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3화 – “부족”
역시, 예산이 부족하다.
콜롬비아 연구소의 젊고 총명한 박사, 멜라니 워커가 그렇게 생각하며 오늘 있을 인터뷰를 준비하고 있었다. 그녀는 세포신경과학을 비롯한 2개의 박사 학위를 가지고 있었고, 기계공학 및 생물학을 포함한 학사 및 석사학위를 5개 보유하고 있었다. 그녀는 작년, 세계에서 처음으로 제대로 된 인공 안구를 처음으로 제작하는데 성공했다. 프로토타입에 불과하지만 해상도가 수백 픽셀 밖에 되지 않는 기존 결과물들에 비해 월등한 성능을 지니고 있어, 시력을 완전히 상실한 사람에게 이식하면 멀쩡히 일상생활을 영위할 수 있을 정도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의 업적은 신기할 정도로 별다른 관심을 받지 못하고 있었다. 그리고 무관심은 예산의 부족으로 이어진다.
아무리 천재라고 불리는 그녀라고 해도 없는 예산을 만들어낼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녀는 솔직히 말하면 이 의안이 상용화 되어 대중에게 팔리든, 아니면 그냥 연구 목적으로만 남든 별로 상관이 없었다. 중요한 건 자신의 손으로 인간의 눈을 대체할 수 있는 것을 넘어 더 뛰어난 의안을 만드는 것이었다. 이미 이론적 배경은 다 완성되어 있었다. 예산만 있으면 언제라도 제조에 들어갈 수 있다. 그녀의 연구에 필요한 것은 대중의 관심이다. 이미 금년에만 2번의 언론 인터뷰를 통해 어느정도 관심을 끌어 모았다. 이번은 좀 더 본격적으로 기술을 공개할 예정이다.
그녀가 긴장한 표정으로 복도를 걸어가며 머릿속에서 생각해 놓은 예상질문과 그에 대한 답변을 되뇌었다. 평생 공부와 연구에만 시간을 쏟다 보니 언론 인터뷰 같은 것은 해본 적이 없었기에 마음이 마냥 편하지는 않았다.
“워커 박사님.”
갑자기 누군가 그녀를 부르는 소리에 그녀가 깜짝 놀란다. 그녀 앞에는 검은색 후드티를 입은 30대 정도의 남자가 서있었다.
“안녕하세요. 누구시죠?”
기자가 이런 옷차림으로 찾아올리는 없다. 혹시 학생이 아닐까 했지만 그녀가 가르치는 과목은 워낙 인기가 없어서 학생들이 질문하러 찾아오지 않는다.
“워커 박사님의 의안 연구에 대해 잠깐 말씀을 나누고 싶은데요.”
“죄송하지만 지금은 좀 바빠서… 나중이라면 가능할 텐데요. 혹시 이름이-“
그 남자가 그럴 시간이 없다는 듯 말을 끊는다.
“현재 프로토타입을 이식 받은 환자가 간헐적인, 15초 정도 시력을 잃는 현상을 겪고 있을 겁니다. 그렇죠? 그리고 이식 받은 쪽 뿐만 아니라 정상적인 쪽도 그런 문제가 있을 거고요..”
“그걸 어떻게 알았죠?”
워커 박사가 놀란 표정을 감추지 못한다. 아직 언론은 물론이고 환자 본인과 워커 박사를 빼고는 아무도 모르는 일인데-
“mTOR 단백질액의 투여량을 2배로 늘리고, 대신 현재 사용하고 계신 44번 편향센서를 제거하면 시신경과 의안과의 연결부위가 좀 더 안정적으로 재생될 수 있을 겁니다. 워커 박사님의 방식은 생체 조직의 재생 능력을 너무 간과하고 계신 것 같군요.”
“그게 무슨-“
그러나 워커 박사의 두뇌가 그의 말이 어떤 의미인지를 즉각 알아차린다. 그녀의 수많은 경험과 이론에 비추어 볼 때 이 남자의 말은 틀리지 않다. 그렇게 되면 현재 겪고 있는 간헐적인 깜빡임 현상도 해결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세계에 자신 말고 이 분야에 있어서 기술적인 해결책을, 이렇게 단순한 방법으로 제시할 수 있는 사람이 또 있단 말인가?
