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본 곳에, 말끔한 얼굴에 늘씬한 키의 남자가 서 있었다. 흔히들 '베컴 머리'라고 부르는, 옆머리를 깔끔하게 깎고 긴 윗머리를 왁스와 빗으로 뒤로 빗어넘긴 소위 '연예인' 머리(주 : 슬릭백 언더컷)를 한 사내였다. 얇은 소재의 검은색 가을 코트를 입고, 얇은 회색 터틀넥을 받쳐 입은 잘생긴 남자였다. 남자는 환하게 웃으며 다시 인사를 건넸다.
"제가 제일 늦었네요! 죄송해요. 안에 들어가 계시지 그랬어요."
하며, 남자는 팀원 각자에게 인사를 건넸다. 꼬박꼬박 존댓말을 하고, 자연스럽게 고개를 숙이는 그의 모습은 이런 상황에 꽤나 익숙해보였다. GM이 그런 생각을 하는 사이, 남자가 GM에게 다가와 인사를 건넸다.
"안녕하세요 GM님. 그동안 가출한 마법사로 플레이했던 라헬입니다."
"아, 네. 안녕하세요...G,GM입니다."
잘생겼네...라는 생각이 잠시 GM의 머릿속에 스쳤다. 앞장 서서 카페 문을 열어 젖힐때에도 온 신경이 뒤통수로 쏠리는 것을 느꼈다. 라그나와 라헬이 뭔가 이야기를 나누는 것 같았다. 뒷사람을 위해 카페 문을 잡아주는 척 뒤돌아섰다. 착각이었다. 라그나는 스마트폰을 들여다보고 있었고, 라헬은 리케르트에게 자신의 가출 마법사가 엔딩에 어떻게 끝날지 열정적으로 설명하고 있었다.
못났네 나. 고작 이런 것에 휘둘리고 다니다니. GM은 억지로 환히 웃으며 팀원들을 들여보내고 구석, 4인용 테이블로 향했다. 마무리, 깨끗하고 완벽하게 완결을 짓는거야. GM은 다짐을 하고 가방을 열었다. 격자맵이 테이블 위에 펼쳐졌고, 각각의 PC를 상징하는 일러스트가 그려진 종이말이 플라스틱 고정대 위에 꽂혔다. 시나리오집의 구김을 펴고, 룰북을 테이블에 얹었다. 그 사이 리케르트는 커피 주문을 하기 위해 카운터로 갔다. 그리고, 라헬이 라그나의 시트에 적힌 뭔가를 가리키며 아주 살짝 라그나 쪽으로 몸을 기울이는 장면이 GM의 눈에 들어왔다. 지나칠 정도로 일상적인 모습일 뿐이었다. 라헬은 파티의 마법사, 라그나는 파티의 추적자. 각자의 시트를 공유하고 최적의 전투 택틱을 짜는 것은 TRPG를 즐기는 이들이라면 응당 해야하는 일이지 않는가. 그러나, 그렇게 조용히 각자 캐릭터의 이야기를 나누는 두 사람의 모습은 GM의 가슴에 아플 정도로 틀어박혔다.
안돼. 그만하자 GM. 너는 오늘 세 명의 플레이어의 기대를 한 몸에 받고 있는 GM이잖아. 할 수 있어. 정신 차려. GM은 가방의 컴포넌트를 마저 꺼내 테이블 위에 늘어놓으며 속으로 되뇌었다. 그러는 중, 주사위 하나를 바닥에 떨어뜨렸다. 주사위를 다시 집어올리며, GM은 자신의 가슴을 압박하는 배의 과도한 지방을 확실하게 느낄 수 있었다. 주사위를 집어들어 허리를 펴자, 라헬은 어느새 코트를 벗고 있었다. 운동을 열심히 한 듯 넓은 어깨, 강인한 가슴이 터틀넥 너머로도 충분히 보였다. 특히, 헐렁한 허리 부분이 GM의 시선을 잡아 끌었다.
"저 잠시만 화장실 좀 다녀올게요."
GM은 웅얼거리며 화장실로 향했다.
- 계속 -
아직까지는 라그나가 라그나 할것 같지 않은데 왜 라그나가 라그나인걸까?? - dc Ap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