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화 “불신”
정신없이 휘몰아치는 템포의 음악. 번쩍이는 붉은 빛의 조명들. 시끄러운 음악 중에서도 소리치며 이야기를 해보려는 사람들. 천장에서 뿜어져 나오는 기분 나쁜 에어컨 바람. 담배 냄새. 스테이지 뒤쪽에서 자기들만의 이야기를 즐기는 사람들.
엉망진창의 할로윈 파티를 열고 있는 클럽 안에서, 노하은은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녀의 첫 임무에서 만난 뱀파이어, 즉 ‘회장’에게서 연락이 왔기 때문이다.
뱀파이어는 다른 자의 손을 빌려 쉽게 일을 해결할 수 있더라도 그 와중에 정보가 누설되어 자신의 약점을 노출하게 된다면, 차라리 자신의 손을 더럽히는 편을 더 선호한다. 특히 뱀파이어가 아닌 존재들에게는 더욱 그렇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 측에서 먼저 접촉해왔다는 것 자체가 어느정도 사태가 심각함을 의미하고 있었다.
백 사장과 웨더스 소령은 신중하게 이 문제를 의논한 결과 그들의 정보를 접수하기로 했다. 실제로 상부, 즉 AP 심포지움의 정보부서에서 뱀파이어와 독자적인 현실 교란자Mage의 결탁을 감지했기 때문이었다. 이 일은 아마도 그 건에 관련된 것이리라.
하은이 클럽 안을 살핀다. 약간 짙게 칠해진 그녀의 안경. 그러나 렌즈 안쪽에서는 제한적인 증강 현실이 바쁘게 시각 정보를 처리하고 있었다. 덕분에 그녀는 이 혼란스러운 광경 속에서도 어느 정도 똑바로 상황을 인지할 수 있었다.
슥, 하는 소리와 함께 사람들이 지나간다. 잔뜩 상기된 얼굴로 무언가 소리치는 그들 때문에 잠시 하은의 시선이 분산된다. 그 때를 틈타 하은 앞으로 마치 그림자처럼 숨어드는 형상. 빠르게, 그러나 부드럽게 그 형상이 하은의 앞에 도달한다. 날씬한 몸매의 키 큰 여성. 그녀가 하은의 어깨를 잡아 가볍게 벽에 밀어 붙이며 고개를 숙여 그녀의 목덜미로 가져간다. 새하얗게 빛나는 그녀의 이빨이 하은의 목에 닿기 일보직전.
“철컥.”
무거운 금속성의 느낌이 여성의 심장에 닿는다. 번쩍이는 조명과 여성의 옷, 그리고 절묘한 각도로 인해 누구도 눈치채지 못할 것이다.
“떨어져요.”
“그러면 내 말이 하나도 안 들릴 텐데요?”
여성이 묻는다. 그 목소리로 속삭이면, 아찔하지 않을 사내가 없을 것이다. 그러나 하은이 쿡, 하고 권총으로 밀자 여성이 순순히 물러선다. 거의 마술사 같은 손놀림으로 하은이 소형 권총을 품 속으로 다시 숨긴다. 하은이 귀에 꽂힌 메탈 소재의 무선 이어폰 같은 것을 가리킨다. 이런 상황에서도 불필요한 소리를 차단하고 사람의 목소리만을 걸러내는 장비다.
“미안하지만 잘 들려요. 당신은 원래 잘 들리겠죠?”
그녀가 여성을 올려다본다. 하은과 칼부림을 했던 ‘민려’라고 불린 뱀파이어다. 목 주위가 고딕풍으로 장식된 블라우스, 착 달라붙는 하이 웨이스트 롱팬츠, 송곳니 모양의 목걸이. 새하얀 얼굴에는 붉은 핏자국 같은 분장이 묻어 있다. 민려가 약간 아쉽다는 표정으로 말한다.
“반가워요, 아가씨. 나 뭘로 분장했게요?”
그녀가 천연덕스럽게, 그러나 고혹적으로 묻는다. 하은은 대답하지 않는다. 이런 부류에게는 대답하지 않는 것이 최선이다. 굳이 누군가의 가르침이 없어도 뱀파이어 같은 교활한 부류와는 엮이지 않는 것이 좋다는 것은 본능적으로 느끼고 있었다. 어쨌든 그녀와 하은은 목숨을 걸고 싸운 적이 있지 않은가? 거기에 자신을 “아가씨” 라고 부를 때마다 거부감이 느껴진다.
문득, 민려의 얼굴에 묻은 핏자국이 신경 쓰인다.
“어머, 이거 보고 있어요? 그러지 말고 나 봐요. 아가씨 때문에 일부러 공들여서 나왔는데.”
그녀가 부드러운 동작으로 핏자국을 닦아낸다.
저건 진짜 피다.
하은이 품 속으로 손을 뻗자, 그녀가 제지한다.
“이건 합법적으로 먹은거에요. 죽이지도 않았어요. 아가씨는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우린 그런 야만적인 족속이 아니에요.”
그녀가 나긋나긋하게 말한다. 마치 애인 앞에서 잘못을 변명하는 느낌이다. 하은은 손을 내리지는 않는다. 이런 곳에서 둘이 싸움을 벌였다가는 무슨 일이 있을지 모르니까. 그래서 굳이 이런 방식으로 접촉하려는 것이다. 민려 자신의 안전을 보장하기 위해서다.
“용건으로 들어가죠.”
“정말요? 시간이라도 조금 내주면 안돼요? 그때처럼 재밌게 놀지 않아도 돼요. 잠깐만 즐겨요, 네?”
그녀가 말하지만, 하은은 전혀 반응이 없다. 민려의 태도는 그때 칼부림을 하던 모습과 전혀 매치가 되지 않는다. 어쩌면 뱀파이어들이 다 그럴지도 모르겠지만. 실망한 듯 민려가 끄덕이고는 말을 이어간다.
‘바알리’라 불리는 뱀파이어들의 출현. 그리고 그들과 함께하고 있는 괴이한 자Mage의 존재. 그들이 일련의 ‘소환의 의식’을 진행할 거라는 것.
“원래 이런 일은 우리가 알아서 해결하지만, 이미 좀 많이 죽어서요.”
그녀가 말한다. 그녀가 메모를 건네 준다.
“회장님이 직접 쓰신 거에요. 알아서들 보세요.”
민려가 한 발자국 뒤로 물러선다.
“솔직히 좀 기대했는데.”
그녀가 휙, 하고 사람들 사이로 사라진다. 하은이 그 모습을 우두커니 지켜보더니 발걸음을 옮긴다. 마치 마법처럼, 그녀도 인파 사이로 사라져버린다.
“우웅-“
배가 멈춘다. 어선만 잔뜩 정박해 있는 항구. 손 본지 십년은 넘은 듯한 부두와 낡은 시설들. 어업으로 살아가는 영락한 섬마을이다. 하은과 일행이 배에서 내린다.
