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더스크롤 빌런이 컨셉충을 만난 모양이네. 개인적으로는 '힘/근력 몰빵 사제' 같은 캐릭터를 하는 플레이어에게 성기사라든가 여타 종교적 근접 클래스를 하라고 했어야 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하지만, 뭐 그건 GM과 PL이 알아서 할 일이지.


그걸 보다 보니, 나도 옛날 생각이 나서 글을 쓰네.


'힘/근력 몰빵 사제' 같은 건, (캐릭터 메이킹 당시 합의되지 않았더라면) 얄짤 없이 트롤에 가까운 행위지. '사제' 클래스 자체는 신성 주문 / 회복 주문을 쓰라고 만든 클래스잖아? 그래서 (이상한 아키타입 적용 안하면) 갑옷과 무기 착용도 상당히 제한되는 클래스이고 말야. PL 전원이 빡겜을 추구하는 상황에서 이런 트롤짓은 십중팔구는 굉장히 심각한 민폐행위로 여겨지고 있어.


여기서 생각해 볼 점은, 엘더스크롤의 '힘/근력 몰빵 사제'의 플레이어가 대체 왜 '힘/근력 몰빵'을 '사제'에 가져다 붙이려 했냐는 점이야. 단순히 '높은 힘/근력을 이용해 강력한 근접전'을 하고 싶었다면 '사제'가 아닌 '전사' 클래스를 골랐을거야. 합리적으로 따져 볼 때, '높은 힘/근력'을 가장 효율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클래스잖아?


하지만, 엘더스크롤 빌런의 플레이어는 '높은 힘/근력'을 제대로 활용하기 힘든 클래스인 '사제'를 굳이 골라서 험난한 플레이를 자청했지. 뭐 모두들 동의했기에 플레이는 진행되고 있겠지만, 그 '왜?' 의문은 남아있지.


하지만 답은 쉽게 내릴 수 있어. 그런 플레이어들이 없는 것은 아니니까. 맨 처음 언급했던 '컨셉충' 이라는 단어로 이러한 플레이어를 정의내릴 수 있어. 빌드 상의 효율, 최적의 전투 택틱보다는 PL의 내면의 로망이나 멋을 더 중시하는 이들을 일컫는 단어지. 캠페인 분위기에 따라 이러한 컨셉 플레이어들은 트롤이 될 수도 있고, 좋은 플레이어가 될 수도 있어. 그 플레이어를 까는건 아냐. 다만, 내 옛날 플레이가 생각이 나서 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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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는 20XX년, 지금과도 같은 약간 추운 날이었어. 그 때 나는 모 룰로 모 캠페인을 돌리며 마스터링을 하고 있었어. 그런데, 이 때도 나는 한 사제 클래스의 플레이어 때문에 골머리를 앓고 있었어. 이 플레이어는, 조금 특이한 방식으로 플레이를 했어.


이 플레이어는 초반에 회복 주문을 남발했어. 마치 자신의 주문 슬롯을 빠르게 비워버리려는 듯이 말야. 다른 플레이어들의 경미한 상처에도 높은 코스트의 회복 주문을 남발했지. 다른 플레이어들이 '아꼈다 쓰자' '회복 주문 낭비에요' 라는 등의 말로 설득하려 했지만, 이 플레이어는 자신의 파티 내 위치에 대한 태클을 받아들이지 않는 옹졸한 플레이어였지. 


그래서, 회복 주문을 전부 써버리면? 이 플레이어는 '투척용 단검'을 던져대기 시작했어. 물론 사제가 던져대는 조잡한 투척용 단검은 거의 아무런 위협도 되지 않았어. 회복 주문을 다 써버리고 이쑤시개나 던져대는 사제 캐릭터는 전투 중에 거의 신경을 안 써도 될 만큼 쓸모가 없었거든.


참 재미있는 점은, 이 사제 플레이어는 이런 '무기력한 상황'에서 더 신이 나 보였어. 다른 플레이어들이 '사제' 캐릭터를 빼고 전투 택틱을 짜는 슬픈 상황에서, 이 플레이어는 적극적으로 선언하고, 적극적으로 RP를 하더라고.


