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급 격리 실패라니. 그것도 휴일에 말야.”
한 남성이 표정을 찌푸리며 헤드셋에 대고 대답한다. 아무리봐도 군인 출신으로밖에 보이지 않는 그의 체구가 좁은 헬기의 후방 좌석을 꽉 채우고 있는 듯 했다. 그의 옆에는 바삐 손을 움직이고 있는 여성이 한명. 그녀의 복장은 응급 구조 헬기에 탑승한 의사를 연상케 했다. 얼핏 보면 응급 후송을 수행중인 군의관과 의사 정도로 보인다.
그렇지만 누군가 헬기에 같이 탑승해 있다면, 즉시 뭔가 이상함을 알아챌 것이다. 남자는 일반 군복과는 약간 다른 특수 패턴의 군복을 입고 있었다. 그 밑으로는 근육 대신 푸른 빛을 뿜고 있는 가느다란 파이프, 주기적으로 꿈틀거리는 기계 장치, 전선과 그것을 덮고 있는 장갑판이 살짝 드러나보였다. 의사도 마찬가지였다. 그녀는 의료 기기 대신에 작은 금속 용기들과 도저히 의료기기라고는 볼 수 없는 장치들을 손보고 있었다. 이상한 것은 두 사람뿐만이 아니었다. 헬기도 민간 구조헬기 치고는 너무 작고 이상할 정도로 빨랐다.
“그것도 위치가 도시 한복판의 대학이란 말이지.”
“네, 그렇습니다.”
남자의 물음에 헤드셋 반대편에서 누군가 사무적인 말투로 대답해온다. 그가 살짝 밖을 내다본다. 흐린 날씨가 곧 비가 쏟아질 것을 암시하는 듯 했다. 그 밑에서는 습기로 가득찬 날씨 때문인지 별다른 인파가 보이지 않는 서울이 있었다.
“대학 지하에 있는 이유는 뭐지?”
“DA 이전의 시설 재활용입니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몇십년전에 폐쇄된 시설인데 예산 절감을 이유로 다시 쓰는 거라… 대학이 이 시설의 지상에 있다는게 맞는 표현일겁니다.”
그가 한숨을 쉰다.
“위장 절차Cover-up Procedure는?”
“그게…”
“담당자가 법정 공판에 불려갔다고만 하지 말아주게.”
“사실 그렇습니다만…”
남자가 골치아프다는 표정을 지으며 양 미간을 찌푸린다. 그들의 활동은 여러가지 의미에서 절대로 민간인에게 노출되어서는 안되는 종류의 것이다. 따라서 항상 정보기관 및 정부 각 부처를 동원한 위장 절차가 선행되어야 했다. 그러나 정치적 스캔들로 인해 그러한 활동이 크게 지장받고 있었다.
“그래서, 어떻게 하라는 건가? 학생들이 보고 있는 와중에 건물이라도 때려 부수라고? 쉬는 날이어도 공부하는 학생들은 있을거 아닌가?”
그가 시니컬하게 묻는다.
“현재 상부에서 대책을 마련중입니다.”
“아니, 됐어. 이쪽에서 알아서 하지. EFD의 메인테넌스를 연결해주게.”
“웨더스 소령님. 절차적 문제가 있습니다만…”
“상부에서 15분내에 대책을 마련할 수 있을 것 같진 않은데. 연결이나 시켜줘.”
“네.”
통신을 받고 있던 오퍼레이터가 자신없는 목소리로 대답한다. 이내 삑, 하는 소리와 함께 다른 목소리가 들려온다.
“EFD, Maintenance and Custodial.”
“AP-5 아말감의 웨더스 소령이다. 지금 당장 전송하는 좌표 위에 폭우를 내리고 싶은데. 대피 경보도 겸해서 말이야.”
남성이 한 손에 들고있는 PDA의 스크린을 조작한다.
“대피 경보를 내릴 정도의 폭우라… 위장 목적입니까? NWO 애들이 잡혀가기라도 했나보죠? ”
“잡혀갈 위인들이 아니지. 그렇지만 재판에 안 나갈 순 없거든.”
“알겠습니다. 대피 경보를 발령하겠습니다. 서울 기상청이 욕 좀 먹겠군요. 그럼 행운을 빕니다.”
“고맙네.”
