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화 – “THREAT NULL (ii)”



-엄마.


하은이 그 단어를 읊는다. 


부친의 사망 후, 하은은 모친과 단 둘이서 살아왔다. 아버지의 의료비로 인해 모녀는 갚기 힘들 정도의 빚을 지게 되었다. 그 빚이 무색하게도 돌아가셨지만. 


무언가 기억이 나지 않는 듯한 느낌이다.


무언가 중요한 것을 보았던 느낌. 그 기억으로 인한 강박. 그 기억에 따라 살아야 한다는 느낌. 


아버지, 정확히는 아버지의 죽음과 관련된 무엇이었던 것 같다.



기억이…



잠깐, 나는 부모가 없는데?


나는… 고아원 출신이잖아?


유니언이 재능을 알아보고… 나를 어릴 때부터…


그럼 이 기억은 뭐지? 가족과 살았던 어릴 때의 기억은?


아냐, 그럴 리가 없어. 분명히 어디선가 보았던 것을 나 자신에게… 아니… 그렇지만 이렇게 선명할리가…



“일어나라.”


감정 없는 목소리가 들려온다.



분명히 신체 강화에 의한 부작용이… 임플란트의 기능 점검을…


임플란트가 왜 기능이 정지 된 거지?


…오버라이드 코드. 



처음 보는 요원이지만 그는 분명히 오버라이드 코드를 알고 있었다. 적법한 코드를 알고 있다면 해당 프로토콜에 의해 재부팅 이후 강화 요원은 해당 요원의 통제에 따르게 된다. 코드가 입력되었다는 것은 강화 요원이 폭주하고 있거나, 강화 요원을 완벽히 통제해야 할 합당한 이유가 있다는 것이다.


임플란트와 오버라이드 코드... 컨트롤의 명령. 컨트롤의 명령은 무엇보다 우선시 되는 것. 자신의 하찮은 생명 따위는 컨트롤의 명령을 위해서라면 얼마든지 희생할 수 있어야한다.


기억 따위는 중요하지 않다. 지금 당장 일어나 명령을 위해 대기해야 한다. 컨트롤의 의지를 수행하는 것은 테크노크라틱 유니언의 요원으로서 가질 수 있는 가장 큰 영예 중 하나다.



“일어나라.”


다시 목소리가 들려온다. 고개를 든다. 시각정보가 임플란트 재부팅으로 인해 엉망이 되어 전달되고 있었다. 남자의 모습. 인종을 알아볼 수 없다. 



아니, 저 자는 컨트롤의 의지를 대행하는 자가 아니다. 어서… 명령을 받아야…



“무엇이 너를 이루는지Paradigm 생각하라.  너의 목표Ascension를 생각하라.”



이 목소리는… 분명 들어본 적이 없다.


그래, 감정 없는 목소리. ‘교관the Man’의 목소리다.



하은의 정신이 혼란에 빠진다. 


모든 것에 우선하는 컨트롤의 명령을 따라야 한다. 



“어째서 이 길에 들었는지를 생각하라.”



어째서…?


아냐, 그런 것 따위는 전혀 중요하지 않다. 컨트롤의 명령은 모든 것에 우선한다. 


하지만… 


하지만, 이라니? 컨트롤의 강대하고 무한한 의지와 판단력에 의심을 가진다는 말인가? 그것도 유니언의 기술을 통해 살아있는 자신이?


그러나…


의심은 용납되지 않는다. 컨트롤의 명령에 따라야… 


하지만…



“위잉-“



문이 열린다. 오버라이드 코드를 사용한 에이전트가 씩 웃으며 들어온다. 하은이 시야가 밝아짐과 함께 자신의 목 뒤에 어떤 장비가 부착된 것을 느낀다. 정신이 다시 돌아오고, 두뇌 기능이 정상화된다.


“작업은 끝내셨습니까?”


“물론. 기억 추출 완료다. 뭐 어릴 적 기억이라던가 하는 쓸데 없는게 좀 많아서 고생 좀 했지만 원하는 건 다 추출했네.”


