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4화 – “넘쳐흐르다”
“으아악!”
밀림 한 가운데서 비명이 울려 퍼진다. 나무 사이로 벌목용의 작업복을 입은 사내가 정신이 나간 듯한 표정으로 달려나가다 나무뿌리에 걸려 넘어진다. 그러나 잔뜩 긁힌 상처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정신없이 일어서서 달려가는 그. 그의 뒤에서 짐승의 모습을 한 무엇인가가 쫓아온다.
검은 그림자가 남자를 뒤에서부터 덮친다. 한쪽 손을 짐승이 물어 뜯자, 너무나 간단하게 손이 잘려간다. 남자는 균형을 잃고 피를 철철 흘리며 몇 바퀴를 구르며 튕겨 나간다. 그가 벌벌 떨며 한쪽밖에 남지 않은 손을 마구 휘둘러 댄다. 그러나 짐승은 더 이상 그를 공격하지 않았다.
“무… 무…”
남자가 횡설수설한다. 그는 벌목이 완료되어 나무라고는 밑둥 밖에 찾아볼 수 없는 땅으로 튕겨 나가 있었다. 짐승은 나무와 수풀들이 무성한 땅에서 나가지 않으려는지 눈을 빛내며 남자를 쏘아볼 뿐이었다.
갑자기 나무들이 흔들린다. 남자를 쫓고있던 수많은 짐승들이 나타난다. 네발동물의 포식자, 사람의 살을 찢어 발기고 금속도 씹어버릴 수 있는 톱날모양의 부리를 한 새, 사람 고기를 씹고 있는 팔이 네 개 달린 원숭이. 그 이외에 마치 비현실과 현실의 경계에 걸쳐 있는 듯한 모습을 한 수십의 짐승들이 수풀 사이와 나무 위, 나뭇잎 사이에서 남자를 노려보고 있었다.
뒤로 허겁지겁 물러나는 남자를 향해 짐승들이 입을 연다.
“죽여.”
“죽여라.”
“-죽여.”
짐승들이 하나같이 사람의 말을 내뱉는다. 그것도 가지각색의 언어로. 그러나 모두 똑같은 말이었다. 죽여라, 라는 말. 남자가 그 광경에 또 다시 사색이 된 채로 비명 지르며 도망가기 시작한다.
“일단 허가는 하겠지만, 그레인저. 왜 굳이?”
류 국장이 묻는다. 그레인저와 류 국장은 MSF-44 아말감의 인적 자원에 대해 면담 중이었다. 그녀는 기술 담당 요원 자리에 프로제니터나 이터레이션 X 출신인 인원이 아니라 보이드 엔지니어, 그것도 우주Horizon에서 교육 받고 있는 자를 끌어오려 하고 있었다. 그러나 모니터 건너편으로 보이는 류 국장의 얼굴은 놀라지 않았다는 표정이다.
“이 아말감이 앞으로 수행하게 될 임무의 성격을 고려했을 때, 더 실용적이고 젊은 두뇌가 필요해서.”
“그레인저.”
류 국장이 그녀를 추궁한다.
“알아. 그거야 기록용이고. 내 말에 잘 따라줄 사람이 필요하다고 하면 납득이 가겠지? 나는 출신이 다르니까.”
“그레인저, 유니언의 공식 지침은 패러다임으로 인한 한계가 아니라면 전향자들도-“
“알아, 알아.”
그레인저가 손을 내저으며 그의 말을 끊는다. AP 심포지움 전체를 내려다보는 전시안All-seeing Eye같은 류 국장의 말을 끊을 수 있는 것은 그 보다 계급이 높은 소수의 인원, 아니면 그와 비슷한 시기에 요원이 된 그레인저를 비롯한 몇몇의 ‘동기’들 뿐이다.
“현실은 그렇지 않으니까. 몰레티의 경우는 개인적인 동기를 통해 포섭했지만, 기술 고문 역할을 할 정도의 계몽 과학자라면… 글쎄. 연구실에 죽치고 있는 요원이라면 이런 아말감에 나올 이유가 없을테고.”
“프로제니터 데미지 컨트롤 출신 요원은 어떤가? 연구소 출신으로. 우수한 인원을 추천해 줄 수 있다.”
“아니. 실력은 좋겠지만 마법사들이라면 치를 떠는 요원들이 대다수인데… 오더 오브 헤르메스 출신인 나를 결정적인 순간에 따를 거라고 생각되지는 않아. 거기에 나는 일을 해결하기 위해서 트래디션과 손 잡는 걸 전혀 거리낌 없어 하니까. 스파이나 전향 위험이 크다고 의심 받는 것도 하루 이틀이 아니고.”