그런 사람이 있다면 최소한 이런 행색의 사람은 아닐 것 같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해결책은 명쾌하고 이론적으로 타당했다. 그 정도의 경험과 이론적 배경을 지닌 사람이 아카데미아에서 전혀 알려져 있지 않다니 말이 되지 않았다.
“실례지만, 혹시 이름을 여쭤봐도 될까요?”
남자가 대답대신 그녀에게 다가와 황금색의 명함을 건넨다. 황금색의 명함에는 달러 지폐에 그려진 전시안과 비슷한 모습의 마크가 그려져 있었다. 맨 밖에는 트럼프 카드의 다이아몬드 모양이 날개를 연상케 하는 심볼과 함께 그려져 있었고, 그 안에는 거꾸로 뒤집힌 피라미드, 제일 안쪽에는 눈이 그려져 있었다.
“곧 찾아 뵙겠습니다.”
그녀가 고개를 들려 한다. 그러나 그녀는 명함 한가운데의 눈에서 시선을 뗄 수가 없었다. 마치 몸 전체가 마비된 것 같은 아찔한 느낌에 그녀가 식은땀을 흘린다. 이 눈은 그냥 그림 같은 것이 아니었다. 이 눈은 분명히, 그녀를 ‘보고’ 있었다.
“!”
갑자기 명함의 눈이 감긴다. 동시에 마비되었던 몸이 다시 움직이기 시작한다. 워커 박사가 고개를 들어 사방을 살피지만 그 남자는 온데간데 없었다. 그녀가 명함을 만져본다. 눈은 분명히 감겨 있었지만, 기계 장치 같은 것은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그런 것을 넣기에는 너무 얇은 종이다. 물론, 소사이티 오브 에테르의 일원들에게 있어서 종이 한 장 두께는 온갖 기적의 산물들을 쑤셔 박고도 남는 공간이지만.
사람이 너무 부족하다.
진 그레인저가 그렇게 생각하며 명단을 쭉 스캔한다. 정확히는 정신의 반쪽만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는 것이 맞는 말일 것이다. 그녀는 감독관 지위에 올라와 있는 자들이 흔히 사용하는 분열사고Schism 프로시져를 사용하여 두가지 일을 동시에 처리하고 있었다. 한쪽 정신으로는 하은이 회수한 유물을 살펴보고 있었고, 다른 한쪽으로는 MSF-44 아말감에 들일 포섭 대상의 목록을 훑고 있었다.
-류 국장이 줄 수 있는 것은 아말감의 감독관이라는 지위와 물질적인 지원 뿐이다. 인원은 알아서 해라, 라니. 극동 아시아 출신의 요원들의 끈끈한 인간관계라는 편견은 역시 편견일 뿐이라고 생각하며 그녀가 이마를 감싼다. 현재 특정 방법론이나 아말감에 지나치게 매여 있지 않아야 하며, 대중들에게 노출 될 수 있는 위험이 있는 임무를 수행할 수 있는 요원이 필요하다. 또한 자신보다 좀 더 부드러운 방법을 사용해 교섭이나 협상 등을 할 수 있어야 한다. 마지막으로 트래디션에서 전향해 온 자신에 대한 반감도 크지 않아야 한다. 그럴만한-
-이 유물들은 확실하게 뱀파이어들의 것이다. 그것도 굉장히 오래된 종류의. 일종의 마법적 -그레인저는 ‘마법적’ 이라는 단어를 쓰는 것에 거리낌이 없었다- 처리가 된 종이. 피로 쓰여진 글자들. 거기에 오더 오브 헤르메스 초기의 양식이 후대에 첨삭 된 흔적이 있다. 유니언의 데이터베이스를 검색하고 있지만, 특별한 것은 나오지 않는다. 아무래도 이것과 비슷한 종류의 유물을 찾으려면 뱀파이어와 충돌한 경험이 많은 요원의 조언이 필요 할 것 같다. 그 생각을 다른 정신의 반쪽으로 넘긴다.
-다른 쪽에서 뱀파이어 관련 요원에 대한 중요성을 강조하는 생각이 전달되지만 안타깝게도 현재 목록에서는 그럴 만한 요원이 없다. 그 생각을 다시 넘긴다.
