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갑자기 이성을 갖고 잡소리를 하고 싶어졌으니 그러도록 하자.


이성 상실의 원리

크툴루 신화물에서는 대개 우주적 진실을 깨닫고 / 너무 무섭고 두려운 걸 보고 충격을 받아 "저는 그만 정신을 잃고

말았습니다" 하는 상황을 게임 메카닉으로는 "이성이 까여서 발작했네여 ㅎㅎ"로 처리함. 그러니까 신화생물을 보고

일으키는 광기는 아이에에하는 그런 당혹감 / 두려움 + @가 됨. 그리고 이런 충격이 누적되면서 탐사자들이 서서히

미쳐간다는 게 크툴루 신화물의 묘미임.


중요한 것은 이게 꼭 우주적 진실과 결부되지 않아도 '무섭고 두려운 것'만으로도 충분히 이성을 깎을 수 있단 건데...

아래에 설명하겠지만 이게 좀 많이 묘한 문제를 낳고, 후속작들은 이 점에 대해서 나름대로 해결책을 내려고 시도함.  


발작과 후유증

한 번에 너무 큰 충격을 받으면 탐사자는 룰마다 이름은 다르지만 하여간 정신줄을 놓고 발작하게 됨. 위에서 말했던

"저는 그만 정신을 잃고 말았습니다"가 이런 거의 대표적인 사례라고 볼 수 있을텐데, 여기서도 CoC는 선구자답게

좀 병맛스러운 요소를 썼었음. 바로 무작위 판정을 '할 수 있게' 해 놓은 건데.... 물론 수호자가 고를 수 있는 여지도

줬다만 다른 룰의 경우는 이거보다는 좀 더 상식적으로 상황에 맞는 방식의 발작을 할 수 있게 해 놓음. 예를 들어서

공포증을 걸리게 한다고 치면 CoC는 100면체 굴리기 / 수호자가 고르기 중 하나로 무슨 공포증에 걸릴지 고르지만

ToC에서는 수호자와 다른 탐사자들이 "상황에 맞는" 공포증을 결정하는 방식임. 델타 그린은 광기의 근원에 따라서

어떤 증상을 보일지를 분류하려고 하고. 개인적으로는 좀 더 개연성 있는 방식인 후자를 선호하는 편임.


묘사

빼애액하면서 도망치거나 저항하거나 혹은 거기에 집착하거나 뭐 내용에 맞춰서 하면 됨. 예를 들어 "코알라 공포증"에

걸린 탐사자가 코알라를 봤다고 치자.. 이 경우에 플레이어는 "나무 위의 코알라를 본 나에기는 저놈이 자기 머리 위로 

뛰어내려 두개골을 깨고 뇌를 파먹으려 들 거라는 불안감에 휩싸였습니다" 뭐 이딴 식으로 묘사하고 도망가거나 혹은

코알라에게 맞서 돌을 던지다가 동물원 경비원에게 붙잡히다거나 혹은 코알라를 불안한 눈으로 보며 일을 하는 식으로

RP를 하면 된다 이거지. 반대로 "컵라면 애호증"에 걸린 탐사자가 컵라면을 봤다면 "버려진 컵라면을 본 키리기리는 

컵라면 용기를 마구 빨고 핥다 머리에 얹고 춤을 추고 싶은 강렬한 충동이 느껴졌습니다" 식으로 묘사하면 되겠고.


범위가 너무 넓다

이성 메커니즘의 문제는 이게 지나치게 넓은 영역을 커버하려 든다는 거임. 예를 들어 무서운 것 / 끔찍한 것을 보면 

그게 크툴루 신화적이든 아니든 이성이 깎일 수 있고, 너 때문에 누군가 죽었다 / 너와 관계된 누군가가 죽었다는 것을

알게 되어도 이성이 까이는 그런 게 CoC 등 크툴루 신화물의 메커니즘임. 그러니 이렇게 넓은 범위의 '이성'을 어떻게

다룰 것인가를 깊게 파면 문제가 안 될 수가 없음. 막말로 내가 길을 가다가 확찢된 동물 시체를 보는 거나 도서관에서

'황금 가지'를 읽는 거나 거기서 거기인 게... 그리고 그런 것들 자꾸 보다보면 이성이 계속 까이니 그런 거만 반복해도

아주 미쳐버릴 수 있다는 게 이상하지 않냐? 그러면 책 많이 읽은 사람이나 로드킬 된 동물들 자주 청소하는 청소부는

다들 미쳤게? 따라서 그 이후에 나온 룰들은 이성에 대해서 조금 '분할'을 시도하는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고,

사실 카오시움도 예전에는 꼼수를 좀 시도한 전적이 있음.


