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요일 아침.
그녀는 평소보다 훨씬 일찍 일어나 집 근처의 공원을 달리고 있었다. 공원이라고 하기에는 민망한 크기에 관리도 안되어 있지만. 빚에 시달리고 있는 모녀로서는 도저히 괜찮은 동네에 살수가 없었다.
살짝 어둡던 하늘은 이미 새파란 여름 하늘로 변해가고 있었다. 그녀가 공원 높은 곳에 올라 동네를 내려다본다.
그녀는 이 수많은 사람들중 하나에 불과하다. 총명하고, 학부 졸업을 앞두고 있는 학생 치고는 공부한것도 굉장히 많으며, 자립적이고, 심지어 이력서마저 괜찮지만 결국 그녀도 채무 상환, 고장난 변기, 도둑 고양이들이 찢어놓은 쓰레기 봉투, 그리고 층간소음 같은 소소한 것에 시달리는 사람들 중 하나였다.
여름 날씨.
하은은 결정했다. 면접을 보기로.
3시 반이 되었다.
그녀는 머릿속에 새겨진 ‘지도’를 따라가고 있었다.
그 지도는 그 누구도 이 장소를 찾을 수 없도록 설계된 것이 분명했다. 일단 전달 방법부터 현대 과학으로는 가로채거나 할 수 없는 성질의 것. 그 뿐만 아니라 그녀가 지하철에서 내려 걷기 시작한 순간부터 그 지도가 머릿속에서 지워지기 시작했다.
소리를 통해 뇌로 직접 전달되는, 휘발성 기억으로 저장된 지도. 누구도 추적할 수 없을 것이다.
그녀가 지도를 따라 대략 20분 정도 걷자 점점 더 허름한 거리가 나타난다. 재개발 된 구역에서 벗어나자 지은지 대략 40년은 될법한 연립 주택들이 나타난다. 런닝을 입은 아저씨 한명이 오토바이 옆에 앉아 담배를 피운다. 길거리에는 콩이나 나물 같은것을 늘어놓고 파는 아주머니들이 몇. 알싸하게 매운 냄새가 풍겨오는 작은 가게. 그 위에는 청소한지 10년은 되어보이는 “미소 방앗간” 이라는 간판이 걸려있다. 집에 아직 돌아가지 않은 초등학생들과 일찍 하교한 중학생들이 길거리를 메우고 있었다.
머릿속에서 거의 다 지워져가는 지도에 따르면 위치는 이 근처다. 그렇지만 괜찮은 건물은 보이지 않았다. 대체 이런 거리 어디에 영향력있는 조직이 자리잡고 있단 말인가, 하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초등학교를 지나, 코너로 돌아서서 오르막을 약간 올라간후 꽤나 좁은, 급한 내리막길에 진입하자 멀리서 그녀의 불신을 불식시켜주는 광경이 나타난다.
꽤나 긴 골목길. 그 골목길을 이루고 있는 담장들 너머로 한 건물이 보인다.
이 동네에 어울리지 않게 잘 관리된, 꽤나 규모가 있는 건물이다. 디자인도 전혀 이런 동네에서 기대할 만한 것이 아니다. 좌우측에서는 격자식으로 디자인된 금속 기둥이 솟아 올라 있다. 그 사이로 초록색 유리와 깔끔하게 단장된 흰색 외장재로 감싸인, 계단식으로 된 건물이 모습을 드러낸다. 유리창들의 대다수는 사각형이었지만, 어떤 유리창들은 육각형으로 되어 마치 벌집을 연상케 했다. 잘 보이지는 않았지만 건물의 중간 중간은 비어있고, 그 공간에는 대신 발코니나 휴게 공간이 자리잡고 있는 것 같았다.
그러나 하은의 눈에 들어오는 것은 그런것이 아니었다. 그녀는 이 건물이 교묘한 트릭들에 의해 숨겨져 있음에 감탄하고 있었다.
오르막길에 가득한 건물과 군데군데 솟아오른 전신주, 가로수, 그리고 건물들 위에 올려진 옥탑방으로 인해 어느방향에서 쳐다보더라도 이 건물은 이 동네 어디에서도 보이지 않는다. 뒤쪽은 수풀과 나무가 가득한 언덕으로 인해 철저히 가려져 있었다. 건물의 위쪽은 하늘, 그리고 주위 풍광에 녹아들것 같은 색으로 칠해져 정말 자세히 관찰하지 않으면 알아차리기도 힘들 모습이었다. 거기에 더해 위층의 유리창들은 그녀가 지나온 거리쪽으로 교묘하게 빛을 굴절시켜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시선을 피하도록 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골목에 들어서는 순간 멀리서도 똑똑히 보이는 건물.
공학적 트릭과 심리학적 트릭Ward이 합쳐져 있는 이 건물에 그녀가 감탄한다. 이들이 어떤 조직인지는 몰라도 전혀 스스로를 외부에 드러내고 싶지 않은 것 같았다.
그녀가 좁은 내리막길을 따라서 걸음을 옮긴다. 벽돌로 된 낡고 좁은 길.
조금 더 걷는다.
조금.
조금만 더 걷는다.
그런데, 뭔가 이상하다.
그녀가 발걸음을 멈춘다. 아까 봤던 그 건물과의 거리를 가늠한다.
왜 거리가 줄어들지 않지?
“관찰한다.”