그것과 동시에 통신이 끊긴다. 웨더스라 불린 그 남자가 불만족스럽게 창 밖을 내다본다. 이것으로는 부족하다. 기껏해야 학교로 냄새를 맡은 기자들이 진입하는 것을 방지하고, 민간인들의 이동을 차단할 뿐. 그것만 가지고는 실질적인 민간인 피해가 발생하지 않으리라고 장담할 수 없었다. 격리 실패가 일어난 건물 내의 민간인들에 대해서는 아무런 효과도 없다고 보는 것이 옳을 것이다. 그가 초조해지려는 스스로를 진정시키며 장비를 점검하기 시작한다.
정지 궤도 상. V.E.E.F.D라고 쓰여있는 인공위성이 지상에서의 신호를 수신하며 연달아 방향을 조절한다. 인공위성이 움직임을 멈추자, 그 옆에 달려 있는 캔 모양의 기계 장치가 분리된다. 그것 역시 노즐에서 무엇인가를 분사하며 궤도를 이탈한다.
인공위성에서 충분히 멀어지자, 그것이 방향을 수정한다. 그 밑에는 구름에 가려진 극동아시아의 모습이 보였다. 방향 수정을 끝낸 장치가 곧바로 그곳으로 낙하한다. 마찰열로 인해 시뻘겋게 타오르면서도 멀쩡한 형태를 유지하고 있는 장치가 성층권을 뚫고 구름 속으로 진입한다.
“펑!”
폭죽 터지는 소리가 서울 상공의 구름 속에서 울려퍼진다. 몇 분 지나지 않아 구름이 천둥소리를 내기 시작한다. 흐릴지언정 얌전했던 날씨가 급격하게 악화된다. 한방울씩 떨어지기 시작한 비가 순식간에 폭우로 돌변한다. 퍼붓기 시작한 비를 피해 사람들이 여기저기로 피하고, 동시에 방송에서 호우 경보가 속보로 전해지기 시작한다.
모두가 우왕좌왕하는 가운데, 웨더스 소령이 탄 헬리콥터는 비 따위는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 다는 듯이 폭우를 뚫고 날아가고 있었다. 몰아닥치는 강풍에도 약간 흔들릴 뿐이고, 가끔 균형을 잃기는 해도 어느새 자세를 잡아가며 빗속을 뚫고 지나간다. 아마 지상에 있는 누군가가 그 비현실적인 광경을 본다면 잘못봤다고 생각하며 고개를 돌려버릴 것이다. 그러나 이렇게 퍼붓는 빗속에서 위를 올려다볼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며, 이런 휴일에 고층 빌딩에서 밖을 쳐다볼 사람은 몇명이나 될까. 그들이 탄 헬리콥터는 신속하게 폭우를 돌파하며 점점 목적지에 도달해가고 있었다.
‘피곤해.’
통계학과 열람실에서 한 여학생이 펜을 내려놓으며 속으로 중얼거린다. 그녀가 끄적이던 수식을 잠시 쳐다보더니 고개를 흔들고는 일어난다. 열람실에 있는 것은 그녀뿐이었다. 하긴, 누가 이런 긴 휴일에 학교까지 와서 공부를 하겠는가? 나가봐야 우울해지기만 할 뿐인 날씨라 아무도 침대에서 일어나고 싶지 않을 것이다. 그녀가 카페에서 사온 커피잔을 흔들어본다. 아무런 소리도 나지 않는다.
‘이쪽 카페들은 다 닫았고…’
아마 오늘도 밤을 새다시피해서 과제를 해야할 판이었다.
할일이 산더미 같다.
다음 주까지 내야할 전공 리포트가 두 개, 부전공 수업쪽에 제출해야할 과제가 두 개다. 그 중 한 수업은 난이도가 석사와 학사 사이에 애매하게 걸쳐있는 수업이라 어렵기로 악명 높았다. 그 수업에만 내일 하루를 꼬박 들이부어야할 판이다.
주말도 알바, 약속 -물론 즐길 수 있는 부류의 약속은 아니었다-, 그리고 더 많은 과제에 의해 이미 날아간 것이나 다름 없었다.
한두달 있으면 찾아오는 방학이라고 해서 쉴 수는 없다. 다행히 그녀는 외국계 투자은행에서 인턴 자리를 구할 수 있었다. 인턴치고는 200만원이나 월급을 주긴 했지만, 방학 내내 아침 8시부터 새벽까지 일하는 것을 생각하면 그렇게 남는 장사는 아니었다. 그렇지만 절대 거부할 수 없는 기회다. 그녀의 뒤를 봐줄 사람도 없고, 그렇다고 엄청나게 좋은 학교를 나온 것도 아닌 그녀의 상황을 생각해보았을 때 정말 몇년에나 한번 있을 기회였다.
