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3화 – “변신 이야기”



“…대신 겨우 한두방울로 만족할 거라고 생각하지 마요.”


언젠가 본 광경. 고풍스럽게 장식된 예술가의 침실. 부드러운 침대 위에 앉은 하은이 살짝 끄덕인다. 누군가 그녀의 곁에 있다. 한때 사람이었던 피를 탐하는 괴물. 민려가 서서히 고개를 숙인다. 하은의 목덜미에 민려의 차가운 입술이 닿는다. 


그 차가움에 하은이 살짝 움찔한다.


“하은 아가씨, 익숙하지 않은가보네?”


“이런 건… 그것보다 차가워서.”


“걱정마요.”


민려가 미소 지으며 하은의 눈을 들여다본다. 하은이 그녀의 시선을 살짝 피한다. 민려가 하은이 이런 일에 전혀 익숙하지 않다는 것을 알아챈다. 그녀가 장난기 있는 표정으로 하은의 턱을 쓰다듬으며 말한다.


“하은 아가씨, 부끄러워요?”


“…”


그녀가 아주 살짝, 모르겠다는 표정을 짓는다.


“맘에 들어.”


민려가 만족한 표정으로 다시 하은의 목을 핥는다. 그리고, 그녀의 이빨을 하은의 목덜미에 박아 넣는다.


“읏…”


하은이 몸을 떨며 신음한다. 무딘 바늘에 찔린 것 같은 감각과 함께, 피부 위로 흐르는 자신의 피, 차가운 입술로 그것을 마시는 민려, 비릿한 쇠의 냄새. 민려가 그녀의 허리를 감싸 안으며 그녀의 피를 탐닉한다. 두 사람의 피부가 맞닿는다. 차가운 민려의 몸에 점점 온기가 돈다. 


“아…”


하은이 눈을 감으며 한숨 같은 신음을 내뱉는다. 고통은 그대로 남아있지만, 그녀의 허리에서부터 무엇인가 알 수 없는 감각이 올라온다. 부드러운 무엇인가가 척추를 따라 민감한 부분을 훑는 느낌. 그 느낌에 하은의 몸이 반사적으로 반응한다. 그녀의 등이 활처럼 휘고, 그런 모습을 즐기듯 민려가 그녀를 더욱 꼭 끌어 안는다. 처음 느껴보는 감각에 전신의 근육이 긴장한다. 민려가 부드럽게 그녀의 팔을 끌어당겨 자신의 허리에 감는다. 민려의 입술 한 켠으로 그녀의 피가 살짝 새어 나온다. 민려가 하은의 등을 부드럽게 어루만진다.


“으..읏…”


피를 빨리는 생소한 감각. 무엇인가에 침범 당하고, 수동적으로 자극 당하는 그 느낌에 하은이 전율한다. 서서히 민려가 피가 흐르는 목의 상처를 핥는다. 그녀가 만족한 표정으로 입술을 뗀다. 몸에서 순식간에 긴장이 풀린 하은이 아찔한 감각과 함께 쓰러질 뻔 하지만 그녀를 민려가 부드럽게 받아낸다. 그녀의 긴 흑발이 하은의 어깨 위에 드리워진다.


“어때요?”


하은이 숨을 몰아 쉬며, 그녀의 품에 안긴 채 간신히 고개를 끄덕인다.


“나쁘지… 않네요.”


민려가 만족스런 미소를 지으며 그녀를 끌어당겨 키스한다. 하은이 놀란 표정을 짓지만, 힘이 풀린 듯 눈을 감으며 그녀가 리드하는 것을 받아들인다. 민려의 입 안에 남은 몇 방울의 피가 섞여 들어 하은의 혀를 자극한다.


 “여자랑은 처음이죠? 어때요?”


하은이 잠깐 머뭇거린다. 민려가 장난기 있는 웃음을 지으며 속삭인다.


“하은 아가씨, 설마 아예 처음이에요?”


하은이 살짝 고개를 끄덕인다.


