테 "이거 뭐냐 장난침?"하면서 나머지를 선동해서 얘를 쥐어짜서 진실을 불게

하려고 한다고 치자, 이러면 마스터는 어떻게 하면 될까? 어차피 제안자는 NPC니까 도망칠 수도 있겠고, 혹은 "응... 그건.... 이런 거다!" 외치고

이'골로냑의 화신으로 변해 탐사자들과 신나는 술래잡기를 시작할 수도 있겠지. 그러면서 이제 여기서 나갈 방법은 옥상으로 가서 뛰어내리는 거

말고는 없다는 전개로 몰아서 시나리오에 계획된 대로 옥상까지 올리면 될 거임. 그 다음에는 옥상에서 이상한 기운에 눌려 뛰어내리지 못하는데

그 기운이 조각상에서 나온다거나 뭐 그런 전개로 가서 "조각상을 파괴할 이유"를 갖다 붙이면 되고. 이런 방법에 대해서는 내가 철도 포장법에

대해서 끄적거린 다른 글(http://gall.dcinside.com/mgallery/board/view/?id=trpg&no=56670)이 있으니 참조하면 어떨까 싶음.


3줄 요약

샌드박스는 그냥 포기하거나 아예 약을 빨아도 되는 룰을 하는 게 정신 건강에 편하다

남들이 추천하는 시나리오를 골라서 잘 읽어보고 내용을 정리하는 거부터 시작해라

시나리오를 "플레이할 때" 다른 것들이 있으면 좋겠다면 일단 그것들을 준비해 놔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