크툴루의 부름(구판) - 직업빨 꼼수

이걸 카오시움도 모를 리는 없어서 약간의 꼼수를 꺼냈는데, 예를 들어 원래 CoC에서는 '무고한 사람을 죽이면 이성이

까인다'는 게 기본 개념이지만, 1920년대 탐사자 컴패니언에 나왔던 직업인 히트맨은 인간에 대한 폭력으로는 이성이

깎이지 않는 대신 시작부터 이성이 까이고 시작해서 사교도를 남녀노소 안 가리고 조질 수 있다거나 장의사는 시체나

피 등을 보더라도 이성이 덜 까이거나 아예 안 까이는 그런 식의 보너스를 받았음. 물론 이 서플먼트에서는 특정 분야

스킬 100포인트를 보너스로 받는 직업이나 아예 자기가 받는 일시적 광기 발작 효과를 스킬 판정해 씹어먹는 직업도

튀어나옴. 초보 수호자라면 사악한 탐사자가 탐사자 서플먼트라면서 7판 핸드북 대신에 이런 서플먼트를 들고 와서는

"히히히 이것이 키스 허버의 유산이다" 하면서 플레이 중에 날뛰는 것에 조금 주의할 필요가... 아마 없겠지? 


크툴루의 부름(7판) - Mythos Hardened

내가 영문판만 갖고 있어서 뭐라고 번역했는지는 모르겠지만 하여간 옵션 룰인데.... 쉽게 말해서 탐사자가 웬만한 거에

눈 하나 깜빡 않게 되어 까이는 이성이 절반으로 줄어드는 룰. 문제는 이거 적용 조건이 좀 묘하지 않나 생각되는 거랑

결국 위에서 말한 자주 로드킬 당한 동물을 치우는 청소부 아저씨의 정신 상태는 어떻게 될 지 설명이 어렵다는 거?


트레일 오브 크툴루 - 이성 분할

트레일 오브 크툴루에서는 이성을 둘로 나누어서 일반적으로 사용되는 Stability와 우주적 진실하고 결부되는 Sanity로

구분함. 이 둘은 별개로 작용하기 때문에 미친 사교도라도 Stability가 높으면 가끔씩 주말에 노숙자를 잡아다가 제물로

바치는 거 말고는 좋은 사람이 된다거나 그럼. 다만 대부분 신화생물을 목격하고 느끼는 감정은 우주적 진실이 아니라 

"빼애애액 저게 뭐야"하는 거라 Stability로 판정하는 점에 유의해야 함. 대신 Stability는 회복도 CoC 이성에 비해서는

비교적 잘 되는 편이고 막 음수로 떨어져도 애가 일단은 빌빌거리면서 버틸 수는 있는 개념이라 이것저것 잡다한 걸로

아이에에에에하는 탐사자를 구현하기에는 훨씬 쉬움.  


델타 그린(신판) - 근원에 따른 분류

미국 방위대는 이성을 깎는 원인을 셋으로 나눔. 폭력 / 무력감 / 초자연. 폭력은 때리는 거 / 쳐맞는 거 둘 다 포함함.

그래서 각각 발생시키는 광기 / 정신병에 대한 예시도 달아주고, 좀 힘들겠지만 "적응"이라고 해서 폭력이나 무력감은

능력치 등을 영구적으로 깎으며 그에 대한 이성 판정에 항상 성공하는 보정을 얻어서 피도 눈물도 없는 인간이 되면

커버할 수도 있음. 물론 초자연체를 보고 이성 까이는 건 적응 그딴 거 없고 적응 못하면 계속 이성 판정 하면서 까임.


덤 - 매개체를 통한 접근

트위터의 누군가는 이런 견해를 폈던데... 나는 거기에 동의하지 않음.


위에서 봤겠지만 이성의 범위가 넓다보니 괴이한 것들을 보는 것 자체만으로도 이성이 날아갈 수밖에 없다고 보거든.

그리고 애시당초 "미래세계 크툴루"를 다루는 서플먼트 / 모노그래프들 설정 떡밥 중 하나가 별들이 바로 잡힌 후의

지구를 조사하던 탐사선이 보낸 "영상"을 본 덕에 미친 사람이 나오는 거라는 걸 생각하면 적어도 그런 물건들에서는

영상 매체를 통해서 신화생물을 보는 것 자체가 인간의 이성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견해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됨.  

어차피 이성이 커버하는 범위가 워낙 넓어서 네가 신화생물과 안 싸우고 도망친 거 때문에 무고한 사람이 희생된 걸

나중에 신문을 통해 알아도 이성이 까이는데 TV같은 걸로 생생하게 보면 안 까일 이유가 있나?  뭐 각자의 해석으로

남겨두도록 하자.


3줄 요약

이성은 러브크래프트 작품의 "저는 도망가지 않고 편지를 쓰기 시작합니다" 등의 상황을 묘사하는데 쓰는 메커니즘

이거저거 다 이성으로 하려다보니 CoC의 이성은 잘 뜯어보면 삐걱거려서 후대 룰에서는 메커니즘을 고치는 편임.

다만 CoC는 그런 거 별로 없으니까 수호자가 적당히 조율하는 거 말고는 별로 좋은 방책이 없지 않나 생각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