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들 알겠지만, 무한세계의 설정 중에는 '나치를 위시한 추축국 세력이 2차 대전에서 승리한 평행계'가 몇 군데 있음. 이 중에서 특히 경비대가 위험시하는 평행계가 라이히-5인데, '경비대원이 아니고, 평행세계 같은 것도 모르는 현지인' 컨셉으로 현지 조선의 독립 운동가 캐릭터를 만든 적이 있다(총 CP는 경비대원 PC들보다 적은 대신 지역지식이나 연줄 같은 보다 현지 상황에 특화된 기능과 장점을 찍을 수 있다는 식으로 밸런스를 맞췄음).
세계가 라이히-5다 보니까 여기 조선은 일제의 식민지배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그대로 세월이 흘러 21세기에 이르렀다는 설정이었음. 하지만 점조직화된 무장 독립투쟁 세력이 100여년이 넘도록 계속 설립됐다 없어졌다를 반복하며 총독부를 괴롭히고 있고, 내 캐릭터는 그러한 독립투쟁 세력 중 하나인 의열단의 한 세포를 관리하는 리더였음. 하지만 그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이곳의 조선인들은 그저 너무 오랫동안 식민지인으로서 생활하다 보니 불평등에도 길들여졌고, 3등시민인 중국인들보다는 대우가 나으니까 그럭저럭 납득한 채로 살고 있다...는 설정.
무한경비대는 뭐 현지의 독립 운동 같은 데 별 관심이 없고, 다만 이곳 조선에서 총독부가 세운 초능력 연구소에서 감시 중인 한 여고생이 '점프' 초능력 재능이 있으니 포섭해오라는 명령을 경비대원 PC들에게 내렸음('점프'는, 과학기술적 수단 없이 자체적으로 평행계를 이동할 수 있는 초능력). 내 캐릭터는 경비대원 PC들을 그저 위쪽 세포 조직이 소개한 독립 운동가들로만 알고 접촉(마침 예의 초능력 연구소에 대한 폭탄 테러를 계획하고 있던 상태). 내 캐릭터는 독립 운동가긴 했지만 보통 연상하는 민족주의 계열이 아니라 아나키스트로서, 이미 굵직한 폭탄 테러를 여러 건 저질러서 거액의 현상수배 중이라는 설정이 붙어 있었다.
결국 그 여고생은 경비대원 PC들에게 구출되어 홈라인으로 가게 되고, 내 캐릭터는 경비대원 PC들이 뭔가 숨기고 있다는 것까지는 눈치챘지만 결국 '비밀'에는 접근하지 못하는 걸로 끝났다. 영화로 치면 조연급 비중의 캐릭터였지만 이 플레이를 위해 공부해 둔 아나키즘 사상에 대해 썰을 풀 기회도 있었고(지금 생각해 보면 마스터가 '너님 그동안 열심히 자료조사한 거 같으니까 어디 공부한 거 써먹어보셈'하고 멍석 깔아준 느낌) 그 여고생에게 "금서니까 숨겨놓고 읽어라" 하면서 <높은 탑의 사나이> 책을 건네주던 장면이 마음에 들어 오래 기억에 남는다. 벌써 3년 전 플레이네.
부럽다
다들 몰라...
아나키스트 영화도 있었지 아마... - dc Ap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