“뭐하시는 분들이요?”
퉁명스럽게 묻는 사내. 아마도 부두를 관리하는 사람인 듯 했다. 이런 곳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외지인에 대한 경계다. 기껏해야 몇십명 밖에 살고 있지 않고, 그것도 앞으로 30, 40년 내면 고령화로 인해 현재의 경제 활동 인구는 모두 죽고 젊은 사람들은 내륙으로 나가 무인도가 될 것이 자명한 섬이다.
“군에서 나왔습니다. 정기 측량입니다.”
하은이 적당히 꾸며진 문서를 들이댄다. 그녀와 같이 온 일행도 군무원으로 위장한 AP-5 아말감의 고용인들이다. 하은의 임무는 섬 내부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를 감시하는 것. 웨더스는 예전처럼 무력하게 당하지 않기 위해 차원이상현상에 대비한 전투 자산을 모으는 중이었다. 늦어도 내일 중으로는 즉각 투입할 수 있을 만큼의 전력이 확보될 것이다. ‘회장’의 노트에 따르면 아마도 내일이나 내일 모레 중으로 그 의식이 치뤄질 것이라 했다.
“가끔씩 오시는 분들이구만. 아가씨가 대장이요?”
아직도 경계하는 듯한 말투는 사라지지 않는다.
“그렇습니다.”
“군부대는 저쪽이니 따라오시오.”
사내가 고개를 끄덕이더니 길을 따라간다. 하은 일행이 그를 따른다. 어업으로 먹고사는 아주 작은 섬. 아이들은 거의 보이지 않는다. 하은이 가파른 섬의 중턱을 올려다본다. 을씨년스러운 안개에 가려진 폐교회가 있다. 항구 근처에서 어망을 손질하던 사람들이 그들을 보며 시선을 피한다. 무슨 이유에선지 주민과 군의 관계가 그다지 좋지 않은 모양이었다.
“무시하쇼. 여기 사람들은 군인들과 별로 관계가 좋지 않거든.”
“왜 그렇죠?”
그가 심드렁하게 대답해준다. 요약하자면 교회 때문이다. 이곳의 지루한 삶을 유일하게 지탱시켜 주는 것은 종교다. 그러나 대략 10년전, 조업이 제대로 되지 않아 마을이 큰 어려움을 겪고 있을 때 군에서 접근했던 것이다. 그들은 싼 값에 교회 부지를 사들여 부대를 지었다. 어떤 이유에선가 그들은 교회를 재활용하지 않고 폐쇄해버렸던 것이다. 사람들은 지원금으로 더 작은 교회를 지었지만 불만이 쉽사리 가실 리가 없었다.
“차라도 태워드리고 싶다만, 기름 한방울이 아까워서. 저쪽이요.”
사내가 가리키는 곳에는 섬의 한 가운데를 차지한 복잡한 지형의 언덕, 그리고 그런 곳에 있을 법한 군 시설이 있었다. 그 부대 역시 AP-5 아말감과 연결된 일련의 지휘체계를 통해 그녀의 방문에 관해 통보 받은 터. 그녀가 지내게 될 곳은 그곳이었다. 마침 연락을 받은 것인지 군의 차량이 그들을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
하은이 눈을 뜬다. 시계를 보니 대략4시 정도 된 모양이었다. 동이 트려면 아직 멀었다. 그녀가 일어난다. 이상하게도 정신이 멀쩡하다. 군 부대 내에 여성이 들어와서 지낸다는 것은 결코 편한 일이 아니었으므로 그녀는 일찍 잠자리에 들었던 것이다.
업무용의 단말을 꺼낸다. AP-5 아말감으로부터는 연락이 없다. 하은이 갑자기 이상할 정도의 허기짐을 느낀다. 그녀가 가져온 과일 하나를 꺼내 베어 문다.
무엇인가 이상한 맛이 느껴진다. 비리고 철의 냄새가 나는 맛.
“퉷!”
하은이 씨를 뱉는다. 시뻘건 액체에 둘러 쌓인 허여멀건 물체. 사람의 이빨이다. 그 광경에 잠시 당황한 하은이 화장실로 달려간다. 구토. 그러나 나오는 것은 뭉개진 과일 뿐.
순간 팟, 하는 소리와 함께 불이 꺼진다.
“딸깍. 딸깍.”
하은이 스위치를 내렸다가 올리자 다시 불이 들어온다. 세면대의 물은 튼다. 구토감을 없애기 위해 입을 헹군 후 세수를 하고 다시 거울을 보는 그녀.
뭔가 이상하다.
“…?”
하은이 고개를 살짝 옆으로 기울인다. 눈을 한번 깜빡인다. 손가락을 조금 옆으로 움직여본다.
거울속의 자신이 아주, 정말 아주 살짝 늦게 움직이고 있었다. 거울의 상이 아니라, 그녀의 모습을 한 무엇인가가 그녀를 관찰하고 따라하고 있었다. 하은이 고개를 흔든다.
거울 속의 상이 다시 그녀와 동시에 움직이기 시작한다. 어딘가 아찔해지는 정신을 다 잡고 그녀가 방으로 돌아온다. 끼이익, 하는 소리와 함께 마치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이 그녀의 철제 캐비닛이 열린다.
“…”
하은이 숨을 삼킨다. 옷장안의 그녀의 옷은 말 그대로 피투성이가 되어있었다. 그런데, 피투성이가 된 것은 옷 뿐. 옷장 자체에는 아무런 피가 묻어 있지 않다. 누가 들어온 흔적도 없다.
그러고보니 무엇인가 이상하다.
막사가 지나질 정도로 조용하다. 사람의 소리는 물론이고 벌레소리 마저 나지 않는다.
“누구 없습니까?”
막사 안은 적막 그 자체다. 아무도 없다. 당직 사관, 당직병, 불침번을 비롯해 아무도 없다. 침대는 각을 맞춰서 정돈되어 있고 모든 기물은 부자연스러울 정도로 깨끗하게 놓여있다. 하은이 막사 안을 수색한다. 그래봐야 아무도 나오지 않는다. 하은이 다시 자신의 숙소로 들어가 필요한 물건들을 챙겨 나온다.
하은이 조리실 안으로 들어간다. 역시 아무도 없다.
“윽…”
그녀가 입과 코를 막는다. 모든 음식이 썩어 있다. 그러나 뭔가 이상하다. 냄새는 나는데, 구더기도 없고 파리도 돌아다니지 않는다. 누가 봐도 부자연스러운 일이다. 하은이 일이 잘못되고 있음을 직감한다. 어쩌면 그 ‘의식’이라는 것이 이미 시작되었는지도 모른다.
하은이 막사 밖으로 나서자 점점 안개가 짙어 진다. 그것도 붉은 색의 안개가. 처음에는 언덕 위의 교회가 가려지고, 그 다음은 부대에서 꽤나 멀리 떨어져 있는 고지대의 초소다. 하은이 황급히 부대를 나선다. 마찬가지로 위병소에도 아무도 없다. 그녀가 아말감과 연락을 시도하지만, 당연하다는 듯이 먹통이다.
