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화 “오라클”
어두운 조명이 간간히 깜빡이는 교외의 창고.
하은이 주위를 둘러본다. 다섯명의 사내가 죽어 있다. 전부 세상의 풍파에 잔뜩 시달린 것 같은 생김새에, 다년간의 육체 노동으로 인해 닳아버린 옷들을 입고 있다. 하은의 손에 들린 나이프에서 피가 떨어진다. 암호화를 위해 정보처리용 단말을 경유한 신호가 귀에 꽂힌 이어폰으로 흘러 들어간다. 에이다의 사무적인 음성이 전해져 온다.
“하은씨.”
“네.”
“이쪽은 허탕입니다. 그쪽은?”
“마찬가지입니다. 워낙 격렬하게 저항해서 포획은 불가능했습니다.”
“알겠습니다. 클린업 팀이 도착할 때까지 대기할 수 있겠습니까?”
에이다가 AP-5 아말감으로 복귀하자 마자 에이다와 웨더스 소령의 위치가 바뀌었다. 명목상으로는 보좌의 역할인 에이다가 하은과 현장 업무를 맡고, 이번에는 웨더스가 상부로 불려 가기 시작했다. 사실, 상사라는 기준으로 따지면 에이다가 배울 것이 더 많다. 하은은 하드 수트 같은 것을 전혀 사용할 수 없기도 하고, 그녀와 하은의 방법Paradigm은 비슷한 데가 있기 때문이다. 반면에 인간의 신체능력으로는 감당이 되지 않는 교란종의 경우는 웨더스가 있는 것이 훨씬 낫겠지만.
“네.”
하은의 대답과 함께 통신이 종료된다. 하은이 귀에서 이어폰을 빼낸다. 그녀가 권총을 품에 집어넣는다. 그러나 나이프는 손에 들린 채다. 남자들의 피가 그녀의 얼굴, 옷, 피부 가릴 것 없이 흥건하다.
“어머, 아가씨.”
하은이 홱 돌아서며 다시 권총을 뽑아 든다. 철제 선반 뒤에서 여성이 걸어 나온다. 이제는 익숙해진 얼굴인 뱀파이어, 민려다.
“이런데서 보게 될 줄은 몰랐네요.”
“당신이 여긴 웬일이죠?”
하은의 경계하는 말을 흘려 넘기며 그녀가 천연덕스럽게 걸어온다. 착 달라붙는 수트가 고혹적으로 어울리는 그녀. 언제나처럼 재킷 앞섶이 열려 새하얀 -새하얗다 못해 창백한- 가슴골이 드러나 있었다. 날카로운 눈매를 강조한 화장과 화려한 귀걸이까지. 이런 창고보다는, 사교의 장에나 어울릴 법한 복장이다.
“아가씨, 우리가 꿰고 있는 밀수 루트가 얼마나 많은데요. 그 중에…”
그녀의 말이 갑자기 끊어진다. 민려의 시선이 하은에게 고정된다. 피에 잔뜩 젖어 검붉게 물든 셔츠, 시뻘건 액체를 대충 닦아내어 자국이 남은 뺨, 사방으로 풍기는 철의 냄새, 살짝 초점을 잃은 것 같은 눈동자. 그녀의 모습에서 민려가 눈을 떼지 못한다.
“아…”
그녀가 황홀경에 사로잡힌 것 같은 신음을 내뱉으며 그녀에게 무방비로 다가온다. 그녀의 빰으로 손을 뻗는 민려.
“아름다워…”
“그만.”
하은의 나이프가 민려의 목을 압박해온다. 그녀가 원한다면 언제든지 목을 잘라낼 수 있을 것 같은 기세다. 민려의 손이 하은의 뺨에 닿기 일보직전에 멈춘다. 민려가 정신이 돌아온 듯 놀란 표정을 지으며 말한다.
“아… 미안해요, 아가씨. 실례했네요.”
재빨리 한발자국 물러나는 그녀.
“대체 뭐죠?”
“…미안해요. 안 좋은 버릇이라.”
가면무도회Masquerade의 법칙에 의해, 그녀의 핏줄Toreador에 흐르는 저주라는 말은 할 수 없다. 아름다운 것 -그게 무슨 의미인지는 개체마다 다르지만- 을 보면 그것에 매료되어버리는 일이다. 민려가 재빨리 말을 돌린다.
“어쨌든, 결론적으로는 혈족과 관계가 없는지 확인하러 온 거에요. 혹시 몰라서 와봤는데, 다행이네요. 우리와는 아무런 관계가 없어요.”
그녀답지 않게 얼버무리는 민려.
“테러리스트들과 당신들이 무슨 상관이죠?”
하은이 생각하는 뱀파이어들은 도시의 뒤편에 숨어 불사의 삶을 즐기며, 사람들의 피를 빨기 위해 사냥하고, 한편으로는 서로에 대한 음모에 깊게 매몰된 존재들이었다. 테러 같이 이목을 끌 만한 일을 하리라고는 생각하기 어려웠다.
“가끔 상대를 해치기 위해서 테러를 가장해서 건물을 통째로 날려 버린다던가 하는 멍청이가 있어서요. 그러면 우리가 이렇게 조용히 사는Masquerade 의미가 없어지니까.”