그녀의 말은 사실이었다. 그녀는 실제로 트래디션의 메이지들에게 있어서 이름이 폭넓게, 그것도 긍정적으로 알려진 유니언의 요원 중 한명이었다. DA이후 유니언의 트래디션에 대한 포그롬은 없어졌지만 그렇다고 해서 적극적으로 협력하는 경우도 없었다. 심지어 목적이 일치하는 경우에도.
그러나 그레인저는 목적에만 부합하면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헤르메틱 전향자 출신에 친 트래디션적인 행보까지. 그녀의 실적이 아무리 뛰어날지라도 진급하지 못하는 것은 당연했다.
“만약 개별 요원으로 돌아가고 싶다면, 다른 감독관을 임명해보도록 하지.”
“…아니.”
그레인저가 작게 한숨을 쉰다.
“언제까지나 그러려고 유니언에 온건 아니니까. 오해하지 말아줬으면 해. 이런 기회를 준 건 감사하고 있어. 당신의 편견 없는 결정에도. 그래서 말인데…”
“뭐지?”
그레인저가 잠시 책상을 두드리더니, 단숨에 묻는다.
“이 아말감을 창설한 목적이 뭐지? 아이보리 타워 밖으로 새어 나가면 안되는 위험한 임무를 맡기기 위해서라는 뻔한 소리는 사양 하겠어.”
류 국장이 감정 없는 목소리로 대답한다.
“네 두 번째 질문에 그 답이 있을 거다.”
“내가 두번째 질문을-“
“어째서 노하은을 저 정도로 강화했는가에 대해서 물으려 했겠지.”
그레인저가 입을 다물고는 불만스러운 표정으로 책상을 두드린다. 가끔 류 국장이 마법이라도 사용해서 마음을 읽는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때도 있었다. 그러나 이내 포기한다. 그에게서 원하는 답을 얻어낼 수는 없을 것임을 직감했기 때문이다.
“강화가 아니라 개조라는 말이 더 적절하지 않아?”
류 국장은 부정하지 않는다.
“글쎄. 에이다에게 당시 상황이 얼마나 위험했는지 들었지 않나? 그녀의 목숨을 살리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었다.”
그러나 그레인저는 그의 말을 신뢰하지 않는다. 에이다는 하은이 부상당한 장면을 목격하지 못했기에, 결국 중상을 당해 목숨을 살리기 위해 강화 시술을 했다는 이야기에는 믿을 만한 증인이 없었다. 류 국장을 제외하고는.
“말하는 김에, 아이보리 타워에서 내려온 임무에 대해 브리핑 해야겠군.”
자연스럽게 업무 이야기로 넘어가는 류 국장. 그레인저가 살짝 이마를 짚는다. 두 질문이 무슨 상관이 있는지 생각해보려 했지만, 알 수가 없었다.
“좋아, 차라리 일 이야기가 낫겠네.”
“치이익-“
허름한 건물 옥상. 후텁지근한 남미의 더위를 지워버릴 듯이 하은이 들고있는 히트 블레이드가 고열과 함께 아지랑이를 피어 올린다. 그녀의 다른 손 끝에는 피투성이가 된 여성이 멱살을 잡힌 채로 들려 있었다. 하은이 손을 놓으면, 그대로 건물 아래로 떨어질 것이다. 그녀는 숨막혀 하며 컥컥 대고 있었다.
“뭐.. 뭘 원하는거야!”
그녀가 남미식 발음이 잔뜩 섞인 영어로 거칠게 묻는다. 하은이 조용히 입을 연다. 그녀의 내장 HUD가 이 여성에게서 이제 현실 교란적인 흔적을 찾을 수 없음을 알린다.
이 건물은 버베나 출신의 메이지들이 결성한 카발의 근거지였다. 그러나 그들은 대부분 전투와 거리가 먼 자였기 때문에 그들의 마법적 방어와 나름 마련한 자구책은 살인기계로 개조된 하은에게 뚫리고 말았다. 피해자가 최대한 나오지 않는 방향에서 목표물을 포획하라는 그레인저의 명령이 아니었다면 지금쯤 빌딩 안은 시체가 나뒹굴고 있을지도 몰랐다. 하은이 말하기 시작하자, 전투로 입은 사소한 피해로 인해서인지 볼의 피부가 조각나기 시작한다. 그 밑으로 흉측한 내부 근육과 프리미움으로 된 턱골격이 드러난다.
