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단 너네가 팝콘뜯으며 관심가질만한 라그나썰은 아님 


이번 이야기에 라그나는 없었다


결말은 서로서로 해피엔딩이었고 세션도 무사히 끝났어


플레이하는 내내 분위기도 아주 좋았고 플레이어들도 내 한마디 한마디에 집중하며 진행이 됐었지  




근데 룰은 너희들이 싫어하는 '그 룰'이었음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당시에 난 3분요리처럼 돌려먹을 수 있는 AWE기반룰들을 사랑했고 3명으로 진행하는 짧은 세션 하나를 잡았었어 


난 웬만하면 보이스로 알피하는게 주가 되는 세션에선 본인이 여성이 아닌이상 여성을 안 골랐으면 하고 바라는 경향이 있음... 이 부분은 보통 직설적으로 말하지 않고 은근슬쩍 알피하기 힘들 것 같은 캐릭은 피해달라고 돌려말하지. 여캐를 고집하는 사람이 생기면 그때 얘기를 하고... 물론 본인이 간곡히 원한다거나 뭔가 삐질것같은 조짐이 보이면 내쪽에서 미안해서 결국은 여캐를 허용해주는 상황이 99퍼다. 


그리고 난 세션에 일본아니메풍 캐릭터도 안 가져왔으면 하는데, 이 부분은 내가 직설적으로, 그리고 좀 강하게 말하고 시작하는 부분임. 물론 모든 일본아니메풍 캐릭터가 안 되는 건 아니고, 얘기해보고 "이건 그래도 괜찮겠다..." 싶은 건 허용해줌. 알폰스 엘릭같은 워포지드 캐스터/밀리 하이브리드가 하고싶다면 상관없지 


이쯤에서 눈치챘을텐데, 내가 위 단락에서 '일본아니메풍 캐릭터'라고 어중간하게 말한 부분의 참의미는 2D미소녀캐릭터임. 왜 플레이어가 그런 캐릭터를 고르는걸 그렇게도 싫어하는지 이유를 말하라고 한다면 미안하다. 나도 모르겠어, 그냥 싫다. 전에 갤에 모티브 관련으로 비슷한 뉘앙스의 글이 올라왔었는데, 솔직히 말해 어느정도는 공감했었거든. 


아무튼 플레이를 시작하려고 하는데, 3명중 2명은 정상적인 고전댄디풍 캐릭터를 들고온데 비해 마법사를 하겠다고 했었던 사람이 반응이 없는거야. 


그러면서 이러이러한 캐릭터를 하고 싶다고 하는데... 조금 된 일이라 전부 기억나진 않지만 설명을 들어보니 


"15살짜리 마법소녀가 하고 싶음." - 이라고 요약가능한 내용이었어. 


내가 "그거 일본애니메이션같은데 나오는 마법소녀가 아닌가요?" 대충 이런말을 아주 조심스럽게 하자 극구 부인하면서 마법소녀가 아니라 공주라고 정정하더라. 공주이면서 왕가의 혈통으로 인해 마법사래. 


물론 거기에 대해 나는 


"아 혈통으로 인해 선천적으로 마법을 쓰는 설정!! 그럼 소서러같은 거군요? 아~ 디앤디 아시는구나! 샌즈 파피루스 드리쯔트 사례복 피피에이피!" - 이렇게 웃으면서 넘어갈 순 없었고 


순간적으로 머리가 하얘져서 뭐라고 말을 해야할지 모르는 상황인데, 


"그, 일본아니메풍 캐릭터가 아니면 된다고 하셨잖아요? 이건 미국 애니메이션 캐릭터에요!" 이렇게 말을 하는거야. 


그러면서 옆에 있는 팀원한테 갑자기 "혹시 별나비 아시나요?" 이런 말을 하더라고. 그리고 내가 잘 모르는 얘기가 오고가기 시작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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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글 검색해서 가져온 이미지. 마법소녀가 아니라 공주고 미국애니니 괜찮지 않냐고 함)



내가 이대로는 안 될 것 같아서 최대한 정중하게 그건 좀 힘들겠다... 미리 얘기했었지만 그런 캐릭터는 좀... 이런 느낌의 멘트를 했는데 굉장히 시무룩해하더라. 어떤 일이 있어도 이 별나비라는 캐릭터를 가지고 오고 싶어한다는게 느껴졌지. 


그렇게 서로서로 예의 차리는데 지향점은 전혀 다른 곳이라 헛짓거리만 하면서 한참 고민하고 있는데, 옆에서 얘기를 들어주던 다른 팀원이 


"마스터가 여캐가 싫어서 그런거면 이건 어떤가요? 겉모습이랑 목소리, 성정체성, 행동거지 이런건 전부 여잔데 생물학적인 성별은 사실 남자인거죠! 이럼 서로서로 윈윈 아닌가요?" 이러고, 거기에 대해 별나비를 강력 주장하던 팀원이 


"으음... 저로선 좀 마음에 안 차지만, 뭐 그 정도면 양보해줄만한 것 같은데요? 마스터는 어떻게 생각하세요?" 


... 


자기들끼리 얘기를 저렇게 진행하기 시작함. 여기서까지 컷하면 별나비하고 싶다고 조르던 팀원은 삐질게 뻔히 보이는 상황이었고, 도저히 안 되겠다 싶어서 그냥 오케이 해버렸음. 