“당신들이 먼저 죽인다, 라는 거군요?”
“네. 어때요, 당신들이랑 비슷하지 않나요?”
하은이 싸늘한 표정으로 민려를 보며 대꾸한다.
“전혀요. 뱀파이어가 처음부터 없으면 그런 문제도 없을텐데요.”
민려의 표정이 아주 살짝 일그러지지만, 이내 다시 생긋 웃는다.
“아가씨, 그렇게 남의 가슴에 말뚝 박는 이야기 하면 안 되죠.”
“더 할 이야기 없으면 가주시죠.”
자르는 듯한 대답에 민려가 입을 다물더니, 입술을 깨문다. 그대로 돌아선 그녀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어둠속으로 사라진다. 하은이 뺨에 흐르는 피를 닦아낸다. 혹시나 그녀의 피가 아닌가 했지만 그렇지는 않다.
“하은씨, 에이다.”
통신망으로 의외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소피아다.
“네, 소피아.”
“좋은 소식이에요. 지금 추적하고 있는 자들에 대한 단서가 들어왔어요. 아시아에 있는 제약회사 쪽을 통해서요.”
“제약회사 말입니까?”
“네. 돌아오면 설명해드릴게요.”
소피아가 경쾌하게 말하며 통신을 종료한다.
“반갑습니다. 김인혁이라고 합니다.”
소피아가 말하던 제약회사측의 정보원을 만나게 된 것은 하루도 지나지 않아서 였다.
“노하은입니다.”
하은과 악수한 그가 깔끔한 명함을 건네 준다. 그 위에는 최근 들어 급속한 성장세를 타고 있는 한 소규모 제약회사의 이름이 적혀져 있다. 프로제니터가 보유한 신생 기업 중 하나다. 수면자들이 운용할 수 있는 기술과 프로제니터의 초과학 기술을 절충하여 수면자들의 제약 시장의 지평을 넓히려는 시도의 일환이었다. 이 회사는 그 중 가장 뛰어난 성장세를 보이고 있는 회사였다.
그런 회사인데도 불구하고, 프로제니터가 알지 못하는 사이에 회사의 중진에 인간이 아닌 종이 숨어들어 있었던 것이다. 더욱 놀라운 것은 그들의 목적이 회사를 내부에서부터 뒤엎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오히려 도를 넘은 그들의 ‘먼 친척’ 들에 대한 정보를 제공하겠다는 말에 프로제니터 안에서는 격렬한 토론이 벌어졌다. 다른 컨벤션 -특히 NWO- 에서 눈치를 채고 영향력을 행사한 탓에, 결국 협력보다는 정보의 노출을 최소화 시키고 그들이 제공하는 정보만을 받아들이기로 한 상태.
소피아나 에이다가 아니라 하은이 온 것은 그 때문이다. 혹시 모를 납치 가능성에 대비하기 위해서다. 물론 하은은 뒷사정에 대해서는 전혀 모르고 있지만, 납치 가능성을 줄이기 위해서라는 데에는 순순히 동의하고 명령을 따르고 있었다. 하은이 명함을 다시 한번 내려다본다. 젊은 나이에 어울리지 않는 상당히 높은 지위다. 인혁이 그녀를 엘리베이터로 안내한다.
“자, 조용한 곳에 가서 이야기 할까요? 저희 사무실로 가서 이야기 하시죠.”
“하은씨, 한가지만 기억해요.”
하은이 소피아의 충고를 떠올린다.
“무슨 일이 있어도 그들Werewolf과 가까이서 싸우면 안돼요. 일이 틀어지면 바로 도망쳐요.”
하지만 김인혁의 모습은 그런 충고와는 너무 동떨어져 있었다. 엘리베이터 안으로 두 사람이 들어서고, 문이 닫힌다.
“약간 실망했다는 점은 인정해야겠군요.”
인혁이 운을 뗀다.
“무슨 말씀이시죠?”
“당신들의 능력에 대해서는 어느정도 알고 있습니다만, 저희가 너무 얕보인 모양입니다. 아무런 대비책도 없이 순순히 따라오다니요.”
하은이 말없이 코트 한켠을 들춰 보인다. 코트 안에는 납작한 모양으로 가공된 폭발물이 가득하다. 금속 탐지기에 걸리지 않도록 특수 처리된 선들이 하은의 옷 안쪽으로 연결 되어 있었다. 심장 박동 센서에 연결 되어 있는 것이다.
“이 건물은 통째로 날려버릴 수 있는 양입니다. 제 심장이 멈추게 되면 바로 작동하죠. 이정도면 대답이 되셨는지요?”
“역시, 이제야 좀 이야기가 되겠군요.”
그가 만족한 표정으로 끄덕인다. 문이 열린다.
“자, 이쪽입니다.”
하은이 김인혁을 따라 그의 사무실로 들어간다. 그의 사무실 안으로 들어가자 마자 하은의 귀 안쪽에 설치된 초소형 이어폰이 잡음과 함께 작동을 멈춘다.
“혹시 통신 장치를 사용하고 계시다면 제 방 안에서는 차단 되어 있다는 것을 알려드려야겠군요.”