“버베나의 일원, 카멜리아는 어디 있지?”
“카.. 카멜리아?”
하은이 굳이 확인 시켜줄 필요 없다는 듯이 서서히 히트 블레이드를 들어올린다.
“카멜리아라면 사라진지 2년이 넘었어! 빌어먹을 철학 차이인가 뭔가 때문에 내 친구들도 죽여버린 인간이야! 아는 사람이 있다는 것 자체가-“
하은이 그녀를 놓아버린다. 비명을 지르며 떨어지는 그녀. 그러나 그녀가 완전히 떨어지기 전에, 하은이 그녀의 발목을 잡아챈다.
“이미 너희들이 사용하는 기기들을 AI가 사전 분석하는 중이다. 평문으로 작성된 문서 중 카멜리아라는 단어가 등장하는 문서가 있더군.”
하은이 기계 같은 목소리로 말한다. 발목이 잡힌 여성이 혼비백산한 표정으로 소리지른다.
“버… 벌써? 하지만 얼마나 됐다고!“
하은이 그녀를 우두커니 내려다본다. 이미 하은이 제압해 놓은 건물 내부는 몰레티가 전폭적으로 지원하는 보안 업체가 완벽하게 장악한 상태였다. 이미 건물 내의 PC와 각종 외장 하드디스크에 들어있던 데이터는 MSF-44 아말감으로 전송되어 노먼의 분석 하에 있었다. 아무리 현실을 휘는 마법을 사용하는 자들이라 해도 모든 일상을 대체할 수는 없는 법, 현대 문명에서 자라났다면 이런 식으로 약점을 노출하게 되어 있었다.
“아는 사람이 있는 자체가 이상하다고 하려고 했던 것 같은데.”
하은이 자신의 손에 거꾸로 들려 있는 여성을 내려다보며 말한다.
“조…좋아! 말해 줄테니까! 대신 조건이-“
하은이 그녀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그녀를 들어올린다. 하은이 자신의 머리 위로 반원을 그리며 그녀를 휘둘러 건물 옥상에 그대로 내려친다. 그녀의 다리가 부러지는 소리와 함께 단말마가 울려 퍼진다. 콘크리트 바닥에 내려쳐진 여성은 그 충격으로 인해 숨도 제대로 쉬지 못하고 있었다.
“협상할 입장이 아닐텐데.”
하은이 조용히 말하며 그녀에게 다가온다. 초고열로 붉게 달아오르는 히트 블레이드가 그녀의 어깨에 가까워진다.
“다음은 팔이다.”
하은이 조용히 말하자, 그녀가 거의 울 듯한 표정이 된다.
“요원!”
두 사람 사이를 날카로운 목소리가 갈라놓는다.
“감독관님.”
하은이 일어선다.
“뭘 하고 있는 거죠?”
“현장심문 중입니다.”
“…”
그레인저가 다리를 부여잡고 끙끙대는 여성을 내려다본다.
“여기서부터는 내가 맡죠.”
“알겠습니다.”
하은이 히트 블레이드를 끈 채로 두 사람을 지나쳐간다. 그레인저가 그녀를 쳐다본다. 만약 히트마크에게 심문을 하라고 하면 이런 결과가 나오지 않을까. 그나마 장점이 있다면 하은의 경우는 꽉 막힌 일부 NWO요원들과는 달리 명령을 내리면 따른다는 것이다. 그녀의 시선이 다시 끙끙거리며 부러진 다리를 부여잡고 있는 여성에게 시선을 돌린다.
하은의 시선 끝에는 그레인저와 하은이 심문하고 있었던 현실 교란자가 있었다. 그레인저의 명령으로 인해 부상자들은 근처의 병원으로 옮겨진 후였다. 이미 다른 병실에서 치료받고 있는 -정확히는 감금된 것에 가까웠지만- 자들을 대상으로 이 일을 폭력조직과 결부된 사건으로 위장하기 위한 정보조작과 입막음이 시작되고 있었다.
예외는 그레인저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자 뿐이다. 병실 유리 너머로 보이는 그 모습은 심문이나 고문이 아니라 타이르고 설득하는 모습에 가까웠다. 부상자들을 전부 병원으로 옮긴 것도 그녀의 호의를 얻기 위해서일 것이다. 의체에 내장된 지향성 투과 마이크를 사용하면 그들의 대화를 들을 수 있을 테지만, 그럴 필요는 느끼지 못하고 있었다.