그녀가 안개로 인해 한치 앞도 못 보기 되기 전 간신히 마을 회관에 도착했다. 마을 회관은 섬 안의 유일한 마트와 붙어있어서 유사시 대피소로 쓰는 것 같았다. 사람들도 무엇인가 이상함을 느끼고 모여 있었다. 어수선한 분위기. 이장 같이 보이는 사람이 주민 목록을 체크한다. 아무도 하은에게는 별다른 신경을 쓰는 것 같지 않았다. 그녀는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이런 상황이라면 외지인에게 무슨 일이 있어도 이상하지 않을 테니까.
그 와중에 시선을 끄는 광경이 있다.
“나가지 말아요!”
“말이 되는 소리를 하쇼, 아줌마. 맨날 성경만 읽어 제끼더니 맛이 갔구먼. 종말은 무슨.”
하은을 맞이했던 남성이다. 무엇인가 두고 온 것이 있는 듯, 그가 여성을 밀치며 나간다. 그녀가 남자의 팔을 잡지만 그가 뿌리친다.
“안개를 봐요! 붉은색 안개라니!”
여성이 히스테릭하게 소리친다. 남자가 그녀를 무시하고 태연하게 문을 연다.
“크아아!”
마치 문이 열리는 것을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이 무엇인가 사내를 덮쳐 목덜미를 물어뜯는다. 피가 낡은 돌바닥으로 튀고 남자가 그 위에 철퍼덕 소리를 내며 쓰러진다. 그 광경에 사람들이 비명을 지른다. 남자의 목을 물어뜯은 형상이 천천히 허리를 편다. 부대의 병사 중 하나다. 피로 얼룩진 군복. 눈이 잔뜩 충혈된 채다. 누가 봐도 제정신이 아닌 모습이다. 일그러진 표정을 한 그가 달려들려는 순간.
“퍽!”
누군가 뛰쳐나와 그 형상의 머리를 내려친다. 이등병 약장을 달고 있는 병사다. 사람들이 또 다시 비명을 지른다. 피를 줄줄 흘리며 군인이 문 밖의 붉은 안개속으로 사라진다. 이등병이 재빨리 문을 닫는다. 혼이 나간 것 같은 표정이다.
“여러분! 제 말이 맞죠!”
아까의 여성이다. 그녀가 고래고래 소리지르며 외친다.
“…번개와 음성들과 우렛소리가 있고… 또 큰 지진이 있어… 얼마나 큰지 사람이 땅에 있어 온 이래로 이같이 큰 지진이 없었더라!”
계시록의 한 구절 인 것 같았다. 여성이 눈을 부릅뜨고 중얼댄다. 그러나 사람들은 그녀의 말에 귀 기울이기 보다는 당황스러움에 휩싸여 어쩔 줄을 모르는 것 같았다.
“콰앙!”
이번에는 뒷문이다. 그쪽에도 피투성이의 군복을 입은, 제정신이 아닌 군인들이 들이닥치고 있었다. 그들이 몰려 있는 사람들을 향해 다가와 똑같이 덤벼든다. 순식간에 마을 회관 안이 난장판이 된다.
쫓겨다니는 어린아이, 깔린 채 목을 물리는 것을 막기위해 필사적으로 팔다리를 휘두르는 사람, 의자에 맞아 휘청거리면서도 덤벼드는 군인. 사람들이 그들을 떨쳐내고 한군데에 모인다. 그러나 군인들은 그들을 천천히 둘러싸고 있었다.
하은이 상황을 분석한다. 수는 그렇게 많지 않다. 이들의 신체능력이 어떤지는 모르지만 이제 하은은 어느정도 노하우가 쌓인 상태. 인간의 몸을 유용했다면 인간의 신체가 가진 약점부터 공략하면 된다.
그러나 하은이 나서기 전 장광설을 지껄이던 여성이 그들 앞으로 나선다. 그녀가 십자가와 성경을 든 채 그들 앞에서 무엇인가 지껄여 댄다. 일종의 방언이다. 그녀가 무릎을 꿇은 채 기도를 계속한다. 누가 봐도 미친 짓이었다. 하은이 그녀를 무시하고 앞으로 나서려 한다.
“…?”
군인들 중 하나와 눈이 마주치는 하은. 그 순간 하은의 뒷목이 서늘해진다. 마치 누군가가 그 눈을 통해 자신을 꿰뚫어보는 듯한 느낌이었다. 갑자기 군인들이 하던 일을 멈추고 서서히 물러난다. 방금까지만 해도 모두를 잡아먹을 것 같은 기세는 사라지고 그들이 천천히 건물 밖으로 나선다. 이내 붉은색 안개 속으로 모두가 사라져버린다.
“저, 저 문 닫아요!”
누군가의 외침과 함께 사람들이 문을 닫는다. 하은은 아까의 꺼림칙한 기분을 떨쳐버리며 목덜미를 물어뜯긴 사내를 안정시키기 위해 이등병과 함께 응급처치를 실시하고 있었다. 간신히 출혈은 막았지만 그 뿐이다.
“당신, 다른 부대원들은 어디있죠?”
이등병이 공포에 질린 표정으로 고개를 젓는다. 그의 손이 피로 흥건하다.
“왜 당신만 멀쩡하죠?”
그가 또 다시 고개를 흔든다. 그러나 그의 복장에서 대충 짐작할 수 있었다. 총만 없을 뿐 그는 초병 복장을 하고 있었다. 다들 잠들어 있는 와중에 혼자 도망치는데 성공한 것이리라.
“당신과 같이 투입된 근무자는요?”
그가 그녀에게서 고개를 돌리며 입을 다문다. 그의 표정은 공포로 가득 차 있었다.
습격에서부터 대략 30분 정도. 아직도 해는 뜨지 않았다. 하은은 망설이고 있었다. 대동한 수행원들은 전부 사라진 상태. 아마 군인들처럼 무엇인가에 의해 조종당하고 있을 것이다. 밖에 나가서 문제의 근원지를 찾아보려고 해도 혼자서는 무리일 것이다.
사람들은 군인들 앞에 나섰던 여성 주위에 모여 있었다. 여성이 연달아 계시록의 한 구절을 읊으면, 사람들이 그것을 맹목적으로 따라한다. 그들의 눈에는 마치 그 여성이 군인들을 물러나게 한 것처럼 보였을 것이다. 사람들은 그녀의 말을 따라함으로써 스스로를 진정시키려 하고 있었다. 그나마 제정신인 사람들은 마을 회관의 창문을 막고, 문을 잠그고, 의자 같은 것을 이용해서 바리케이드를 만든다. 그들 사이에서 유난히 튀어 보이는 남자가 있었다.