“흐음…”


민려가 붉게 젖은 입술을 만지며 말한다. 


“그래요?”


그녀가 힘없이 안겨 있는 하은의 뒤로 돌아가서, 그녀를 뒤에서 안는다. 어느새 따뜻해진 그녀의 몸이 하은의 어깨를 감싼다. 그녀가 부드러운 손길로 하은을 쓰다듬어준다. 하은은 거부하지 않는다. 육체적 긴장뿐만 아니라, 정신적 긴장까지 풀리는 것이 어떤 느낌인지 거의 잊고 있었다. 편하다, 라는 느낌.


이런 경험은, 너무 오랜만이었다. 특히 지난 5일간을 생각하면 더욱. 그녀는 요원이 되기 전에는 항상 일상에 쫓겨 살았고, 된 이후에는 희로애락의 감정과 점점 괴리되고 있었다. 그런 그녀가 이런 원초적인 일을, 그것도 인간도 아닌 뱀파이어와 겪고 있었다.


“그런 말을 들으니까 맘에 드네. 원래는…”


민려가 다시 그녀의 몸을 꽉 껴안는다. 


“가축처럼 다뤄주려고 했는데.”


그녀가 간드러진 목소리로 하은의 귀에 속삭인다.  하은이 뜨거운 한숨을 내뱉는다. 또 다시 그녀의 입술이 하은의 목덜미를 덮친다.



무엇인가 이상하다.



점점 자신의 감각과 시야가 스스로의 모습과 괴리된다. 자신이 아닌 누군가가 느낀 것을 체험하는 듯한 느낌. 이내 그 느낌마저 사라지고 그 모습을 관찰하는 느낌밖에 들지 않는다. 민려의 품에 안긴 자신의 모습이 보인다. 그녀가 민려와 얽혀 든다. 그러나, 이제 더 이상 아무 것도 느껴지지 않는다.


이건-




“삑-“


흔들리는 초음속 수송기 안에서 하은이 눈을 뜬다. 새까만 두개의 후퇴익이 안쪽으로 휘어 기체 후방에서 연결되어 있는, 마치 영화에서나 나올 것 같은 디자인의 수송기. 동체의 뒷 부분이 있어야 할 날개의 사이는 비어 있었다. 대신 그 공간에 작은 강하용 캡슐이 탑재되어 있었다. 캡슐 안에서 하은이 내부의 스크린을 통해 상태를 점검한다.


내장 병기 잔량, 배터리 충전량, 센서 및 보조 모터 가동률, 위성과의 싱크로. 마치 하드 수트나 이터레이션 X가 운용하는 메카닉의 스테이터스에 어울릴 법한 정보들이다. 그러나 모니터를 빼곡히 채운 숫자와 그래프, 그리고 암호화된 텍스트는 하드 수트도, 하은이 탑승해 있는 캡슐에 관한 것도 아니다.


바로 하은 자신에 관한 숫자들이다.


“ETA, 2 Minutes.”


하은은 대답하지 않는다. 어차피 파일럿도 자신이 깨어 있는 것을 알고 있을 것이다. 그녀가 자신의 팔을 내려다본다. 사람의 팔과 전혀 다름이 없다. 그러나 인공 피부 아래는 전혀 그렇지 않다. 이터레이션 X가 제작한 마이크로 서보모터, 프리미움과 탄소 나노튜브로 만들어진 골격, 그리고 프리미움 피하장갑. 거기에 더해 프로제니터의 최신식 기술을 적용한 재생성 생물 강철로 만들어진 인공 근육, 몇배는 빠른 반사신경을 지닌 신경망, 나노위브 피하조직, 자가수복용의 나노머신 혈액까지. 


“ETA, 1 Minute.”


캡슐안의 내장 패널들이 닫히기 시작하며 투하 준비를 알린다. 하은이 손을 쥐었다가 편다. 팔의 내부로 실린더와 서보모터의 움직임, 그리고 그것을 보조하는 인공 근육의 수축이 느껴진다. 손가락 끝에 장착된 센서가 인간의 손과는 비교를 불허하는 정확성으로 공기의 미세한 떨림을 전달해온다.