그들은 카멜리아라는 이름의 현실 교란자를 쫓고 있었다. 버베나 출신의 극히 강력한 메이지인 그녀는 유니언의 감시망에서 몇 년간 사라졌다가 최근 제 3세계의 몇몇 국가에서 목격되었다. 아이보리 타워의 명령은 그녀의 소재를 파악하고, 가능하면 무슨 일을 꾸미고 있는지 까지 ‘조사’하라는 것. 그녀의 행방을 알기 위해서는 당연히 주위 인물, 정확히는 한 때 주위 인물이었던 자들부터 조사하는 것이 당연했다.
설득이 끝난 모양인지, 그레인저가 병실을 나와 하은에게 다가온다.
“요원.”
“감독관님. 심문은 끝나셨습니까?”
“심문이 아니라 설득이에요.”
그레인저가 잘라 말한다.
“류 국장이 어떻게 가르쳤는지는 모르겠지만, 내 밑에서는 위협이라고 판단되지 않으면 그런 식의 심문은 금지에요.”
하은이 고개를 끄덕인다. 표정은 드러나지 않는다.
“정보를 얻어내다가 트래디션과 전면 충돌하는 위험 따위는 감수 할 수 없어요. 알았나요?”
그렇게 말하면서도 그레인저는 자책하고 있었다. 트래디션에게서 호의적인 시선을 받는 그녀라 하더라도 그것은 일부분일 뿐, 유니언에 극도로 적대적인 버베나의 일원들이 그녀와 협력하리라 생각하기는 어려웠다. 그래서 특정 인원을 납치하고자 하은을 보낸 것이었는데 사태가 이 정도로 커질 줄은 몰랐던 것이다.
“네.”
하은이 다시 고개를 끄덕인다.
“위치는 알아냈어요. 가죠.”
[인증 코드 확인 완료]
단순한 디자인의 메시지와 함께 그레인저가 착용한 선글라스 모양의 VDAS가 NWO의 데이터베이스에 접속되었음을 알린다. 그들은 남미의 한 도시 외곽의 허름한 호텔에 묵고 있었다. 절대적인 기준에서는 호텔이 아니겠지만, 이 근방의 숙박업소들과 비교해보면 이곳이 제일 나은 편이었다. 그것과 별개로 몰레티가 지원한 다수의 작전 병력이 위장을 위해 여러 숙소 및 유니언의 시설에 분산 배치 되어 있었다.
다른 사람이 보면 그녀는 로비의 소파에 앉아 핸드폰을 눌러 대고 있는 것처럼 보일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의심을 사지 않기 위한 행동에 불과했다. 그녀의 정신은 VDAS를 통해 전송되는 데이터에 집중되어 있었다. 안구 근육과 시신경의 미세한 전류를 감지하는 VDAS의 인터페이스가 그녀를 원하는 항목으로 접속시킨다.
바로 노하은의 개조에 대한 항목이다.
[OPERATION EPHEMERA]
길기도 하군, 이라고 생각하던 그레인저가 눈썹을 치켜 올린다. 에페메라는 트레디션 메이지가 영혼Spirit의 구성성분이라 여기는 무언가를 가리키는 용어다. 당연히 유니언에서는 사용하지 않는다. L 한글자를 더 붙이면 일시적이라는 뜻도 있긴 하지만, 무언가 석연치 않았다. 거기에 ‘작전’이라니? 그녀는 프로젝트라던가 프로그램 같은 단어를 기대하고 있었다. 그녀가 아는 것 이상의 무엇인가 있다는 예감이 든다.
[접속 불가]
그레인저가 다시 접속을 시도하지만, 여전히 불가능하다. 심지어 사유마저 조금 황당할 지경이다. 권한 부족이라니? 아말감의 지휘관이 휘하 인원의 과거에 대해 정보 조회를 거부 당하는 경우는 많지 않다. 그녀가 상세한 정보를 확인한다. 역시 류 국장에 의해 접근이 제한이 된 파일이었다.
그녀가 류 국장에게 연락할까 생각하는데, 갑자기 VDAS 너머로 누군가 앉아있는 것이 보인다. 그녀가 즉시 VDAS를 종료하고 품 속으로 손을 뻗는다. 눈치채지 못한 사이에 건너편 의자까지 접근할 정도라면 분명 트래디션이나 비슷한 부류의 메이지임이 틀림 없었다. 권총을 잡는 찰나, 건너편에 앉은 여성이 그럴 필요 없다는 듯 손을 저어 보인다. 그레인저가 그녀를 알아본다.
