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5화 – “THREAT NULL”
“그럼 다들 돌아와서 뵙죠.”
하은, 에이다, 그리고 그레인저 세 사람은 몰레티 그룹이 극비리에 보유하고 있는 준궤도용 항공기에 탑승하고 있었다. 미 공군의 초고고도 실험기 X-15와 호화 여객기라는 괴상한 조합으로 만들어진 이 항공기는 상승한도가 130km는 넘어가는 물건이었다. 안쪽에는 기업 고위 임원들이나 쓸 법한 고급 인테리어가, 바깥쪽에는 로켓엔진과 터보팬이 둘 다 달려있는 이 항공기는 준궤도까지 자력으로 도달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꽤나 긴 시간 동안 순항할 수 있었다. 물론 단독으로 궤도를 탈출하지는 못하기에 우주로 이 비행기를 데려가는 것은 보이드 엔지니어 셔틀의 몫이다.
“몰레티, 우주로 가는 휴가도 괜찮을 것 같은데요.”
“아뇨. 이제 우주 여행은 지겨워서. 나이 60이 가까워지면 땅에 발을 붙이고 있는게 제일 편합니다.”
그레인저가 웃는다. DA 이전만 해도 지구에 근무하는 유니언의 일원들은 휴가를 우주에서 보낼 수 있는 특권이 있었다. 지금은 예산 감축으로 인해 쉽지 않지만. 세 사람 역시 우주에 나와보는 것은 처음이었다. 하은은 자리에 앉은 채 바깥을 바라보고 있었다. 준궤도에서 바라보는 지구는 그다지 인상적이지 않았다. 오히려 새까만 우주 공간이 창 밖의 반을 차지하고 있는 것이 더 기억에 남을 것 같았다.
“아, 보이드 엔지니어 셔틀이 온 것 같군요. 그럼 나중에 뵙죠. 에이다, 쾌차를 빕니다.”
에이다가 충격 및 G를 거의 완벽하게 흡수해주는 푸른색의 겔에 감싸인 채 캡슐 안에서 고개를 끄덕인다. 이 여행의 목적은 두가지다. 하나는 아직도 하반신이 마비되어 있는 에이다의 수술을 위해서다. 몸 안에 남아있는 총탄을 완벽하게 제거하고 재활 수술을 하기위해서는 무중력 무균 수술실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다른 하나는 보이드 엔지니어 출신의 과학 장교를 구하기 위해서다.
고고도 순항중인 기체가 살짝 흔들린다. 그 위에서 보이드 엔지니어 순항 셔틀이 클로킹을 풀고 기체와 도킹한다. 1회용 위장막을 펼쳐 지상에서의 관찰을 차단한다. 기체 안에서는 그레인저가 만일의 사태를 대비해 경량 우주복을 착용한채 좌석에 스스로를 고정한다. 아무것도 할 필요 없는 것은 하은 뿐이다. 의체를 외압 차단모드로 변경하는 정도로도 진공에서 활동할 수 있기 때문이다.
스크린이 도킹 완료를 알린다. 셔틀이 서서히 기체와 함께 대기권을 완전히 벗어나 공허 속으로 향하기 시작한다.
“위잉-“
부드러운 소리와 함께 셔틀이 도킹을 완료한다. 압력 조절 과정이 끝나자 항공기의 문이 열린다. 단단히 항공기와 연결되어 그들을 진공에서 안전하게 보호하는 흰색의 통로를 지나 그들이 보이드 엔지니어의 심우주 스테이션에 들어선다. 컨벤셔널 스페이스와 심우주의 경계에 위치해 있는 이 시설은 보이드 엔지니어의 생도들을 교육하는 곳이었다. 하은이 창 밖을 바라본다. 호화 항공기가 우주 정거장에 매달려 있는 것은 꽤나 이상한 광경이었다.
통로의 끝에서 누군가 달려온다. 짧은 더티 블론드와 푸른 눈을 가진 소녀다. 기껏해야 16, 17살 정도 되어 보일까.
“루나.”
“헤ㄹ-“
“이제 그 이름은 안 쓰는 거 알고 있잖아.”
루나가 고개를 끄덕인다.
“미안, 미안. 반가워서, 진. 아, 에이다씨! 반가워요!”
옆에서 아직도 캡슐에 실린 채로 실려가는 에이다를 향해 루나가 인사한다. 에이다가 쓴 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인다. 그녀는 수술 준비를 위해 의료진과 함께 수술실로 향하고 있었다.