-그 소식에 약간 실망한다. 안타깝게도, 당분간 이 업무는 미뤄둬야 할 것 같다. 그런 이상 분열사고를 유지할 필요는 없다는 결론을 내린다.
현기증. 두 개로 나뉘어 졌던 생각과 의식, 사고 능력이 하나로 합쳐진다. 서로의 정보가 동기화되고 두뇌 속에서 그레인저가 다시 하나가 된다. 집중하기도 쉽고 급하지 않은 상황에서라면 효율적인 업무 처리를 위해 그녀가 애용하는 프로시져지만 현장에서 남용할 수는 없다. 실제로 그녀의 동료 중에는 급박한 상황에 이 프로시져를 함부로 사용했다가 이중 인격 증세Paradox에 상당기간 시달리게 된 자도 있었다. 그렇게 생각하며 명단을 쭉 훑고 내려가는데, 문득 한 이름이 눈에 띈다. 그녀가 잠시 고민한다. 가능성은 낮지만, 성공하기만 하면 효용은 크다. 그녀가 결정을 내리고서는 즉시 “데이빗 몰레티” 라는 이름을 지닌 남자의 심리 프로필을 불러온다.
무엇이 부족한지 모르겠다.
데이빗 몰레티가 절벽에 매달린 채 생각한다. 그가 절벽 사이의 틈에 무릎을 끼워넣은 채로 등반용 장갑에서 돌조각들을 털어낸다. 그가 절벽 위를 바라본다. 5미터 정도만 더 올라가면 된다.
“후…”
깊은 심호흡. 그가 다시 절벽을 오르기 시작한다. 안전장비라고는 하나도 없이 장갑과 스스로의 육체에만 의존해 절벽을 오른다. 그는 형제 사이에도 약육강식과 자연도태가 적용되는 몰레티 가문의 일원이었다. 그의 부모님은 형제 자매 들간의 경쟁에서 패배해 몰레티 그룹의 거대한 자본과 권력을 거의 다 빼앗기고 말았다. 그러나 데이빗은 달랐다. 그는 부모님에게 남은 얼마 되지 않는 재산과 권리를 이용해 차근차근 세를 불려 나갔고 어느새 친척들을 하나하나 굴복시켜 몰레티 가문의 당주라고 불릴 수 있는 위치까지 올라갔다. 당연히 신디케이트가 그런 인재를 놓칠 리가 없었다.
그가 잠깐 절벽에서 멈춘다. 지쳐서가 아니다. 수직을 조금 넘어가는 각도. 거기에 뾰족하게 튀어나온 바위와 말라버린 나무가 박혀 있는 발판까지. 이대로 위로 올라 갔다가는 바위에 걸려서 허벅지의 살이 찢어지거나 나무로 인해 약해진 발판이 무너져 그대로 비명횡사 할 판이다. 여기만 넘어가면 바로 정상이다.
겉으로 보기에 몰레티는 신디케이트라고 하면 다른 컨벤션이 흔히 떠올릴 만한 전형적인 이미지의 인물이다. 손자의 손자 정도까지는 낭비하면서 살아도 될 만한 재산, 정치 및 재계와의 커넥션 같은 사회적인 자산부터 뛰어난 지능과 프로급 운동선수의 육체 같은 개인적인 면모까지.
그가 다시 한번 주위를 살펴본다. 오늘의 그는 운이 좋다. 죽을 수도 있는 위험한 길 대신 1m 정도만 옆으로 가면 훨씬 더 안전한 경로가 있다. 그가 몸을 살짝 비틀어 그쪽으로 움직일 준비를 한다.
-따분한데다가, 충족감도 없다.
한때 그도 즐거운 때가 있었다. 부모님에게서 물려받은 쥐꼬리만한 회사의 덩치를 불려갈 때, 그리고 지금은 한낮 젊은 혈기로 치부하고 있는 자경단 활동을 할 때였다. 만약 이 세계에 배트맨이 있다면, 그것은 아마도 데이빗 몰레티일 것이다. 정확히는 은퇴한 배트맨에 가깝지만. 신디케이트의 일원이 되기 전부터 그는 도시를 좀먹는 초자연체들에 대해 눈치채고 있었다. 그는 가면을 쓰고, 비자금으로 제작한 여러가지 도구들로 그들을 처치해왔다. 그러나 그룹의 총수가 된 이후부터 그는 그런 일을 그만 두었다. 이제는 잃을 게 너무 많기 때문이다.