남성의 목소리. ‘교관’의 목소리다. 그가 바로 자신의 뒤에 서있음이 느껴진다.
“아무리 잘 만들어진 가짜라도, 반드시 진짜와 다른 점이 존재한다.”
그가 조용히 말한다.
하은이 멈춰서서 전방을 노려본다.
마치 원근법의 예시를 보는 듯한, 서서히 좁아지는 것 같이 보이는 골목길. 그 위로 보이는 화려한 건물. 햇빛. 그림자.
바람이 그녀의 등 뒤에서 불어온다. 골목길로 들어서기 전 맡았던 냄새들이 희미하게 실려온다. 그녀가 이상한 점을 눈치챈다. 앞쪽에서는 전혀 바람이 불어오지 않았다. 바람도, 실려오는 냄새도.
다시 한번 전방을 뚫어지게 주시한다. 무언가 이상하다.
왜지?
왜 이상하지?
그녀의 직감이 무언가 맞지 않음을 알린다.
그녀가 이 광경을, 불신한다.
그녀가 손을 뻗는다. 손이 허공에서 막힌다. 분명히 아무것도 없어야할 허공을 그녀가 지워낸다. 분명 방금전까지만 해도 보였던 ‘골목길’이 그녀의 손 끝에서 지워지고, 번진 물감으로 변해버린다.
“그림…?”
골목길과 그 너머, 그것을 그대로 모사한 그림이 그녀의 앞을 막고 있다. 다시 말해 착시. 보통 사람이라면 몇시간을 관찰해도 이 광경이 ‘그림’임을 알 수 없을 것이다. 이건 동네 서점에서 파는 싸구려 착시현상 책 같은 수준이 아니었다. 현실과 전혀 구분이 불가능한, 현실 그 자체를 덮어버리는 착시. 심지어 다른 각도에서 보더라도 전혀 그림임을 알 수가 없다.
이건 그림이 아니다. 그 이상의 무언가Magick였다. 그리고 그녀의 이성이 이것을 용납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녀가 다시 걷는다. 그리고 알아챈다. 콘크리트 바닥이 마치 트레드밀처럼 뒤로 밀리고 있었다. 현실감이 산산조각난다. 그녀는 지금 골목길을 걷고 있는 것이 아니었다. 앞은 풍경으로 위장한 초현실적인 착시 현상, 바닥에는 마치 액체처럼 꿈틀거리는 콘크리트 바닥. 그녀는 악취미적으로 만들어놓은 의사 공간이라는 함정에 빠져있었다.
현기증이 나 휘청거리는 자신을 간신히 한쪽 벽에 기대어 지탱한다. 최소한 이쪽은 진짜다.
“...?”
그녀가 반대편, 벽돌로 만들어진 벽을 본다.
벽 한가운데, 그녀와 똑같은 눈높이에 한 쌍의 눈동자가 있다.
“어떻게 알았지?”
벽이 걸어나온다. 아니, 벽과 똑같은 패턴으로 전신을 칠한 여자가 걸어나온다. 그녀의 몸에서 물감이 녹아내려 맨살이 여기저기 드러난다. 그녀가 하은의 멱살을 잡는다.
“어떻게 알았냔 말이야!”
하은이 그녀의 손을 뿌리치고 왔던 길로 달려나간다. 뒤로 밀리던 콘크리트 바닥은 다행스럽게도 앞으로는 밀리지 않는 모양이었다. 20m 정도. 그러나 그녀가 골목을 반정도 빠져나가기도 전에, 그 뒤에서 온몸을 물감으로 칠하고 있던 여성이 허리춤에 매달려 있던 작은 물감통을 손에 든다.
“모든 것은,”
그녀가 물감통을 바닥으로 굴리며 조용히 중얼거린다.
“거짓의 그림.”
동시에 물감통이 터진다. 대체 어디서 왔는지 모를 엄청난 양의 새까만 물감이 터져나와 바닥 전체를 덮는다. 그 위를 회색, 녹회색, 그리고 갈색의 물감이 자그마한 개울처럼 순식간에 뻗어 스스로 그림을 그려간다.
하은이 반사적으로 그림을 내려다본다. 마치 누군가 이 길바닥을 들어낸 후 땅을 파헤쳐놓은 바람에 수도관이 훤히 보이는 것 같았다. 이 그림마저 도저히 현실과 구분할 수 없을 정도다. 그녀는 허공을 걷는 느낌에 잠깐 아찔함을 느꼈다.
그러나, 다음 순간 그것이 현실이 된다.
지하의 배관과 그 위를 덮고 있는 콘크리트 길이라는 현실은 순식간에 콘크리트가 없어지고 배관이 훤히 드러난 길이라는 현실로 대체된다. 하은은 그대로 허공에서 자유 낙하한다.
“거기서 잠깐 기다려줘야겠어.”
그 여성이 공격적으로 말하며 또 다른 물감통을 준비한다.
그러나 그녀가 물감을 흩뿌리기전에 무엇인가에 맞아 물감통이 터진다. 동시에 그녀의 앞에 무엇인가 거대한 것이 착지한다. 한 남성. 큼지막한 체구의 그가 그녀에게 주먹을 휘두른다. 그러나 허공에 흩뿌려진 물감이 딱딱한 조각으로 변해 그의 손 끝으로 달려든다. 손 끝의 장갑과 옷이 찢어지며 그 안의 정교한 외골격을 드러낸다.