코트를 입은 짧은 머리의 사내. 그 옆에는 어디서 가져온 것인지 슬렛지해머가 놓여있었다. 그 역시 외지인인지 별로 사람들과 잘 어울리지 못하고 있는 느낌이었다. 그에게 집중하고 있는 사이, 갑자기 그들이 순식간에 사람들에게 둘러싸인다. 남자를 간호하고 있던 하은이 그들을 올려다본다. 눈빛이 심상치 않다.
“저 놈을 잡아오세요!”
그녀의 말과 함께 사람들이 우르르 달려들어 이등병을 낚아챈다. 하은이 손쓸 새도 없이 그가 사람들에게 끌려간다. 그 사이에 바닥에 누워있던 남자가 밟히고 차이지만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 듯 했다. 처음 보는 괴이한 광경들에 전부 넋이 나간 것 같았다. 이내 이등병이 그대로 끌려가 그들 앞에 무릎 꿇려진다.
“무슨 짓을 했지?”
그녀가 윽박지르며 묻는다.
“제…제가 아닙니다! 제가 한게 아닙니다!”
그의 입가가 파르르 떨린다.
“역시 뭔가 하긴 하고 있었구나! 말해, 말해!”
그녀에게는 어떤 증거도 없다. 단지 이해 불가능한 상황을 다른 사람에게 전가하려는 생각만 있을 뿐이다. 그러나 그것은 그들 모두의 생각이기도 했다.
“그.. 그게.. 하.. 한달 전입니다! 한달 전이에요! 이상한 사람들이 찾아왔습니다. 부.. 부대 안의 교회를 수..수리 한다고 했던가.. 자.. 잘 기억이..”
“똑바로 말하란 말이야!”
그녀의 눈이 희번덕거린다.
“죄…죄송합니다…”
그의 몸이 부들부들 떨리고, 시선이 사방을 쳐다본다. 그를 내려다보는 사람들. 그들이 느끼는 공포를 이등병에게 쏟아 놓으려는 것처럼 험악한 시선이 그를 찍어 누른다.
“그.. 그 사람들은 밤만 되면 교회에 올라가서 뭔가 했습니다.. 아주 가끔 소리가 들렸지만 ..그.. 뭘 했는지는 모릅니다.. 부대장님이 지시하셔서 저희는 그냥 내부 공사라도 하는 줄…”
“그래서, 뭐가!”
그녀가 윽박지르자 그가 횡설수설하기 시작한다.
“그, 그 사람들은 이상했어요! 밥도 먹지 않고 낮이면 숙소에 박혀서 꼼짝하지 않았습니다. 차..창문도 다 막고, 인원 확인 때도…”
하은이 즉시 그 자들이 뱀파이어임을 알아차린다. AP-5 아말감이라도 외지의 군부대까지 완벽하게 감시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들의 수족이어야 할 조직이 오히려 뱀파이어들에게 넘어가 있었던 것이다. 그녀가 성경으로 그의 얼굴을 후려친다.
“여러분! 들으셨습니까!”
그녀가 광기에 찬 목소리로 외친다.
“그자들은 뭔가 꾸미고 있었던 겁니다. 아니, 군인까지 합세해서 그랬던거겠죠! 저희를 몰아내려고 하고! 저희의 터전을 침범하고! 이상한 자들까지 끌어들였습니다! 저 붉은 안개를 만든 자들 말이에요! 그렇지?”
그녀가 또다시 윽박지르자 이등병이 눈물을 흘리며 고개를 젓는다. 그러나 그것은 바로 부정당한다.
“거짓말 하지마!”
그녀가 다른 쪽을 후려친다. 그가 그 충격으로 바닥으로 쓰러지지만 한 사내가 그를 억지로 일으켜 세운다.
“왜 우리들에게 말하지 않았지?”
“그..그건 부대장님이..”
“아니야! 거짓말! 변명이야! 이들도 같이 음모를 꾸미고 있었던 겁니다! 교회가 있던 땅에 군 부대를 지을 때부터 알아봤어야 해요! 그리고 이 자들이! 그리고 저희가 그들을 몰아내지 않았기 때문에 이런 벌이 내리는 겁니다!”
사람들은 그녀의 말에 경도된 듯 연신 고개를 끄덕거리고 손을 모으며 무엇인가 미칠듯이 중얼거린다.
“자, 여러분. 주님께서 바라십니다!”
그녀가 성경으로 이등병을 가리킨다.
“이들을 몰아냅시다!”
그녀의 말과 함께 사람들이 이등병에게 달려든다.
“일어서!”
“제가 한 게 아닙니다! 저… 저는 아무런 잘못이!”
그러나 그의 말은 뒤에서 누군가 그를 내려쳐서 끊겨버린다. 무딘 쇠스랑이 그의 등을 내려친다. 등이 난도질 당한 채 그가 바닥에 구른다.
“뭐하는 짓들이에요!”
“아가씨는 가만히 있으쇼!”
사람들이 하은에게 윽박지르며 그녀를 밀쳐낸다. 이등병이 바닥을 기며 필사적으로 사람들의 손을 벗어나지만 구석으로 몰린다.
“제발! 전 아무것도 안 했어요! 제발 살려주세요!”
그의 외침은 아무도 듣지 않고 있는 듯 했다. 사람들의 그의 멱살을 잡아 바닥에 또다시 내팽개친다. 하은과 그나마 제정신인 사람들이 그들을 말리지만 또 다시 거칠게 밀쳐질 뿐이다. 하은이 그들의 눈에서 무언가를 읽어낸다. “다음은 너희다” 라는, 광기의 눈빛이다. 섬의 폐쇄성, 광신도의 열광적인 태도, 비현실적인 경험. 거기에 분명히 이 섬에서 벌어지고 있는 현실 교란적인 영향력도 있을 것이다.
지금 이들을 멈추지 않으면 이대로 가다가 주민들은 자멸할 것이다. 하은 자신 정도야 간신히 살 수도 있겠지만. 이등병의 비명이 계속해서 들려온다.
하은이 결심한다. 이등병을 구하는 대신 고래고래 외치고 있는 여성에게 다가간다. 그녀의 손에 들린 무엇인가가 번쩍인다.
-푹.
피가 뿜어져 나온다. 광인처럼 소리지르던 여성이 목을 부여잡고 쓰러진다. 그녀의 숨이 뚫린 구멍으로 쌕쌕 대며 새어 나온다. 그녀가 힘을 잃고 바닥으로 무너진다. 사람들이 혼비백산한 표정으로 그녀와 하은을 본다. 하은의 손에 피가 흐르는 과도가 들려 있다.
그녀가 무심한 표정으로 사람들에게 다가간다. 한 남자가 위협적으로 쇠스랑을 치켜든다.
“오시죠.”
하은이 싸늘하게 말하며 작은 과도를 사내에게 겨눈다.
“평생 거동도 못하게 만들어드리겠습니다.”