“조심해서 대해드려야 해! 귀한 손님이니까!”
“알겠습니다, 대령님!”
군의관 중 한명이 기합이 들어간 목소리로 말한다.
“이쪽은?”
루나가 하은을 보면서 그레인저에게 묻는다.
“이쪽은 도로시. 우리 아말감의 전투 요원이지. 요원, 루나 대령이에요.”
“만나서 반갑습니다.”
하은이 그녀와 악수한다.
“손 힘이 상당히 세네요.”
그녀가 의미심장하게 말한다.
“아직 못 고쳤나 보네.”
그레인저가 그녀에게 말한다.
“뭐, 어쩔 수 없지. 수정단계의 세포로 퇴화하기까지 앞으로 길어야 20년 정도는 남았으니 그 전에는 어떻게든 되겠지. 나이를 거꾸로 먹을 때는 한동안 좋았는데 말야… 패러독스가 다 그렇지 뭐. 그럼 갈까? 딱 맘에 들만한 후보생을 뽑아놨으니까.”
“위잉-“
보급용의 컨테이너를 잔뜩 실은 수송기가 스테이션에 도킹한다. 그 모습을 내려다보며 관제소에서 근무자들이 기쁜 표정으로 떠든다. 물론 스테이션 내부에도 자체 식량 생산 시설이 있긴 하지만 분명 한계가 있다. 따라서 각종 기호품은 이런 식으로 보급하는 수 밖에 없다. 아마 오늘은 PX가 미어 터지는 날이 될 것이다.
기뻐하는 근무자들의 기분을 알아차린 것인지, 파일럿이 콕핏의 창을 통해 엄지를 올려 보인다.
기체 내의 여압이 완료되자 그가 헬멧을 벗고 콕핏에서 나온다. 그가 슬림한 우주복을 벗는다. 그 안의 인물은 이상하게도 지구상에서나 입을 법한 최고급의 정장을 입고 있었다. 그가 즐거운 듯 가볍게 발걸음을 옮기며 벽에 걸려있는 넥타이를 목에 맨다. 한편에 걸린 금속 거울을 보던 그가 얼굴을 찌푸린다. 우주복으로 인해 머리 스타일이 헝클어졌던 것이다. 그가 재빨리 우주 전용의 포마드를 이용해 머리를 정리한다.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그가 수송칸으로 내려간다.
“악성 고객에게서 수금을 할 때는 이 방법이 최고지.”
그가 수송컨테이너를 연다. 그 안에서 똑같은 얼굴, 똑같은 체형, 똑같은 목소리의 인간들이 걸어 나온다. 한치도 다르지 않은 그 모습을 보고 있으면 누구라도 몸서리칠 것이다. 남자가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그 모습을 바라본다. 그가 스위치를 작동시키자 천천히 후면 램프가 내려가기 시작했다.
“자, 어디보자…”
루나가 훈련 중인 후보생들 중 그녀가 골라 놓은 후보생을 찾고 있었다. 그들은 CQC를 교육 받고 있었다. 파워 아머를 입고 플라즈마 수류탄을 던져대는 시대에 무슨 근접 전투를 배우냐고 반문하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현실은 조금 달랐다. 움브라에서 맞닥트리는 EDE나 다른 적대적 존재들이 반드시 갑각을 지닌 벌레나 촉수가 덕지덕지 달린 괴물인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인간형의 적과 맞닥뜨리거나 정신 지배를 당하는 요원을 제압하는 등 쓸 곳은 무궁무진하게 많았다.
“자, 거기 요원!”
하은이 고개를 돌린다.
“잠깐 이리 와주지 않겠나?”
그레인저가 고개를 끄덕이자 하은이 순순히 그에게 다가간다. 생도들이 하은을 호기심의 눈으로 바라본다. 그들 중에는 아예 지구 출신이 아닌 인원도 있었기 때문에 더욱 그랬다. 하은이 훈련실 안으로 들어서자 발이 바닥에서 뜬다. 중력 필터가 훈련실 내를 무중력으로 만들어 놓고 있었다. 그녀의 움직임을 보조하기 위해서 고정 핸들이 벽에서부터 뻗어온다. 하은이 그것을 잡은 채 교관 앞까지 도달한다. 무중력 상태에서 움직여 보는 것은 처음이었으나 그녀의 동작 보조 프로그램이 그녀의 움직임을 제어하여 허공에 멈추게 만든다.