그 틈을 타 그녀가 골목길의 그림을 찢고 뒤로 뛴다. 그녀가 손가락 끝에 묻은 물감으로 손바닥에 무엇인가 그린다. 마치 문 손잡이를 정면에서 찍은 것 같이 정교한 그림.
또 다시 가격 당하기 전에, 그녀가 골목으로 바짝 등을 대고는 기대선다. 그녀가 문 손잡이가 그려진 그림을 벽에 대고 마치 판화를 찍듯 누른다. 그녀가 손을 떼자 흔히 볼 수 있는 문 손잡이가 마치 처음부터 거기 있었다는 듯이 생겨나 있었다. 그녀가 손잡이를 잡아당기자 벽이 마치 문이라도 되는 양 바깥쪽으로 열린다.
하은보다 작은 체구의 소년이 그 안에서 나온다. 소년은 너프 사(社)의 에어소프트건을 들고 있었다. 위협적으로 달려드는 사내에게 장난감 총을 조준하는 소년. 그러나 그것을 보자마자 그가 제자리에 멈춰서서는 한쪽 무릎을 꿇으며 오른팔을 내민다. 옷이 순식간에 불타는 소리와 함께 팔에 단단히 붙어있던 실린더가 전개된다. 그의 오른손을 중심으로 앞에 시퍼렇게 빛나는 장막이 펼쳐진다. 소년이 지체하지 않고 에어소프트건으로 보이는 무언가의 트리거를 당긴다.
-쐐액!
공기가 찢어지는 소리와 함께 그 끝에서부터 번개가 뿜어져나와 장막을 강타한다. 순식간에 그것이 깨지고 외골격의 실린더도 파열된다. 그가 그대로 지면에 내동댕이쳐지지만 눈깜짝할 사이에 일어선다. 소년이 달려가 조준하지만 사내는 공중으로 뛰어오른 후 벽을 차내며 소년의 반대편에 착지한다. 당황하며 뒤로 물러나는 그가 소년을 덮치려 하지만 발이 움직이지 않는다. 그의 발이 어느새 녹아내리는 콘크리트 안으로 빠지고 있었다. 여자의 술수다. 무방비로 서있는 사내를 향해 소년이 방아쇠를 당긴다.
-피익.
“뭐해? 어서 쏴!”
“고… 고장났어.”
소년이 얼버무리며 허리춤에서 무언가를 꺼내려한다.
그때, 막 구덩이를 빠져나오려는 하은과 사내가 눈이 마주친다. 하은은 그제서야 그가 생물학과 지하에서 보았던 사람임을 깨닫는다. 사정은 모르지만, 최소한 그 남자가 자신을 보호하려는 것 정도는 알 수 있었다. 순간의 시선교차.
그가 그녀를 향해 재빨리 팔을 뻗자, 손목 부위에서 두꺼운 와이어가 쏘아진다. 와이어가 마치 스스로의 의지가 있는 뱀처럼 그것이 하은의 팔에 감긴다.
“윽…!”
그가 와이어를 끌어당긴다. 그녀가 그 반동을 타고 소년의 머리 위를 날아가며, 반사적으로 소년이 막 꺼낸, 자그마한 권총 같은 것을 잡아챈다. 남자의 앞에 착지하자마자 그녀가 소년의 머리를 향해 권총을 겨눈다. 난생 처음 잡아보는 무기였지만 별로 실감은 나지 않았다. 그것도 그럴것이, 이 권총은 아무리봐도 플라스틱으로 만든 BB총 같았기 때문이다.
“뭐라도 하면 쏠 거에요.”
그녀가 최대한 담담하게 말하려 노력한다.
“나말이야, 누나?”
“너 말고.”
천진난만하게 묻는 소년의 말을 하은이 일축한다.
“나에게 말하는 거라면 이쪽을 보고 말해야 하지 않겠어?”
손가락들 사이에 자그마한 물감병들을 끼우고 있는 여성이 말한다. 그녀의 몸에 그려졌던 벽돌 모양의 무늬들은 거의 녹아내려 그녀의 국부만을 가려주고 있었다.
“미안한데, 다른 사람들은 몰라도 당신은 보면 안될 것 같아요.”
하은이 ‘보면’이라는 단어에 힘을 준다. 그녀가 쓴 웃음을 짓는다. 소년이 천천히 손을 들며 포기했다는 듯이 말한다.
“미안, 당했어, T. 누나는 전혀 생각도 못했네.”
T라 불린 여성이 잠깐 고민하는듯 하다가, 공격적인 자세를 거둔다.
“웨더스. 지원군을 더 불러올수도 있어.”
“그럼 그렇게 하면되지. 그렇지 않나? 그리고 웨더스 소령일세.”
웨더스 소령으로 스스로를 소개한 남자가 굳어버린 콘크리트에서 발을 꺼낸다. 그의 발과 다리를 덮은 두꺼운 장갑판에서 콘크리트 조각들이 떨어진다.
“웨더스, 예언이 있었어. 그녀를 데려가면 언젠가 통제할 수 없게될거야.”
남자가 곧게 서서는 그녀를 내려다본다. 하은은 그 두 사람 사이의 긴장감을 등 뒤에서 느낄 수 있었다.
“우리 같은 사람들을 설득하는데 정말 최악의 방법이로군.”
그가 냉소적으로 대꾸한다.