일종의 초소형 재머. 그러나 하은이 알기로는 이렇게 한정된 면적에만 칼같이 작용하는 재머 같은 것은 없다. 그 재머가 책상위에 놓인 알약 모양의 장식품이라는 것, 그리고 그것이 사실은 전파의 정령이 깃들어 있는 페티시 임은 더욱 알 수 있을리가 없다.
“자료를 그냥 보내 드릴 수도 있었지만, 그쪽에서 저희를 완벽하게 신뢰하지 않는다는 것은 알고 있습니다. 제가 다른 연락책을 통하지 않고 직접 나선 것도 그 때문입니다. 물론 저희Glasswalker의 보안을 위해서기도 하지만요.”
그가 외장 하드를 내민다.
“이 안에 정보는 다 들어있습니다. 아마 만족하실 겁니다.”
하은이 외장 하드를 받는다. 살짝, 두 사람의 손이 스친다. 그가 갑자기 놀란 표정을 짓는다.
“당신… 정체가 뭐죠?”
“저 말입니까?”
남자가 다시 한번 유심히 하은을 살핀다. 그의 눈동자에 호기심과 경계가 동시에 떠오른다.
“당신은 주술사Shaman도 아닌데 어떻게 정령의 총애를 받고 있는 거죠? 그것도 우리와 소통하지 않는 종류의…?”
하은이 그에게서 약간 물러선다. 그러나 그가 거짓말을 하는 것 같지는 않았다.
“무슨 말인지 모르겠군요.”
“아뇨. 아실 겁니다. 다른 사람에게는 보이지 않는 형체가 나타난다던가, 누군가가 지혜로운 조언을 해준다던가 하는 일이 분명히 있을 겁니다. 이 정도의 총애를 받고 있다면… 단지 조언 정도에서 끝나는게 아니라 하은씨 본인의 성격마저도 충분히 영향 받고도 남는 일입니다.”
그가 확신에 찬 말을 한다.
“질서의 정령… 아니, 인간이 생각하는 질서를 주관하는 냉혹한 정령이라… 우리와 교감하지 못하는게 당연하군요. 당신이 우리와 같은 세계를 볼 수 있다면 좋을텐데, 안타깝습니다.”
그가 의자에 기대며 말한다. 그의 어투에서 시간을 낭비하지 않으려는 도시인의 기질이 느껴진다. 그러나 반대로 하은은 내색은 하지 않았지만 속으로는 놀라고 있었다. 그가 교관the Man의 존재를 눈치채고 있는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다.
“아마 동료분들께는 말씀하시지 않는 게 좋을 겁니다. 약속 하신 건 가져오셨겠죠?”
하은이 들고 다니던 메탈 수트케이스를 식탁위에 올려놓는다. 그가 그것을 받아서는 책상 위에 놓는다.
“그 안에는 뭐가 들어있죠?”
“연구자료와 유해입니다. 당신들이 실험을 끝내고 남겨놓은 것을 화장한 겁니다. 정보에 대한 대가로… 상관들이 알려주지 않았습니까?”
하은이 고개를 흔든다. 인혁이 잠시 수트케이스를 내려다본다. 갑자기 감상에 잠긴 그의 얼굴에서는 분노가 섞인 슬픔이 느껴졌다. 하은이 어색한 침묵을 깨고 조용히 말한다.
“협력에 감사드립니다.”
“상부가 그렇게 전하던가요?”
하은이 끄덕인다.
“그 정도면 됐습니다. 이렇게 말하면 자존심 상하실지도 모르겠지만, 심부름꾼에게는 역시 아무것도 알려주지 않는다는 걸 다시 한 번 확인시켜 주시는군요.”
“상관없습니다.”
“알겠습니다. 잡담이라도 하고 싶지만, 그럴 성격이 아니시겠군요. 아니, 지금의 성격이라면 그렇겠죠.”
그가 일어나서는 말 없이 그녀를 엘리베이터로 안내한다.
“로비까지는 나오시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조심해서 가시죠.”
엘리베이터 문이 닫히며 그들 사이를 갈라놓는다.
받은 정보는 틀리지 않았다. AP-5 아말감은 몇 주 동안 교란종의 지원을 받은 테러리스트 집단을 추적하고 있었다. 극단적 환경주의자와 종교적 근본주의자가 반반 정도 섞인 이 테러리스트들은 몇 년 전까지만 해도 허풍이 심할 뿐인 감시 대상에 불과했다. 그러나 반 년 전 프로제니터 기준에서도 매우 위험한 생물 병기를 이용해 소규모의 테러를 일으킨 이후부터 추적의 대상이 되었다. 정보에 따르면 이들은 이른바 랫킨Ratkin이라는 교란종과 협력하고 있다. 아니, 협력 당하고 있다는 것이 맞는 표현일 것이다. 랫킨은 그들에게 무기를 공급하고 전술을 가르치며, 결정적으로 계몽 과학적 수단으로만 치유할 수 있는 고위력의 생물학 병기를 제공한다.
그 테러리스트 집단과 랫킨이 한적한 부두의 밤을 타 생물 병기를 인계하려는 현장을 드디어 포착한 것이다. 두 사람은 컨테이너를 옮기는 크레인의 위에서 위험하게 자리잡고 있었다. 모 소설의 투명 망토를 떠올리게 하는, 극미세의 광섬유를 엮어 만든 광학 위장 수트를 착용한 두 사람. 바로 옆에 오지 않는 이상 두 사람을 발견할 수는 없을 것이다.