그녀의 인생은 항상 이런식이었다. 어머니와 단 둘이 살고 있는 그녀였기에 삶은 언제나 녹록치 않았다. 끊임없이 노력하고 마치 미래의 시간을 빌려다 쓰는 듯한 그녀. 그런 그녀에게 몇몇 사람들이 적당히 타협하라고 충고해주었지만 그녀는 멈추지 않았다.
일어나서 도서관을 나선다. 길 건너편의 카페에 가서 커피를 하나 더 사와야겠다는 생각에서였다. 통계학과가 속한 자연과학대에서 제일 큰 건물에는 휴일에도 하는 카페가 하나 있었다. 그 카페가 닫기전에 가야했다. 건물을 나서자 우중충한 날씨가 느껴진다. 한방울, 두방울 떨어지는 비를 피해 그녀가 재빨리 길을 건너서 생물학과쪽 건물로 들어선다. 이쪽이라면 비를 맞지 않고 카페까지 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녀가 문을 열고 들어서자마자 갑자기 비가 굵어지더니, 순식간에 말도 안되는 양의 폭우가 쏟아진다. 보아하니 이 비가 멈추기 전까지는 이 건물 안에 갇혀있을 판이었다.
그녀가 한숨을 쉰다. 정 안되면 어딘가 누워서 자기라도 해야겠다는 생각에 그녀가 발걸음을 옮긴다.
“...”
발걸음이 느려진다. 정말로 피곤했다. 생각해보니 항상 쫓겨다니며 사는 바람에 장기적인 계획 따위는 꿈도 꾸지 못했다. 이번주 같은 경우는 그녀에게 있어서 일상 다반사였다.
-쿵.
생각에 빠져있느라, 그녀는 지하에서부터 울려오는 작은 진동을 감지 하지 못한다. 과제, 다른 할일들, 내년부터 해야할 가장의 역할, 인간관계, 인턴, 자신과 어머니가 지고 있는 빚까지.
-쿵.
생활비와 옛날부터 쌓여온 어머니의 병원비 위에 이제는 그녀의 학자금 대출까지 쌓여있었다. 머리가 아파온다. 그녀가 직장에서 잘리지 않고 10년동안 순조롭게 승진해야 간신히 갚을 수 있는 양이다.
-쿵.
그러나 불평해서는 아무것도 이루지 못한다고 생각하며 발걸음을 옮긴다. 피곤하다. 쉽게 되는 일도 없다. 그러나 항상, 최소한 단기적으로라도 항상 삶을 원하는대로 끌고가지 않으면 그저 굴러떨어질 뿐. 그녀가 한숨을 쉬며 커피로 생각을 옮긴다.
“?!”
비명을 지르기도 전에 갑자기 발 밑이 휑해지는 느낌이 든다. 전신을 시린 공기가 감싸는 느낌과 함께 그녀가 무너지는 바닥을 뚫고 그대로 지하로 떨어진다. 그녀의 몸 여기저기에 전선이나 배관 같은 것이 부딪힌다. 팔에 뭔가가 걸려 잠깐 허공에 멈춰섰지만 그것도 잠깐이었다. 어깻죽지를 데이는 느낌과 함께 어두운 공간으로 떨어지는 그녀.
그 와중에 그녀의 머릿속에 의문이 스친다.
생물학과 건물에는 지하층이 없을텐데?
그 질문이 끝나기도 전에 그녀가 바닥에 떨어진다. 족히 20미터 정도는 낙하한 것 같지만 천만다행으로 여기저기 부딪혀 속도가 늦춰진데다가 뭔가 부드러운 것 위에 떨어져서 무사했다. 몇군데 타박상과 등의 찰과상을 입은 것을 빼면 별로 다친 것 같지도 않았다. 그냥 놀이기구를 탄 느낌. 그녀가 무엇위에 떨어졌는지 궁금해 하며 바닥에 손을 짚고 일어나려한다.
질척질척한 것이 손에 걸린다. 철의 냄새가 매캐하다. 그녀의 손에는 뭉개져버린 사람의 팔이 걸려있었다.
“이-”
그녀가 스스로의 입을 막는다. 피곤함이 아드레날린과 함께 싹 날아가버린다. 그녀가 주위를 둘러본다. 여기저기 피어오른 불꽃들 사이로 다져진 듯한 사람들의 시체가 바닥에 널부러져 있었다. 세명인지, 네명인지 분간이 가지 않을정도로 토막나고 으스러진 시체들. 핏자국, 싯누런 지방 덩어리, 박살난 뼈와 터진 내장까지. 그 비현실적인 광경에 두뇌가 제대로 반응하지 못하고 있었다.