“좋아. 이해관계가 일치하지 않는 이상 설득은 통하지 않겠지. 후회하지 않길.”
그녀가 순순히 물러서며 문을 연다. 소년이 벽쪽으로 붙어 천천히 문쪽으로 움직인다. 하은이 계속 소년을 겨눈다. 그가 문 안으로 사라지고, T라 불린 여성도 문 안으로 들어선다. 문이 닫힌다.
긴장이 풀리자 하은이 작은 권총을 떨어트린다. 툭, 하고 바닥에 부딪힌 권총이 조각난다. 그 안에서 시퍼런 구슬 같은 것이 굴러나오며 그대로 녹아버린다.
“위험했군. 저 친구들이 이렇게 공격적으로 나오는 건 처음인데. 공식적으로 우린 중립이거든.”
그 목소리는 역시 그때의 남자의 목소리와 똑같다. 그리고 그가 입고 있는 외골격도. 팔과 다리에는 얇은 실린더, 액추에이터와 마이크로 모터가 장갑판으로 덮힌채 작게 소리를 내고 있었다. 마치 거대한 골격을 금속으로 모사해놓은 것 같은 갑옷이 그의 상체를 안전하게 보호하고 있었다.
“아무래도 뭔가 이상해서 나와봤지. 웨더스 소령일세. AP-5 아말감의 지휘관이지. 저번엔 고마웠네.”
그가 손을 내민다. 그의 손을 덮고 있던 금속의 장갑이 스스로 벗겨지고, 뒤로 접히며 그의 맨손을 드러낸다. 다른 쪽 팔의 외골격은 장막이 깨진 영향인지 아직도 김을 피워올리고 있었다. 하은이 얼떨결에 그와 악수한다.
“발음은 좀 양해해줬으면 좋겠군. 내 입장에서는 제일 배우기 어려운 말 중에 하나거든.”
꽤나 억센 손이었다.
“아, 아뇨. 발음 좋으신데요.”
“열심히 연습했지.”
그가 하은을 내려다본다. 좀 더러워진 면접용 정장이다.
“음. 앞으로 이런 옷을 입을 일은 별로 없을것 같군. 자세한 얘기는 안에서 다른 사람이 해줄걸세.”
‘소령’이라는 직함부터 시작해서 물어보고 싶은 것이 많았지만, 일단은 입을 다무는 하은. 그의 말에 100%는 동의할 수는 없었지만, 어쨌든 고개를 끄덕이는 그녀였다.
두 사람이 건물 안으로 들어선다. 안내 데스크의 -최신식 공항에서나 볼 법한, 깔끔하게 디자인 된 데스크였다 - 누군가가 그녀에게 공손하게 고개를 숙인다. 전혀 성별을 구분할 수 없는 중성적인 외모. 그 외모는 그때 생물학과 건물 지하층에서 본 여의사처럼, 거의 인공적인 느낌을 주었다. 성형수술을 받은 사람이 ‘고친’ 느낌을 준다면, 이 사람의 외모는 ‘만든’ 느낌.
“난 지하층으로 가야겠군. 그럼 위에서 보지.”
하은의 인사도 듣지 않고 웨더스가 한쪽의 화물용 엘레베이터로 사라진다. 깔끔한 바닥에 시꺼먼 자국들이 남는다.
우두커니 남겨진 하은. 그녀가 데스크로 다가간다.
“안녕하세요. 오늘 면접이 있어서 왔어요.”
그렇게 말하며 그녀가 괜히 바지를 쳐다본다. 주의 깊게 봐야 알아차릴 수 있겠지만 얼룩이 묻어 있었다. 괜히 신경쓰인다. 이런 순간에도 드라이클리닝 비용이 나갈걸 생각하니 한숨이 나오는 그녀다.
“아, 노하은님. 잠깐만 기다려주십시오.”
그, 또는 그녀가 역시 성별을 구분할 수 없는 목소리로 말하며 손을 공중으로 살짝 뻗는다. 그러자 허공을 가리키고 있는 손가락 끝에서 홀로그램 디스플레이가 나타난다. AUDIO ONLY 라는 표시. 하은이 들었던 그때의 목소리의 남성이 말한다.
“말하게.”
“노하은님이 오셨습니다.”
“아, 6.5층으로 올라오시면 됩니다, 하은씨. 곧 뵙죠.”
디스플레이가 꺼진다.
“6.5층으로 올라가시면 됩니다, 하은님. 엘레베이터는 저쪽입니다.”
“6.5층이요?”
“예. 6.5층입니다.”
하은이 당연하다는 듯한 그 대답을 듣고 당황한다.
6.5층이라니? 아주 어릴적 해리포터에서 읽은 9와 3/4승강장을 생각하며 그녀가 엘레베이터에 탄다. 엘레베이터도 마찬가지로 호텔에서나 볼법한 것이었지만 지금은 그게 문제가 아니었다. 3개의 줄로 되어있는 버튼들.
B6, B5, B4, B3, B2, B1
1, 2, 3, 4, 5, 6
7, 8, 9, 10, 11, 12
지하까지 포함해 총 18개 층 각각에 해당하는 숫자의 버튼은 있었지만 그 어디에도 6.5층이라는 버튼은 보이지 않았다. 잠깐이나마 6.5층이라는 버튼이 있는게 아닐까 하고 기대를 했던 자신에게도 황당해 하는 그녀.
“그들은 스스로를 숨기고 싶어한다.”