“열 영상 모드로 스위치.”
에이다의 지시에 하은이 스코프의 스위치를 조작한다. 즉시 적외선 화면이 붉은 색과 푸른 색으로 가득 칠해진 열영상으로 전환된다. 밤의 한기에 차가워진 컨테이너들은 전부 푸른 색으로 빛나지만, 그 사이에 모여 있는 사람들은 전부 붉은 색이다. 그러나 그 중에서도 조금 더 붉은 색으로 표시되어 있는 자들이 있다.
“보입니까?”
“네. 체온이 살짝 높은 자들이 있군요.”
“그렇습니다. 평소에는 인간의 모습을 하고 있다가, 동물의 모습으로 변하는 교란종입니다. 일종의 질병이죠. 육체적인 부분뿐만 아니라 정신적인 면에서도 영향을 미칩니다. 그들의 육체적인 능력은 원본이 되는 동물 이상이며 그들이 ‘정령’이라 부르는 것을 이용한 현실 교란적인 수단을 자주 사용합니다. 그 중에서도 이 부류는 가려내기가 살짝 어려운 편입니다. 기억하세요. 쥐가 원본이라고 하더라도 이들과의 접근전은 위험합니다.”
마치 사전을 읽어주는 것 같은 에이다의 목소리.
“저 뒤에 있는 건 보통 사람들이군요. 최소한 능력 면에서만은요.”
에이다가 끄덕인다.
“테러리스트 집단에게 생물 병기를 제공하는 것은 저들이 흔히 부리는 술책입니다. 시작하죠.”
에이다의 신경 동조망에 미세한 전류가 흐르기 시작한다. 그녀의 시야가 순식간에 확장된다. 열 개의 모니터에 모두 초점을 맞춰서 보고 있다고 하는 비유로도 모자라는 경험일 것이다. 높게 쌓인 컨테이너 위, 크레인의 타워 사이, 정박된 배, 몸을 은폐할 수 있는 각종 시설물들. 사방에 배치된 블랙 수트 클론들이 고개를 든다.
에이다의 청각에 그들 모두의 청각 정보가 흘러 들어온다. 그녀의 계몽된 정신이 10개의 각각 다른 시각과 청각을 분리해낸다. 하나의 두뇌가 열 개의 육체를 조종한다. 클론들이 라이플을 들어 스코프로 랫킨과 테러리스트들을 조준한다.
“동조 완료.”
열 개의 총탄이 동시에 열 개의 가슴을 꿰뚫는다. 피부와 근육을 관통한 탄이 안에서 비산하며 순은 조각들을 흩뿌린다. 인간이 가슴에 총을 맞으면 즉사할 것이다. 하지만 랫킨들은 그렇지 않다. 그러나 순은 조각들이 내장에 박히고, 혈관에 녹아 흐르며 그들을 안에서부터 파괴한다. 테러리스트들은 힘없이 쓰러지고, 랫킨은 고통에 비명 지르며 바닥을 구르다가 천천히 죽어간다.
하은이 그 광경을 가만히 지켜본다. 놀라운 솜씨라는 말 밖에 나오지 않는다. 아무리 기계의 도움을 받는다 하더라도 저격은 고도의 집중력이 필요하다. 그것을 동시에 여러 번 해내기 위해서는, 말 그대로 초인적인 집중력을 증명하는 것이다. 웨더스가 하드 수트를 입고 괴물들을 박살낸다면, 에이다는 그것과는 완전히 다른 방법으로 적들을 처치한다.
그런 생각을 하면서도 하은은 감시를 멈추지 않는다. 10개의 스코프라고 해도 관측수는 필요한 법이다.
“우측에서 다섯번째 컨테이너 뒤입니다. 보이십니까?”
하은의 말과 동시에 그곳에 숨어있던 랫킨이 세발의 총탄을 맞고 쓰러진다. 그런 과정이 몇 번 계속되자, 테러리스트 집단과 랫킨들은 이제 모두 차가운 콘크리트 바닥과 마주하게 되었다. 당연히 그들 중 몇 명은 무력화만 해 둔 상태다. 포획 후 심문, 또는 표본으로써 처리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잠시 상황을 살피던 에이다가 끄덕인다.
“내려가죠.”
하은이 엉망이 된 현장을 둘러본다. 죽어 있는 시체들 중 하나를 우두커니 관찰하는 하은. 웨더스도 각종 하드 수트를 제 몸처럼 다루기 위해서 엄청난 훈련을 했을 것이 분명하고, 에이다도 이런 묘기에 가까운 테크닉을 배우기 위해 상당한 시간을 들였음이 분명하다. 그러나 하은이 배운 것과 이런 종류의 기술Procedure 사이에는 질적으로 다른 엄청난 격차가 있다. 공상과학과 지루한 현실 사이 만큼의 격차가. 하은은 배우기만 한다면, 그리고 스스로 연구할 시간만 가진다면 그런 수준에 도달 할 수 있다는 것을 이미 스스로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 때까지 살아있어야 가능한 일이다. 하은이 다시 한번 현상을 점검한다. 그런데 뭔가 이상하다. 쓰러진 시체들은 있는데, 이들이 교환해야 할 물건이 없다. 그녀가 즉시 통신을 개시한다.
