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게 썰 풀기는 귀찮기도 하고, 사실 하도 옛날일이라 기억도 안난다. 무슨 로그나 녹음파일이 남아있는것도 아니고. 난 나빴던 기억은 금새 잊는 스타일이라서.

어쨌든, 난 한때 \'게임주의자\'라고 자칭하는 마스터를 만난적이 있었다. 자신은 바바 히데카즈의 광신도이며 RPG는 게임으로서 기능해야만 한다고 주장하는 자였지.

내 생각과도 비슷했기에 난 꽤 즐거운 만남이 될거라고 생각했었다. 물론 여기서 글을 쓰는 시점에서, 그건 큰 오산이었지.

많은 일들이 있었지만, 가장 큰 문제는 주사위였다. 그놈의 주사위. 많은 주사위. 많고 많은 주사위. 더 많은 주사위.  이놈의 머리속에 들은 게임성이란 \'주사위를 굴린다\'밖에  없었던게 틀림없다.

GM:자, 그럼 이제 이 하프-자이언트-하프-오우거의 hp는 1이 남았습니다. 전 게임주의자니까 이런것도 밝혀요.
라그나:그럼, 제 턴이니 마지막 일격을 날리겠군요. 라그나는 \'부모의 원수... 죽어라!\'라고 외치며 다리를 걸어 넘어뜨리고, 칼을 내리찍...
GM:그럼 트릭 체크 해 주세요.
라그나:네?
지엠:다리를 걸었으니까, 넘어뜨리기 체크요.
라그나:아니, 전 그냥 rp상으로 묘사를...
지엠:그건 그거고 다리를 걸었으니 체크해야되요. 굴리세요. 어디보자, 실패네요. 네, 라그나는 다리를 걸다 넘어졌습니다. 다음턴은 라헬이네요.
라헬:파워어택 3점 넣고 풀어택 3회.
지엠:성공입니다.
라헬:\"뭘 망설이고 있나, 꼬맹이.\"

자세한 기억은 안나지만 이런 비슷한 일이 있었다.

참고로 저 플레이에서 명확한 목적을 가진 캐릭터는 하프엘프 파이터인 라그나밖에 없었지. 나머지는 각종 상위직을 짜집기해서 각종 멋들어진 배경을 가져다 붙였지만 정작 지금은 \'세상을 떠도는 떠돌이 용병\'과 \'삶이 무엇인지고민하다가 숲속에 자리를 잡은 은둔자\'였다.

나는 지금도 대체 무엇이 게임주의인건지 모르겠다.  하지만 주사위만 많이 굴리고 \'낙장불입\'을 외치면서 모든 선언을 규칙에 맞추기만 하는건 아닌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