“음? 강화 요원인가?”
하은이 고개를 끄덕인다.
“어떻게 아셨습니까?”
“뭐, 뻔하지. 맨날 무술 연습만 하다 보면 인간과 동일하게 움직이는데 무게나 출력 차이 때문에 미세하게 차이가 나는 경우가 있거든. 그건 그렇고 좀 도와줘도 되겠나?”
하은이 고개를 끄덕인다.
“자, 지금부터 전투 상황을 가정할 거다. 여기 있는 요원은 나보다 힘이 세고, 반사 신경도 빠르다. 당연히 알고 있겠지만 네놈들이 상대할 EDE 중에는 그런 녀석들이 널렸지. 그 놈들이 팔을 잡는다고 생각해보자. 요원?”
하은이 핸들을 잡고 살짝 물러선다. 그녀가 재빠르게 손을 뻗어 교관의 팔을 잡는다. 반동 때문에 그녀가 예상하는 것보다 살짝 먼 곳이 잡힌다.
“?!”
팔을 잡자 마자 그가 팔을 크게 휘두른다. 지구였다면 중력과 무게, 그리고 근력의 차이로 인해 꼼짝도 하지 않았겠지만 아무것도 딛지 않은 무중력 상태에서는 하은과 교관이 서로 반대 방향으로 돌아가게 될 뿐. 다음 순간 그가 하은의 옷을 배 부분에서 잡고서는 그대로 끌어당기며 반대팔을 크게 휘둘러 하은을 쳐낸다. 하은이 반동으로 튕겨 나간다. 그녀가 공중에서 고정용 핸들을 잡으며 크게 흔들리는 자세로 멈춰 선다.
“자, 다들 봤겠지? 내가 방금 한 동작을 해설할 수 있는 사람?”
멍한 표정의 생도들을 보며 교관이 푸념한다.
“내참, 이놈들 보게… 요원, 미안하지만 설명을 부탁드려도 되겠나?”
“방금 같은 자세에서는…”
하은이 그들 앞으로 다가와 설명하기 시작한다.
“저의 무게중심이 잡혀 있기 때문에, 무게 전체를 이용한 타격도 불가능하며 공격 거리도 짧아집니다. 반면 상대는 무게 중심에서 먼 곳을 이용해 저를 잡고 있기 때문에 무게를 실어 긴 리치를 살려 힘이 실린 지닌 공격을 가할 수 있습니다.”
“허.”
교관이 혀를 찬다.
“이 정도의 교환비를 유지한다는 가정, 그리고 맨몸의 인간이 금속에 타격을 가하면서 스스로의 몸을 상하게 하지 않을 보호책만 구비한다면, 몇배는 강하고 빠른 적과도 비등하게 싸울 수 있을 겁니다.”
하은이 마지막으로 정리한다.
“자, 다들 봤나, 생도들? 요원이 된다는 건 이런거다! 부끄러운 줄 알도록! 네놈들은 오늘 전부 고중력하에서 PT다!”
교관의 힘찬 목소리가 울려퍼진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루나가 묻는다.
“어디 출신이야?”
“현장 채용된 요원이야. 웨더스 소령이…”
그레인저가 말꼬리를 흐린다. 원래라면 웨더스는 지금 루나의 보좌로 근무하고 있어야 했다. 그러나 그는 수감되어 있었다. 당연한 일이지만, 그 이유는 기밀로 분류되어 아주 소수의 사람만이 알고 있을 뿐이었다.
“…추천한 요원인데… 에이다의 말에 따르면 강화, 아니, 개조 이전에는 상당히 재능 있는 요원이었다는데 지금은…”
“히트마크나 다를 바가 없게 됐다는 건가?”
“그렇지.”
그레인저가 또 다시 말꼬리를 흐린다. 그녀는 하은이 카멜리아의 의도를 간파했던 일을 떠올리고 있었다. 분명 그녀의 컨디셔닝에는 완벽하지 않은데가 있었다.
“잘 해봐. 에이팍!”
루나가 생도 중 한 명을 부른다. 그녀가 호출한 생도가 약간 허둥대며 하은과 같이 그들에게 다가오고 있었다.
“됐다.”
정거장의 중심, 엔진실에서 두 엔지니어가 보호복을 입은 채 작업 중이었다. 정거장의 추진력을 담당하는 특이점 코어 엔진은 조금 느리지만 정거장의 거대한 질량을 충분히 옮길 수 있을 정도의 추력을 제공한다.
