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서부터 이야길 해야하나...


COC는 내가 세번째로 접해보는 TRPG룰이었음.

꼬꼬마 시절에 접해본 D&D 클래식이 첫번째, 합본팩으로 딸려나온 크리스타니아가 두번째.

근데 난 솔직히 TRPG룰북이래서 만진 것이 아니라... 그냥 그 전부터 크툴루 신화랑 러브크래프트 소설들을 좋아했음.

만악의 근원(1)인 판타지 라이브러리 총서에서 접한 뒤 부터였지. 

2009년에 황금가지에서 선집을 발간하기 전 까지 많은 일들이 있었지만 그건 생략하기로 하고.


그러던 와중에 만악의 근원(2)인 윳쿠리 TRPG 영상을 보게 된 것이다. (그 씨발 영상 제작자새끼들 지금 생각하면 아주 이가 갈린다.)

니코니코동화는 예전부터 쭉 드나들던 곳이었고 본인도 어느정도 일알듣이라 재미있게 봤어.

꼬꼬마 시절 친구들이랑 플레이 해본 이력이 있어서 추억을 되새기는 기회도 됐고.

그리고 그 시절... 2012년은 지난해 졸업한 대학교 조교로 일할 때라 시간이 아주 많이 남아돌았다.

그래서 해외 웹에서 구한 COC 5판을... 무슨 생각이었는지는 모르겠지만 "편역"하기 시작햇다.


지금 생각하면 졸렬하기 짝이 없는 작업이었다.

난 토익공부라곤 해본적도 없는 영어장애인이었고 일본어도 듣는것만 됐지 읽는건 무리였다.

그래서 중요한 핵심 룰은 다른 사람들이 번역한 걸 참고하고 나머지는 사전 펴놓고 번역기 돌려가며 한 문장 한 문장 어렵사리 작업했다.

다행히도 영어판과 일어판 두가지 자료 모두 구할 수 있었기 때문에 영어가 막히면 일어로 돌아가 번역기에 붙여넣고 청음을 통해 중역하기도 했다.

그래서 난 지금까지도 이 작업을 "편역"이라고 부르지 도저히 번역이라고 못한다. 

몬스터와 신화생물 데이터는 물론 세계관 데이터조차도 싣지 못했다.

어찌보면 본문 번역보다 쉬웠을 테지만, 그냥 세션에 필요한 데이터만 골라 그때그때 번역하는 편이 더 편할거라 생각했다.


그래서 어느정도 완성이 되어갈 무렵, 아직 졸업하지 못한 동기랑 후배들을 모아 학교에서 세션도 열고 했다.

KP는 내가 맡았다.

한 네다섯판 만에 망하긴 했지만.


그리고 또 무슨 생각이었는지... 작업물을 네이버 블로그에 업로드하고 말았다.

그 당시 나는 아마 두번다시 세션을 열 수 없을거라 생각했던 것 같다.

조교일 그만두고 나면 구직하느라 정신 없을테니 TRPG 세션은 도저히 무리겠다 싶었고.

OR은 존재는 알고 있었지만 어디서 열고 어떻게 참가해야하는지 몰랐으니까.

그동안 힘들게 작업해온 물건이 이대로 쓸모없게 되어버리는 것이 더 싫었던 것 같다.


하지만 내 작업물 때문에 영 좋지 않은 일들이 있었던 것 같다.

셸먼님이 내 블로그에까지 찾아와 몇가지 지적을 해주기도 했고.

그때 난 구직 스트레스가 너무 심해서 작업을 이어나갈 여유가 없었다. 

그래서 무책임한 멘트 몇마디 남기고 룰북을 삭제해버렸다.

그저 세션 몇번 굴려본게 전부인 러브크래프트 빠돌이로선 끝맺을 수 있는 작업이 아니었던 거지.


그렇게 3년이 지났다.

초여명이 7판을 정발한다는 소식을 들었고 나는 다시 TRPG 판에 기웃거리기 시작했다.

우연히 인력사무소를 알게 되고 챗방에서 늅늅 거리다 다시금 COC를 플레이할 수 있었는데...

거기서 내 작업물 파일을 다시 보게 되었다.


자의식 과잉에 자격지심에... 어려운 말 쓰기 싫으면 그냥 병신이라고 해도 좋다.

난 그 작업물을 거기서 다시 보고 손이 다 떨리더라.

어떤 기분이냐면, 한 3년 전에 버린 애가 팔다리 병신 되어서 지하철 역에서 앵벌이 짓 하는 걸 본 느낌이랄까. 

그리고 옆에서 누군가 다가와 귓가에 이렇게 속삭이는거지.

"니 애야 병신아."


ㄱㅅㅇ 사장님. 죄송합니다. 4년전의 저는 COC가 한국에 정발될 줄 꿈에도 몰랐어요.

이렇게 비는 악몽도 꾼 것 같다.


그래봤자 퍼질만한 곳은 다 퍼져서 잘 써먹고 있겠지.

내가 지워달라 빼애애액 해봤자 지워줄리 만무하고.


그래도 혹시 모르니 한번 부탁해본다.

내가 잘못했어!!!

그 병신같은 룰북 좀 제발 지워주라 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