레지던트가 대답하며 장비를 떼어낸다. 하은이 목 뒤의 접속 포트에서 장비가 떼어져 나가는 것을 느낀다. 그가 하은의 추출된 기억이 저장된 소형 드라이브를 꺼내서는 흔들어 보인다.


“암호화 이후에 복호화 키와 같이 넘겨주지.”


“감사합니다.”


에이전트가 살짝 고개를 숙여 사람을 꺼림칙하게 하는 예의를 표한 후 하은에게 다가선다. 


“요원, 준비 되었습니까?”


하은이 천천히 일어선다. 그녀의 의안이 초록색으로 빛난다.


“준비되었습니다. 명령을.”


“진정한 유니언에 온 것을 환영합니다. 자, 변절자들을 모조리 잡아들이도록 하죠.”


“알겠습니다.”


하은이 에이전트의 뒤를 순순히 따른다. 그 뒤로 레지던트가 소리친다.


“그녀는 어디까지나 내 상품이네! 손상시키면 배상을 청구할거야!“


에이전트가 씩 웃으며 뒤도 돌아보지 않은 채 손을 흔들어 보인다. 




“미… 미치겠네…”


에이팍이 불안감에 혼자 중얼거린다. 트랜스휴매니티와 내부 병력 간의 전투를 틈타 숨는데 성공했지만 그 뿐이었다. 전투 훈련을 받긴 했고, 플라즈마 라이플과 수류탄을 쓸 수 있긴 하지만 그는 어디까지나 기술 장교일 뿐. 본격적인 전투병력이 없다면 자신은 큰 도움이 되지 못한다.


“어떤가, 요원?”


들려오는 목소리에 에이팍이 메인테넌스 전용의 통로에 또 다시 몸을 숨긴다. 좁은 틈 사이로 그레인저 감독관과 같이 왔던 요원의 모습이 보인다. 그녀는 누군가를 따라가고 있었다. 꽤나 오랜만에 발견한 아군이다.


“요원님!”


에이팍이 기쁘게 말하며 메인테넌스 패널을 열고 나오며 그녀를 부른다. 그러나 그의 예상과 달리 그녀가 날카로운 동작으로 돌아서서는 에이팍을 노려본다.


“어…”


에이팍이 뭔가 잘못되었음을 느낀다. 그 말은 그녀와 함께 있는 자가-


“컥!”


그가 생각을 끝마치기도 전에 하은이 그의 멱살을 잡아 올리고 있었다 에이팍이 혼란스러운 얼굴로 컥컥대며 버둥거린다.


“아, 요원. 잘했습니다.”


에이전트가 하은을 칭찬한다. 하은이 에이팍이 아무 말도 하지 못하도록 그의 목을 꽉 쥔 채로 에이전트를 돌아본다.


“어떻게 할까요… 흐음.”


에이전트가 두 사람 주위를 빙글빙글 돌며 에이팍을 올려다본다. 에이팍이 하은보다 키가 크긴 하지만 힘은 하은의 의체가 월등히 강하다. 그의 몸이 바닥에 발이 간신히 닿지 않는 높이이에서 버둥거린다.


“어떻게… 흐음.”


“이 자는 복장으로 보아 기술 장교 후보생인 것으로 보입니다.”


하은이 싸늘하게 말한다.


“호오, 그렇습니까?”


“쓸모가 있을 겁니다.”


하은이 에이팍을 바닥에 내동댕이치더니 허리춤에서 결박을 꺼내 손을 묶고 입을 막아버린다. 에이팍이 버둥거리지만 하은의 힘에는 아무런 소용도 없다. 그녀가 뒤통수를 쳐서 에이팍을 기절 시킨다.


“인질로서 말입니까? 뭐, 예쁘게 포장된 김에 우리 트랜스휴매니티 친구들에게 데려가 보도록 할까요. 아니, 그냥 인질들 사이에 던져둬도 좋겠군요.”


하은이 끄덕이며 그를 아무렇지도 않게 들쳐 멘다.


