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 보통 책을 읽고, 한 컬트의 총체적인 사고관에 이입하고, 그러다보니 최후에 가서 완성된 이미지를 토대로 메이지 캐릭터를 상상하는 플레이어들이 많다.


1. 이런 흐름으로 만들어지는 캐릭터에게 개성은 없을 수밖에 없다. 컬트 스테레오타입에 대한 뽕으로 가득차서는, 만나는 것마다 저건 전자 정령이 깃든 마법의 창문입네, 저건 수정핵이 깃든 파편 분무기입네 정해진 대로 답하는 우를 범할 것이다. 적어도 메이지 캐릭터를 만드는 데 있어서, 개요를 충분히 이해했다면 현상을 마주치기 전까지 오피셜이 제공하는 각종 첨예한 에티켓을 고의로 잊어버릴 필요가 있다. 잊어버려야 한다. 어떤 게임에서든지 캐릭터는 완성형으로 등장하지 않는 것이다.


2. 뱀파이어라면 피를 마시고 낮에 잠을 자는 것, 내가 분노조절장애를 앓는 계보의 후손이고 내 시조도 그러했던 것 등을 알고 있다고 캐릭터를 조형하는 것이 까다로울 일이 없다. 워울프는 뭐 싸면 다 댕댕이니까 말할 나위도 없다. 그러나 메이지의 경우 내가 사전에 주입받는 정보는 내가 생각하는 방식에 대한 것들이다. 당연히, 내가 맡아 할 캐릭터가 갓 각성의 순간을 스쳐왔으며, 이제부터 닥쳐올 세파에 맞서 많은 것들을 새로이 정의하거나 비평할 입장에 서 있음을 망각하게 될 수밖에 없다. 그대로 하는 순간 이 캐릭터는 끝에 다다르게 된다.


3. 당연하지만 한 사람의 인간이 고안할 수 있는 논리는 한정되어있다. 아무래도 주기적인 편두통에 대해서 이유를 살펴보고 자가진단을 내릴 사람은 자주 머리를 싸매본 사람인 게 자연스럽지 않을까. 너댓가지 영역 점수만 갖고 질문지를 마주했다면 역시 그러한 영역의 범주 안에서 이해하는 것이 자연스럽다. 그렇다면 메이지도 완성형으로 나타나지 않고 성장통을 겪는 존재다. 그의 아바타가 금시초문인 것들에 반응해 새로운 패턴들, 새로운 선언, 새로운 관점을 키우는 순간 마법사의 세계도 더욱 넓어지는 것이다. 해리 포터는 3/4 개찰구에 들이받기로 결심한 순간 새로운 세계의 지평을 발견했다. 마법사 세션에서 다룰 수 있는 요긴한 이야기 유형이다.


4. 그러니까 제발 캐릭터에게 컬트 교리를 간증하라고 시키지 말아라. 필 브루카톤지 뭔지, 그 양반 작법으로 가장 큰 몰이해를 당한 것이 메이지 라인이다. 이놈의 프로파간다가 당연하게 책을 읽으며 게임에 입문하는 절차를 밟아야 한다고 생각한 신참 WOD 플레이어들을 전부 마굴로 밀어넣었다. 상상할 수 있는 최악의 메이지 시트메이킹에서 출발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G헤르메틱이기 전에, 신디케이트이기 전에 일단 마법사가 되어라. 현실에 부딪칠때 전혀 새로운 아젠다를 창출할 수 있는 이가 마법사다. 새 팀을 꾸리는 참에 나도 한번 다짐하고 가는 바이다.


5. 이러한 이야기가 전하고자 하는 바는 마법사는 본질적으로 개인적인 존재이기 때문에 컬트의 사조에 매어둘래야 매어둘수 없다는 말과 같을 것이다. 아주 오래전부터 나는 한국 배경으로 세션을 할 때는 한국의 사상사조 속에서 발본한 지역 컬트들을 상정하고 이를 사료로 캐릭터메이킹하는 방법이 옳다 생각하고 철학책을 우물거렸다. 근데 참 이 나라는 시간 영역과 관련해서는 마땅히 꾸며낼 이야기가 없더라. 그래도 요모조모로 머리를 굴린 끝에 어느 정도 정립은 된 거 같다. 어떻게, 팬메이드 서플 형식으로 공개할 날이 적시에 오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