딱히 할 일도 없어서 그간 만나왔던 애니프사 - 빌런 - 들의 이야기를 좀 해보고자 한다.

애니프사 - 프로필, 포트레이트, 뭐라고 부르든 어쨌든 인터넷 상의 자신을 표현할 수 있는 항목에 2D 애니메이션 등장 인물을 꽂아두는 사람들을 일컫는 말이다.

사실 이 \'애니프사\'란 말은 꽤나 중립적인 말처럼 들린다. 단순히 \'애니메이션 캐릭터\'를 프로필 사진으로 걸어두는게 심각한 범죄나, 기만 행위는 아니지 않은가?

그러나, 우리들은 그들 \'애니프사\'를 꺼림칙해 한다. 아니, 꺼림칙하게 여기는 것을 넘어 경멸하고, 배척한다. 이들 \'애니프사\'들이 왜 이런 사회적 멸시를 받게 된 것일까?

사실 이렇게 거창하게 서두를 늘어놓았지만, 나 역시 그들에 대한 혐오를 깔끔하게 정리해낼 자신이 없다. 그들은 그들이 걸어둔 애니프사의 개수 만큼이나 다양한 행태를 보이고 있고, 그에 걸맞은 다양한 형태의 혐오를 이끌어내고 있는 것이 작금의 현실이 아닌가. 나는 그저, 나를 괴롭혔던 수많은 \'애니프사\'들과 함께 했던 기억을 술회할 뿐이다.

1. 완벽주의자
- TRPG는, 주사위 놀이이다. 극단적으로 치우친 발언이긴 하지만, 그 누구도 이 사실을 부정하지는 않을 것이다. 세상을 일곱 번도 넘게 구해낸 역전의 용사가 길바닥에 채이는 돌멩이에 걸려 넘어져 자신의 검에 목숨을 잃는 일이 일어날 수도 있는 것이, 결국 주사위의 장난 때문이 아니겠는가?

누군가는 이 사실을 불합리하다 여길 것이다  그러나, 거의 모든 TRPG 유저들은 그러한 불합리를 게임의 일부로 수용하고, 나아가 적극적으로 그 불확실성에 몸을 맡긴다. 그러나, 한 애니프사는 그 불합리를 거부했다. 그는 스스로, 그 불확실성을 해체하고자 했던 것이다.

\'렘\'. 그 새ㄲ...아니 그 \'애니프사\'가 자신의 로그 메이지의 포트레이트로 걸어둔 애니메이션 캐릭터의 이름이다. 그렇다. \'렘\'은 파티의 로그 메이지였다. 정식으로 마법을 배우지 않았고, 배울 수도 없는 기구한 소녀였다. 그러나 그녀는 천부적인 재능 덕분에 스스로 자신의 몸에 흐르는 마나를 통제해 물리력을 구현해내는데 성공한, 그래, 천재 마법소녀(씨팔)였다.

괜찮았다. 로리 대마법사, 불가능한 설정도 아니었다. 내가 구현한 세계는 1서클 2서클 식의 한국형 노인 학대 마법세계가 아닌, 마나의 축복을 받은 자들이 상상력과 의지력만으로도 세상의 물리 법칙을 뒤틀 수 있는 세계였으니 말이다.

\'렘\' 또한 그런 마나의 축복을 받았고, 재능 또한 있었으니 소위 \'로리 대마법사\'의 재목이었던 것이다. 나는 나 스스로 만들어낸 논리에 납득했고, \'렘\' 또한 크게 만족했다.

나는, 괜찮을 줄 알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