“그 전에 그레인저 감독관에게 가야한다고 생각합니다.”


“이유는?”


“그레인저 감독관과 이 스테이션의 지휘관은 개인적으로 가까운 사이입니다. 이용가치가 있습니다. 아직 탈출하지 않은 상태라면 그레인저 감독관을 구하기 위해서라도 이 스테이션을 떠나지 않을 겁니다.”


“…호오. 그렇군요… 역시, 같은 학교 출신인가.”


에이전트가 중얼거린다. 


“좋아요. 갑시다. 거기 있는 기술 요원도 같이 심문하도록 하죠.”


그가 즐거운 듯 흥얼거리며 스테이션의 복도를 걷는다. 하은이 조용히 그의 뒤를 따른다.




“뭐?”


루나가 멈춰 선다. 그녀를 호위하던 스페이스 마린 분대가 그녀가 멈춰선 것에 당황하듯이 뒤돌아본다. 스테이션 내 최고 정예 병력인 그들이 호위하고 있기에 트랜스휴매니티와 내부 보안 병력 간의 전투에서 간신히 빠져나올 수 있었을 것이다. 루나는 그들이 탈환 작전이 아니라 탈출선으로 가고 있다는 사실을 알자 마자 그들을 멈춰 세웠다.


“그럼 생도들과 내 친구를 버리고 나만 탈출하란 말인가?”


“대령님. 대령님은 양자 항법사Quantum Voyager십니다. 저희에게 있어서 이 스테이션과 생도들의 목숨도 중요하지만, 대령님 같은 분이 한 명씩 죽어갈 때마다 컨벤션은 힘줄이 하나씩 잘려 나가는 것과 다름이 없습니다.”


양자 항법사란 이차원Umbra으로 이동할 때 필연적으로 겪게 되는 차원이상 현상Dimensional anomaly의 피해를 피해갈 수 있는 특출난 재능을 지닌 자들을 가리키는 용어다. 그들이 없다면 보이드 엔지니어는 물질 세계에만 머물러있거나, 차원이상 현상의 위험을 무릅쓰고 활동하는 수 밖에 없다. 그러다가 운이 나쁘면 차원이상 현상에 휘말려 함대 전체가 사라지는 경우도 있었다. 양자 항법사는 당연히 보이드 엔지니어의 눈이자 다리다. 스테이션 하나보다 항법사 하나가 더 중요하다는 것은 과언이 아니었다.


“절대 안되네!”


루나가 강변하지만 마린들에게는 통하지 않는다.


“대령님. 대령님의 의사와 상관 없이 무조건 데려오라는 것이 윗선에서의 명령임은 잘 알고 계시지 않습니까? 거기에 저희 측 경호 병력은 대부분 제압당한 상태입니다. 싸워봐야...”


“하지만-“


“죄송합니다, 대령님.”


선두 인원이 급하게 그들의 대화에 끼어든다.


“쓰렛 널이 이미 탈출선을 점거했습니다.”


“그럼 제 4 격납고로 간다. 그곳에 손님들이 타고 온 여객선이 있으니 매스 드라이버를 이용해 탈출하면 되겠군.”


루나가 다시 반론을 제기하려 하지만 그만둔다. 이들을 설득할 수 있을 것 같지가 않았기 때문이다. 차라리 자신에게 그런 재능이 없었으면 지금쯤 친구와 부하들을 구하기 위해 한바탕 싸우고 있을텐데. 그 뿐만 아니다. 점점 어려지고 있는 자신의 몸으로는 근접격투도 좀 무리다. 잔뜩 단련된 마린 들과 비교하면 왜소하기만 한 그녀. 루나가 어쩔 수 없이 마린들을 따라간다.




하은이 복도의 기괴한 풍광을 눈에 담는다. 전투에서 사살당하지 않은 생도나 보안병력은 전부 트랜스휴매니티가 운용하는 생체병기에 당해 기절해 있었다. 한 트랜스휴먼이 생체조직으로 이루어진 디바이스를 옮기는 것을 하은이 쳐다본다.