“노하은입니다. 이들이 전달하려고 했던 물건이 보이지 않습니다.”
“정말입니까?”
“예. 설마…”
“경계하라.”
하은이 고개를 번쩍 든다. 교관의 목소리다. 그녀의 시야 한켠에 무엇인가 움직이는 형상이 들어온다. 그것이 그림자 속으로 사라진다.
“!”
하은이 그 형상을 쫓아간다.
“노하은입니다. 아직 사살하지 못한 놈들이 남아 있습니다. 쫓겠습니다.”
“쫓기만 하십시오. 그들과의 접근전에 돌입하는 것은 매우 위험합니다. 아무래도 이쪽은 디코이인가보군요.”
동시에 하은의 단말에 GPS 추적이 걸리기 시작한다. 곧 클론들과 에이다가 쫓아올 것이다. 하은이 그 형상을 한참동안이나 쫓아간다. 아까의 크레인에서는 쉽사리 관찰할 수 없는, 부두의 한 구석까지 추적이 이어진다. 컨테이너들을 지나 공터로 뛰어드는 순간 옆에서 날렵한 체구의 사내가 하은에게 덤벼든다. 보통의 인간보다 훨씬 빠른 속도. 하은이 튕겨나가 바닥을 뒹군다. 그가 하은을 향해 달려들어 쇠파이프를 내려친다.
“까앙!”
쇠파이프를 맨손으로 잡아내는 또 다른 형상. 그가 쇠파이프와 함께 하은에게 덤벼든 남자까지 가볍게 한 팔만을 써서 던져버린다. 말 그대로 인간 이상의 힘이다.
“아마도 당신의 상관이 조심하라고 일러 줬을텐데요. 만약에 저와 같은 부류였다면 당신은 이미 찢기고도 남았을 겁니다.”
김인혁이다. 그의 존재를 눈치챘는지, 컨테이너 곳곳에서 랫킨들이 기어나온다. 그 형상은 다양하다. 누더기를 걸친 채 창백한 피부와 입술 위로 앞니를 드러내는 자, 삐죽삐죽한 털로 감싸인 채 두 발로 걷는 거대한 쥐의 형상을 한 자, 거의 사자 정도의 크기의 쥐 형태를 취한 자까지. 무기도 다양하다. 단순한 쇠파이프에서부터 어디선가 떼어온 고철로 만든 간이 석궁까지.
“네놈, 배반자! 위버의 하수인! 압제자!”
랫킨들이 그에게 욕을 퍼붓는다. 그런 와중에 테러리스트와 랫킨을 실은 봉고차 한대가 황급히 출발한다. 최초의 현장은 역시 미끼였던 모양이다.
“하려면 거기서 발이나 떼고 욕하시지.”
그가 품 속에서 무엇인가 꺼낸다. 흔한 플라스틱 스위치다. 그 순간 랫킨들의 얼굴이 일그러진다. 스위치가 올라가자, 컨테이너들을 둘러싼 하역장비와 크레인들이 폭발하는 소리를 낸다. 동시에 조명에 연결되어 있었던 전선들이 어지럽게 바닥으로 떨어진다. 전선이 배기구를 덮은 철제 구조물 위에 떨어지자 그 위에 서있던 몇몇 랫킨들이 감전되어 경련한다. 그가 공중으로 뛰어오른다.
하은의 눈 앞에서 놀라운 광경이 펼쳐진다.
그가 입은 재킷이 순식간에 검은 잉크가 되어 그의 피부에 새겨진 문신이 된다. 그의 몸집이 몇배나 거대하게 불어난다. 근육이 터져 나올 듯이 불거지고 온 몸에서 털이 돋아난다. 손톱은 손톱이라기 보다는 흉악한 단검 같은 것으로 변한다. 그가 공중에서 떨어지고 있는 전기줄 하나를 잡는다.
“죽어라!”
그의 천둥과 같은 괴성. 전깃줄에서 스파크가 튀며 그의 피부 위로 눈에 보일 정도로 확연하게 전류가 흐른다. 마치 번개가 피부 위를 흐르는 것 같았다. 그가 한쪽 팔을 휘두르자 전기로 된 채찍이 휘둘러지며 랫킨 하나를 불태운다. 그가 착지한 곳에서 피하지 못한 랫킨 하나가 그의 손에 잡힌다. 고압 전류와 함께 통구이가 되어버리는 랫킨.
불리함을 깨달은 랫킨들이 순식간에 뿔뿔이 흩어져 달아난다. 그러나 그가 순식간에 그들을 추적하기 시작한다. 제일 먼저 희생양이 된 랫킨이 길다란 손톱에 등을 관통 당한다. 다른 쪽 손을 박아 넣어 그대로 랫킨을 말 그대로 찢어발긴다. 늑대인간이라는 단어에 어울릴 만한 엄청난 점프력으로 컨테이너를 뛰어넘어 맨홀로 들어가려고 했던 랫킨을 깔아뭉갠다. 그 랫킨이 들어올렸던 맨홀을 그대로 한손으로 잡아 마치 도끼라도 되는 양 던진다. 그것에 맞은 랫킨의 허리가 뭉개지며 벽에 처박힌다. 그렇게 몇 놈을 더 잡아죽이는 동안 그나마 살아남은 랫킨들이 어딘가로 사라져버린다.