다른 사내가 그녀를 뒤에서 덮친다. 부러진 의자 다리를 내려치지만, 그 전에 칼이 그의 손목 밑을 스친다. 그가 비명을 지르면서 쇠스랑을 떨어트린다.
사람들이 주춤거린다.
“오시죠.”
사람들의 눈에서 두려움이 느껴진다. 아무도 그녀에게 다가오지 않는다. 하은은 실수했음을 깨달았다. 당장 이 사람들을 멈추는 것만 생각하느라 그 이상을 놓친 것이다. 자멸은 막았지만 이래서는 아까 같은 일이 다시 벌어진다 해도 분열되어 당하기는 마찬가지다.
팽팽한 긴장감을 깨트린 것은, 한 남자의 목소리였다.
“전부 손에 들고 있는 것을 거두십시오.”
평온하고, 침착하며, 사람의 영혼을 압도할 것 같은 목소리. 아까 옆에 슬렛지해머를 두고 있던 남성이다. 그가 손에 들고 있는 책을 펼쳐서는 읊는다. 그 모습은 옷을 제외하고는 마치 사제 같았다.
“네 하나님 여호와께는 네가 그와 같이 행하지 못할 것이라. 그들은 여호와께서 꺼리시며 가증히 여기시는 일을 그들의 신들에게 행하여…”
그가 잠시 말을 끊고는 무기를 들고 있는 사람들을 천천히 훑는다.
“…심지어 자기들의 자녀를 불살라 그들의 신들에게 드렸느니라”
그가 책을 덮는다.
“다시 한번 말씀을 상기합시다, 여러분. 이런 방식은 환영 받지 못할 겁니다.”
그가 부들대고 있는 여성 앞에 선다.
“…그분께서는 항상 회개의 가능성을 남겨두십니다.”
그가 무릎을 꿇고 그녀의 손을 잡아주며 조용히 기도한다. 놀랍게도 그녀의 출혈이 빠르게 멎어간다.
“너무 큰 비극입니다. 다들 무기를 내립시다. 한번만 더 생각해봅시다.”
그의 차분한 목소리에 사람들의 눈에서 광기가 사라져간다.
“외지에서 오신 분들이라도 똑같은 상황에 처해있습니다. 믿음을 공유하지 않아도 마찬가지입니다. 자, 누가 절 도와 주시겠습니까?”
그가 이등병을 부축해 일으킨다. 사람들이 드디어 제정신을 차린 것인지 머뭇거리며 움직이기 시작한다. 누군가가 마을 회관 안에 비치되어 있는 응급약들을 찾아내어 가져온다. 이등병 뿐만 아니라 아까의 습격에서 다친 사람들까지 한데 모아 가운데로 옮긴다. 사지가 멀쩡한 사람들은 작업을 계속한다. 곧 마을 회관 안의 기물들을 이용해 엉성한 요새 같은 것이 완성된다. 아까처럼 완력으로 뚫고 오는 사태는 벌어지지 않을 것이다.
하은은 그 남자의 행동에 대해 상당히 놀라고 있었다. 사람들을 조용한 말 한마디로 진정시키고 그들의 단합을 이끌어낸다. 신의 이름을 대기보다 스스로의 반성을 끌어내고, 맹목적인 믿음 대신 사람들의 행동을 유도한다. 하은은 그가 신학대학 출신 정도라고 어렴풋이 짐작할 뿐이었다.
“잠시 실례하지만, 말씀 좀 나눠도 되겠습니까.”
그 남자가 하은에게 다가온다. 구석으로 간 두 사람이 조용히 대화를 나눈다.
“당신은 보건대 유니언의 일원이군요.”
그가 다른 사람들이 듣지 못하게 조심해서 말한다.
“저도 한때 이터레이션 X 소속이었습니다. 통계학자Statistician 였죠.”
하은이 그를 올려다본다. 물론, 그녀는 그가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른다.
“무슨 말씀이신지 잘 모르겠습니다.”
“당신은 유니언의 요원이 아닙니까? 아마도 AP 심포지움 하의 아말감 소속이신 것 같은데.”
하은이 눈썹을 치켜 뜬다. 이 자는 자신이 속한 조직의 정체에 대해 알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실례했습니다.”
그가 나직하게 중얼거린다.
“그렇지 않다면 그들의 고용인이겠죠. 당신이 칼을 쓰는 자세를 보고 알았습니다. 그들이 표준 절차로 가르치는 방식이더군요. 방금 제가 말씀드린 것은 잊으시는 게 좋을 겁니다. 저와 같이 가주셔야겠습니다. 지금은 사람들이 할 일이 많기에 당신에게 신경 쓰지 않고 있지만 곧 가만히 있어야 하는 상황이 오면 분명 당신의 행위를 기억해 낼 겁니다.”
아까 여성을 찌른 일을 이야기 하는 것이다.
“어딜 말인가요?”
“부대 안의 폐쇄된 교회 말입니다.”
그가 담담하게 말한다.
두 사람은 건물 밖으로 나와 다시 부대로 돌아가고 있었다. 어느정도 내부의 상황을 정리하고 난 이후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데, 어떻게 그렇게 잘 걸어가시는 거죠?”
그녀의 말은 사실이었다. 사방이 붉은색의 안개로 둘러 쌓여서 별빛은 커녕 동이 터와도 햇빛조차 제대로 비춰오지 않을 것 같았다. 하은은 지급받은 스타라이트 스코프를 통해 주변을 보고 있었다. 하지만 남자는 말 그대로 맨눈이다.
“길을 통째로 외우고 있다면 보이지 않는 것은 상관없습니다.”
그가 당연하다는 듯이 대답한다.
“저는 한때 당신 같은 사람들과 같이 일했었습니다. 제가 일하는 곳은 엄청난 양의 데이터와 통계학적 모델, 그리고 그것을 통한 예측을 다루죠. 이 정도 기억력은 그다지 희귀한 편이 아닙니다.”
실제로 그는 전혀 망설임 없이 걷고 있다. 눈을 감고서도 충분히 그럴 수 있을 것 같았다.
“당신은 사제인가요?”
“아뇨, 그렇지 않습니다. 하지만 신의 길을 구도하는 자이기는 합니다.”
“통계학자에서 수도자로 변했다는 말인가요?”
“그렇습니다.”
그가 동의한다.
“별로 어울리지 않는 커리어 체인지라고 생각하시는군요.”
유신론적인 믿음을 견지하는 과학자들은 주로 물리학이나 생물학 같은 분야에서 나오지 통계학에서는 그다지 많이 나오지 않는다. 그것을 아는 하은이 끄덕인다.
“피셔도 유신론적인 수리 통계학자였죠.”
“왜 그런 길을 택한거죠?”
그가 대답 하려다가, 무엇인가 들은 듯 발걸음을 멈춘다.
“들립니까?”
