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벌어지고 있는 키배에 자의로 뛰어드는 일도 적지않게 있기는 한데, 전혀 그런 걸 의도하지 않았을 때도 휘말리곤 하는 게 요상하다
무의식적으로 말을 좀 공격적으로 쓰는 건가
알피지 이야기 :
플레이의 목적은 룰과 그 룰을 가지고 어떤 플레이를 하려는지에 따라서 항상 달라지기 마련이다. 예를 들어 크툴루의 부름과 같은 경우는 '탐사자들이 미지의 존재와 만나며 미쳐가는 모습을 보는 것.'이고, 던전월드의 경우는 '영웅이 영웅적인 면모를 보이는 것.'이다. 물론 크툴루의 부름으로 펄프적인 성격을 띈 플레이를 한다면 '탐사자가 샷건과 티벳쿵푸로 미지의 존재를 고깃덩이로 바꾸는 것.'을 목표로 잡을 수도 있고, 던월로 '내 캐릭이 얼마나 라그나스러운 면모를 가지고 있는지 뽐내는 것.'을 목표로 한 플레이를 할 수도 있다.
그런데 대개의 경우는 세션 도중 저 '목적'이 나오는 장면만을 플레이하지는 않는다. 크툴루를 할 때 수호자가 혼자 나불나불거리다가 '여러분은 크툴루를 만나 모두 미쳐버리고 말았습니다.'라고 말하며 5분만에 세션을 끝내지 않고, 던전월드를 할 때 마스터가 혼자 나불나불거리다가 플레이어가 '여관에서 제가 얼마나 대단한 모험가인지 뽐냅니다.'라고 말하며 5분만에 세션을 끝내지 않는다는 뜻이다.(물론 목표가 자신의 라그나스러움을 뽐내는 것이라면 아주 훌륭한 플레이가 될 수도 있다.)
일반적으로 탐사자는 '고서를 읽다가 어떤 단서를 찾고 유적지에 갔다가 사교도와 만나 겨우 탈출하고 고깃덩이 괴물과 만나 먹힐 위기에 빠졌다가 알 수 없는 힘에 의해 구해졌지만 영구적인 손상을 얻고 공포에 질린 채 은둔자 생활을 하다가 결국 제물로 바쳐지는' 일련의 과정을 겪은 뒤에 크툴루를 만나 미쳐버리기 마련이다. 던전월드 역시 같은 방식이다. 목표를 달성하기 이전에는 항상 어떠한 일련의 과정이 존재한다. 왜? 이런 일련의 과정을 거치는 것이 세션 참가자로 하여금 목표를 달성했을 때 더 큰 즐거움을 느끼게 해주기 때문이다.
영웅 활극물을 할 때 마스터 혼자 주절거리다가 '그렇게 여러분은 용을 무찌르고 왕국에 평화를 가져다 주었습니다.'라고 한마디를 하고 끝내는 것과, '용의 군세에게 짓밟히는 도시의 모습과 고군분투하며 조금이라도 많은 양민을 구해내려 싸우는 용사들의 모습, 파괴된 마을을 수습한 뒤 용에게 대적할 수 있는 대마법을 얻기까지의 과정, 그 대마법을 노리는 사교도와 싸우며 용을 찾아가기까지의 험난한 여정, 마침내 만난 용과의 처절한 사투와 장렬한 희생'을 플레이 한 뒤에 '그렇게 여러분은 용을 무찌르고 왕국에 평화를 가져다 주었습니다.'라고 한마디를 한 뒤 끝내는 것이 똑같이 즐거울까? 난 그렇지 않다고 본다. 난 오히려 이런 일련의 과정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목적'을 달성해도 아무런 감흥이 없을 것이라 생각한다.
이런 '일련의 과정'은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것이기 때문에 시나리오가 있든 없든 결과가 정해져있기 마련이다. 결국은 '목적'으로 귀결되는 방식으로. 대적할 수 없는 공포에 미쳐가는 것을 보기 위해 플레이하는 크툴루에서도 고깃덩이 괴물을 샷건으로 죽일 수 있다. 기고만장해진 탐사자들이 비참한 현실을 깨닫고 더 큰 절망감에 빠지는 모습을 연출하기 위해서라면. 영웅이 영웅적인 면모를 보이는 것을 보기 위해 플레이하는 던전월드에서 영웅들이 무력하게 패배할 수도 있다. 복수심에 불타는 영웅들이 결국 위업을 달성하는 서사시를 만들기 위해서라면. 이런 식으로 결국은 결과가 정해져있는 '일련의 과정'이지만, 결과가 정해져있다는 것이 '일련의 과정'의 필요성을 훼손하지는 않는다. 어찌되었든 '일련의 과정'은 '목적'을 빛내기 위해 필요한 것이니까.
탐사자는 샷건을 들고있든 티벳쿵푸를 사용하든 결국 공포에 미치기 마련이고, 영웅은 지금 당장 고블린에게 패배하든 길가던 곰에게 얻어맞든 결국 용을 잡기 마련이다. 그리고 공주기사는 처음 만난 오크에게 이기든 지든 결국은 무력감과 절망감 속에서 능욕당할 것이다.
아니야 세상엔 과정을 뛰어넘어 단어 몇개만 연상하면 자동으로 가버리는 놈들이 있어...
정말 부러운 재능이다
마지막 문장이 특히나 깔끔하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