“저들이 무엇을 하는지 궁금한가요, 요원?”


“그것보다 임무에 방해되는 요소가 있는지 알고 싶습니다.”


“전혀 걱정하실 필요 없습니다. 이들은 스테이션의 인원들을 전부 하이브마인드로 편입시키려는 겁니다. 곧 이들은 무한히 뻗어 나가는… 군집의 일원이 될 겁니다. 그레인저 양이나 이 기술 장교도 그렇게 되면 심문 할 필요조차 없겠지만… 뭐 시간이 좀 걸려서.”


에이전트가 ‘무한’이라는 단어를 비꼬듯 말한다.


“그래봐야 수성 근처에 가면 연결이 끊겨서 침이나 줄줄 흘리는-“


“우리의 방식에 불만이 있는가?”


두 사람을 한 트랜스휴먼이 막아선다. 그 주위의 모든 트랜스휴매니티의 일원과 한치도 다르지 않다. 몇 시간내에 그들 근처의 보이드 엔지니어들도 전부 그렇게 될 것이다.


“아, 그럴리가 있겠습니까. 그저 저희 식 블랙유머일 뿐입니다.”


그렇게 말하는 그와 트랜스휴먼 사이를 하은이 막아 선다. 그녀는 에이팍을 내려놓은 채로 위협적인 눈빛으로 그들을 쳐다보고 있었다.


“비키시죠.”


그녀가 위협적으로 말한다. 그러자 주위의 모든 트랜스휴먼들이 작업을 중지하고 그들을 둘러싼다. 똑같은 목소리들이 합창하듯 말한다.


“우리에게 말하고 있는 건가?”


“그렇습니다.”


하은이 한치도 물러서지 않은 채 대꾸한다.


“잠깐, 잠깐. 자, 자. 요원. 그만하세요, 그만. 트랜스휴매니티분들도요. 죄송합니다. 제가 건방졌습니다.”


그가 순순히 사과하자 트랜스휴먼들이 흩어진다. 에이전트가 감사를 표하듯 하은에게 고개를 끄덕인다.


“감사합니다, 요원. 그럼 가죠.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에이팍을 다시 들쳐 맨 하은이 그를 따라간다. 그들이 점점 인기척이 없는 곳으로 들어선다. 간간히 외벽 근처를 지나갈 때마다 다중 창문의 밖으로 끝없는 공허의 광경이 스쳐 지나간다. 그들은 원래는 수감실로 쓰이는 곳으로 가고 있었다. 트랜스휴먼이 한 개체가 지키고 있는 수감실. 그레인저가 갇혀 있는 곳이다. 에이전트가 간수 역할을 하고 있는 트랜스휴먼에게 말을 건다.


“잠깐 죄수를 봐도 되겠습니까?”


트랜스휴먼이 그를 무섭게 내려본다. 아까의 일이 순식간에 공유되고 있기에 그들 사이의 마찰을 이미 알고 있기 때문이다. 


“자, 자. 부탁드립니다. 여러분들도 하나라도 더 좋은 육체를 확보할 수 있도록 정보를 얻어내는 과정입니다.”


트랜스휴먼이 느릿하게 대답한다.


“좋다. 대신 같이 들어가도록 하지.”


“좋으실대로.”


그들이 한꺼번에 수감실로 들어선다. 감옥이라기보다는 밀폐된 격리실에 가까운 모습. 전자형 락이 부착된 수갑으로 인해 손발의 움직임이 제한된 그레인저가 고개를 들어 세 사람을 본다. 


“노하은 요원?”


하은은 대답없이 무표정한 얼굴을 할 뿐이다. 그들을 지나쳐 트랜스휴먼이 그레인저 옆에 선다. 그들이 하는 대화를 모두 듣고 하이브 마인드의 기억에 기록하고자 함이다. 하은이 에이팍을 바닥에 내려놓고 나서 가만히 대기한다.


“그녀에게 무슨 짓을 한거지?”