그가 발을 단단히 딛는다. 옆으로 조심스럽게 이동할 준비를 한다.
물론 지금도 예전에 했던 활동을 계속하고 있다. 항상 새로운 기술 개발을 지원하고 유능한 CEO를 발탁하여 회사를 성장 시킨다. 그가 직접 뱀파이어를 처치하는 대신 민간군사기업과 경호회사를 고용하여 준 하이퍼테크 병기들을 쥐여주고 사람들의 안위를 위협하는 놈들을 모조리 불태워 죽인다.
분명, 그는 어릴 때의 그 보다 훨씬 더 많은 경제적 부를 창출하고 있고, 더 많은 생명을 구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전과 같은 충족감이 느껴지지 않는다.
갑자기 그의 발 밑에서 큰 소리가 들린다. 그가 살짝 뒤를 돌아본다. 웬 검은색 헬리콥터가 상승해오고 있었다. 속도와 민첩성으로 보아 계몽과학의 산물이다. 그가 무슨 일인지 궁금해 할 새도 없이 헬리콥터가 그에게서 10m도 떨어지지 않은 거리에서 수직으로 상승한다. 엄청난 돌풍이 몰아친다. 바람으로 인해 자세가 흐트러진다. 오른쪽 발이 미끄러진다. 옆으로 뛸 수가 없다. 옆으로 뛰었다가는 거리가 부족해 그대로 추락한다. 그렇다고 가만히 있으면 왼쪽 발을 지탱하고 있는 부분이 부서질 것이다.
그가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팔과 등의 모든 근육에 집중한다. 근육이 팽팽하게 당겨지고 아드레날린이 솟구친다. 온 힘을 다해 몸 전체를 끌어올린다. 뾰족한 바위를 손으로 잡고, 디딜 곳을 잃은 왼발로 아까의 나무를 찬다. 나무와 함께 그의 발판이 되어 줄 수도 있었던 바위가 부서진다. 그러나 그가 그 반동을 이용해 몸 전체를 뒤틀며 손의 위치를 순식간에 뒤바꿔 양쪽의 바위를 잡는다. 그는 절벽에 등은 댄 채로, 오직 두 팔의 근력에만 의지해 허공에 떠있는 셈이 되었다. 마치 십자가에 매달린 예수 같군, 이라고 생각하며 그가 철봉 선수처럼 온 몸을 회전시켜 공중으로 뛰어오른다. 멋지게 솟구쳐 오른 그가 마치 묘기를 하듯 절벽 위에 착지한다.
데이빗은 그가 어느새 웃고 있음을 알아차렸다. 잠깐이지만 따분함이 가시는 느낌. 평소의 암벽 등반에서는 느낄 수 없는 것이었다.
그가 생각을 끝내기도 전에 절벽 위에서 호버링 하고 있는 헬리콥터에서 누군가 맨몸으로 뛰어내린다. 낙법도 쓰지 않고 착지하는 걸 보니 분명 전투용 컨스트럭트나 그에 준할 정도로 개조된 요원이라고 생각하며 그가 여유 있게 돌조각을 털어낸다. 이번엔 누군가가 로프를 한손으로만 잡고 부드럽게 미끄러져 내려온다. 이번에는 한쪽 팔만 의수인 자라고 짐작하며 그들에게 다가선다. 헬리콥터가 그들의 대화를 방해하지 않기 위해서인지 절벽에서 멀어진다.
“데이빗 몰레티?”
“네, 맞습니다. 그쪽은?”
“진 그레인저입니다. MSF-44 아말감의 지휘관이죠.”
“보안인증은?”
“준비됐습니다.”