질식할 것 같다. 숨이 막힌다. 방 안에는 산소가 부족했다. 여기저기서 피어오른 불꽃들 때문에 방 전체가 불구덩이가 될 지경이었다. 그녀의 머릿속에서 과제라던가 가게를 보는 일 따위는 날아간지 오래였다. 그녀가 벽으로 달려가 소화기 마크가 달린 박스를 열어제낀다.
그 안에는 소화기 대신, 노란색 단추가 달린 빨간색 손전등 모양의 기계가 들어있었다. 그녀가 의아해하며 그것을 꺼내든다. 그 위에는 “화재 쪽을 향하고 버튼을 누를 것”이라는 말이 영어로 쓰여있었다.
이 광경으로 인한 공포가 찾아오기도 전에, 그녀는 황당함을 느낀다. 그렇지만 넘실대는 불꽃에 질린 그녀가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한다. 이 기계가 그녀가 모르는 신형 소화기 같은 것이길 빌면서, 그녀가 점점 커지고 있는 불쪽을 향해 그것을 겨누고는 버튼을 누른다.
“삐익!”
날카로운 경고음과 함께 불꽃이 그대로 사라진다. 꺼진 것도 아니었다. 그녀가 더욱 의아한 표정으로 불꽃이 있었던 자리를 쳐다본다. 그을음 하나 남기지 않고 마치 처음부터 없었던 것처럼 사라져버린 불꽃. 불꽃이 있었다는 증거는 새까맣게 타버린 실험 도구나 문서 같은 것 뿐이었다. 열기는 사라지지 않았지만, 이내 방 밖으로 열기가 빠져나간다. 그녀가 손전등을 내려다본다. 경고문구가 새빨간 글씨로 빛나고 있었다.
경고: 모든 산화작용을 중단시킵니다. 생존자가 있을 경우 사용하지 마세요. ATP와 세-
“그오오-”
낮은 짐승의 소리에 그녀가 고개를 든다.
이제서야 그녀의 뇌가 제대로 작동하는 것 같았다. 여긴 어디지, 라는 기초적인 질문부터 시작해서 이 사람들은 누구인가, 그리고 저 소리는 뭐지, 까지. 그녀가 살짝 방 밖을 내다본다.
지하의 공간은 엄청나게 넓었다. 현대적으로 리모델링된 거대한 지하실. 사방에 디스플레이, 계측 장치, 엄청나게 굵은 케이블과 불타면서도 작동중인 기계들이 널려있었다. 마치 자연대의 모든 실험동을 모아서 섞어놓은 느낌이었다. 문과 방의 수를 보아서는 지상에 있는 생물학과 건물보다 훨씬 큰 규모였다.
그러나 그녀가 있는 방의 끔찍한 풍광은 방 밖에서도 반복되고 있었다. 반토막으로 잘려나간 사람들, 짓이겨진 머리, 무언가 폭발한 자국, 스파크를 내뿜는 전기 배선, 고장난채 계속 움직이려하는 자동문, 바닥에 엎질러진 화학 약품. 그리고 그 한가운데 서있는 인간형의 무엇인가까지.
사람 두 명정도는 족히 되어보이는 덩치. 거꾸로 꺾인 관절과 팽팽히 당겨진 근육들. 여기저기 터져나오고 있는 고름과 그 위를 덮고 있는 핏자국. 내장이 담겨져있어야할 자리에는 뭔가가 꿈틀거리고 있었고, 눈을 비롯한 각종 신체기관에 무리하게 부착된 기계들의 가장자리에서 썩은 체액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눈이 보이지 않는 듯, 연신 킁킁거리며 냄새를 맡고 있는 그 형상이 천천히 반대편의 문으로 다가간다. 그 위에는 EXIT라는 문구가 선명하게 붉은색으로 빛나고 있었다. 그것이 낮은 소리로 그르렁 거리며 문을 두들긴다.
쿵쿵거리는 소리와 함께 굳게 닫힌 철문이 찌그러지는 소리가 묘하게 고요한 지하층을 울린다. 그 형상은 손의 근육과 살점이 터져나가는 것에 아랑곳하지 않고 철문을 두드려대고 있었다.
그녀의 머리속에는 의문만이 늘어간다. 그 형상이 갑자기 고개를 홱 돌리더니 냄새를 맡는다. 그리고는 내다보고 있는 그녀쪽으로 고개를 돌린다. 텅빈 안구가 그녀 방향을 향한다.
