낮에 심심하다고 글 썼다가 나온 떡밥 중에 CoC 자작 시나리오 떡밥을 한 번 물어 봄.
개인적으로 "자작 시나리오"를 창작하는 활동 자체는 나쁘지 않다고 생각함. 근데 과연 이게 얼마나 크툴루 신화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한 것일까 대해서는 좀 의문을 표하게 되는 시나리오가 좀 있더라고... 그러면 대체 어디가
어떻게 마음에 안 들었나 설명해 봄.
지향하는 장르
원래 러브크래프트 시절의 크툴루 신화는 "공포물" 이었고, 비록 후대 작가들 시절에 분위기가 희석되었다고 해도
작중의 인간은 대부분 공포나 경외감을 느끼는 위치를 쉽사리 벗어나지 못함. 그런데 "어쩌다보니 돌리게 된 룰이
크툴루"인 경우 그런 거 신경을 안 쓴다고 해야하나 모른다고 해야하나 그럼. 그래서 그런 생각을 염두에 안 두고
작성한 시나리오들은 대부분 "크툴루 신화"라는 범주를 기준으로 했을 때는 좀 미묘한 방향으로 나가게 됨.
그러니까 CoC에서 신화요소나 공포요소를 뺀다는 말이 나오고, 그러면 좀 아는 사람들 입장에서는 "아니 그러면
다른 멀쩡한 룰 놔두고 굳이 CoC로 그걸 돌릴 이유가?"라는 질문이 나오게 됨. 그러면 "어쩌다가 돌리게 된 룰이
크툴루"인 애들은 딱히 답을 할 만한 게 안 떠오르겠지.
신화에 대한 이해
"크툴루 신화물"을 플레이하는 건 모르겠는데, 그걸 기반으로 뭔가를 쓸 때는 역시 그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고 봄.
그러니까 일단 좀 읽어라. 러브크래프트의 문체가 너무 개떡같다면 일단 그걸 어찌어찌 읽고 거기에 제시된 상황을
적당히 머릿속에서 이미지화해서 떠올려 보는 게 도움이 될 거임. 물론 아무리 그래도 황금가지판 전집이 원문보단
나을 거야. 그리고 돈과 영어가 된다면 일단 CoC 판 몬스터 매뉴얼인 말레우스 몬스트로룸 같이 좀 더 지식 범위를
늘려줄 만한 서플먼트를 사 보는 것도 추천함.
배경 처리
원래 크툴루 신화는 우리가 아는 세계의 어두운 구석에는 비현실적인 위험이 숨어있으며, 그 위험이 우리가 알아온
세계의 존재 자체를 서서히 좀먹어들어가는 그런 구도의 세계관임. 그 때문에 영미권 시나리오 대부분은 나름대로
"일상적인", 혹은 "현실적인" 배경을 바탕으로 시나리오를 전개하는 거임. 깨어나니까는 처음 보는 이상한 장소고
어찌어찌해서 문을 열고 빛 속으로 사라지면 진짜로 잠에서 깨는 그런 이상한 방법으로 나가는 그런 전개는 대부분
거의 안 한다고 보면 됨.
근데 일본이나 한국에서 나온 자작 시나리오를 보면 그런 배경관에 대해 신경을 안 써서... 아예 한정된 비현실적인
특수 공간을 배경으로 하는 "방 탈출물"도 나오고 그럼. 당연히 이런 작품들은 원래 크툴루 신화가 의도하던 것과는
좀 동떨어진 상태로 단순히 "공포"의 매개체로만 크툴루 신화에 나오는 요소를 꺼내쓰는 것에 불과하다고 생각됨.
뭐 나름대로 재미야 있지. 한편 그런 한정된 비현실적인 특수 공간이 나오는 시나리오가 영미권에 없는 것은 아닌데,
대신 거기에는 나름대로 왜 이런 공간이 존재하며 여기에서 탐사자들은 뭘 해야하는가... 에 대한 배경 설명을 일단
수호자가 이해할 수 있게 제시하는 편임.
