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M은 더 이상 견디기 힘들었다. 아니, 견딜 수 없었다. 눈 앞에서 그런 것을 보고 있으며, 머릿 속에 담아둔 시나리오와 멋진 반전들은 더이상 중요하게 느껴지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갈기갈기 찢어 눈 앞의 테이블에 던져버리고 싶었다. 화가 나지만, 화를 낼 수 없었다. 울고 싶었지만, 울 수 없었다. 그 때, 문이 열리는 작은 종소리가 울렸다. 리케르트가 돌아온 것이었다.


"아 정말 죄송합니다."


리케르트는 굉장히 심각한 표정이었다.

"여러분께 정말 죄송한데, 그, 제가 지금 급하게 학교로 가봐야 하는 상황이라... GM님 혹시 리케르트 GMPC로 돌려주실 수 있을까요. 말도 안되는거 저도 잘 아는데, 지금 문제가..."


리케르트는 거의 울 것 같은 표정이 되었다. GM은 오히려 홀가분해지는 느낌이 들었다. 그래, 그냥 끝내자.


"리케르트님 정말 급한 일 있으시면 아쉽지만 어쩔 수 없지요. 저야 상관 없는데, 다른 두 분은..."


라그나와 라헬은 서로 마주보다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입을 열었다.


"저는 괜찮습니다."


"저도 괜찮아요."


"그렇다면, 플레이는 다음으로 미루죠. 아직은 학기 초이니까 다음 주말 정도 괜찮을까요?"


GM은 스스로도 확신하지 못하며 플레이어들에게 질문했다. 내가 정말 다시 플레이를 열까?


"저는 다음 주 이 시간은 괜찮아요." 라그나가 말했다.


"저도 다음 주 주말엔 약속이 없었어서...괜찮습니다." 라헬도 동의했다.


"여러분 정말 죄송합니다. 주말 시간을 이렇게 저 때문에..." 리케르트는 거듭 고개를 숙이며 도망치듯 카페를 빠져갔다. 그래, 잘 됐어. 잘 된 일이야. 더 이상 이런 멍청한 들러리 짓은 하지 않아도 괜찮아.


"여러분, 그럼 오늘 플레이는 아쉽지만 여기까지 하는 것으로 하죠." GM은 말했다.


"그럼 저는 여기서 일어나려고 하는데, 두 분은...?" GM은 일말의 희망을 가지며 은근히 운을 띄웠다. 만약 이들이 자신보고 먼저 가라고 하면, 그때는 정말 끝인 것이다.


"아, 저도 지금 가려구요." 라그나도 자리에서 일어났다.


"네. 아쉽지만 뭐... 저도 그럼 시간이 비는데, 집에 가서 미리 과제나 해야겠네요." 라헬도 아무 망설임 없이 자리에서 일어섰다.


GM은 마음 속에서 뭔가 의혹이 생기기 시작했다. 내가 오해했던 것은 아닐까. 내가 지나치게 과민했던 것은 아닐까. 내가 이렇게 과민하고, 불편한 상태로 이들을 대했기 때문에, 이들도 내 플레이가 계속 불편했던 걸까? 그렇다면 내가 이들에게 먼저 사과해야 하는 것은 아닐까? 아니, 뭘로 사과해야 한단 말인가? 내가 라그나에게 첫 눈에 반해서, 라헬과 같이 노는 꼴이 눈꼴 시려웠다고? 미친 사람 취급 받을 것이 분명했다. GM은 그저 이 사실을 일단 마음 속에 묻어두기로 했다.


"그럼 일어서시죠." 라헬이 앞장서서 테이블에서 일어섰다.


카페에서 나오자, 날은 아직 밝았다. 가을 해는 짧다지만, 이른 오후의 하늘은 아직 맑고 푸르렀다.


"그럼, GM님, 라그나 님, 다음 주에 뵙겠습니다." 라헬은 예의 깍듯한 인사를 한 채 그들에게서 멀어졌다. GM은 다행히, 그와 반대 방향으로 가야 했다. 그와 동행했다면, 더욱 불편했으리라.


"라그나 님, 그럼 다음 주에 뵙겠습니다." GM도 라그나에게 작별 인사를 건넸다. 굳이 같이 가자느니, 집 방향이 어디인지 스토커처럼 묻고 싶지 않았다. 어차피 가능성도 없을 테니 말이다.


"GM님 저번에 연신내쪽 사신다고 하시지 않았어요? 저도 그쪽이니까 같이 가요."


전혀 예상치 못한 라그나의 말이었다. GM의 가슴은 점차 두방망이질하기 시작했다.


-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