이 기괴한 현장의 한가운데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관전자의 입장이었기 때문일까, 지금까지는 전혀 공포를 느끼지 못하고 있었던 그녀였다. 그렇지만 이제는 아니었다. 그 형체가 홱, 하고 몸을 돌리더니 그녀가 있는 쪽으로 발걸음을 내딛는다. 온 몸의 근육이 긴장상태로 수축한다. 어떻게 해야하나 하는 고민 따위는 전혀 생각할 여유가 없다. 오직 도망친다는 본능에 따라서 온 몸이 뛰쳐나갈 준비를 한다. 그것이 다시 한발을 내딛는다.
그때, 우지직, 하는 소리와 함께 철문이 바깥쪽에서 강제로 열린다.
“시간에 맞춰 왔구만.”
그 말과 함께 괴물의 팔이 깔끔하게 잘려나간다. 그녀의 눈앞에 또 다시 비현실적인 광경이 펼쳐졌다. 군복을 입은 사내가 괴물에게 덤벼든다. 괴물의 근육이 부풀어 오르며 엄청난 속도로 그가 있던 바닥을 내려치지만 그가 피해낸다. 군복이 찢어지자 그 밑에서 더욱 이상한 모습이 드러난다. 그녀의 눈에는 잘 보이지 않았지만, 안쪽에서 시퍼런 불빛을 뿜어내는 실린더와 액추에이터가 사내의 움직임을 몇배나 증폭시켜 주고 있었다.
그가 다시 뛰어올라 짐승의 정수리에 칠흑 같이 검은 대검을 박아넣으려한다.
“소령님!”
그녀는 그때야 그의 뒤에 서있던 여성의 존재를 눈치챘다. 이런 장소에 어울리지 않는 여의사. 그 비명이 끝나기도 전에 짐승의 형상이 소령이라 불린 사내의 발목을 잡아 그대로 공중에서 휘두르더니 바닥으로 메다꽂는다. 사내가 일어서기도 전에 의사 역시 그 손아귀에 잡혀 던져져, 뭔가 부러지는 소리와 함께 그녀가 숨어있는 방 바로 앞에 쳐박힌다. 사내가 아랑곳하지 않고 다시 짐승에게 덤벼드는 모습을 뒤로, 그녀가 바닥에 널부러진 의사에게 시선을 옮긴다. 목은 이상한 방향으로 돌아가 있었고, 한쪽 팔이 부러져서 꺾여있었다. 잘게 쪼개진 유리조각들이 몸 여기저기에 박혀, 물이 깨진 그릇에서 흘러나오는 것처럼 피와 체액이 줄줄 새어나왔다.
그녀가 고개를 들어 사내와 짐승의 싸움을 다시 쳐다본다. 사내가 또 다시 던져져 벽에 처박히지만, 재빨리 일어나 손에 들린 권총 같은 것을 겨눈다. 권총에서 형광색으로 빛나는 덩어리가 짐승을 향해 쏘아진다. 그것이 짐승의 어깨를 불태운다.
“?!”
화들짝 놀라며 발 밑을 쳐다보는 그녀. 여의사의 팔이 그녀의 발목을 잡고 있었다. 완전히 돌아간 목이 우드득, 하는 소리와 함께 원래대로 돌아온다. 기하학적으로 완벽한 외모라는 표현밖에 생각나지 않는 얼굴. 가래 끓는 소리와 함께 이런 상황에 어울리지 않는 미성이 섞여 질문이 던져진다.
“직원?”
그녀가 당황하며 간신히 고개를 흔든다.
“하, 학생이에요.”
“학교의?”
목소리에서 점점 가래 끓는 소리가 사라진다. 부러진 팔이 원래대로 돌아오고, 유리에 찔린 상처가 스스로 파편을 밀어내며 부글거리는 거품을 뿜어낸다. 그 기괴한 모습에 그녀는 간신히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저쪽으로.”
막 원위치를 찾은 팔이 짐승이 있는 곳의 정 반대편을 가리킨다. 그쪽에도 역시 EXIT라 쓰인 비상탈출구가 있었다.
“어서.”