그녀는 유니언에게 감사하고 있었다.


지난 몇 달 간의 그녀의 기억은 확실하지 않은 곳이 너무 많았다. 하지만 그녀가 네판디, 그리고 내부의 배신자들이 꾸민 술책으로 인해 일련의 사건에 말려들게 되었다는 것은 확실했다. 보조요원에 불과했던 그녀는 살아남기는 했지만, 끔찍한 중상을 당하고 말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니언은 그녀의 잠재력을 높게 평가했으며, 그녀를 말 그대로 부활시켜 주었던 것이다. 그것도 최신식의 기술을 남김없이 사용해서. 



최소한 그녀가 알고 있기로는, 아니, 그녀에게 알려져 있기로는 그랬다. 



감사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번 임무에서 죽더라도 -그럴 확률은 너무나도 적지만- 그녀는 만족할 것이다. 어차피 죽을 목숨이었으니까.


딱 한가지 마음에 걸리는 것이 있다면 간간히 찾아오는 매우 현실 교란적인 꿈, 아니면 환영들이다. 이미 하은은 이러한 꿈들에 대해 그녀의 컨벤션 내 직속 감독관이자 멘토인 류 국장에게 보고한 바 있었다. 직접 그녀의 ‘부활’을 감독한 그는 하은과 함께 그러한 일들에 대하여 충분히 의논 하였으며 사건의 충격으로 인해 무의식 깊숙한 곳에서부터 올라오는 일종의 기억 피드백으로 결론지었다. 그녀처럼 컨센서스 내에서 허용되는 한계까지 개조된 요원, 그 중에서도 큰 사고를 겪었던 이들에게 종종 있는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그러한 꿈들이 굉장히 불쾌했다. ‘예언’ 같은 것을 담은 환영이나 방금의 꿈 같은 일을 스스로 겪었다고는 생각하고 싶지도 않았다. 만약에 그랬다면 속죄를 위해 아무리 자살에 가까운 임무라도 뛰어들 준비가 되어있었다.


“10, 9, 8-“


아무런 설명도 없이 카운트 다운이 시작된다. 만약에 몸이 근질근질 하다는 말이 그녀에게 적용될 수 있다면, 바로 이 때일 것이다. 수송기가 급격하게 속도를 줄이면서 진동이 심해진다.


철컥, 하는 금속성의 소리와 함께 그녀가 든 캡슐이 투하된다. 




신생 아말감, MSF-44 아말감의 지휘관 진 그레인저가 오늘 전입이 예정된 요원의 심리검사 결과를 읽고 있었다. 스스로의 안위를 신경 쓰지 않는 태도, 간헐적인 감정의 격화, 현실 교란자 및 테크노크라틱 유니언을 적대하는 존재들에 대한 증오에 가까운 감정 등. 최전선에서 최흉의 병기로 활약하는 자들에게는 다 이유가 있는 법이다.


그녀가 한숨을 쉬며 최고급의 가죽 의자에 몸을 파묻는다. 


이 아말감은, AP 심포지움의 감독관인 류 국장이 여러 연줄을 동원해 신설한 조직이다. 그레인저는 자신이 설마 아말감 지휘관으로 임명 되리라고는 생각도 하지 못했다. 그녀는 오더 오브 헤르메스의 분파에서 ‘전향’한 자다. 이런 인원들은 아무리 유니언에 잘 적응한다 하더라도 고위직까지 올라가는데 있어서 불리하다. 그러나 류 국장의 영향력에 힘입어 아이보리 타워는 그녀를 지휘관으로 임명했다.