거대한 늑대인간, 가루우Garou가 천천히 하은에게 다가온다. 아까 박혀있었던 무기들을 털어내자 순식간에 살이 차오르고 상처가 치유된다. 놀랍게도 그가 그르렁거리는 목소리로 멀쩡하게 사람의 말을 건넨다.
“앞으로 이런 행운은 기대하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하은이 일어난다.
“당신은 지금 이들을 전멸시켜야한다고 생각하겠죠.”
그가 낮게 말하자 하은이 망설이지 않고 고개를 끄덕인다.
“참으로 재미있는 일입니다. 우습게도 사실 전 세계의 인류가 살아있는 것은 랫킨들 덕분일지도 모르죠. 당신은 냉전 시대 때 몇 발이나 되는 핵미사일이 테러리스트와 당신네 부류 중 타락한 자Nephandi들에 의해 발사되었음은 알고 있습니까?”
“그건…”
“물론 모르겠죠. 그 중 제대로 폭발한 건 단 하나도 없거든요. 덕분에 당신들이 적당히 공장 폭발 같은 걸로 위장하기도 쉬웠을거고요. 핵미사일들이 폭발하지 않은 이유는 단 하나, 수백, 수십의 랫킨들이 핵미사일들의 배선을 갉아먹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건 그거고…”
그가 말하며 주위를 둘러본다. 공터 한가운데의 플라스틱 케이스로 그의 시선이 향한다. 해골 모양이 조잡하게 그려져 있는 그것은 비어 있었다.
그가 하은을 돌아본다. 그의 눈에서는 인간이라면 도저히 가질 수 없는 분노Rage가 깃들어 있다.
“…이런 방식의 테러리즘은 용납할 수 없습니다. 이런 짓을 해봐야 적Wyrm을 돕는 행위에 불과합니다. 말이 길었군요. 그들이 이미 생물병기를 목적지로 옮기고 있을 겁-”
그 순간 공터의 맨홀들이 일제히 열리며 랫킨들이 튀어나온다. 그들이 반응하기도 전에 두 사람을 향해 총탄이 쏟아진다. 그가 하은을 감싼 채 재빨리 가까운 컨테이너 뒤로 도약한다.
“크윽!”
그러나 큰 덩치 탓에 몇 발이 그의 등에 박힌다. 두 사람이 숨어 있는 컨테이너에 총탄이 빗발치다가 이내 멈춘다. 그의 형상이 다시 인간으로 변해간다. 근육이 줄어들고, 털이 사라지며, 문신이 되어 있던 옷이 그를 다시 덮는다.
“비…겁한 놈들.”
하은이 즉시 그에게 무슨 일이 있는지 알아차린다. 늑대인간들 역시 은에 약하다. 은으로 도금되 있거나, 은 조각을 넣은 탄에 맞은 것이다. 은에 약한 랫킨들이 그것을 제조한 것은 아닐 것이다. 아마 어디선가 훔친 물품이거나 테러리스트들과 거래한 것일 수도 있다.
그의 등에서 피가 흐른다. 늑대인간Crinos의 형상으로 있으면 은에 치명적인 피해를 입는 탓에 인간의 형상으로 돌아올 수 밖에 없다. 반면 인간의 형상으로 돌아오면 재생이 불가능하다.
“도망가는게 좋을겁니다. 저는 괜찮습니다.”
하은이 고개를 젓는다.
“저는 내버려둬도 되니까… 윽.”
그가 총탄이 박힌 팔을 부여잡는다.
“정말 감동적이구만. 아, 아까 강의는 잘 들었네.”
컨테이너 위에서 공기가 새는 듯한 낮은 목소리가 들려온다. 위협적인 시선으로 둘을 내려다보는 랫킨. 곳곳에 흉측한 흉터가 나있고, 군데 군데 화상과 총상으로 인해 털이 전혀 나있지 않은 부분도 있다. 아마도 그들의 행동 대장일 것이다.
“그런데 우리 늑대 양반은 좀 핀트가 빗나간 것 같더군.”
하은이 그에게 총을 겨눈다. 그가 히죽히죽 웃으며 한쪽 팔에 묶인, 녹이 잔뜩 슨 톱니바퀴를 들어올린다.
“이번에는 좀 경우가 다르지. 인간들이 인간들을 죽이고 싶어하는 거니까. 우리는 손을 빌려줄 뿐이야. 그게 핵미사일인지 뭔지처럼 온 동네를 황폐화시키는게 아니라면 이 정도는 봐줄만 해.”
그 자가 말한다. 서서히 그들을 랫킨 들이 둘러싼다.
“너희 인간들의 손에는 단지 충분한 무기가 쥐여지지 않았을 뿐이야. 창고에 처박아 놓고 있느라 말이지. 우린 단지 수단을 제공하는 것 뿐이라고.”
너무 불리하다. 저들의 수는 대략 삼십. 거기에 훨씬 인간보다 강력하고 민첩하다. 하은이 탈출구를 모색하지만 수가 보이지 않는다. 이들을 모두 돌파하고 둘 다 살아나가려면 에이다가 올때까지 버텨야 하는데, 가능할 것 같지가 않다.