쥐어짜내는 그 말과 함께 그녀가 뛰쳐나간다. 짐승과 사내의 싸움은 이제 난투전으로 번져가고 있었다. 짐승은 비현실적인 완력과 부자연스럽기까지 한 민첩성, 그리고 화염이나 작은 폭발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는 내구력으로 사내를 밀어붙인다. 그는 단련된 격투술과 군경이 보면 눈이 휘둥그레질 진압 장비들로 그에 대항한다. 찢어진 군복 밑으로는 SF 영화에서 볼 것 같은 외골격이 격렬한 소리를 내며 그의 움직임을 몇배나 빠르고 강하게 만들어주고 있었다. 내려치는 일격에 대항해 팔을 내뻗자, 푸른 빛의 역장이 생겨나 그들 사이를 차단한다. 짐승은 잘려나가 너덜너덜해진 다른 쪽 팔로 그의 몸통을 쳐낸다. 그가 공중에서 몸을 돌려 벽을 차내며 짐승에게 또 다시 달려들지만 이번에는 공중에서 잡힌다.
짐승이 괴성을 지르며 사내를 위협하지만 그는 아랑곳 하지 않고 등 뒤에서 무엇인가를 꺼내 던진다. 순간 작은 폭발이 일어나며 짐승의 얼굴을 강타한다. 짐승이 울부짖으며 그를 또 다시 던져버린다. 그가 가볍게 바닥에 착지한다. 이제서야 비상구를 향해 달려나가는 학생의 존재를 인지한 그.
정신 없이 달려나가는 그녀의 등 뒤로 짐승이 달려든다. 그가 즉각 짐승을 향해 도약해 놈의 무릎 관절 뒤쪽을 가격한다. 균형을 잃은 짐승을 외골격에 의지해 발로 차낸 그가 그 광경에 겁에 질려 휘청거리고 있는 그녀에게 윽박지르듯 말한다.
“뭐하나? 어서 가!”
그 말이 끝나자 마자 짐승이 뛰어올라 그와 뒤엉킨다. 그녀가 다시 뛰기 시작한다. 격렬한 난투극의 소리를 뒤로 하고 비상구에 뛰어들어 엘레베이터의 버튼을 누른다. 천만 다행으로 엘레베이터는 바로 열렸다. 그녀가 엘레베이터에 쓰러지듯 들어가자 바로 문이 닫힌다.
“헉… 헉…”
아드레날린과 공포가 온몸의 긴장된 근육을 더욱 조여온다.
“무섭나?”
감정없는 목소리가 그녀의 귓전에 울린다. 그녀가 화들짝 놀라며 고개를 돌린다.
검은 양복, 검은 넥타이, 검은 선글라스.
짧은 흑발의 인종을 알 수 없는 남성이 그녀의 옆에 서있었다. 그녀는 놀라움에 말을 잇지 못한다. 분명 탈때만 해도 아무도 없었다.
“무서운가?”
그녀는 놀라움에 대답하지 못한다. 그가 잠시 말을 멈추더니 무신경하고 사무적인 말투로 이야기한다.
“그 짐승은 탈출한다.”
“네?”
그녀가 간신히 되묻는다.
“예상되는 희생자 수는 40명. 그 중 셋은 네가 아는 사람들이다. 40명 중 다섯은 가장이고, 그 중 둘은 살해당하면 가정이 무너진다.”
그가 담담하게 말을 이어간다.
“여기서 막아야한다.”
당연하다는 듯이 말하는 그를 아직도 충격받은 표정으로 응시하는 그녀.
“네가 평소에 했던 것과 다르지 않다. 관찰하고 계획한다. 그 짐승에게 유효한 수단은?”
그의 목소리는 기계로 만들어낸 목소리라고 해도 믿을만큼 아무런 감정도 담겨있지 않았다.
그녀가 대답하지 못하고 머뭇거린다. 대체 왜 자신이 이런 질문을 받아야하는지도 모를 마당에, 대답하는 것은 무리였다. 그가 다시 묻는다.
“그 짐승에게 유효한 수단은?”
당황스러움, 공포, 긴장감, 각성의 느낌. 그러나 이상하게도 그녀의 머릿속에 방금 본 광경이 스쳐지나간다. 폭발을 비롯해 물리적 수단에는 고통스러워할지언정 아무런 타격도 입지 않는 그 짐승의 모습이 떠오른다.
“그렇다. 통상의 수단이 통하지 않는다면 대응책은?”
그녀의 공포가 잦아든다. 떨리던 손의 움직임이 잦아들고, 지나치게 경직되어 있는 근육이 풀어진다. 본능에 물들어 있던 사고가 유연해지고, 합리적으로 변한다.
지상에서는 대적할 동물이 없는 코끼리도 물속에 처박히면 질식사하고 만다. 향유고래라도 물밖으로 나오면 활동하지 못한다. 처음 방에 떨어졌을때 숨막혀하던 자신의 모습을 떠올린다.