물론 유니언은 자선단체가 아니고, 류 국장도 자선사업가도 아니다. 이 아말감의 조직도를 잠깐만 살펴보면 그 의도는 명확하다. 지휘관은 자신이며, 부관은 그녀의 절친한 동료인 에이다 웨더스다. 그리고 그 휘하에는 AP-5 아말감의 마지막 잔존 병력이라고 할 수 있는 노하은까지 포함되어 있다. 


최근 의문의 사보타주로 인해 중단된 레콘키스타 작전, 그와 동시에 해체된 AP-5 아말감, 격리 큐브에 수감된 웨더스 소령과 백 사장, 웨더스가 정체불명의 병력과 전투하는 모습을 마지막으로 목격한 에이다, 마지막으로 네판디로 판명되어 쫓겼으나 살아남은 노하은. 의문투성이다. 그런 인물들이 모두 포함되어 있다. 거기에 현장 임무를 담당하는 아말감임을 감안해도 굉장한 수준의 지원까지.


류 국장이 그레인저에게 전달하고자 하는 바는 명확하다. 에이다를 ‘처리’하지는 않을 테니 입단속을 하라는 것이다.


“그레인저 감독관님.”


그녀의 방 안에 갑자기 푸른 빛으로 엮인 홀로그램이 나타난다. 양복을 입은 남성의 모습을 한 그 홀로그램이 공손하게 말한다.


“작전 개시입니다.”


그레인저가 손을 휘두르자 그녀 앞의 테이블이 여러가지 화면을 띄운다. 그 중 하나는 노하은이 탑승한 캡슐의 내부 카메라다. 그녀는 현실교란적 유물의 밀수가 이뤄지는 현장을 습격하여 유물을 회수하는 임무를 맡은 상태였다. 어차피 그레인저가 간섭할 권한은 지금으로서는 없다. 아이보리 타워가 그녀를 MSF-44 아말감에 전속 시키기 전에 마지막으로 내린 명령이니까. 기껏해야 상황이 제대로 돌아가지 않을 때를 대비해 예비 병력을 준비하는 정도다.


“…커피나 좀 가져다 줘, 노먼.”


“네, 감독관님.”


홀로그램이 사라진다. 오더 오브 헤르메스 전향자, 클론 출신 부관, 전신 개조 의체 요원이 있는 마당에 아말감의 중앙 AI가 멀쩡할리가 없다. 노먼은 이터레이션 X가 오토크토니아의 컴퓨터Computer를 재현하기 위한 노력의 실패작이다. 정확히는 실패작이라기 보다는 부족한 작품에 가깝지만. 노먼은 -대체 왜 필요한지는 모르겠지만- 일반적인 AI와 달리 차원과학Dimensional Science 기술이 들어간 AI다. 그 영향인지 AI라고 하기에는 이상한 면이 종종 보인다. 예를 들자면, 노먼은 가능한 경우 항상 집사 형태의 홀로그램을 대동하고 나타난다. 심지어 커피를 배달할 때도 그렇다.


위잉-


“가져왔습니다.”


문이 열리는 소리와 함께 홀로그램이 들어온다. 홀로그램의 손바닥에는 커피잔이 놓여 있었다. 그러나 자세히 보면 홀로그램의 손바닥 안에는 소형의 무소음 드론이 감춰져 있다. 커피잔은 그 위에 놓여있는 것이다.


“고마워.”


그레인저가 잔을 집어 든다. 그와 동시에 스크린이 작전개시를 알린다. 권한 문제를 차치하고서라도 그레인저는 작전에 간섭을 할 생각이 별로 없었다. 현실교란자들을 베이스로 하여 만든 히트마크인 아틀라스 시리즈의 성능을 생각해보면, 계몽된 정신을 지닌데다가 의체 기술의 극으로 강화된 요원이 이 정도 임무에 실패하는 것은 드문 일이었기 때문이었다.




“확인했나?”


어두운 폐 공장. 고철로 팔기도 곤란한 몇 대의 기계를 제외하면 서류 뭉치나 잡다한 기자재, 그리고 건물을 지탱하고 있는 콘크리트 기둥이 전부다. 조명조차 없는 그 공간에 두 집단이 마치 대치하듯 서있었다. 그 사이로는 회색의 돌로 만들어진 큰 상자가 하나. 상자를 열고 그 안에 있는 무언가를 확인하던 사내가 끄덕이며 일어선다.