“제인, 그쪽 기기 체크 좀 해줘.”
“이상 없어.”
덤덤한 대답이 들려온다.
“오케이. 빨리 끝내고 맥주나 한잔 해야겠구만. 4번 파이프 잠깐 정지해줘.”
그러나 이번엔 대답은 들려오지 않는다.
“제인?”
그가 고개를 돌린다. 제인이 보호복을 벗어버리고 있었다.
“제인! 미쳤어?”
그가 황급히 소리지르며 달려가려 하지만 이미 늦었다. 그의 등에 식은땀이 흐른다. 인간이라면 보호복을 개방하는 순간부터 몇 초 내에 쓰러지는 것이 당연한 일인데 지금의 제인은 멀쩡했다.
“너… 넌 뭐지? 제인에게 무슨 짓을 한 거야!”
평범한 여성의 외모를 한 그것의 겉표면이 부글거리더니 서서히 은색으로 변해간다. 저게 무엇이든지 간에 엔진 코어에 접근하게 해서는 안된다. 그가 비상 락다운 프로토콜 버튼으로 달려간다.
“이런 제ㄱ-“
픽.
그가 멈춰 선다. 그의 이마에는 사람 손가락 두께의 구멍이 뚫려 있었다. 제인의 모습을 하고 있었던 무엇인가의 손으로부터 은색의 채찍 같은 것이 쭉 뻗어 나와 구멍을 뚫어버리고는 다시 수축해 사람의 손가락 모양으로 돌아간다.
부글거리던 형상이 매끈한 재질의 은색 금속으로 된 여성의 모습으로 변한다. 그녀가 천천히 특이점 코어의 케이지 문을 열고 들어선다.
보랏빛으로 빛나는 둥근 구체. 그 주위로 푸른 스파크가 간헐 적으로 튀며 케이지 안을 밝힌다. 그 외부로 검푸른 색의 에너지 흐름이 요동치며 코어를 감싸고 있었다. 그녀가 자신의 배에 손을 가져다 댄다. 마치 액체 금속의 바다에 손을 집어넣는 것처럼 그녀의 손이 자연스럽게 밀려들어간다. 부드러운 미동이 그녀의 전신에 퍼져 나간다. 그녀가 손을 꺼낸다. 그녀의 손 안에는 마치 전선과 기계장치로 만든 예술품을 연상하게 하는 작은 장치가 들려 있었다.
“시작해볼까.”
그녀가 메마르게 말하며 그 장치를 공중에 놓는다. 그 장치와 특이점 코어가 공명하더니, 장치가 코어 안으로 빨려 들어간다. 푸른색의 에너지 장이 케이지 안을 휩쓴다.
“안녕하십니까, 요원님! 에이팍입니다! 잘 부탁 드립니다!”
쓸데없이 기합이 들어간 외침에 그레인저가 그만 웃어버리고 만다. 아무리 봐도 군인보다는 자기 집 차고에서 어른의 취미로 이것 저것 가지고 노는 타입의 대학생 같았기 때문이다.
“자, 자. 에이팍. 주특기가 뭐지?”
“예! 하이퍼테크 공학입니다!”
“부특기는?”
“예! EDE 및 이종생물학, 차원 과학, 그리고-“
그 뒤로는 일반인이 알아듣지 못 할 만한 복잡한 이름의 학문이 이어진다.
“-마지막으로 아카데미 졸업논문 주제는 이중 축 워프 필드 생성입니다!”
“요원, 혹시 에이팍 소위가 하는 말을 알아듣겠나요?”
그레인저의 물음에 하은이 고개를 살짝 젓는다.
“소위, 좀 쉬운 말로 설명해드리는 건 어떤가?”
“그…”
잔뜩 들어간 기합이 빠진다. 그가 약간 맥빠지는 소리로 말한다.
“일반적으로 공학자들에게 기대되는 것은 전부 할 수 있습니다만… 스파이 영화에서 나오는 웬만한 후방 요원들보다 제가 두배는 더 잘 할 수 있습니다. 굳이 원하신다면 현장에서 전투요원으로 뛸 수도…”
“그 정도면 됐어요. 루나의 추천이 있기도 했고.”
“저… 정말이십니까?”