하은이 어둠속에서 귀를 기울인다. 스타라이트 스코프에 무엇인가 움직이는 모습이 포착된다. 그녀가 권총을 꺼내 든다. 아까의 군인들이다. 이들을 조종하는 자가 교회로 가는 길을 방어하기 위해 불러들인 것이 틀림 없었다. 하은의 존재를 눈치챈 것 때문일까. 사람들을 습격하는 것 보다는 교회를 지키는 것이 낫다고 생각 한 것이다.
“기다리십시오.”
그가 코트 주머니에서 은색의 지포 라이터를 꺼낸다. 하은이 공기중에 떠도는 유황의 냄새를 맡는다.
“지옥의 냄새입니다.”
그가 서슴없이 말하며 한쪽 팔에 기름 적신 천을 감는다.
“스코프는 끄시는 게 좋을 겁니다.”
동시에 그가 라이터로 천에 불을 붙인다. 화악, 하는 소리와 함께 팔에 감긴 천이 불타오른다. 마치 태양빛 같은 샛노란 불빛이 사방으로 퍼져 나간다. 붉은 안개마저 그 빛에 밀려나는 듯 순식간에 회오리 치며 사라져버린다. 동시에 어둠속에서 비명이 터져 나온다. 군인이 빛에 닿는 것을 견딜 수 없다는 듯이 얼굴을 가리고는 어둠속으로 사라진다.
팟, 하는 소리와 함께 불이 꺼지고 천이 바스라져 공기 중으로 사라진다. 그러나 그의 팔은 멀쩡했다. 하은이 그 모습을 경계하는 눈빛으로 바라본다. 그는 그녀의 시선에 아랑곳하지 않고 다시 라이터를 킨다. 그 불빛은 작았지만, 그들 주위에서 붉은 안개와 어둠을 몰아낸다.
“이것을 보면서 현실 교란적인 물품이다, 라는 생각을 하고 계시군요.”
그가 하은의 생각을 읽은 듯 말한다. 그가 발걸음을 옮긴다.
“당신의 두뇌가 이해하지 못하는 방식Paradigm이라고 해서 두려워할 필요는 없습니다.”
그가 말한다.
“사실, 제가 당신 같은 사람들과 일하기를 그만둔 이유입니다. 제 동료들 중 너무 많은 자들이 그들의 이해 범주를 뛰어넘는 것을 무조건 위험하다고 단정지었습니다. 20세기때는 특히 더 그랬죠. 요즘에는 덜 하다고 들었습니다만, 그렇다고 해서 돌아가고 싶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실제로 그렇지 않나요?”
두 사람은 군 부대로 진입했다. 시간을 보아하니 곧 동이 틀 시간이다. 남자가 대답한다.
“아까 보니 저는 사람들이 두려워하는 것이 위험한 것인지, 두려움에 사로잡힌 사람들이 위험한지 모르겠더군요.”
“만약 그 여자가 없었으면 그런 지경은 되지 않았을 겁니다.”
“당신은 그녀보다는 그녀의 광신적인 태도에 대해서 말씀하시고 싶은 겁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하은이 끄덕인다. 스스로를 수도자라고 칭하는 사람 앞에서 하기에는 꽤나 위험한 발언이었다. 그러나 그는 순순히 동의한다.
“당신의 말이 맞습니다. 종교와 신의 개념이 다 그렇습니다. 두려움의 산물이죠.”
하은이 한쪽 눈썹을 치켜 올린다. 여기서 종교에 관한 토론을 하고 싶은 것은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가 동의하리라고 생각하지는 않고 있었다.
“저는 신에 대한 개념이 모르는 것에 대한 두려움에서 태어났다는 말에 동의합니다.”
그는 마치 무신론자처럼 말하고 있었다.
“하지만 인간이 생각하는 ‘신’ 이라는 개념은, 무지에 대한 두려움, 내재된 선, 용서 받고자 하는 욕구, 그 이외의 수많은 것들이 한군데 섞여 있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인간이 알고 있는, 그리고 인간이 이해하려고 하는 방식으로 본 신은 신 그 자체가 아니라 수많은 불순물이 섞여 있는 것입니다. 다른 방식으로 말해보죠.”
두 사람이 관리되지 않은 뒷길로 진입한다. 그가 길을 막고 있는 수풀을 옆으로 쳐낸다.
“말하자면 인간이 알고 있는 신의 모델은 신이라는 변수의 실제적인 모습이 아닌, 엄청난 양의 통계학적 노이즈가 더해진 관찰 변수에 불과합니다.”
군데 군데 부서진 나무 계단을 오르기 시작하는 그들. 만약 그녀의 기억이 맞다면 이 길의 끝에 폐쇄된 교회가 있을 것이다.
“저의 동료Celestial Chorus들은 여러가지 방법으로 저희가 신과 하나가 되는, 말하자면 승천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해서 설파합니다. 깊은 신앙심을 가지는 것부터 이 세계의 모든 불순한 것을 제거하는 것까지 말입니다.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신앙심은 거의 모든 종교의 필수적인 덕목이 아닌가요?”
하은이 묻지만, 그는 곧바로 대답해온다.
“그것은 당신이 일반인의 ‘신’의 개념에 사로잡혀 있어서 그렇습니다.”
“무슨 말이죠?”
“저는 감히 신이 우리를 창조하셨다거나 하는 말을 하고 싶지 않고, 할 수 있지도 않습니다. 모르기 때문입니다. 더 정확히는 보편적으로 사람들을 설득할 증거가 없다는 게 맞는 말이겠군요. 그분은 하늘에 계신 남성의 형상을 한 존재는 더더욱 아닙니다. 아니, 어쩌면 그럴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우리는 알 수 없습니다. 우리가 모르는 것이 있다고 해서 그분의 존재가 정당화 되지도 않습니다.”
바스락, 하는 소리와 함께 하은이 총구를 돌리지만 아무것도 없다. 그의 말은 침착하다.
“하지만 이것은 확실히 알 수 있습니다. 5000년 전의 ‘신’이라는 모델에서, 인간의 발전을 통해 수많은 통계학적 노이즈가 제거되었습니다. 예컨대 번개에 대한 두려움은 과학적인 설명과 함께 사라졌습니다. 우리는 더 이상 번개가 그분의 신벌이라고 믿지 않습니다. 마찬가지로 합리성의 발전을 통해 저희는 면죄부를 산다고 해서 죄가 없어지는 것은 아님을 알고 있습니다. 인간의 욕망이 투사된, 그 분의 진면목이 아닌 부분이 모델에서 제거된 것입니다.”
서서히 라이터에서 뿜어져 나오는 빛의 끝자락에 무엇인가 보이는 것 같다. 아마도 교회일 것이다.
“그렇게 노이즈를 제거함으로써, 언젠가 저희가 알 수 있는 최대한 가까운 그분의 모습Approximation을 알 수 있겠죠. 단지 믿는다고 해서 그 분의 존재가 증명되는 것은 아닙니다. 진정한 ‘신’이란 무엇인지, 우리는 끊임없이 탐구해야 합니다.”