상황이 그렇게되니 고전댄디풍 양키센스 듬뿍 담긴 캐릭을 만들어왔던 팀원도 "저도 혹시 아니메풍 캐릭터 가능할까요?" 이렇게 얘기를 꺼내는거야. 


음유시인인데... 후우, 처음엔 자기도 이리저리 돌려말하며 머뭇머뭇거리다가 그냥 케이온이란 애니메이션에 나오는 캐릭터라며 뭐 하나 보여줬음. 일본아니메풍인거 맞고, 싫어하시는거 아는데 그냥 팔이랑 어깨에 커다란 화상이 있고 한쪽눈이 실명되서 안대 하고 다니는 정도로 봐주면 안 되냐고 묻더라.  


사실 별나비하고 싶다던 분한테 오케이해준 시점에서 반쯤 될 대로 되라라는 심정이라 그냥 흉터랑 안대없이 하시라고 하고, 별나비한다는 사람한테도 그냥 여캐로 하라고 얘기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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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도 걍 구글링해서 가져온 이미지. 머리검은애 둘중 하나였는데 자세히 어떤걸 한다고 했었는지는 기억 안 남)




전사한다던 사람은 세션분위기 맞춘다면서 공주님을 어릴때부터 지키던 17살의 여기사로 바꾼다고 함. 포트레잇을 봤었는데 미소녀 기사였음. 어디서 가져온건지 기억은 안 난다. 그냥 안 물어봤었거든. 잘 모르겠지만 다른 사람들한테도 다 오케이했겠다, 그냥 오케이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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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구글에서 여기사라고 치고 나온거 아무거나 긁어왔음. 이거랑 다르게 들고있던 무기는 칼이었고 방어구는 좀 더 중갑이었는데 야한거는 비슷했던듯)



이쯤에서 왜 이것이 라그나 세션이 아닌가... 궁금할거야, 


난 시작부터 멘탈이 잘못뜯은 쿠크다스처럼 바사삭했지만 플레이어들은 전혀 개의치않고 게임을 재밌게 이끌어나가려고 노력하더라 


내가 진행하는 서사에도 전부 초집중해서 이런저런 질문으로 상황을 일목요연하게 파악한뒤 거기에 맞춰 RP하고, 내가 준비해왔던 장면들이없이도 자기들끼리 던지고 받으면서 굉장히 재밌게 잘 놀더라고. 난 말 그대로 진행자 역할이었고, 플레이어들은 자기들만의 이야기를 주고받으면서 깔깔거리고 롤플레잉하면서 즐거워했지. 


결국 결말도 진행도, 내가 생각했던거랑 전혀 다른 분위기로 흘러가긴 했지만 플레이어들은 모두 즐거워보였고 그걸 보고 있자니 나도 만족스러웠음 


얼떨떨할 정도로 호평일색인 피드백타임이 끝나고, 잡담타임으로 넘어갔을때 난 너무나도 궁금했던 질문을 던졌음 


"그런데 왜 2D미소녀 캐릭터를 하고 싶어하시는 거죠? 뭔가 특별한게 있나요?" 


17살 여기사는 그냥 미소녀가 좋아서라고 짧게 대답했는데,  


케이온여캐분은 좀 더 고민하다가 이렇게 얘기하더라 


자기가 보는 애니메이션들은 주로 여자아이들만 잔뜩 나오는 미소녀동물원? 치유물인데, 오랫동안 자기가 그런 장르만 찾아다니면서 보다가 중요한걸 깨달았데. 자기는 거기 나오는 미소녀들과 연인관계가 되거나 성관계를 맺거나 이런 욕망보다 그 미소녀집단에 들어가서 같이 차도 마시고 부활동도 하고 이런걸 하고 싶다고 생각하게 됐다고. 자기가 좋아하는 작품에 나오는 2d미소녀들과 학대or연예같은 관계를 맺는건 오히려 자기가 진심으로 좋아하는 무언가가 더렵혀지는 느낌? 뭐 이런 식으로 얘기했음. 내가 정리한건 짧게 줄인거고, 원래는 이런저런 예시를 들어가면서 더 장황하게 설명했었는데... 잘 기억이 안 난다. 포인트는 그냥 그들의 일부가 되어 같이 놀고 싶다~ 이런 말이었을거야. 


자기가 생각해보니 티알피지 자체도 '미소녀인 내가 다른 미소녀와 부활동이나 티타임같은걸 즐기며 어울린다' 라는 알피를 하고 싶어서 시작한 것 같다고 얘기해주더라.  


나를 제외한 플레이어들이 뜬금고백을 한 케이온플레이어분을 갑자기 철학자라며 칭송.


물론 난 여전히 이해가 잘 안 되는 상황이었지만, 어쨌거나 플레이어들 반응이 너무 뜨거워서 열없이 웃으면서 넘어갔다. 


그날 배운 점이라면, 플레이어들의 캐메자유를 최대한 존중해줄때 그들이 100퍼센트의 노력으로 보답한다는 부분이지. 




뭐, 얘기는 이렇게 좋게 끝났어. 

 

물론 그날 이후로 내가 여는 세션에서 일본아니메풍 캐릭터를 허용해주는 일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