‘질식’
그 키워드가 머릿속에 스쳐지나간다. 그 남성이 끄덕인다.
“좋은 답변이다.”
그녀가 긴장을 가라 앉히려 노력하며 그에게 묻는다.
“당신은 누구죠?”
아까와 다르지 않은, 억양도 없고 감정도 담겨있지 않은 목소리가 흘러나온다.
“나는 교관the Man이다.”
그 말과 함께 엘레베이터 문이 열린다. 분명히 올라가는 버튼을 눌렀을텐데, 원래 층으로 돌아와 있었다. 그곳에는 다리가 찢겨나간 여의사와 만신창이가 된 외골격에 의지해 어떻게든 짐승의 공격을 피해내는 사내가 보였다.
그녀가 엘레베이터에서 뛰쳐나간다. 그녀를 보며 사내가 소리지른다.
“뭐하는거야! 피하라고 했-”
그가 말을 끝내기도 전에 그를 밀치고 짐승이 그녀에게 달려든다. 그녀가 아까와는 달리 곳곳에 널려있는 부서진 물건들 뒤로 몸을 던지며 짐승을 피해 아까 떨어졌던 방으로 들어간다. 그녀의 천재성Genius이 그녀의 손을 인도한다.
짐승이 그녀의 바로 뒤에 있었다. 그것이 그녀를 내려치기 직전, 그녀가 바닥에서 무엇인가 주워 짐승에게 겨눈다. 그녀의 눈 앞에 아까 읽다 말았던 경고문이 지나간다.
-ATP와 세포 호흡도 산화작용에 포함됩니다.
“삐익!”
날카로운 경고음.
다음 순간, 짐승이 스스로의 목을 부여잡는다. 그것이 경련하더니, 정면에서부터 근육의 움직임이 멎으며 쓰러진다. 모든 생명은 반드시 세포 호흡을 통해 에너지를 얻어야 한다. 그것이 정지된 생물이 움직일수 있을리가 없다. 짐승이 처음엔 목을 부여잡는다. 그 다음에는 사지의 근육이 경련하며 아주 짧은 발작을 일으킨다. 그러나 곧바로 사지의 힘이 풀려 축 늘어진다.
“헉… 헉…”
쿵, 하는 소리와 함께 짐승이 바닥에 부딪힌다. 경련할 에너지조차 얻지 못한 근육들이 아무런 힘도 내지 못하고 그 움직임을 멈춘다.
그 모습을 내려다보는 그녀. 무리 했던 몸에 긴장이 풀린 탓일까. 그녀가 털썩, 하고 주저 앉았다.
“윙-”
그녀가 고개를 번쩍 든다. 핸드폰의 진동 소리와 밖에서 치는 번개 소리에 깨어난 그녀. 꿈인가, 라는 생각이 제일 먼저 들었다. 그녀가 핸드폰을 들어올린다. 그녀가 열람실을 나간지 1시간도 지나지 않은 시각. 처음보는 번호였다. 그녀가 잠시 망설였다.
그러다가, 이상한 점을 눈치챘다. 전화가 오고 있었지만 핸드폰은 분명 “신호 없음”이라는 메시지를 표시하고 있었다. 그녀가 잠시 넋이 나가 있는 동안 전화가 끊어진다. 재빨리 다른 곳에 전화를 걸어보지만, 걸리지 않는다. 오류 같은 것이 아니었던 것이다. 그 순간, 다시 똑같은 번호에서 전화가 온다. 그녀가 어떻게 해야할지 망설이며 핸드폰을 내려놓는다.
그때, 통화가 제멋대로 연결된다. 그리고는 스피커폰 모드가 켜진다. 그녀는 손도 대지 않았음에도.
“안녕하십니까, 노하은씨 되십니까?”
그녀가 당황하며 엉겁결에 대답한다.
“네. 누구시죠?”
“▒▒▒▒▒▒▒▒의 ▒▒▒▒▒▒입니다. 노하은씨가 저희와 딱 맞는 자격조건을 지니시고 있기에 연락드렸습니다.”
그러나 그 조직의 이름은 물론이고, 통화하고 있는 남성의 이름도 들리지 않았다. 아니, 들리지않는 것이 아니었다. 발음도 목소리도 명확했다. 다시 한번 불러주면 받아적을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러나 그녀는 이것이 ‘암호’의 일종이었기에 이해가 가지 않는 것임을 이해했다. 그것도 아주 고차원적인 암호.