에이팍이 얼굴에서 기쁨을 감추지 못하며 말한다. 그가 알기로 이 아말감은 지구상에서 제일 거대한 권력을 가진 기관, 아이보리 타워 직속 아말감이었기 때문이다. 그의 커리어를 시작하기에는 더할 나위 없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었다. 반만 맞는 생각이었지만.
“그럼요. 그 전에-“
쿠웅-
갑자기 낮은 진동이 정거장 전체를 울린다.
“루나 대령이다. 뭐지?”
루나가 귀에 꽂힌 통신기를 통해 브릿지를 호출한다.
“대령님. 아직 원인은 불명입니다. 현재-“
다시 한번 거대한 진동이 정거장을 휩쓸고 지나간다. 루나가 얼굴을 찡그린다. 이런 진동은 단지 한 구역에서 사고가 일어나거나 해서 발생하는 것이 아니다.
“지금 당장 코어 엔진 룸의 감시 영상을 보여줘.”
“네.”
통신기가 루나만 볼 수 있을 정도로 작은 홀로그램 스크린을 그녀의 눈 앞에 띄운다. 그 화면 안에서 방금 벌어졌던 일이 다시 재생된다. 누군가가 특이점 코어를 사보타주 한 것이 분명했다. 문제는 무슨 일이 벌어졌냐가 아니라, 누가 그런 일을 저질렀는가다.
나노 머신 기술을 사용한 액체 금속 육체, 특이점 코어를 파괴하지 않고 단지 일시정지 시킬 뿐인 기술력. 뻔하다. 계몽 프로시져를 무효화 시키는 새로운 적, 쓰렛 널Threat Null이다.
“에이팍 소위, 지금 당장 손님 두 분을 보호 캡슐로 모시도록.”
“루나?”
“미안. 사태가 조금 커질 수도 있을 것 같네. 일단은 에이팍 소위가 데려가는 곳에서 안전하게 있어줘. 총원 전투 배치!”
그녀가 통신기를 통해 명령을 내린다. 순식간에 경보음이 울리고 정거장의 보안 병력들이 바빠지기 시작한다. 훈련중인 생도들도 배치 받은 곳으로 뛰어간다. 비상 격리 해치가 닫히고 중추 시설이 락다운 상태에 돌입한다. 하은과 그레인저가 있어봐야 이런 상황에서는 별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다. 그들이 어쩔 수 없이 에이팍을 따라간다.
“휴, 여기입니다.”
“고마워요, 소위.”
보호 캡슐 안은 외부와의 통신을 위한 콘솔, 몇몇 생명 유지 장치, 영양 블록 등 생존 키트가 적재된 단순한 방이었다. 위치로 보아 비상시 바깥으로 사출될 수도 있는 것 같았다.
“혹시 무슨 일이 있게 되어도 안심하십시오. 근처의 보이드 쉽이 구조를 위해 도달할 때까지 충분히 진공에서도 버틸 수 있을 겁니다. 벽 자체는 그렇게 튼튼하진 않지만 자체적으로 겔 형의 보호막을 형성해 미세 디브리를 막을 수 있게 설계되어 있습니다.”
“소위, 혹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건지 알려줄 수 있나요?”
“죄송합니다. 저도 잘…”
그가 잘 모르겠다는 표정을 짓는다. 그러나 그레인저는 그의 표정에서부터 그가 거짓말을 하고 있음을 알아차린다.
[감독관님, 에이팍 소위의 말은 사실이 아닌 것 같습니다.]
[나도 동의해요.]
하은은 센서를 통해 관측되는 동공의 흔들림이나 말투의 변화를 통해, 그레인저는 NWO요원들이 훈련 받은 방식을 통해 알아냈지만 결과는 같았다. 뭔가 그들이 알아서는 안되는 위험이 이 정거장을 습격하고 있는 것이 틀림 없었다.
“그럼 요원님, 부탁드립니다.”
일단은 그의 말에 순순히 따르기로 한다. 감금당하는 것도 아니니까. 두 사람이 안으로 들어가자 마자 에이팍이 자신의 위치로 뛰어간다.
“콰앙!”
폭발과 함께 루나, 그리고 그녀를 호위하던 마린들이 튕겨 나간다. 그들이 매캐한 매연 속에서 서로를 부축하며 일어난다. 그들이 다시 태세를 정비하기도 전에 검은 연기 속에서 누군가 걸어 나온다.