그가 뒤쪽의 포켓에 넣어두고 있던 선글라스를 꺼내 쓴다. 당연히 평범한 선글라스는 아니다. 그레인저는 암호화된 블루투스 4.0으로, 몰레티는 DSRC NET으로 각자의 보안인증을 전송한다. 삑, 하는 소리와 함께 다중암호화가 풀리고 두 사람의 신원이 서로를 확인시켜준다.
“아, 어디선가 들어본 이름인가 했더니. 진 그레인저 경이군요. 만나서 반갑습니다.”
“그레인저라고 불러주시면 됩니다.”
“알겠습니다. 이쪽은?”
“도로시입니다.”
하은이 영어 이름으로 자신을 소개하자, 몰레티가 고개를 끄덕인다. 프로제니터와 이터레이션 X가 또 대단한 합작품을 내놓았군, 하고 평가하는 그. 그러나 한눈에 봐도 상품화 하기에는 부품 하나 하나가 대중들이 도저히 부담하지 못할 만한 가격이다. 그가 그레인저에게 고개를 돌린다.
“그래서, 어떻게 도와드리면 되겠습니까?”
그레인저가 소형 홀로그램 프로젝터를 꺼낸다. 그녀가 그것을 키자 유튜브 동영상이 재생되기 시작한다. 그 안에서는 젊은 여성이 의체 기술 및 신형 의안에 대한 소개를 하고 있었다. 그 밑에 쓰여진 콜롬비아 연구소라는 문구가 몰레티의 시선을 끈다.
“몰레티 그룹 하의 연구소로군요.”
“신디케이트의 영향력이 어느정도 되는 연구소입니까?”
“거의 없다고 보시면 됩니다. 몰레티 그룹이 자금을 대고 있기는 하지만 그룹 내부에서 콜롬비아 연구소를 건드리는 것은 사실상 금지되어 있습니다. 기술력도 마찬가집니다.”
“한마디로 말해서 하이퍼테크의 영향을 최소한으로 받은 기술인 거군요.”
“그렇습니다. 흥미롭군요. 1년에 한번씩 보고서를 받고 있기는 하지만 지난 1년 사이에 저 정도 프로토타입을 완성했다니…”
몰레티가 감탄한다. 예산을 늘리기위해 일부러 언론에 노출한 것이라면 워커 박사는 이미 목적을 달성한 셈이었다. 거기에 그녀는 계몽된 자의 소양을 충실히 보이고 있음이 분명했다. 저런 인재를 그룹 안에 두고서도 몰랐다는 사실에 스스로의 둔함을 질책하는 몰레티.
“네. 프로제니터의 격리 실험실도 아니고 일반 연구소에서 이 정도라면, 금방 컨센서스에 편입될 수 있는 수준의 기술이겠죠.”
“그거야 워커 박사의 의향, 그리고 단가 절감에 달린 것 같습니다만… 지금은 그런 게 문제가 아니겠군요. 혹시 에테라이트나 버추얼 어뎁트의 포섭 시도, 아니면 버베나의 테러리즘을 감지하고 있는 겁니까?”
“바로 그겁니다. 다행스럽게도 전자입니다.”
“그렇군요.”
그가 끄덕이며 장갑을 벗는다.
“그렇다면 서두르도록 하죠.”
멜라니 워커는 머리 끝까지 화가 나 있었다. 그녀가 문을 박차고 들어선다. 연구실 안에는 계측기기, 실험장치, 그리고 아직 이식되지 않은 몇 개 정도의 프로타입이 담긴 액체 용기들이 가득 차 있었다. 그 가운데에서 그녀의 보조 연구원이 처음보는 사람에게 그녀의 연구를 열심히 설명하는 중이었던 것이다.
"폴, 대체 뭐하는 거죠?"
그녀가 날카롭게 소리질렀다. 폴이라고 불린 보조 연구원은 표정이 굳어지며 재빨리 변명하려 했지만 그녀는 한심하다는 표정으로 그의 말을 잘랐다.
"제가 몇 번이나 말해야 하죠? 연구실에는 제 허가 없이는 누구도 들어올 수 없다고 했죠?"
"죄, 죄송합니다, 워커 박사님. 그렇지만..."
"그리고 당신."