암호는 뜻을 숨겨서 전달하기 위한 수단이다. 따라서 암호화되는 것은 그 뜻이 아니라, 그 뜻을 숨기고 있는 텍스트나 음성같은 기록매체다. 그러나 남성의 목소리는 매체가 암호화된 것이 아니라, 그 ‘뜻’ 자체가 암호화되어 있었다. 들린다 하더라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 당연했다. 누군가 이 음성을 녹화한다 하더라도 절대 해독하지 못할것이다.
동일한 뜻, 아니면 동일한 대의를 공유하는 자가 아니라면.
“헤드헌터 정도로 생각해주시면 되겠습니다. 노하은씨가 보여주신 성과에 바탕했을 때 아주 훌륭한 가능성을 지니고 계신 분이라 생각됩니다. 가능하면 빨리 면접에서 뵙고 싶군요. 일을 더 빨리 시작할 수 있으면 좋구요.”
“하지만 이번 방학 때 인턴이 있어서…”
말꼬리를 흐리는 그녀. 남성의 목소리가 가볍게 웃는다.
“그런 회사야 저희…”
그가 잠시 말을 중단한다. 뭔가 지금 꺼내게 될 말을 잘 포장할 수 있는 표현을 찾는 것 같았다.
“...부서의 말단에 불과합니다.”
그녀가 의아해 한다. ‘말단’ 이라니?
“물론, 금전적인 부분에서도 그 회사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일 겁니다. 그 증거로 하은씨와 어머님이 지고 있는 빚을 전부 저희가 변제해드리겠습니다. 면접에 오시지 않아도, 오늘의 일에 대한 보상이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하은씨가 제대로된 직업을 가지게 되고 정기적으로 상환을 시작하시면 저희측에서 적당히 맞춰서 해드리도록 하죠.”
오늘의 일, 이라는 말에 그녀가 얼어붙는다.
그럼 그 일은 진짜였던건가? 잠깐, 그 전에 빚에 대해서는 어떻게 안거지?
“면접에 오시지 않으면 자동적으로 거절하신걸로 알겠습니다. 혹시 마음을 바꾸시더라도, 안타깝게도 하은씨는 저희가 갚아드린 빚 빼고는 그 어디서도 저희의 흔적을 찾을 수 없게 될겁니다. 자, 면접 장소에 관해서 말인데. 다음주 화요일 3시 반으로 하죠. 지금 장소를 알려드리겠습니다.”
곧바로 핸드폰에서 화이트 노이즈와 비슷한 고주파가 흘러나온다. 그것과 동시에 하은의 머릿속에 지도가 새겨진다. 마치 그녀의 뇌가 컴퓨터, 그리고 화이트 노이즈가 컴퓨터에 전달되는 신호라도 된것 같았다. 그녀의 뇌는 그 소리를 마치 자기 눈으로 본 사진처럼 자연스럽게 받아들여 기억한다.
그녀는 아직 꿈이라도 꾸고 있는 건가, 하고 생각한다.
“자 됐습니다. 그때 뵙겠습니다. 그럼.”
통화가 끊어진다.
그녀가 멍하니 핸드폰을 바라본다.
그리고 몇시간동안 있었던 일들을 떠올려본다.
어느새 밖에서 폭우가 그친다. 그리고 신호가 잡히기 시작한 핸드폰에 어머니의 전화가 걸려오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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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하은 (컨벤션: ???, 계몽: 1, 토템 5 [The Man])
여러분은 어느날 이상한 일을 겪었습니다.
괴물과 맞닥뜨린다던가, 믿을 수 없는 연구 성과를 낸다던가, 엄청난 돈을 벌었다던가 하는 일들입니다.
직후, 여러분들은 알 수 없는 단체로부터 연락을 받게 됩니다. "면접"을 보러오라는 연락을요.
엄청난 보수와 밝은 미래를 약속하는 그 단체. 그들은 묘한 방법으로 여러분들을 설득하는 재주가 있습니다.
속는셈치고, 여러분들은 면접장에 한번 가보기로 합니다.
라는 내용의 크로니클 누가 돌려줬으면 좋겠당.
ATP를 포함한 산화 작용을 무력화시키는 소화탄은 SCP-914 실험 기록에서 본 적 있는 것 같은데..
ㄴ ㅇ 그거임
하은이가 여고생 고세대 뱀프가 아니라니
격리 실패라니까 scp 재단인 줄
비긴즈 추
뭐죠 이 갓시나리오는?
오오 이건 진짜 멋진 시작이다
더 써라 핫산
연재해 개새끼야
정주행 - dc Ap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