너무나도 아름다우며, 건강미의 정점을 자랑하는 것 같은 몸. 계산 된 듯한 미모,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별의 구분이 완벽하게 제거된 인공적인 육체. 남성도 아니고 여성도 아닌 그 존재들이. 똑같은 얼굴, 똑같은 표정, 똑같은 몸을 한 자들이 그들을 둘러싼다. 루나를 호위하는 마린 들이 그들에게 총구를 겨눈다.
그러나 그들은 아랑곳 하지 않은 채 합일된 목소리로 말한다. 매혹적인 코러스가 그들을 아찔하게 한다.
“항복하라. 그리고 완전해지도록 하라.”
프로제니터의 뒤틀린 완성형, 트랜스휴매니티가 그들에게 고한다.
“쿠웅-“
거대한 진동이 다시 한번 캡슐을 울린다. 밖에서는 간간히 총격음과 폭발이 들려오고 있었다. 갑자기 캡슐 내의 조명이 깜빡이더니, 불길한 붉은 색의 저전력 조명으로 전환된다.
“요원, 진공 상태에서의 전투력은 얼마나 되죠?”
그레인저가 캡슐 안에 비치된 간이 우주복을 꺼내며 말한다.
“중력 하에서라면 지상과 거의 다름 없습니다. 단 내장 전원 차단 후에는 산소 결핍으로 인해 일부 동력계의 사용이 제한되므로 60% 정도라고 보시면 될 것 같습니다.”
사람의 몸 보다는 터보 엔진을 단 전투기에 더 어울릴 듯한 대답을 내놓는 하은.
“좋아요. 그럼-“
“콰앙!”
갑자기 캡슐의 문이 외부에서 엄청난 충격을 받아 흔들린다. 두 사람이 캡슐의 문에서 물러선다. 그레인저가 재빨리 나노 팩토리가 장착되어 자유자재로 탄환의 형상을 변환시켜 발사할 수 있는 권총을 꺼내 든다. 하은이 그녀를 보호하듯 그녀의 옆에 선다.
다시 한번 문이 흔들린다. 누군가 문을 부수려는 것이 분명했다. 잠깐의 침묵. 그 침묵을 깨버리 듯 날카로운 칼날이 X자로 문을 잘라버린다. 누군가 문을 박차며 캡슐 안으로 들어선다.
“쉬익-“
나노 팩토리가 순식간에 만들어낸 니들러 탄환이 문을 부수며 들어오는 무언가에게 박힌다. 그러나 탄환은 장갑을 관통하지 못한 채 박혀 있었다. 마치 물렁한 젤리에 파묻혀 있는 것 같았다.
“그런 구형 장비를 사용하다니. 변절자들의 수준도 뻔하군.”
그 형상이 합성음의 목소리를 내뱉는다. 금속성의 소리와 함께 탄환이 튕겨 나간다. 여성의 몸을 은색의 액체 금속으로 본 딴 것 같은 형상이 방 안으로 들어온다. 방금까지만 해도 탄환이 묻혀 있던 복부 장갑은 물렁한 액체의 모습에서 단단한 금속으로 다시 돌아와 있었다. 그녀가 서서히 고개를 돌려 두 사람을 본다. 이터레이션 X의 초월자들, 오토폴리탄의 일원인 칸노 미호가 그들을 경멸하는 시선으로 내려다본다.
“네 구형 장비는 나에게 통하지 않는다, 요원. 항복하라.”
그레인저는 이런 타입의 사이보그를 본적이 있었다. DA 이전 나노 머신으로 이루어진 액체금속으로 제작된 히트마크가 그것이었다. 아무리 좁은 틈이라도 침투할 수 있고, 대구경 소총까지 버텨내는 강도를 가졌으며 현실교란적인 수단에 대한 저항력이 매우 뛰어난 기종이었다.
그러나 이… 것은 다르다. 정확히는 그 안에 들어있는 것이 다르다. 그 안에는 분명히 계몽된 정신이 들어있었다.
“항복하라, 요원.”
하은 역시 공격적인 자세를 취한다.
“자, 미호 양. 그렇게 말해봐야 이들은 항복하지 않을 겁니다. 거기에 앞에 계신 분은 최신형의 의체를 가지고 계신 것 같군요. 당신이 별 피해 없이 이기리라고 장담할 수는 없을 겁니다.”
미호라 불린 액체 금속의 형상이 문을 완전히 젖히자 그 옆으로 날카로운 인상의 남성이 들어온다. 그레인저가 흠칫 놀란다. 그는 마치 NWO의 요원을 연상시키는 듯한 모습이었다.