그 말을 무시하며 그녀는 낯선 방문객에게 고개를 돌린다. 대략 30대 중반 정도 되어 보이는 남성이었다. 약간 보랏빛이 도는 수트에 한눈에 보기에도 어마어마한 가격을 자랑할 것 같은 시계, 귀에 꽂혀 있는 블루투스 리시버까지. 온 몸으로 스스로가 얼마나 성공적인지를 자랑하려는 듯한 사업가의 모습이었다. 도서관과 연구실에서만 착실하게 살아온 그녀에게는 이런 인간들이야말로 가장 상대하기 까다로운 사람들이었다. 물론 이런 사람들의 돈으로 자신이 연구하고 있다는 것은 알고 있다. 그러나 아직 프로토타입의 성능도 테스트 중인 판에 연구원도 아닌 사람이 맘대로 들어 와 있는 것은 도저히 용납할 수 없었다. 이제 보니 혼자도 아니였다. 그의 옆에는 비서라도 되는지 무신경한 표정의 동양계 여성이 한 명 서있었다.
"당신은 대체 뭔데 제 연구실에 마음대로 들어 오시는 거죠? 이 연구소가 당신 것이라도 되나요?"
그녀의 날카로운 질문에 그는 엷게 미소 지으며 대답했다.
"정확하게 짚으셨군요. 제 이름은 데이빗 몰레티입니다. 이 연구소는 100% 제 돈으로 지었지요. 연구비도 전부 제가 할당하고 있습니다."
워커 박사가 잠깐 당황한 표정을 짓더니, 폴에게 나가라는 시늉을 한다. 그는 잔뜩 굳은 표정으로 황급히 방을 나선다. 문이 닫히자 그녀가 약간은 누그러진 기세로 쏘아붙인다.
"그래요, 몰레티 씨. 당신이 이 연구소의... 소유자라는건 알겠지만, 그렇다고 해서 맘대로 규칙을 어겨도 된다는 뜻은 아닙니다."
"죄송합니다, 워커 박사님. 단지 워커 박사님께 직접 설명을 듣느라 박사님의 시간을 낭비하느니 이편이 낫다고 생각했지요."
그가 다시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사과한다. 그녀는 작게 한숨을 쉬더니 진정된 목소리로 말을 이어간다.
"좋아요, 이번 건은 넘어가지요. 여기에는 왜 오셨죠?"
"흐음... 두가지 용건이지요. 뭐, 프로토타입을 제 눈으로 직접 보고 싶어서입니다. 연말에 보고 받기 전에 직접 확인하고 싶었죠. 예전에는 의수 연구에도 상당한 기여를 하셨다고 들으셨습니다만.”
워커 박사가 고개를 끄덕이며 무엇인가 이상함을 느낀다. 분명 이 연구소는 30년전에 설립되지 않았는가? 그리고 그 당시에도 그는 이 정도 나이였을텐데. 30년이 지난 지금에도 겨우 30대 정도의 나이로 밖에 보이지 않는 그의 외모는 '동안'이라는 단어로 설명되지 않는 수준이었다.
"아직 대중적으로 실용화하기에는 어려운 단계에요."
그녀가 잘라 말 한다.
"알고 있습니다."
몰레티가 끄덕이며 대답한다. 그는 이미 초기 연구결과를 데이터베이스에서 추출해 분석해놓은 상태였다. 그녀의 작품은 분명히 대단하다. 물론 하이퍼테크에 비할 바는 못되지만 중요한 점은 그녀의 프로토타입이 컨센서스의 경계선에 걸쳐 있는 기술로 만들어 진 것이라는 것이다. 그녀가 쓰는 기술의 일부는 테크노크라시가 선호할 만한 대단히 체계화된 것이었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에테라이트와 아주 진보적인 이터레이션 X가 선호할 만한, 다시 말해 지나치게 급진적인 아이디어에 기초한 것이었다. 에테라이트가 그녀를 포섭하고 싶어함은 당연했다. 이미 에테라이트들은 의수 분야의 컨센서스 장악에 있어서 테크노크라시에게 완벽하게 뒤쳐진 상태였다.
"네. 아무래도 좀 더 확실하게 하고 싶어서요."
"좋은 일입니다. 그럼, 두 번째 말인데."