“탈리아.”
유타나토스의 암살자, 탈리아가 태연한 모습으로 앉아있었다. 그녀 치고는 드물게도 옷을 입은 상태였다. 그러나 얼굴은 당연하게도 현지인과 비슷한 모습으로 ‘칠해’ 놓은 모양이었다. 그레인저와 탈리아는 극히 위험한 현실 교란자나 유니언 출신의 네판디를 처치하는 과정에서 몇 번 만난적이 있었다.
“그레인저, 여긴 웬일이지?”
“그쪽이야 말로요.”
그레인저가 방어적으로 묻는다.
“감독관님.”
근처에 호위를 위해 앉아있던 하은이 무엇인가 감지한 듯 재빨리 그레인저에게 다가온다. 탈리아와 하은의 시선이 마주친다. 두 사람의 관계에 대해서는 이미 알고 있었다. 어느 정도까지 인지는 모르겠지만, 하은은 탈리아를 기억하는 모양이었다. 그레인저가 위협적인 시선을 느끼며 두 사람 사이를 가로막으려는 듯 한쪽 손을 들어올린다.
“우선순위라는 게 있을 텐데요.”
잠시 뒤, 탈리아의 시선이 거두어진다.
“…물론. 보아하니 그쪽도 카멜리아를 죽이러 온 모양인데.”
“우리는 단지 조사역일 뿐이에요.”
“그렇다고 하기에는 너무 많은 병력을 데려온 것 같더군.”
그레인저가 무언가 대답 하려다가, 말을 아낀다.
[감독관님.]
[뭐죠?]
탈리아와 그레인저가 나름 서로의 임무를 탐색하는 동안 하은이 보낸 메시지가 그녀의 머릿속에서 들려온다. 그레인저는 따로 두뇌 임플란트 같은 것을 장작하고 있지는 않지만, 이미 신경계와 일체화된 그녀의 의수를 이용해 임플란트를 장착한 요원들과 내부 통신망으로 연락이 가능하다. 두뇌 임플란트나 뇌파 스캐너 등을 이용한 외부장치를 통해 이런 식으로 동시에 두가지 이야기를 진행하는 것은 테크노크라틱 유니언의 요원들이 흔히 쓰는 트릭 중 하나였다.
[이 자를 추적해서 처치하겠습니다.]
그레인저가 놀라 대화를 멈출 뻔 한다.
“그래서, 그쪽의 정보 출처는 어디죠?”
간신히 그 순간을 넘기며 질문을 던지는 그레인저.
[요원, 우리는 보이는 트래디션 메이지마다 전부 도살하러 온 게 아닙니다.]
“알고 있겠지만, 데미안의 꿈이지.”
탈리아의 시선이 살짝 하은을 향했다가 다시 돌아온다. 아직 그녀에 대한 예언은 불확실하지만, 유효하다.
[이 자는 너무 위험합니다. 꿈을 통한 예언과 정보를 믿고 살인을 저지르고자 하는 자들입니다. 그것도 극히 현실 교란적인 방법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레인저는 기각한다.
[나도 알아요. 하지만 그녀에 대한 상부의 분석은 중립적이에요. 이미 이 작전 때문에 한바탕 소동을 일으켰는데, 더 일을 크게 하고 싶지는 않네요.]
“그 내용은?”
“카멜리아가 우리의 기준에서도 너무 이질적인 것이 되어 가고 있어. 확실한 건 그녀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많은 사람들이 죽어야 한다는 것뿐.”
“고전적인 버베나식 희생의식이라도 치루나 보죠?”
탈리아가 코웃음 친다.
“그런 거라면 얼마나 좋을까. 다미엔은 그녀가 숨어 있는 밀림에서 죽어 나가는 사람들을 보았을 뿐이야. 그것도 많이.”
“너무 성급한 해석이네요.”
탈리아가 대답하지 않은 채 일어서서는 돌아선다. 최소한 이 자리에서 그녀에게 적의는 없는 듯 했다. 건물 밖으로 걸어 나가는 탈리아의 뒷모습을 하은이 위협적으로 바라본다.
“그럼 다시 만나지.”
“Man down!”
“피해는?”
과연, 생명 마법의 대가라는 타이틀은 거저 붙여진 것이 아니었다. 2명의 계몽된 요원, 5명의 EC, 소대 2~3개급의 병력과 다수의 험지 돌파 장비를 가지고도 벌써 부상자가 나오고 있다. 깊숙한 밀림에 진입 하자 마자 마치 밀림 전체가 그들을 잡아 먹으려 하는 듯 했다.