“하지만 저희 에이전시Agency는 항상 이런 상황을 대비한 우발대책을 몇 개씩 가지고 다니죠. 예를 들어서 이게 있겠군요. 오버라이드 코드 알파-델타-7-8-1-0, 허가 코드 찰리-찰리-에코-델타. 러브레이스 프로토콜 발동. 자체 점검 모드로.”
“!”
그레인저가 또 다시 놀란다. 그러나 놀람의 표정이 가시기도 전에 그 옆에서 하은이 축 늘어지며 바닥에 쓰러진다.
“대체 그 코드를 어떻게 아는 거지?”
그레인저가 권총을 그자에게 겨눈다. 러브레이스 프로토콜은 DA 이전, 일부 히트마크나 폭주하는 강화 요원들을 셧다운 하기 위한 비밀 프로토콜 중 하나였다. 지금은 극도로 강화된 요원의 비중이 적어져서 잘 쓰이지 않기에 하은 정도로 강화된 요원이 소속된 아말감의 감독관, 예컨대 그레인저 같은 요원에게나 권한이 주어진 프로토콜이었다. 코드 생성 알고리즘 역시 DA 이전부터 철저하게 기밀로 분류되어 있는 비밀이었다.
그러나 디멘셔널 아노말리에서 살아남은 NWO의 미친 음모론자들인 에이전트Agent라면 이야기가 다르다.
“오, 이런. 이게 누구십니까.”
그러나 그는 태연한 얼굴로 그레인저를 향한다.
“아니, 그전에 먼저 질문에 답해드려야겠군요. 저희 에이전시는 컨트롤Control로부터 일부 요원에 대한 통제권을 위임 받고 있습니다. 러브레이스 프로토콜은 그 일환이죠.”
그레인저의 얼굴이 창백 해진다. 과거 유니언을 이끌었던 합일된 의지, 컨트롤은 더 이상 나타나지 않는다. DA 이후로는 더 이상 흰색 옷으로 차려 입은 남자가 나타나 유니언의 지도부에 명령을 내리는 일도 없으며, 그들이 요원을 보내오는 경우도 없다. 대신 살아남은 최상급의 요원들이 그것을 대신하기 위해 만들어낸 것이 지금의 통제부다.
그러나 이 자는 DA 이전의 컨트롤이 그대로 존재하고 있다고 말하고 있었다.
“헛소리!”
“오, 그렇습니까… 그레인저양?”
“내 이름은 어떻게 아는거지?”
미호의 팔이 길게 늘어나더니 은색의 칼날로 변한다. 그레인저가 그녀에게 ‘성별’의 개념이 있는가, 라는 쓸데 없는 생각을 떨쳐낸다.
“이런 이런… 그레인저 양. 당신은 우리 친애하는 NWO의 요원이 아닙니까?”
그렇게 말하며 남성이 태연하게 나노 피스톨의 총구 앞으로 다가선다.
“저는 진실을 알고 있습니다. 당신이 무슨 길을 걸어왔는지도 알고 있습니다. 저는 당신들이 자연스러운, 그리고 우연한 것이라 취급하고 넘기는 모든 것에서 저는 인과와 음모를 봅니다.”
그의 목소리에서 소름 끼치는 집착이 묻어나온다. 그가 쓰고 있는 선글라스의 뒤편에서 불타는 듯한 시선이 느껴지는 듯 했다.
“왜냐하면 인과와 음모가 그곳에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연결되지 않은 것은 없습니다.”
“뭐, 당신은 미래를 보기라도 하나?”
“오, 이런. 그레인저양. 제가 본 바에 따르면 당신은 매우 총명했을 텐데요.”
그가 선글라스를 벗는다. 그레인저가 흠칫 놀란다. 그 안에는, 텅 빈 채 썩어가는 두 개의 안구만이 있을 뿐이다.
“진실을 알기 위해서 눈 따위는 필요하지 않습니다.”
그레인저가 창백한 얼굴로 물러선다.
“자, 자. 그것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중요한 건-“
“제기랄, 대체 언제까지 쓸데없는 이야기를 할 건가? 클라이언트가 날 닦달하고 있단 말일세!”
좁은 문틈으로 마지막으로 누군가가 들어온다. 몰레티나 입을 법 한 최고급 정장을 착용한 세일즈맨의 인상. 그러나 끝없는 공허를 항해하는 우주선 안에서 이런 복장을 하고 있다는 것을 생각해보면, 전혀 평범하다고 할 수 없었다.