“두려워 할 것 없다.”
그 순간, 교관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인혁도 그것을 눈치챈 듯 했다. 하은이 랫킨들을 둘러보는 척 하며 교관으로 시선을 옮긴다.
“네가 말하더라도, 저들은 알지 못할 것이다.”
마치 정부의 요원을 연상케 하는 검은색 선글라스와 양복, 무표정한 얼굴, 인종을 알 수 없는 생김새. 언제나처럼 그가 감정 없는 목소리로 말한다.
“저를 도와주실 건가요?”
“그렇다. 내가 너를 보호한다. 무질서와 혼돈의 전령들을 모조리 죽여라.”
교관의 말이 끝난다. 그의 형체가 더욱 뚜렷해진다. 이 정도로 뚜렷하게 보이는 것은 처음이다. 마치 손을 뻗으면 만질 수 있을 것 같다. 교관이 걸음을 옮겨, 그녀의 옆에 선다.
하은이 한쪽 손에 권총을, 다른 한쪽에 새로이 지급받은 프리미움으로 코팅된 나이프를 쥔다. 그녀의 옆에서 교관이 정확히 똑같은 자세를 취하는 것이 느껴진다. 누가 누구를 따라하는지 알 수가 없다. 인혁이 그 광경을 놀랍다는 듯이 쳐다본다.
“네가 혼돈이 되더라도, 네가 죽음이 되더라도, 질서를 지켜라!”
교관의 외침. 동시에 랫킨 중 누군가의 외침과 함께 그들이 하은에게 덤벼든다.
모든 것이 선명하게 보인다.
하은이 절도 있는 움직임으로 제일 앞에서 덤벼드는 여성 랫킨을 가볍게 어깨로 제껴낸다. 그녀가 휘두르는 둔기를 가볍게 피해내며 최소한의 동작으로 단검을 목덜미에 꽂아 넣는다. 일반 무기라면 재생해내겠지만 그녀가 지닌 무기는 프리미움으로 코팅된 나이프다. 치명상을 입은 랫킨이 바닥을 구른다. 다음으로 덤비는 놈의 손을 권총으로 쏴 무기를 떨어트리고 휘청거리는 그것의 무릎을 밟고 뛰어 오른다. 공중에서 아슬아슬하게, 그러나 확실히 랫킨의 무기를 피해낸다. 정확하게 그들 사이에 착지하는 하은의 손이 목덜미를 연달아 베어낸다.
그 움직임은 그 동안 하은이 머릿속에 그리고 있었지만, 단 한번도 스스로 따라잡지 못했던 완벽한 이미지에 가까웠다. 그녀가 아니라 그녀 안에 내재된 인형Genius 만이 단 한번 보여주었던 묘기에 가까운 움직임.
랫킨들이 시시각각 그녀에게 덤벼든다. 또 다시 효율성의 극치를 몸으로 실현하듯 움직이는 그녀. 하나 하나의 움직임마다 그녀, 그녀의 내부에 잠들어 있는 잠재력Genius, 그리고 교관the Man의 가호가 함께한다.
“죽어!’
랫킨 둘이 이미 당한 동료를 방패로 삼아 하은에게 접근한다. 그들의 일격은 피해냈지만, 다른 쪽에서 들어오는 공격을 막느라 그녀의 손에서 나이프와 권총이 떨어져 나간다.
“당황할 것 없다.”
하은이 교관의 말과 함께 두 놈 중 하나에게 달려든다.
“우리men가 너를 가호한다!”
교관의 목소리와 함께 하은이 랫킨의 정면으로 파고든다. 그녀의 손이 마치 총알처럼 랫킨의 복부를 향해 뻗어 나간다.
-푸억.
뭔가 터지는 소리와 함께 랫킨의 몸통이 박살 난다. 척추가 부러져 나가고, 피부가 찢어지고, 그 틈새로 내장과 살덩어리들이 마치 폭탄이라도 맞은 것처럼 파편이 되어 비산한다. 그 광경에 랫킨들이 주춤한다. 하은이 그 때를 노려 나이프를 주워 순식간에 두 마리를 더 처치한다.
“그냥 쏴버려!”
누군가의 말에 밀수 된 것이 틀림 없는 소음 기관단총이 그녀를 향한다.
“물러서지 마라!”
그녀의 옆에서 교관이 엄청난 속도로 기관단총을 든 랫킨에게 쇄도한다. 하은은 그와 한치의 차이도 없는 움직임으로 돌진한다. 총탄이 그녀에게 쏟아진다. 그 순간, 마치 교관이 하은의 팔을 잡고 들어올리는 느낌과 함께 나이프를 든 손이 그녀의 목을 가린다. 총탄이 나이프에 맞아 튕겨 나간다. 도탄이 하은의 어깨를 스치지만 랫킨이 그녀를 명중시킨 것은 그것 딱 하나뿐이었다.
나이프가 번개처럼 랫킨의 팔, 목, 그리고 배를 그어버린다. 놈이 비명을 지르며 쓰러진다.
“물러나라!”
리더의 말에 일제히 씩씩대며 물러나는 랫킨들.