퍽, 하는 소리와 함께 그들을 방해하던 장애물 하나가 또 다시 날아간다.
“좋아요. 만약에 저희가 그 노이즈를 전부 제거해서, 당신의 말 대로 정확한 모델을 알 수 있게 되면 어떻게 되나요? 그 때야 말로 신의 입지가 완전히 없어지는 것이 아닌가요?”
“그거야 말로 바라는 바입니다.”
“…당신은 신을 믿으면서 신의 증거를 모두 없애야 한다고 하는 건가요?”
“그렇습니다.”
그가 폐쇄된 교회 앞에 선다. 스릉, 하는 쇳소리와 함께 그의 등에 매달려 있던 슬렛지해머를 손에 든다.
“그 때는 우리가 바로 신일테니까요.”
하은이 그를 올려다본다. 그녀와 그 사이에는 도저히 좁힐 수 없는 생각의 간극이 있었다. 생각의 간극뿐만 아니라 방법Paradigm의 방법까지도. 그녀는 그의 방식을 불신한다. 아마 반대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가 서서히 해머를 들어올린다.
콰직, 하는 소리와 함께 폐쇄된 교회의 문이 박살 난다. 교회 안에서는 누가 봐도 이단적인 의식이 벌어지고 있었다. 어디서 공수해온 것인지 새까만 돌로 만들어진 넓은 제단 위에 피가 넘쳐흐른다. 피부가 벗겨지고 사지가 절단된 군인들의 몸뚱아리가 무너져가는 천장에 매달려 있다. 흐르는 피는 그들의 것이었다.
제단의 주위에는 뱀파이어들과 낮은 목소리로 끊임없이 무엇인가 외우는 사람이 서있다. 그의 눈에서 기분 나쁜 초록색의 점액이 흐르고, 입에서는 인간의 것이라 생각되지 않는 주문들이 이어진다. 보건대 뱀파이어들은 그저 보조적인 역할에 불과한 것 같았다.
제단 위에는 한 소녀가 누워있다. 마치 80년대 호러 영화에라도 나올 것 같은 전형적인 이교도들의 의식. 그러나 전형적이라는 것은, 그만큼 확실하다는 뜻도 된다. 그들뿐만이 아니라 교회 안에는 제정신이 아닌 것 같은 사람들이 무릎을 꿇고 있었다. 하은이 교회 안으로 발을 내딛자 그들이 일제히 일어선다. 그들의 시선이 두 사람을 향한다. 남성이 시계를 내려다본다.
“제가 다시 돌아올 때까지 버틸 수 있겠습니까? 저들의 시선을 끌어야합니다.”
하은이 마지못해 끄덕인다. 그가 육중한 해머를 들고는 계단을 달려 교회의 2층으로 쇄도한다. 제단을 둘러싸고 있는 사람들이 일제히 하은을 향해 달려든다. 사람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재빠르지만, 뱀파이어라고 하기에는 느린 존재. 흔히 구울이라 불리는 존재들이다.
하은이 기둥 뒤로 숨는다. 그녀가 숨어있는 기둥으로 미칠 듯한 총격이 쏟아진다. 섬으로 직접 밀수해온 무기들일 것이다. 자동 권총의 탄환이 사방으로 튀어 다닌다.
“!”
기둥의 오른쪽으로 걸치고 있던 재킷을 던지고 하은 본인은 왼쪽으로 튀어나간다. 재킷이 벌집이 되지만 하은은 멀쩡하다. IR 레이저와 스코프의 도움을 받은 정확한 조준. 두 명이 머리에 총알을 맞고 나가떨어진다.
-쿵
위층에서는 무엇인가 큰 소리가 들려온다. 마치 건물이 무너지는 소리 같았다. 그러나 신경 쓸 틈이 없다. 하은이 총탄 세례로 박살나는 의자들 뒤를 구르며 소이 수류탄을 던진다. 폭발과 함께 오래된 나무 의자들이 불에 붙는다. 몸이 불붙은 뱀파이어들이 발광하지만 의식을 주관하는 자는 아무렇지도 않다. 하은이 그에게 총알을 퍼붓지만 몸에 박히기만 할 뿐, 아무런 반응도 없다.
“큭!”
도탄에 맞았다. 출혈. 심하지는 않지만 이래서는 전투에 지장이 생긴다. 하은이 2층으로 올라가려는 자들을 노리고 총을 난사한다.
-쿵!
다시 한번 거대한 소리가 울린다. 전투가 계속된다. 계속해서 위치를 바꿀 수 있는 그녀와 달리 구울들은 개방된 제단을 지켜야 하기 때문에 지속적으로 그녀의 사격에 노출되고 있었다. 그러나 상황은 절대 호락호락 하지 않다. 뱀파이어의 피와 의식의 분위기에 취해 있는 그들은 머리나 심장 같은 치명상을 입힐 수 있는 부위가 아니면 저지하기 쉽지 않다. 점점 엄폐물들이 박살 나면서 그녀가 계단 쪽으로 몰린다. 하은이 계단 쪽의 벽으로 피하던 도중, 아까의 남자와 마주친다.
“잘 버텨줬습니다. 이제 저 기둥만 박살내면 됩니다.“
그가 1층 중앙의 기둥을 가리킨다. 하지만 상당히 위험한 위치에 있는 기둥이었다. 완벽하게 개방된 공간이라 저격 당하기 너무 쉬운 곳이었다.
우웅-
아까와는 다른 이질적인 소리가 두 사람의 시선을 잡아 끈다. 하은이 제단 쪽을 내다본다. 오래된 콘크리트 바닥이 불꽃을 뿜어내며 갈라지고 있었다. 그 사이로 거대한 형상이 기어 나온다. 사람의 서너 배는 될 정도로 굵은 다리. 앞으로 구부정하게 숙이고 있는 몸. 앙상한 한쪽과는 달리 거의 자신의 몸만큼이나 거대한 한쪽 팔. 날카롭다 못해 스스로의 턱을 뚫고 나온 칼날 같은 이빨들. 고름을 질질 흘리는 눈. 그 형상의 피부 위로 붉은 핏줄이 불거져 나온다. 마치 피가 아니라 용암이 흐르는 것 같다.
그것은 교회 안 뿐만이 아니다. 바깥의 붉은색 안개도 마찬가지다. 그 사이로 거대한 형상들의 실루엣이 비친다. 의식을 주관하는 자가 광소를 흘린다.
하은이 결심한다. 더 이상, 이 의식을 진행하게 둬서는 안된다.
이 남자가 무엇을 계획하고 있던 두 사람으로는 무리다. 그녀가 계단에서 뛰어 나오며 제단을 노린다. 그러나, 노리는 것은 의식을 주관하는 자들이 아니다.
“잠깐! 뭘 하는 겁니까!”
-타앙!