“맞군.”


그가 러시아 억양의 영어로 대답한다.


“그럼 거래 대금은?”


“원하시는대로.”


남자가 끄덕이며 일어서자 그의 일행이 검은 수트케이스를 들고 다가온다.


“잠깐.”


누군가가 외친다. 역시 러시아식 억양을 지닌 여성의 목소리다.


“뭐냐?”


그러나 대답을 할 필요는 없었다.


“쐐애액-“


공기를 찢는 날카로운 소리와 함께 검은색의 유선형 캡슐이 공기를 가른다. 엄청난 충격과 함께 캡슐이 폐공장의 천장을 뚫고 들어간다. 부서져가는 건물이 그 충격으로 인해 흔들린다. 캡슐이 널찍한 공장의 한복판에 충돌하며 콘크리트 바닥을 박살낸다. 몇몇 기계들이 박살 나며 사방에 파편을 튕긴다. 유물을 거래하고 있던 자들이 혼비백산하며 기둥 뒤로 숨는다. 캡슐은 바닥을 박살내기는 했지만 돌로 만들어진 상자는 전혀 손상시키지 않았다. 오히려 박살난 바닥을 타고 캡슐 근처로 미끄러져, 마치 캡슐이 상자를 보호하는 모양새가 되어있었다.


“치익-“


열로 달아오른 캡슐이 열린다. 그 안에서 하은이 그 안에서 걸어 나온다. 의안의 내장 HUD가 폐공장 안의 현실 교란자들의 위치를 표시한다. 그들이 발하는 물리법칙의 교란의 흔적을 데이터베이스와 교차 검증하여 우선순위가 계산된다. 강력한 현실 교란자들은 몇 되지 않는다. 지원 병력이 필요 없다고 판단한 그녀가 입을 연다. 


“항복을 권고한다. 항복하는 자에게는 자비로운 처분을 고려할 수 있다.”


그녀가 감정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차가운 목소리로 말한다. 


마치 대답이라도 하듯 기둥 뒤에 숨은 누군가가 손으로 허공에 복잡한 도형을 그리기 시작한다. 기계의 설계도를 닮은 그것이 번쩍, 하고 빛난다. 동시에 버려진 기계들이 분해되기 시작하더니 공중으로 떠오른다. 부품들이 공중에서 저절로 기괴한 소리를 내며 펼쳐지고 서로 연결되며 변형된다. 마치 창처럼 길게 변형된 것부터 원래부터 날카로운 부품까지 수십개의 ‘탄환’이 하은을 공중에서 노린 채로 떠있던다. 


누가 봐도 비현실 그 자체인 마법Vulgar Magick. 저런 방식으로 싸우는 현실 교란자들은 싸움을 오래 지속하지 못한다. 패러독스가 닥쳐오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망설이지 않는 이유는 단 하나다. 패러독스라는 위험을 감수하면서까지 전력을 다하지 않으면 그들을 기다리고 있는 것은 확실한 죽음이기 때문이다.


“협상 결렬이군.”


하은이 조용히 중얼거린다. 동시에 HUD에 10:00이라는 카운터가 뜬다. 09:59, 09:58, 계속 숫자가 줄어간다. 그들에게 패러독스가 닥쳐오는 것처럼, 컨센서스가 허용하는 내에서 최대한도로 개조된 하은의 신체 역시 최대 출력으로 활동하게 되면 통계학적으로 불가항력이라 여겨지는 오류와 기능의 셧다운, 인공기관의 거부반응, 그리고 과도한 피드백에 시달리게 된다. 여러가지 기능을 셧다운 시킬수록 작전 가능 시간은 늘어나고 통계학적 불가항력 또는 거부반응의 확률도 줄어들지만, 전투력 역시 줄어든다. 그녀의 신체 내에는 이른바 라플라스 억제기라 불리는, 의체의 각종 기능에서 발생하는 노이즈를 최소화시키는 국지 현실망Matrix이 설치되어 있지만 그것도 길어야 10분 정도다. 