"저는 한 발짝 뒤로 물러서며 빠르게 투척용 단검을 흩뿌립니다.(뒤로 한 칸 이동 후 투척용 단검 1개 투척)"


"저는 빠르게 옆으로 구르며 품 안의 단검을 번개처럼 쏘아냅니다.(우측으로 세 칸 이동후 투척용 단검 1개 투척)"


나는 솔직히 이해가 가지 않았어. 대체 뭘 하는지도 모르겠고, 어디에서 즐거움을 느끼는지도 모르겠었거든. 그냥, 회복 주문 남발하고 씹트롤링하는 것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었거든.


그러던 어느 날, 나는 그 이름도 유명한 '월희'를 접하게 되었어. 그리고, 나는 무릎을 내리쳤지. 이 플레이어가 겹쳐져 보이는 캐릭터를 발견했던거야. '사제' 이면서 '투척용 단검'을 뿌려대는 캐릭터. 시엘.


이 '시엘' 캐릭터는, 성직자이면서도 투척용 단검을 던지며 전투를 벌이는 캐릭터였어. 뭐 월희 본 사람들은 알겠지만, 수녀복을 입고 날아다니면서 '흑건'이라는 투척용 검을 던져대는 캐릭터잖아?


그리고 내 '사제' 플레이어 또한, 플레이 전에 지속적으로 '월희'에 대해 이야기를 했었거든. 문제는 우리 팀에 월희를 본 사람이 없었다는 것이었지만. 어쨌든, 나는 확신하게 되었어. 이 플레이어가 '시엘'을 머릿속으로 그리며 자신의 사제 캐릭터를 굴리고 있었다는 것을 말이야. 그에게 회복 주문은, 자신의 캐릭터를 자신의 캐릭터 롤에 못박아두는 봉인구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었던 것이지.


나는 결심했어. 그 당시의 나는 굉장히 착했거든. 지금같았으면 그냥 내쫓든가, 클래스를 변경시켰겠지만, 나는 그의 욕망과 팀원의 행복을 모두 챙기기로 결심했지.


그 다음 플레이부터, 나는 회복 물약을 엄청나게 뿌려대기 시작했어. 모든 몹들은 (죽어서 PC들에게 넘겨줄) PC 레벨의 적정선에 있는 회복 물약을 소지했고, '비상용'이라는 명목으로 캐스터 클래스들도 쉽게 사용할 수 있는 투척용 무기(물론 단검 종류)를 많이 드랍했어. 팀원들은 다소 의아해했지만, 군말없이 따라왔지.


특히 그 '사제' 플레이어는 더 신이 나 보였어. 자신이 회복 주문을 아끼고 단검 투척 컨셉질을 더 마음 놓고 하게 되었으니까. 나아가, 실제로 딜까지 꽂을 수 있었거든. 내가 준 투척용 단검 스펙이 괜찮았거든. 그리고 캠페인 후반부, 아까 언급했던 '시엘'의 결전 병기 비스무레한 창작 무기까지 쥐어줬을 때, 눈이 뒤집힐 정도로 좋아했어. (경갑옷 미만의 방어구를 착용한 클래스만 사용가능한 마개조 드워프제 파일 드라이버...)


여튼, 나는 그런 식으로 팀내 갈등을 봉합하고 그의 컨셉 딸딸이를 열심히 도와줬고, 캠페인을 끝냈을 때 사제 플레이어는 정말 즐거웠다며 나와 다시 플레이하고 싶다고 말했어. 물론 다시 같이 하지는 않았지만.


어쨌든, 엘더스크롤 빌런에게 말하고 싶네. 그 '힘/근력 몰빵 사제'는 분명 자기가 말하지 못한, 모티브를 따온 애니메이션 캐릭터가 있을거야. 그걸 물어보고, 거기에 맞춰준다면 정말 기절할 것처럼 좋아할거야. 물론, 그의 '힐러'로서의 역할은 미흡한게 뻔하니까, 그에 대응해서 회복 포션을 넉넉하게 챙겨주고 그러면 다른 플레이어들도 큰 불만을 갖진 않을거야.


요약해보자면, '컨셉충'은 '성능'보단 '간지'를 추구한 이들이니까, 굳이 스펙 상 보정을 해주기보다, 그의 컨셉질을 잘 맞춰주는게 중요하단거야. 마스터링 잘 하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