하은이 옆을 돌아본다. 교관의 목소리다. 아무런 감정도 담기지 않은 건조한 목소리.
“만약에 그렇다면.”
“마지막까지 트릭이 숨겨져 있다고 생각하는게 맞겠죠.”
하은이 대답한다. 검은 양복, 넥타이, 선글라스. 마치 영화에 나오는 비밀 요원을 연상케 하는 그 남성이 고개를 끄덕인다.
“당신은 누구죠? 이 사람들의 동료인가요?”
“나는 교관the Man이다.”
똑같이 대답하는 그.
그녀가 잠시 그를 쏘아본다.
그렇지만 그 답변이 그녀가 들을 수 있는 최선임을 깨닫는다. 고개를 돌리고 손을 들어 올려 6이라고 쓰인 버튼 위로 손을 가져간다.
그리고 그 부분을 살짝 누른다.
경쾌한 소리와 함께 그 부분이 마치 처음부터 버튼이었다는 듯이 눌리며 6.5라는 숫자를 디스플레이한다. 동시에 엘리베이터가 위로 움직인다.
“휴.”
그녀가 옆을 쳐다본다. 물론, 그는 처음부터 그랬듯이 사라져있었다.
순식간에 6.5층에 도착한 그녀. 문이 열리자 아까 로비에서 봤던 것과 똑같이 생긴 사람이 서있었다.
“안녕하십니까, 하은님.”
“안녕하세요.”
그녀가 마음을 진정시키며 대답한다. 그 사람은 정확히 똑같은 외모, 똑같은 머리 스타일, 똑같은 복장에 똑같은 목소리를 하고 있었다. 그가 따라서 올라온 것은 아닐 것이다. 사실 이제는 그렇게 놀랍지도 않았다. 아까 골목길에서 있었던 일에 비하면 이건 아무것도 아니다.
“가시죠.”
그가 그녀를 안내한다. 그녀가 그 사람을 따라 걸으며 건물 내를 살핀다. 바닥은 대리석 모양이었지만 질감은 전혀 그렇지 않았다. 인테리어는 실용적이면서도 미려하다. 이 층은 행정업무나 손님 응대 같은 소프트한 분야를 담당함이 분명했다. 반대편에서 또 다시 똑같은 외모를 한 사람이 지나간다. 하은이 한숨을 쉰다.
누군가 엄청난 예산을 들여서 자신을 놀리고 있던가, 아니면 이 모든 것이 진짜던가, 라는 생각은 이미 접어두었다. 이건 현실이었다. 그녀가 이해할 수 없는 세상으로 걸어들어가는 느낌.
“여기입니다.”
그들은 한 사무실 앞에 멈춰섰다. 그녀가 방 안으로 안내되기 직전, 누군가 그들을 잡아세운다.
“어머, 하은씨구나?”
아주 살짝이나마 어색한 서양식 발음이 섞인 한국어. 하은이 그 목소리의 주인을 돌아본다. 피가 낭자한 의사 가운을 입고 있는 여의사였다. 그러나 피가 낭자한 것은 가운 뿐. 의사 본인과 그녀가 지닌 다른 소지품들은 오히려 가운에 대비되어 훨씬 깨끗해 보였다. 그녀가 막무가내로 하은의 손을 잡는다.
“닥터 소피아 라이언이에요. 만나서 정말 반가워요. 그때는 고마웠어요.”
그녀가 감사를 전한다. 하은은 ‘그때’ 가 생물학과 빌딩에서 있었던 일임을 알아챈다. 소피아의 얼굴은 잊을 수 없을 것이다. 기하학적으로 완벽한 외모. 지나치게 인공적인 미성. 그리고 박살난 그녀의 몸이 회복되는 모습까지.
“내가 그때 생채기 같은 건 다 없애서 열람실로 보내드렸는데, 혹시 어디 아픈데 있어요? 어머, 잠깐. 지금 다리 다쳤죠? 요 앞에서 무슨 일이 있다고는 들었는데...”
“아, 아뇨. 괜찮은데...”
묘하게 사람간의 간격을 파고드는 소피아의 대화 방식에 조금 당황하는 하은.
“그래도 어디 아프거나 교체하고 싶으면 말해요. 알았죠?”
“교체하다...니요?”
“왜, 다들 하는거 있잖아요? 팔을 의수로 바꾸고 싶다든가, 술이 너무 좋은데 간이 안 받쳐준다든가. 여기 사람들은 술 정말 많이 마시더라고요. 성형수술 같은 것도 걱정마요. 저희 계약 조건에 다 포함되어 있으니까. 예산이 2000년대 들어서 엄청 깎이긴 했지만 아직 그 정도는 충분해요.”
하은이 뭐라 대답하려는 순간 문이 열린다.
“닥터 소피아. 노하은씨는 아직 계약서에 사인도 하지 않았습니다. 알다시피 저희는 필요한 정보만 알려주고 나머지는 비공개하는게 원칙입니다. 좀 자제 하시는게..”
하은과 통화한 그 목소리다.
그 모습은 약간 의외였다. 벗겨지고 있는 머리를 어떻게든 넘겨서 가리고, 얼굴에 붙은 살은 조금씩 늘어지기 시작하는 중년의 남성이다. 옷은 분명 최고급 브랜드가 분명했으나 손본지 오래되어 여기저기 낡아가기 시작하고 있었다. 안경도 테가 흔들거리는 모양이었다. 시계는 마찬가지로 최고급이지만 잘 보면 돌아가지 않고 있었다. 그런 부분만 제외하고 보면 동네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아저씨들의 모습과 똑같았다.