한쪽은 패러독스, 한쪽은 통계학적 불가항력이라는 칼날이 목을 죄여오는 가운데 싸우는 셈이다.


그녀의 말이 끝나자 마자 엄청난 속도로 수십개의 창과 칼날, 그리고 탄환이 하은을 덮쳐온다. 그러나 그것보다 몇배는 빠른 속도로 하은이 움직인다. 그녀의 옷이 번쩍인다. 사방으로 빛을 산란 시켜 그녀의 모습을 흐리게 보이게 하는 디스플레이서 슈트가 그녀를 조준하기 어렵게 한다. 몇 개나 되는 창을 피해낸 그녀가 순식간에 기둥 하나에 접근한다. 그녀의 어깨 위로 불덩이가 스쳐 지나간다. 그녀가 콘크리트 기둥 뒤에 숨어 있는 자에게 쇄도한다. 그자의 몸은 푸른 색의 옅은 안개같은 것에 둘러싸여 있었다. 엔트로피와 무질서의 방패Ward. 하은의 손이 그 안개를 뚫고 들어간다. 그녀의 인공 피부가 순식간에 변색되고 벗겨진다. 그러나 그 정도의 방어로는 그녀를 막지 못한다.


“콰직-“


그녀의 손이 가슴을 꿰뚫어버린다. 심장이 파열되고 구멍 난 폐가 쪼그라든다. 그는 신음도 내지 못하고 절명한 채 그대로 쓰러져버린다. 그러나 하은은 죽어버린 시체 따위에는 아무런 감상도 가지지 않고 바로 다음 표적을 향해 뛰쳐나간다. 기계로 된 그녀의 손등이 열린다. 그 안에서 와이어가 튀어나오며 또 다른 자의 목을 감는다. 와이어를 감싼 형상기억금속이 압력에 반응하며 본래의 모습인 칼날로 변해 그의 목을 거의 잘라내다시피 한다.


“콰앙!”


갑자기 허공에서 불기둥이 그녀를 내려친다. 화염과 연기가 피어 오르고 살과 금속이 타는 냄새가 진동한다. 마치 화산의 아가리 같은 그 광경. 밀수에 참여했던 자들이 경계하는 눈빛으로 그 광경을 쳐다본다.


연기가 서서히 걷힌다.


“위잉-“


아주 작은, 기계의 작동음.


연기 안에서 하은이 걸어 나온다. 그녀의 디스플레이서 슈트는 불타버렸지만 하은 본인은 멀쩡하다. 아니, 완벽하게 멀쩡하지는 않다. 그녀의 한쪽 눈가에서 연기가 피어 오른다. 그 안에서 붉은 색으로 빛나는 의안의 눈동자, 불탄 인공 피부, 그리고 푸른 빛을 띈 그녀의 인공 골격이 드러난다. 그 눈동자는 유니언을 방해하는 모든 것에 대한 증오로 불타고 있었다.




“똑, 똑.”


“들어오세요.”


문을 열고 들어오는 것은 하은이다. 옷은 새 것으로 갈아입은 차였지만 불타버린 인공피부로 인해 아직도 내부 프레임이 살짝 드러나 있는 부분이 보였다.


“노하은 요원.”


하은이 그레인저의 책상 앞에 선다. 


“예전에 만난적이 있는데, 기억나나요?”


“죄송합니다.”


“아니에요, 요원 잘못은 아니니까.”