처음에는 기습적으로 튀어나오는 맹수, 스치기만 해도 염증을 일으키는 덩굴 같은 것 뿐이었다. 그러나 안쪽으로 들어갈수록 달라진다. 이 곳에서는 부정적인 의미에서 생명이 넘쳐나고 있었다.
“아악!”
비명이 울려 퍼진다. 호위 병력 중 한명이 맹수의 피에 뒤덮인 채로 바닥을 구른다. 그 옆에는 네발동물이라는 점을 제외하고는 현실에 존재 한다기에는 너무나도 과장된 형상을 지닌 맹수가 쓰러져 있었다. 맹수의 피가 묻은 곳에서 물집이 솟아오르고 고름이 터져 나온다.
“의무병!”
그 비명 사이로 이번에는 나무 위에서 무엇인가 뛰어내려온다. 똑같은 종류의 맹수다. 병사들을 덮쳐오는 맹수를 향해 그림자가 뛰어오른다. 하은이다. 두 형상이 공중에서 뒤엉킨다. 하은이 품에서 블레이드를 꺼내든다.
[요원!]
그녀를 다그치는 그레인저의 급한 통신. 하은이 자신의 실수를 깨닫는다. 공중에서 맹수를 처치해 봐야 피가 뿌려져 다수의 부상자를 낼 뿐이다. 두 형상이 뒤엉켜 땅으로 떨어진다. 하은이 맨몸으로 맹수와 격투를 벌인다. 목을 덮쳐오는 이빨을 주먹으로 쳐내고 두 다리로 맹수를 차낸다. 맹수의 날카로운 발톱이 그녀의 오른쪽 팔의 피부를 찢어낸다. 그것이 하은과 거리를 벌린 채 마치 도약하려는 듯 낮게 엎드린다.
그러나 갑자기 그녀가 예상하지 못한 일이 일어난다.
맹수들이 입을 연다. 하은의 앞에 있는 놈이 입을 열자 칼날을 연상케 하는 이빨이 드러난다. 머리 위를 날아다니는, 마치 악몽에서 튀어나온 것 같은 거대한 박쥐가 비명을 토해낸다. 뱀의 몸에 마치 도마뱀의 것 같은 다리가 수십 개 달린, 뱀이라기보단 지네 같은 모습의 파충류가 죽은 대원을 뜯어 먹다 말고 울부짖는다. 다음 순간 동물의 울부짖음이 인간의 말로 변한다.
“죽여라.”
“죽여.”
“죽여-“
“요원님!”
외침과 동시에 그녀가 자세를 낮춘다. 그 위로 무자비한 총격이 쏟아져 맹수를 찢어발긴다. 그들 주위로 괴수들이 뛰어다니며 죽여, 라는 말을 울부짖는다. 그러면서도 그들을 공격하는 것을 멈추지 않는다. 심지어 개중에는 다른 짐승들을 공격하고 잡아먹는 놈들도 있다. 하은이 또 다른 맹수를 처치하기 위해 뛰어간다. 그녀의 머리 위로 EC의 신들린 듯한 저격이 이어진다. 화염방사기가 불을 뿜어 마치 뱀처럼 움직이는 덩굴을 태워버린다. 소이 수류탄이 폭발하며 반경의 괴물들을 먼지로 화하게 한다.
만약 이런 광경이 밀림이 아니라 다른 곳에서 벌어졌다면 소형 스마트 미사일이나 메탈스톰건, 아니면 소이탄을 투하하는 UAV 를 이용해 압도적인 화력으로 쓸어 버렸을 것이다. 그러나 이곳은 이미 카멜리아가 뿜는 현실 교란적인 기운Resonance에 의해 잠식된 상황. UAV는 통신이 끊긴지 오래고 스마트 미사일 발사기 같은 것은 고장난지 한참이다. 그렇다면 짐승들과 육박전을 벌이는 수밖에 없다.
화염이 솟구쳐 오르고 곳곳에서 폭발음이 일어난다. 그 사이를 하은이 종횡무진 뛰어다닌다.
그리고 그들의 싸움을 먼 곳에서 지켜보는 눈이 있었다. 탈리아다. 싸움이 잦아들고 MSF-44 아말감의 병력이 이동하자 그녀가 거리를 충분히 벌린 채 그들을 몰래 따라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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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넘치는거 졸라멋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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