그가 수트 안쪽에서 반짝이는 명함을 꺼낸다
"그건-"
그녀가 놀라운 표정으로 뭐라 말하기도 전에 배너가 말을 이어간다.
“당황하실 필요 없습니다. 이 명함은 워커 박사님의 개인 사무실에서 가져온거니까요."
"네?"
"뭐, 문을 따고 이런 걸 가져오는 일은 소싯적에 많이 해본 일이라서요. 그게 중요한 게 아닙니다. 이 명함은 누구에게 받으셨습니까?"
"잠깐만요, 제 사무실에 들어가다뇨? 마음대로 다른 사람 방에-"
순간 워커 박사가 명함을 본다. 명함의 눈은 어제와 달리, 다시 열린 상태였다. 그녀의 시선을 따라 명함을 쳐다본 몰레티가 갑자기 하은에게 지시한다.
“도로시. 진동억제장을.”
그녀가 고개를 끄덕인다. 한순간 워커 박사의 눈에 그녀의 안구가 빛나는 듯 한 광경이 스쳐 지나갔다. 그녀가 손목시계를 누르자 갑자기 그들 주위가 서서히 조용해지기 시작한다. 액티브 노이즈 캔슬링을 모든 종류의 진동으로 확대시킨 진동억제장을 생성하는 하이퍼테크 디바이스다.
우웅-
갑자기 연구소 전체에 또 다른 낮은 진동음이 퍼져간다. 듣기만 해도 몸에서 힘이 빠지는 듯한 나른한 진동. 그러나 그 낮은 진동음은 그들 주위의 침묵으로 인해 연구실 안에서는 힘을 잃는 듯 했다. 연구소 밖에서 털썩, 하고 누군가 쓰러지는 소리가 들렸다. 아마도 방을 나간 그녀의 보조 연구원이 바닥에 널부러지는 소리일 것이다. 워커 박사가 다리에 힘이 풀리는 것을 느꼈지만, 간신히 실험 기구에 기대 균형을 잡았다.
“읍…”
워커 박사가 신음을 낸다. 두 사람은 멀쩡해 보였다. 방금 난 진동음은 에테라이트가 민간인 피해를 내고 싶지 않을 때 사용하는 저주파 생성기다. 호랑이 같은 대형 포식자들의 울음소리에 섞인 저주파가 작은 동물에게 두려움을 생성한다는 것에 착안해 만들어진 괴상한 병기Weird Science로 표준 대처 방법을 훈련 받지 않았다면 유니언의 요원이라도 순식간에 마비될 수 있는 종류였다. 물론 워커 박사가 그것을 알 리가 없었지만.
“…너무 일찍인데. 거기에 너무 극단적인 방법을 사용하고 있고.”
첩보가 정확하지 않은 모양이라고 생각하며 몰레티가 가방을 연다. 저들이 만반의 준비를 갖추고 이런 행위를 벌이고 있다면 그들은 매우 불리한 상황에 처해 있는 것이다. 수트케이스 안에는 놀랍게도 두 개의 상당히 큰 권총이 들어있었다. 그가 하나를 손에 쥐고, 다른 하나는 그녀에게 넘겨준다.
"워커 박사님, 당신을 노리는 일련의 테러리스트 들이 당신을 납치하기 위해 오고 있습니다. 이 명함은 그들의 표식입니다."
"자, 잠깐만요! 아무런 설명도 없이-"
"총은 쏴 보신 적 있으신가요?"
그녀는 질렸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흔든다.
"괜찮습니다. 방아쇠를 당기기만 하시면 됩니다. 스마트탄이 알아서 목표를 쫓아갈 테니,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다, 당신은 대체 누구죠?"
“그것은 탈출하고 설명 드리겠습니다.”
워커 박사가 비서로 보이는 여자가 사실은 경호원이었다는 것을 깨닫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아무런 무장을 하고 있지 않은 것은 그녀 뿐이었다.
“저보다 이 분이 총을 드는게…”
“도로시 양은 총이 필요 없습니다.”
몰레티가 말하며 연구실을 나선다. 과연 문 앞에는 거품을 문채로 폴이 쓰러져 있었다. 그는 그런 광경에 아무런 신경도 쓰지 않는 듯 바로 지나쳐간다. 워커 박사가 그의 뒤에서 난생 처음 잡아보는 총의 느낌에 적응하려 노력하고 있었다.