상식적인 전개
당연히 CoC의 세계관은 나름대로 "논리와 상식이 통하는" 세상임. 물론 현실에서는 문학작품인 것들이 사실이거나
크툴루와 친구들이 실존한다거나 뭐 그런 차이가 있긴 한데, 그래도 현실에서 통할만한 논리는 통함. 그렇기 때문에
시나리오의 전개는 논리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방향으로 진행되어야 하는 거임.
쉽게 말해서 누가 별 거 아닌 것처럼 보인 행동을 선언하자마자 뜬금없이 "네, A는 죽었어요"같은 선언을 수호자가
하게 만드는 무슨 폴라리스 랩소디 결말같은 전개는 하지 않는 게 좋다는 거임. 카오시움 쪽의 시나리오들은 대개
그렇게 누가 훅 갈 상황의 경우 대개 진짜 깡뎀이 들어온다거나 아니면 차원문이 서서히 닫히기 시작해 탐사자들이
차원문이 완전히 닫히기 전에 들어가지 못하면 이세계나 미지의 땅 어딘가에 남겨진다거나 그런 상황을 보여주면서
결과를 예상할 수 있게 한 뒤에 대응하는 행동을 할 기회까지 제공해 줌. 물론 "강행"이 나오기 전에는 실패하면....
결말 부분의 처리
크툴루 신화물이라고 전부 다 비참하게 끝나는 것은 아님. 대신 인류가 "멋지게" 승리하는 결말은 별로 없을 뿐이지.
문제는 이것도 얼마나 개연성이 있느냐...로 정리가 될 거임. 마치 AWE에서의 판정과 같이 처리하면 되는데, PC들이
아무것도 안 하거나 못 했다면 파국이 오듯이 파멸적인 결말이 나올 수도 있고, 일부만 성공해 처리하지 못한 문제가
남으면 나중에 탐사자들을 괴롭힐 수도 있어야 하고, 반대로 탐사자들이 상황을 잘 처리했다면 나름 해피엔딩으로서
처리해 주고 "아몰랑 아무튼 배드엔딩임" 하면 안 되는 거임.
또한 개인적으로는 수호자들은 일단 시나리오를 안 쓸 꺼라도 이런 부분은 좀 생각해 둘 필요가 있다고 보는데, 왜냐면
실제로 나온 시나리오들 중에서도 일부는 엔딩을 이따위로 수호자가 알아서 내도록 만든 물건이 좀 있고, 상황에 따라
자기가 직접 시나리오의 결말을 변주해야 할 상황도 있기 때문임.
3줄 요약
개인적으로 시나리오를 볼 때는 크툴루 신화라는 장르에 대한 이해와 개연성을 중요시함.
그런 면에서 일본 시나리오 번역본이나 국내 자작 시나리오중에는 맘에 안 드는 게 있었음.
그래서 어느 부분에서 호불호가 갈렸는지 일단 큰 틀만 적당히 나누어 끄적거려 봤음.
P.S : 혹시 물어볼지 몰라서 덧붙이는데, 크툴루 신화를 아예 소설로 땡처리하는 냐루코에 대해서는 딱히 감정 없음.
사실 수십년 전에 이미 덜가놈이 자기 소설에 "러브크래프트가 투고한 위어드 테일즈"가 나오는 전개를 했다.
맘에 안 드는 게 있는 정도인가(..). 맘에 드는 것이 있었는지가 의문인데...
그럼 "많이 있었다"로 정정할까?
난 돈 받고 파는 동인 시나리오도 이것저것 모으지만 솔직히 마음에 든 건 한 손에 꼽을 정도고 남에게 추천할 수 있는 건 하나도 없었거든…
독스프인가 그거는 어디서 나온 시나리오냐
일본판 자작 시나리오.
본문에 써있는 거랑 비슷한 느낌이길래 그런가 했는데 진짜로 그랬네
한국발이라 해봤자 구분할 필요조차 없는 일본동인클론이 태반이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