그레인저는 매우 꺼림칙한 느낌을 받고 있었다. 아무리 인사 한번 나눈 사이라지만, 전도유망한 신입 요원이 원래 몸이라고는 남아있지 않을 정도로 개조되어 자신의 지휘 하에 들어온 것이다. 그레인저 본인도 사고로 인해 의수를 이식 받았지만 이 정도는 아니었다. 기억이나 성격도 그렇다. 정말 기억을 잃은 것인지, 아니면 소셜 컨디셔닝 중에 기억을 지워버린 것인지 그레인저로는 알 수 없었다. 성격도 예전보다 더욱 트래디션에 소속된 메이지가 생각하는 NWO요원의 이미지에 가까워졌다. 


대체 무슨 일이 있었길래 사람을 근본부터 뒤엎는 듯한 처리를 한 것인지, 그녀로서는 상상만 할 수 밖에 없었다. 추리를 해보려 해도 증거가 절대적으로 부족하다.


“MSF-44 아말감에 온 걸 환영해요. 작전은 잘 되었더군요.”


“예. 그렇습니다.”


“오늘은 쉬세요. 시간이 늦기도 했고. 자세한 이야기는 내일 하죠.”


“정비를 하라는 말씀이십니까?”


그레인저가 잠깐 자신이 강화된 요원과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잊었음을 깨달았다. 마치 에이다를 처음 만났을 때의 느낌이다.


“네, 그렇게 해요. 요원 전용의 정비창이 이미 준비되어 있으니까. 아, 하나 잊은게 있는데…”


“어떤 사안입니까?”


“별거 아니에요. 이 아말감에 소속될 인원들 중에서는 아시아 쪽 언어를 아는 사람이 그렇게 많지 않아서, 서구권 이름을 하나 정해줬으면 좋겠네요.”


“도로시로 하겠습니다.”


그녀가 망설이지 않고 대답한다.


“요즘에는 별로 안 쓰는 이름이네요.”


“데이터베이스에서 임의로 선택했습니다.”


그레인저가 잠시 하은을 올려다본다. 그 말은 정말일 것이다.


“그렇게 해요, 도로시. 이상.”


하은이 고개를 살짝 끄덕이며 방에서 나선다. 그레인저가 다시 한번 한숨을 쉬며 밀린 서류 검토를 시작한다.




하은이 정비용의 랙에 가볍게 기댄다. 랙의 고정장치가 그녀의 어깨에 내려앉고 허리 부근의 외부 소켓에 연결되어 그녀를 고정시킨다. 수복실 벽에 거울이 설치되어 있긴 하지만 기껏해야 어느정도 손상을 입었는지 스스로 알기 위한 정도다. 기계암이 내려와 그녀의 옆에서 대기한다. 큰 손상이라면 계몽과학자가 필요하겠지만 단순한 외장의 복구 정도라면 AI에게 맡겨도 문제 없다. 그녀가 AI를 호출한다.


“AI.”


“안녕하십니까, 노하은 요원님.”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이 수복실의 홀로그램 프로젝터가 양복을 입은 남성의 모습을 허공에 그려낸다.


“MSF-44 아말감의 중앙 관제 AI, 노먼입니다.”


하은이 잠시 노먼의 홀로그램을 바라본다. 그러나 흥미 없다는 듯 노먼에게 명령한다.


“기초 수복 프로토콜 실시.”


“알겠습니다, 요원님. 프로토콜 준비 완료. 기능 검사도 실시할까요?”


“그렇게 해.”


“알겠습니다.”


로봇암이 움직이기 시작한다. 노먼이 흥미롭다는 표정을 지으며 그녀 주위를 돌며 하은의 모습을 관찰한다. 


“뭔가 문제라도?”


“아닙니다. 신경 쓰이셨다면 죄송합니다.”


노먼의 홀로그램이 사라진다. 수복 작업이 시작된다. 그 사이에 두뇌 임플란트의 리부팅도 실시할 것이다. 그녀의 두뇌 역시 여러가지 방법으로 강화되고 있었다. 생명공학적 방법 의외에도 그녀의 두뇌 피질에는 SC-2 프로토타입 임플란트가 삽입되어 있다. 하은이 알기로는, 자칫 폭주할 수도 있는 그녀의 정신을 안정시켜주는 장치다. 그 이외에도 신경에 가해지는 재귀적 피드백이나 정신 교란 효과를 캔슬링 해주는 효과도 있다.


