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

일단 나 스스로는 '게임 메커니즘에 의해 유발되는 공포'가 있을 거라고 믿지만,

겜알못인 내가 그걸 논증할 수도 없고, 잘 생각해보니 논점 이탈이라 그냥 이 방향으로 선회하려고 한다.




1.

고딕 호러의 걸작으로 모두가 잘 알 브램 스토커의 '드라큘라'가 있지.

개인적으로도 굉장히 재미있게 읽은 소설이다.


페이지 하나 하나마다 사람을 짓누르는 무언가가 있어. 숨을 쉬기 어렵게 하는 무언가가.

도덕적 금기에 대한 거부감이 이 압박감의 근원이라는 분석이 있더라. 동감한다. 그리고...


무섭지는 않았다.



근데 드라큘라는 호러다.

마찬가지로, 나는 백합 하악하악(※상당한 과장 포함)하며 읽었던 카르밀라도, 호러다.

전혀 무섭지는 않았지만.


내가 읽어보지는 않았지만, 프랑켄슈타인도 기괴할 뿐이지, 딱히 '무섭지는' 않을 거다.

다른 고딕 호러 작품들도 전부.



마찬가지로, 러브크래프트 작품들도 그 광기와 상상력에 압도당하기는 했지만...

대부분 무섭다는 생각은 안 들더라. 아, 작가가 무서워지긴 했다.




2.

여기서 우리가 주의해야 할 게 몇 가지 있다. 첫 번째, CoC는 크툴루 신화를 RPG로 재구한 게임이다.

두 번째, 크툴루 신화는 문학이다. 영화도 비디오게임 시리즈도 아니다.


그리고, 비교적 인접한 시대의 문학에서, '호러'라고 지칭되던 부류는, 대부분 이런 것들,

어떤 도덕적 불쾌함이나 금기를 괴물으로 형상화시켜 표현하던 문학 사조였다.

그 불쾌감을 느끼던 동시대인들이 이를 '호러'라고 표현한 거고.



그러니까, 애초에 '호러 문학' 과 '호러 영화/비디오게임'은 서로 다른 장르라는 거다.

(문학에 대해 잘 모르지만, 개인적으로는 포의 경우엔 현대 호러와 좀 더 가깝다 싶군)

그리고 19세기 말~20세기 초 문학을 바탕으로 RPG를 만들었다면, 당연히 문학의 분류법을 따라야 하고.



그러니까 CoC가 무섭지 않은 건 당연하다. 그건 호러영화의 문법을 전혀 안 따르거든.

아니, 애초에 호러영화에서 공포를 유발하는 방법론들을 전혀 흡수하지도 않았거든.

그러니까, 지금 '공포영화는 무서운데 왜 CoC는 안 무섭나요'는 애초에 성립되지도 않는 질문이라고 본다.

애초에 둘은 서로 '다른' 공포라니까?



그러니까, 우리는 호러 RPG에 대해서 이야기할 때,

우리가 어떤 도덕적 금기를 범하는 것에 대해 이야기하는 RPG를 말하는 것인지,

아니면 공포영화와 같은 강렬한 공포적 상황을 연출하는 RPG를 말하는 것인지, 확실히 해둘 필요가 있다 본다.




P.S. 개인적으로는 서스펜스와 호러의 관계에 대해서도 더 따져 볼 필요가 있다 생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