하은이 두 사람의 대비되는 모습을 본다.
유혈낭자한 가운과, 당장이라도 과로사할 것 같은 모습의 직장인이 갖추고 있을 법한 물건들. 그들이 사는 방식, 생각하는 방식, 그리고 믿는 방식Paradigm의 연장Resonance을 보는 듯 했다.
“하은씨, 들어가시죠.”
“그럼, 나중에 봐요.”
쾌활하게 말하는 소피아가 떠나고 두 사람은 사무실로 들어간다. 의외로 그의 사무실은 소박했다. 두 사람이 책상을 사이에 두고 앉는다. 책상은 굉장히 특이한 재질이었다. 처음엔 흑단으로 만들어진 고급 책상이 아닐까 했지만 오직 질감만이 그럴뿐, 겉 모습은 아무런 무늬가 없는 칠흑이었다.
그녀의 궁금증에 답하듯 그가 책상 위를 슥, 하고 훑는다. 그러자 아까 로비에서 봤던 것 같은 디스플레이들이 허공에 나타난다. SF 영화에 흔히 나오는 장면 같았다. 하은이 그 비현실적인 장면을 넋이 나간듯 쳐다보고 있다가 무엇인가 깨닫는다. 디스플레이에 뜬 것은 전부 그녀에 관한 것이었다.
이름, 나이, 대학, 전공, 부전공, 부과대표 경험, 인턴 경험, 학점, 전공 학점, 키, 몸무게, 11살때 팔이 부러진 일, 13세때의 폐렴, 당뇨 관련의 가족 내력, 현재 거주지, 학교 짐 등록 일정, 가족 관계, 연애 경험, 그리고 모녀가 지고 있는 큰 빚까지.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하은씨. 소령님이 무슨 일이 있었는지 설명해 주셨습니다. 그 친구들이 저희 앞마당까지 들어오는건 처음이군요. 차차 설명드릴 일이지만… 몸은 괜찮은가요?”
“괜찮습니다. 기회에 감사드립니다.”
“너무 딱딱하게 하실 필요 없어요. 전 백종훈입니다. AP-5 아말감의 행정총괄입니다. 저희 아말감에서는 다들 백 사장이라고 부릅니다. 사장은 아니지만.”
‘아말감’이라는 단어에서 느껴지는 위화감. 그가 명함을 내민다. 하은이 그 명함을 받아든다. 마치 아주 얇은 나무로 만들어진 것 같은 느낌. 심지어 명함도 새까만 색이었다. 한쪽 구석은 굉장히 세련된 홀로그램 프린팅으로 장식되어 있었다. 꽤나 인상적인 그 명함은 비용이 꽤나 들었을 것 같다는 생각을 떠올리게 했다. 그녀가 받아본 수많은 명함중 제일 기억에 남는 것이 될 것 같았다. 그녀가 스크린을 다시 훑어본다.
“저에 대한 거네요.”
“네, 그렇습니다.”
백 사장이 끄덕인다. 하은은 그의 말투가 외국계 회사에 면접을 다니며 보았던 면접관들과 매우 비슷함을 느꼈다.
“사실, 이 면접은 형식적인 겁니다. 저희는 채용을 위해 필요한 하은씨의 정보는 다 알고 있죠. 물론 연애 같은 사적인 것은 제외하고요. 오늘은 하은씨에게 저희 조직을 소개드리는 날이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그러니까 평소에 했던 면접 같은건 잊어버리세요.”
이 모든게 사생활 침해가 아닌가, 하는 생각은 들었지만 이미 이들에게는 그런 이야기는 통하지 않을 것 같았다.
“그리고 다시 한번 그 때의 일에 대해서 감사드리고 싶습니다. 예산을 상당히 아낄 수 있었고, 새로운 무기의 힌트도 얻었다고 하더군요.”
“소화기 말씀이신가요?”
“네. 소화기 말입니다. 독특한 발상이었습니다. 저희 조직은 항상 그런 식의 발상을 환영합니다. 어쨌든 저희가 맞닥뜨리는… 위험한 자들은 지나치게 창의적인 방법을 들고 오거든요. 아까 보셨겠지만.”
짐승의 모습, 현실과 구분이 가지 않을 정도의 그림, 허공을 찢는 벼락을 쏘아내는 장난감 총. 아직도, 실감이 나지 않는다. 하지만 가짜가 아님은 확실히 알고 있었다.
“좋아요. 눈 앞에서 많이 보셨겠지만 아직도 실감이 나지 않으실 겁니다. 저도 처음에는 그랬으니까요.”
하은이 살짝 고개를 끄덕인다.
“일단 저희 소개부터 드려야겠군요. 저희는 인터폴 및 국제형사재판소와 장기적인 협조 관계를 맺고 있는 PMC입니다. AP-5는 코드 네임입니다. 저희와 비슷한 PMC들이 세계 곳곳에 위치하고 있고, 저희 같은 PMC들을 아말감이라고 부릅니다.”
PMC라는 단어에 그녀가 고개를 갸웃한다.
“민간군사기업이죠. 용병 같은 겁니다. 군인보다는 경찰에 더 가깝지만요. 저희는 국제형사재판소가 규정한 반인륜적인 범죄자나, 그에 준하는 존재들을 처리하는 역할을 맡고 있습니다.”