“그레인저, 몰레티입니다. 저희 위치에 증원이 필요합니다.”
“몰레티? 무슨 일이죠?”
“에테라이트 들입니다. 인원은 아직 파악되지 않았습니다. 이 건물의 경비 시스템을 그쪽으로 돌리겠습니다. 다른 퇴출 관련 자산도 가능하면 전부 동원해주십시오.”
“알겠어요.”
그레인저가 즉시 준비에 착수한다. 에테라이트들이 갑자기 무력을 동원하는 것은 테크노크라시가 워커 박사를 직접적으로 포섭하고자 하는 징후를 포착했기 때문이다.
물론, 그 정보를 흘린 것은 그레인저다.
솔직히 말하면 그레인저에게 있어서 워커 박사는 당장은 우선순위가 아니었다. 그녀의 목적은 워커 박사가 아니라 몰레티다. 그의 심리 프로필을 대충 살펴보면 그는 자기 자신이 자경단 활동을 할 정도로 대중의 안위를 위해 신경 쓰는 자다. 그가 부모에게 물려받은 회사를 키워나갈 때도 항상 최대한 많은 사람들에게 경제적 번영을 위해서 노력했다는 점 역시 궤를 같이 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그레인저의 생각은 달랐다.
그는 분명히 지루해 하고 있었다. 분명 본질적으로는 같은 일을 하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그는 점점 더 자극적이고 도전적인 취미를 찾고 있었다. 그는 위험에 뛰어 드는 것에서 행복을 느끼는 도전자다. 자경단 활동이 위험하지 않았다면 계속 하지 않았을 것이며, 당장 다음날 파산이 나더라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공격적인 레버리지로 회사를 운영했던 것도 그 때문이다. 물론 그가 대중을 위한다는 것은 명백했다. 단지 그것이 전부가 아닐 뿐이다.
우선, 그가 암벽등반을 하고 있을 때 헬기를 사용해 그에게 죽을 수도 있는 위험한 상황을 체험하게 해 그를 일깨워 준다.
그 다음으로는 에테라이트에게 정보를 흘리고, 마침 등장한 워커 박사를 이용해 그를 제대로 준비되지 않은 위험한 상황에 빠트린다. 물론 에테라이트 중에서도 과격파로 불리는 이들에게 정보를 흘려야 함은 물론이다. 그들이 워커박사에게 준 감시 장치, 다시 말해 명함을 몰레티가 탈취하게 함으로써 그들이 행동에 나서게 한다. 일련의 상황을 통해 그를 위험에 몰아 넣고, 이제는 거의 잊었을 옛날의 흥분을 떠올리게 해주는 것이다.
상황이 종료되고 나면, 그에게 사실 이것이 MSF-44 아말감의 ‘테스트’ 였다고 속여 그의 의사를 묻는다. 대중의 안위나 테크노크라시의 발전 같은 것은 옆으로 밀어 둔, 오직 순수하게 개인의 동기에만 집중한 계획이다.
“진, 학생 시절의 당신이 보면 기절할 노릇의 계획이네요.”
휠체어에 앉은 에이다가 그녀의 계획에 대해 내린 평가였다. 그녀는 아직도 총상으로 인해 입은 척추 부상으로 인해 휠체어 신세를 지고 있었다. 그러나 큰 문제는 되지 않았다. 클론과의 동기화는 멀쩡하니까.
“어쩔 수 없어요. 인원이 더 필요하니까.”
그녀가 냉정하게 말한다. 그러나 그녀는 분명히 마음 한 켠으로 망설임을 느끼고 있었다. 그것을 들켜서는 안된다. 몰레티 정도의 인물이라면 그녀의 망설임을 알아채는 순간 바로 이 모든 계획을 파악할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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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i에 계속.. 글자 제한이라니 NWO의 정보 통제가 분명하다.
어쩐지 이상하더라니 이걸 안봤네 - dc App
몰레티 멋지다 - dc App
댓글 보기 누르려다 개념글 취소함 ㅈㅅ
다시 올렸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