그는 안카르나, 트래디션 메이지, 테크노크라트, 심지어 유령이나 늑대인간 같은 움브라의 존재들과도 거래를 하는 죽음의 상인, 레지던트Resident의 일원이다. 레지던트들은 자신의 손을 더럽히지 않고도 그들과 거래하는 자들을 한없이 무거운 채무와 책임의 그물로 감싸 숨막히게 할 수 있는 자들이었다. 그들은 ‘비즈니스’라는 명목으로 그들이 신디케이트 소속이었다고는 믿을 수 없을 정도의 일을 저지르고는 했으며, 그들 중 일부는 심지어 네판디와도 거리낌없이 거래하곤 했다.
“좋아. 그럼 이제 대체 왜 우리가 이 자들을 잡아야 하는거지? 클라이언트께서는 오직 그 클론에게만 관심이 있을 뿐이란말이네!”
“이쪽도 마찬가지. 나야 특이점 코어만 획득하면 다른 건 관심 없어.”
미호라 불린 여성이 동의한다.
“아아. 그렇습니까? 그렇다면 미호 양은 일단 저기 쓰러진 요원을 검사해보시죠.”
그가 즐겁게 말한다. 그레인저가 그 앞을 막아 서기도 전에 미호의 눈이 붉게 변하며 쓰러진 하은의 몸을 스캔한다. 기초적이지만, 놀라울 정도로 발달한 프로시져다. 미호가 고개를 끄덕인다.
“지구에서 만들어진 최신형 의체로군. 변절자들의 기술 변화를 알아내는데 큰 도움이 되겠는데.”
“자, 항상 그렇듯이 저는 여러분들을 기다리는 곳으로 여러분들을 인도합니다.”
“그렇다면 이쪽은?”
레지던트가 묻는다.
“오, 이런. 그렇군요. 자, 사진이라도 찍어서 클라이언트에게 보내는 것이 어떻습니까?”
그가 간교한 목소리로 세일즈맨에게 권한다. 그가 할 수 없다는 듯이 단말을 들고 어딘가로 통신을 시도한다.
“…네. 그렇습니다. 예. 예, 지금 물건은 확보 중입니다. 추가로 관심이 있으실 항목이 있습니다만, 지금 전송 중입니다. …그렇습니까. 알겠습니다. 지구 시간 3일 내로 배달하겠습니다. 대금은 준비하셨겠죠? …예. 언제나 그렇듯이, 저희는 최상의 서비스, 그리고 최상의 충고만을 제공합니다. 감사합니다.”
그가 놀랍다는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인다. 그의 클라이언트가 누구든지 간에 하은에게 큰 관심을 가지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여러분들의 신뢰를 얻기 위해서 얼마나 걸릴지 모르겠군요.”
에이전트가 미소를 지으며 말한다.
“트랜스휴매니티 분들께는… 음, 여기 안계시지만 아마 미생물 스웜 같은 걸로 듣고 계시겠지요? 하이브 마인드에 합류할 새로운 정신과 육체를 제공했고, 오토폴리탄 여러분들에게는 지구 기술에 대한 정보를 제공해드렸습니다. 아, 그리고 새로운 상품까지 발견해드렸죠. 이 정도면 만족하실 거라고 생각합니다.”
“…대체 너희들은 누구지?”
그레인저가 묻는다. 그러나 당연하다는 듯이 그가 대답한다.
“아니, 무슨 소리십니까… 그레인저 양. 알고 계시지 않습니까? 저희는-”
그 대답이, 그녀를 숨막히게 한다.
“-진정한 테크노크라틱 유니언의 요원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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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작품: 터미네이터, 스페이스 오디세이, 폴아웃, 스펠재머, 스타트렉(리부트)
1등추준다
띠요오오오오옹 - dc App
머요오오오오오오옹 - dc App
잘봤습니다 - dc App
미호랑 에이전트 맘에 들음 - dc App
디멘셔널 아노말리에서 살아남은 NWO의 미친 음모론자들인 에이전트Agent라면 이야기가 다르다. ← 이건 뭘루 검색하면 나올까요 - dc App
ㄴ 음.. 이거 나온데가 보이드 엔지니어 컨벤션 북밖에 없음.. 흙흙
머용
블루스크린이 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