그가 잠깐 뜸들이며 한숨을 쉰다.
“하은씨도 이미 보셨겠지만… 그 중에는 인간이 아닌 것들도 있죠. ”
그녀가 작게 고개를 끄덕인다.
“따라서 저희는 그들에게 대항하기 위해 일반에 공개되어 있지 않은, 말하자면 굉장히 실험적인 기술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요즘엔 누구나 가지고 있는 스마트 폰은 20년 전엔 저희 같은 사람들의 전유물이었습니다. 아마도 20, 30년이 지나면 소령님이 쓰시는 외골격이나 닥터 소피아가 보여드린 터무니없는 자가시술도 상용화 될 수 있습니다.”
“부러진 목을 스스로 몇십초만에 원래대로 되돌려 놓는걸 말씀하시는건가요?”
“음.”
“솔직히 말씀드리면…”
“무슨 말인지 알고 있습니다. 하은씨 같은 사람들의 눈에는 닥터 소피아의 기술과, 아까 골목길에서 본 사람들의 술수가 무엇이 다른지 모르겠다, 라는 것이겠죠. 어쨌든 그 상세를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에게는 둘 다… 비현실적으로 보일테니까요.”
그가 한발 앞질러서 그녀의 말을 자른다.
“저희는 철저하게 검증가능하고, 일반인도 알고 배울 수 있는 보편적으로 인정될 수 있는 지식에 기초한 제품만을 사용합니다. 일반적인 의대생을 데려다가 철저하게 교육시키면 언젠가는 닥터 소피아의 시술을 그대로 복제해 낼 수 있을 겁니다. 물론 50년은 걸리겠지만.”
그의 말투는 묘하게 장사꾼 같았다.
“다시 말해 그들과 저희의 차이점은 딱 하나입니다. 저희는 오랜 시간이 걸릴지라도 대중이 이해하고 사용할 수 있게 될 과학과 합리의 산물을 사용합니다. 그들은 오직 그들만이 쓸 수 있는, 말하자면 반칙을 사용하는 것이죠. 하은씨도 차차 이해하시겠지만 결국 페어 플레이어들은 저희밖에 없습니다.”
“플레이어이자 동시에 감독인건가요?”
“그렇습니다. 반칙을 쓰는 선수가 있다면 퇴장시켜야함은 당연한 일입니다.”
백 사장이 몸을 의자에 깊숙히 파묻는다.
“물론 저희는 군인만 득시글한 조직은 당연히 아닙니다. 군수나 행정을 담당하는 저 같은 사람도 있고, 의료진도 갖추고 있고요. 정보 은폐를 비롯한 지원부서는 없지만 그쪽은 아웃소싱이 잘 되어 있어서요. 페이도 당연히 셉니다. 훨씬 위험하니까요. 하은씨 같은 분들은 보통 행정직이지만 이번은 좀 예외입니다. 현장요원으로 채용할겁니다. 웨더스 소령님이 너무 강하게 추진하고 계신 일이라서.”
‘현장요원’이라는 단어. 지금까지 금융쪽 기업들만 면접을 보러다녔던 그녀와는 너무나도 먼 이야기였다.
“현장요원이란건 어떤 일을 하는거죠?”
“뭐, 웨더스 소령님 밑에서 열심히 구르는겁니다. 상대가 말이 통하는 상대라면 사건 수사, 범죄자 체포, 현장 검거 같은 일을 보조 하고, 그렇지 않다면 오늘과 비슷한 일을 하게 되겠죠. 하은씨가 대학생인건 알고 있고, 군사 훈련은 전혀 받지 않은 것도 알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전혀 걱정하실 필요가 없습니다. 훈련은 저희가 전부 제공합니다.”
“그런 괴물들이나 아까 봤던 사람들에 대해서도 전부 배우게 되나요?”
“아닙니다. 훈련은 전부 범용적인 기술에 한정됩니다. 그런 종류의 정보는 반드시 알아야할 때만 제공need-to-know basis 될겁니다.”
“어떤 훈련이죠?”
그가 잠시 머릿속에서 생각을 정리하는 듯 했다.
“우선, 하은씨가 받게되는 교육과 훈련은 약식임을 알아주셨으면 합니다. 2000년 이후로 큰 예산 삭감이 있었기 때문에, 저희 같은 조직중에는 거의 20년에 가까운 시간 동안 신입 직원을 단 한명도 받지 않은 경우도 있습니다. 신입 직원Enlightened을 받는 대신, 고도로 훈련되거나 재능이 뛰어난 일반인Extraordinary Citizen들 다수를 고용하는 일이 더 많아졌고요.”
‘2000년’을 말하는 그의 얼굴에 일순간이지만 심한 불안감이 스쳐지나간다.
“사실상 기술적인 면에만 한정된 교육이죠. 예전 같은… 조금 더 심층적인 교육Conditioning은 많이 덜할겁니다. 그게 세계적인 추세기도 하고요. 하지만 한가지 확실하게 말씀드릴 수 있는게 있다면, 하은씨의 재능Eidolon에 저희의 훈련과정을 더하게 되면 더 이상 보통의 사람은 무서워할 필요가 없을 겁니다. 장담하죠. 물론, 하은씨가 조직 내에서 살아남을 수 있다면 더욱 많은 것을 알게 되실거고요.”