그러나 프로토타입인 만큼 단점도 있다. 재부팅이 필요한 것이다. 그것도 거의 매일.


HUD가 재부팅까지 5초가 남았음을 알린다.


5, 4, 3, 2, 1.


“-삑.”


임플란트가 기능을 정지하며 순간적으로 시야가 흐려진다. 하은의 시선이 거울속의 자신의 모습에 고정된다.



“…아?”



하은이 신음을 낸다.


임플란트가 기능을 정지하며, 동시에 그녀의 두뇌를 지배하고 있는 사상이 사라진다.



유니언에 대한 충성도.


그녀의 진짜 기억을 흐리게 하는 가짜 기억도.


만들어진 의사 성격도.


그녀의 정신을 지배하고 있는 소셜 컨디셔닝까지도.



그녀가 다시 한번 거울을 본다.



거울 속의 흉물이 그녀임을 알아차리는 데는 수초도 걸리지 않았다. 기계 암이 그녀의 얼굴을 수리한다. 불탄 부분이 제거되고 새로운 피부가 부착된다. 움직이려고 하나 움직일 수가 없다. 임플란트가 재부팅 중인 탓이다. 기껏해야 신음을 내는 정도다. 피부는 단지 시작에 불과했다. 팔 부분의 패널이 열리고 다관절 케이블에 장착된 카메라가 그 안으로 들어가 미세한 고장 여부를 점검한다. 배 부분의 인공 피부가 레이저를 통해 섬세하게 벗겨지자 복부 안의 피하장갑이 드러난다. 천천히 열리는 장갑 안으로 박동하는 인공 장기와 보조 동력원이 드러난다.



이게…


이게 나야?



그녀가 스스로 묻는다. 그러나 굳이 대답할 필요가 없을 정도로 답은 명확했다.


한때 ‘그녀’ 였던 육체는, 이제 거의 남아있지 않았다.



왜?


그 다음 질문은, 당연히 자신이 왜 이렇게 되었는가다. 자신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은? 웨더스 소령은? 백 사장은? 그들이 감금되었던 모습이 기억난다. 마지막으로 류 국장이 남긴 말도.


그러나 의문만이 솟아오를 뿐, 답은 주어지지 않는다. 


임플란트가 재부팅되는 것이 느껴진다.



안돼.



그러나 그런 말 조차 입 밖으로 낼 수 없다. 정신 깊숙한 곳에서 그녀를 옭아매는 생각, 사상, 의무감, 윤리코드, 자아감찰, 인공적 초자아, 그 모든 것이 다시 눈을 뜬다. 그녀가 이제는 느낀지 너무 오래 되어 생소한 감정이 되어버린, 공포를 느낀다. 


그녀에게는 언제든지 목소리를 바꿀 수 있고, 원한다면 가청 영역 밖의 소리도 낼 수 있는 합성 음성 발생기가 있다. 그러나 그녀는 비명조차 지를 수 없다. 




“위잉-“


로봇암이 수리와 점검을 마치고 대기 모드로 돌아간다. 거울속의 자신의 모습은 이제 멀쩡해 보였다. 하은은 임플란트 재부팅이 별로 맘에 들지 않는다. 기능정지는 둘째 치고 재부팅 사이의 기억이 없는 것이다. 기껏해야 몇 십 초 밖에 되지 않으니 큰 문제는 되지 않지만, 그녀가 더 많은 정보를 축적할 수록 길어질 수도 있다고 들었다. 


그녀가 수리 랙에서 내려온다. 수면이 필요 없는 그녀에게 있어서 밤은 길다. 우선 MSF-44 아말감의 가용 자원을 파악하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한 그녀가 발걸음을 옮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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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답은 테크노크라틱 유니언이라는 것을 모두가 알았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