총성과 함께 제단위로 떠오르고 있던 소녀의 가슴팍에서 피가 솟구쳐 오른다. 즉사다.
“안돼!”
남자가 외친다. 그의 망치가 두 사람을 향해 달려드는 뱀파이어의 머리를 강타해서 형체도 없는 고깃덩어리로 만들어버린다. 소녀의 생명이 사라짐과 동시에 제물을 잃은 의식이 흐트러진다. 붉은색 안개가 그 색을 잃음과 동시에 건물을 흔드는 광풍이 몰아친다. 뱀파이어들이 사방으로 달아난다. 아까의 거대한 형상 역시 괴로워하며 불꽃으로 화해 사라진다. 그들이 무방비해진 틈을 타 의식을 주관하던 자에게 남자가 쇄도한다. 퍼억, 하는 소리와 함께 슬렛지해머가 그의 머리를 날려버린다.
순식간에 제단에 금이 가며 먼지로 바스라져 버린다. 광풍이 멈춘다. 교회 안은 침묵에 빠져들었다. 오직 남자가 든 라이터만이 무시무시한 광경을 비추고 있을 뿐이었다.
“대체 왜…”
그가 말 꼬리를 흐린다.
“이 의식을 중단시키려면 그럴 수 밖에 없었습니다. 당신이 무엇을 계획하고 있었던지 간에 저희 두 명이서 이곳을 혼자 돌파한다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하은이 침착하게 말한다. 사내가 분노한 눈길로 그녀를 쳐다본다.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슬렛지 해머를 들어서 1층의 천장을 받치고 있는 기둥을 내려친다. 쿵, 하는 소리와 함께 천장이 무너진다. 천장에 매달려 있던 시체들도 바닥으로 떨어지며 사방에 썩어가는 냄새를 풍긴다. 천장 뿐만 아니라 아예 건물 지붕까지 무너져 먼지가 자욱하게 퍼진다. 아까의 소리는 그가 지붕의 기반을 부수는 소리였던 것이다.
그가 소녀에게 다가간다. 그녀의 몸을 안아 드는 그. 그가 그녀를 안아 든 채 하은의 앞까지 다가온다. 그가 무엇인가 속삭이듯 기도하자 또 다시 교회 전체를 흔들 것 같은 돌풍이 불어온다. 돌풍이 안개를 날려버리자 막 뜨기 시작한 햇빛이 교회 안을 비추기 시작한다. 동시에 제단, 의식을 주관하던 자, 시체들, 이교도들의 물건들, 모든 것이 다 먼지로 화해 사라져버린다.
교회 안에는 이제 의식의 어떤 흔적도 남지 않았다.
“무능은 죄가 아닙니다. 하지만 우리 같은 사람들에게는 다릅니다.”
그가 확신에 찬 눈으로 하은의 눈을 쳐다본다.
“일반인이 다수를 살리기 위해 소수를 죽였다면 그것은 어쩔 수 없는 선택입니다. 그러나 그러한 불합리한 현실을 타파하기 위해 우리 같은 자Willworker에게 권능이 부여된 것입니다. 만약에 그러한 권능으로도 악을 막지 못했다면 그것은 죄입니다.”
하은의 눈동자가 살짝이지만 떨린다. 그의 말은, 묘하게 맞는 데가 있었다.
“좋아요. 그럼 왜 이렇게 할 거라고 말해주지 않았죠?”
남자가 감정을 억누르려는 듯 말한다.
“제가 이렇게 할거라고 했으면 당신은 전혀 믿지 않았겠죠. 그렇지 않습니까?”
그의 말이 맞았다. 만약에 처음부터 그가 그의 계획을 말해주었다면 그녀는 믿지 않았을 것이다. 아니, 믿기를 거부했을 것이다. 그녀에게 있어서 그 계획은 단신으로 의식의 한 복판을 돌파하는 것보다 더 불확실한 것이었다. 남자가 소녀의 시체와 함께 교회를 나선다. 하은이 그에게 마지막으로 묻는다.
“…하지만 만약에 당신이 실패 했을 경우에는, 이 아이를 쏘리라는 것도 알고 있었겠죠. 그렇지 않나요?”
남자가 살짝 하은을 뒤돌아본다. 그가 “왜”라고 물은 것은 왜 그녀를 쏘았느냐가 아니었다.
왜 너무 일찍 쏘았는가, 에 대한 물음이었다.
“앞으로 행운을 빕니다.”
그가 말하며 발걸음을 재촉한다. 서서히 안개가 걷히고 있었지만 그의 모습은 더 이상 보이지 않았다.
“쿵.”
“노하은?’
하드 수트의 헬멧이 열린다. 그것은 지금까지 본 하드수트 중 제일 거대했다. 그녀는 그대로 교회 앞에서 대기하고 있었다. 무너진 교회의 담장에 기대 앉아있는 그녀.
“사람들은 어떻게 되었습니까?”
“대다수가 살아있더군.”
“그렇습니까.”
그녀가 무심하게 말한다.
“단독 임무는 처음이었으니, 백 사장의 도움을 받아서 사후 보고서를 제출 할 수 있도록 해.”
“알겠습니다.”
그녀가 대답하며 일어선다.
“주민 중 한명이 네게 찔렸다는데, 맞나?”
“네. 어쩔 수 없었습니다.”
하은이 그 말을 하고 나서 쓴 웃음을 짓는다. 아마 그 남자는 여건만 허락한다면 그녀에게 물어보았을 것이다. 왜 그렇게 일찍, 지나칠 정도로 단순한 방법을 선택했는지.
“그런가. 알았다.”
웨더스의 하드 수트가 무거운 소리를 내며 움직인다. 햇빛이 어둠과 안개를 몰아낸 섬에는, 새벽의 악몽이 남긴 자취가 가득할 뿐이었다.
===
뱀파이어 세팅 좀 다시 읽어봐야겠네.
미스트 생각나서 넣어본 배경인데 미스트 드라마 망했다고 들었음.. 슬프다 좋아하는 영환데
테키놈 이직해도 본성 못 버리는 것 보소. 으차피 인카르나 미만잡인 것들이.
어프록시메이숀~
일단 개추먼저 주고
더 써라 핫산
후원자들한테 WIP라도 보여주는 패트론 열 생각 없음? 모아놓기도 편하고 설문조사 같은 것도 열 수 있고 좋을텐데
ㄴ 지속적으로 패트론을 추천하시는 분들이 있내염.. 생각은 해보고 있는데 잘 모르겠음aa 설문조사야 여기서 하면 되고(?)
이번 편도 재밌다 ㄷㄷ 광신도 아줌 없애버린거 사이다.. 근데 신캐의 말에 숙연해짐 - dc App
이번에 새로 나온 남자 무지 멋지네요 이제껏 나온 캐릭들 중에 제일 멋진듯 걍 이상한 망치 사이비 인줄 알았는데 소신이 너무 멋진것.. 잘생겼을듯 - dc Ap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