하은이 가만히 침묵을 지킨다. ‘살아남을 수 있다면’이라는 문구는 비유적인 것이 아니라 정말로 생사에 관한 것. 사실, 어느정도 예상은 하고 있었다. 말도 안되는 일들이었지만, 이만큼 경험하고 나니 인정할 수 밖에 없었다.
그렇지만 아직도 걸리는 점이 있다.
“아무래도 납득가지 않는 점이 있나보군요.”
백 사장이 묻는다.
“네.”
“어떤 점인지 알 것 같습니다. 왜 하은씨인가, 하는 거겠죠.”
그가 스크린 하나를 손으로 잡는다. 정확히는 허공을 잡은 것에 불과 했지만. 그가 그 스크린을 돌린다. 그녀가 제압한 짐승의 모습이다.
“하은씨는 이 괴물을 보고 패닉하거나 이성을 상실하지 않았습니다. 그렇죠? 오히려 그 상황에서 소령님이 싸우는 걸 보고 물리적인 수단이 통하지 않음을 간파했습니다. 거기에 현장에서 제일 효과적인 수단을 짧은 시간내에 찾아냈을뿐만 아니라 실제로 처치하기 까지했죠. 참고로 말씀드리면 그 괴물의 신체적인 능력은 일반적인 회색곰을 몇배나 상회합니다. 내구력은 직접 보셨겠고.”
그가 잠깐 말을 멈춘다.
그녀의 행동이 일반인의 기준에서 얼마나 예외적 일인지를 스스로 되돌아보게 하는 것이다.
“실전도 치르지 않았고, 위험지역에서 자란것도 아니며, 거기에 군사훈련을 받지않은 대학생이 그런 일을 할 수 있는 것이 단지 우연으로 보이지는 않는군요. 저에겐. 저희가 필요한건 이런 부류의 사람들입니다. 이런 사람들 말고요.”
그가 또 다른 스크린을 돌린다.
CCTV 화면이다. 그 짐승이 철장 안에 갇혀있고, 두 사람의 건장한 군인이 들어온다. 철장을 찢고 나오려하는 짐승. 그 시도는 통하지 않았지만 군인들이 이내 패닉하기 시작한다. 한 사람은 총을 던져버리고 내보내달라고 외친다. 다른 사람은 총을 난사하다가 도탄된 총알에 맞아 팔에서 피가 철철 흐른다. 철장 안에 갇혀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짐승이 주는 압도적인 공포에 질려버린 것 같은 두 사람. 발광하던 두 사람은 이내 문을 두드리다가 거품을 뿜으며 실신한다.
“...뭐, 이런 괴물들은 득시글 합니다. 사람들에게 공포 그 이상의 것Delirium을 주는 녀석들 말이죠. 정말 강인한 의지, 공포를 넘어서는 생존본능, 아니면 뭔가 다른 재능Genius를 지닌 사람들만이 이제 저항할 수 있습니다.”
그가 책상을 톡톡, 두드린다.
“물론 그렇게 항상 긍정적인 것만은 아닙니다. 제 동료들 중에는 그냥 제정신이 아니거나 애초에 공포를 못 느끼는 사람도 있으니까요. 어쨌든 아무런 훈련 없이 이런 괴물들과의 첫 조우에서 멀쩡히 살아남은 사람들은 저희 같은 조직에 굉장히 유능한 인재가 되는 경우가 많죠.”
하은이 질문을 계속한다. 사실, 제일 중요한 질문이다.
“만약 제가 받아들이지 않으면 어떻게 되나요?”
“아마도 그 말씀을 하시고 나서 다시 눈을 뜨면, 집일겁니다. 오늘의 일에 대해서는 애매하게 기억을 하시게 될 거고, 증명할 방법도 없겠죠.”
그가 낮게 말한다.
“강요는 하지 않습니다. 하은씨가 하고 싶지 않다면, 돌려보내드릴 겁니다. 그렇지 않다면, 정식으로 하은씨에게 오퍼를 드리고 싶군요.”
문득 아까 T라고 불린 여성의 말을 떠올린다. 예언. 그 말을 믿지는 않는다. 그러나, 이것은 그녀가 거부해서는 안될 운명임을 깨달았다. 그녀가 고개를 끄덕인다.
“기회를 주시면, 최선을 다해 해보겠습니다.”
그렇게 말하며, 그녀가 더 이상 돌아올 수 없는 세상으로 스스로를 밀어넣었다.
아주 긴 스토리 같은 것은 구상할 능력도 안 되고 이제 그럴 시간도 없어서..
적당히 미국 드라마처럼 에피소드 식으로 하려고 합니다
답은...
제목은 이걸로 정함?
WoD에 대해서 전혀 모르는데 이 연재보고 흥미 생겨서 읽어보려고 함. 끝까지 연재 잘 해주길~ 파이팅.
테키의 모순적인 부분은 자기 스스로도 반칙임을 모르거나 무시한다는 거 아닐까. 결코 페어플레이는 할 수 없는데 말이지
마게맨답게 텍섹판디가 되겠구나
반칙임을 모르기에 스스로는 페어플레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 아니겠음?
그림쟁이다
이거 백사장이라는 사람이 얘기하는거 들어보니 묘하게 거슬리네;; 뭐가 거슬리는지는 모르겠음 맞는 소리 같은데 이게 거슬리네 삐걱거리는 느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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