“네놈, 정체가 뭐냐?”
하은이 대답하지 않는다. 솔직히 말하면 자신도 모르겠는 탓이다. 인혁은 더욱 놀란 표정으로 그녀를 지켜보고 있었다. 그녀가 권총을 다시 쥔다.
까드득, 하는 앞니를 가는 소리가 들린다. 갑자기 그들 중 하나가 목을 쥐고 쓰러진다.
“..?!”
마취 가스다. 하은의 정신이 순식간에 흐려진다. 그녀가 대응하기도 전에, 쓰러져버린다. 랫킨들 중 몇몇도 마취 가스에 의해서 쓰러지기 일보 직전이다.
“멍청한 것들.”
컨테이너 위에 있던 랫킨이 중얼거린다. 그가 들고 있는 허름한 가죽 자루에서 가스가 퍼져 나오고 있었다. 그가 컨테이너 밑을 내려다본다. 김인혁 대신 바닥에 핸드폰 하나가 떨어져 있다. 옆길걷기Stepping Sideways의 흔적이다. 그가 얼굴을 일그러트린다. 이제 이 자리에 언제 가루우 팩이 들이닥쳐서 그들을 찢어 놓을지 모르는 일이었다.
“뭐하나, 이 멍청한 놈들아! 늑대 떼거리한테 찢어발겨지고 싶지 않으면 얼른 움직여!”
그가 다른 랫킨들을 닥달하며 뛰어내려 하은의 몸을 한쪽 어깨에 들쳐멘다.
“…”
하은이 정신을 차린다. 악취가 코를 찌른다. 그녀는 어딘가로 끌려가고 있었다. 아직도 몸이 정상이 아닌지 시야가 어지럽다. 주위에서 랫킨들이 킥킥대는 소리와 부산하게 움직이는 소리가 들린다. 주위의 광경을 보건대 도시의 지하를 가로지르는 하수도에 들어와 있는 것 같았다.
“자아. 여기다, 여기.”
흉측하게 생긴 랫킨이 하은을 일으켜 세운다. 그들이 도달한 곳은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깊은 구멍이다. 그 안에서 바람이 불어나온다. 이상하게도 악취 같은 것은 전혀 없는 신선한 공기다.
“이 안에 뭐가 있는지 아나?”
당연하게도 하은은 대답하지 않는다.
“정말 안타깝군. 우리도 알면 너를 겁줄 수 있을텐데 말야. 우리도 모르거든.”
그가 즐겁게 말을 이어간다. 그가 밑을 보라는 듯 하은의 고개를 강제로 숙이고서는, 작은 철조각을 던진다. 한참을 기다려도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우리 중에 용서 받을 수 없을 만큼 큰 죄를 저지르는 자들이 있지. 그런 놈들은 죽이는 대신 이곳으로 끌고 오지. 던져버리는거야.”
하은을 겁주려는 듯하는 말.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목소리에는 자신이 모르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섞여 있었다. 몇몇 미친 랫킨들이 이곳을 탐험하기 위해 내려가 본 적도 있지만 돌아온 적이 없다. 마찬가지로 던져진 자들 중 아무도 돌아오지 않았다.
“자. 그럼 어떻게 할까. 던져줄까? 아니면 스스로 뛰어드실건가?”
그가 조롱하는 말투로 말하며 하은을 놔준다. 마치 해적선에서 처형당하는 포로가 된 느낌. 하은이 그 구멍을 내려다본다. 아까 던진 철조각이 바닥에 부딪히는 소리는 아직도 나지 않았다. 랫킨들의 시선이 어둠속에서 느껴지는 것 같다. 뛰어들지 않으면 갈기갈기 찢어 잡아먹을 것 같은 기세였다. 그녀라 한발자국 물러나자 작은 돌조각이 채여 구멍으로 떨어진다. 역시 아무런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무기도 없고, 아직도 시야가 어지럽다.
“뛰어라.”
교관의 목소리가 또 다시 하은의 귓가에 들려온다. 갑자기 랫킨들이 물러난다.
“뭐냐! 이… 이건…”
그녀를 잡고 있던 랫킨이 두려움에 떨며 그녀를 경계한다. 방금 전의 조롱하는 태도는 빠르게 사라지고 살의가 떠오른다. 그녀이 구멍을 등지고 선다. 랫킨들의 눈이 커진다.
“옭아매는 거미줄!”
“숨막히는 올가미!”
“위버의 하수인이다! 죽여라!”
그녀를 잡고 있던 랫킨이 손을 뻗는다. 그러나 그들이 하은을 잡기도 전에 그녀가 살짝 뒤로 물러난다. 마치 거꾸로 다이빙을 하듯 구멍 속으로 떨어지는 그녀. 시야가 어두워진다. 랫킨들의 외침이 서서히 사라진다. 끝없이 떨어지는 듯한 가운데서, 마치 누군가가 그녀를 받아 드는 듯한 느낌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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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i) 에서 계속.
마게맨 이놈이 자문료 안 내놓고 재밌는 소설쓰네. 스토리텔러볼트 올라가면 사딸라.
블랙 수트들을 우뜨케 생겼으려나... 신캐 멋지네요 - dc App
하은이 까칠해 - dc App
교관의 정체도 인상적 - dc Ap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