“무슨 짓을 하다니요. 그녀가 원래 있어야할 자리에 돌려놓은 것 뿐.”


에이전트가 뒷짐을 진 채 말한다.


“자, 말하시죠. 당신의 친구는 어디있죠?”


그레인저가 작게 고개를 흔든다. 


“내가 그걸 알 리가 없잖아?”


“좋아, 그럼 질문을 바꾸죠. 저희는 탈출선을 모두 봉쇄했습니다. 통신망도요. 미호 양이 특이점 코어도 정지시켰고요. 그들은 어디로 탈출할 가능성이 제일 높은가요?”


그레인저가 고개를 돌리지만 에이전트가 강제로 그녀의 턱을 잡아 그녀의 눈을 응시한다. 물론 그에게는 눈이 없지만, 마치 영혼을 꿰뚫어보는 것 같은 시선이 선글라스 너머로 느껴진다.


“자, 저희 앞에서는 음모와 거짓 따위는 통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놓친 요소가 뭐죠?”


에이전트가 뱀의 간교함으로 묻는다. 그레인저는 이미 루나의 행동을 예상하고 있었다. 그녀가 포획되지 않았다면 그녀는 아마 자신이 타고 온 여객기를 이용해 탈출할 것이다. 통신망을 봉쇄했다 하더라도 별로 문제되지 않는다. 여객기의 통신망은 보이드 엔지니어와 호환이 되긴 해도 시스템 자체는 별개니까. 이동이야 매스드라이버나 보조 셔틀을 이용하면 충분할 것이다. 


그레인저의 눈빛은 전혀 흔들리지 않는다. 거짓을 내보였다가는 들킨다. 그녀는 이미 분열사고 프로시져를 통해 한쪽 정신으로는 에이전트가 제공해준 ‘놓쳤다’라는 말을 철저히 분석하고 있었고, 다른 쪽 정신에서 쓸모 있는 정보를 모두 옮겨와 에이전트가 자신의 거짓말을 눈치채지 못하게 한다.


“…”


침묵이 흐른다. 에이전트가 서서히 그녀를 놔준다. 


“…뭐, 정말 모르는 모양이군요. 그럼 방법이 있죠. 당신과의 협상거리를 찾아올 만한 적임자가 마침 이 배에 타고 있지 않겠습니까?”


에이전트가 단말을 꺼내 들어 레지던트에게 연락을 취한다. 지키고 있으라는 듯 한 표정으로 그가 트랜스휴먼을 쳐다보더니 수감실 밖으로 나간다. 잠시동안 밖에서 협상하는 듯한 말투의 대화가 들려온다. 그렇지만 정확한 내용은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창살도 아니고 격리실 형태의 수감실인지라 그의 입모양을 읽는 것도 불가능하다.


대화가 끊기더니, 조금 이상할 정도로 오래 걸리고 나서야 에이전트가 다시 수감실 문을 열고 들어선다.


“좋아요. 당신의 또 다른 친구의 목숨을 제 동료… 아니, 사업 파트너가 쥐고 있습니다. 그에게 지금부터 딱 1시간 동안만 그녀의 목숨을 건드리지 않게 부탁해 놓았죠. 자, 제가 따로 연락하지 않으면 그녀는 죽게 될 겁니다.”


“흥.”


그레인저가 코웃음친다. 어차피 이들이 정말 에이다를 살려 줄지, 아니면 클라이언트에게 넘길지는 전혀 모르는 일이다. 


“…그렇습니까. 괜히 친구분의 목숨만 연장해드렸군요. 요원?”


그가 하은에게 지시한다. 하은이 살짝 앞으로 나선다. 그 모습을 그레인저가 안타깝게 바라본다. 대체 어떤 식으로 개조했길래 자유의지라고는 하나도 남아있지 않는 걸까, 라는 질문이 그녀의 머릿속을 스친다. 그러나 그런 걱정을 할 만한 여유는 없었다.


“죽지 않을 정도로만 고문하도록 하죠.”


“명령하신대로.”


하은이 차가운 눈을 한 채 그레인저를 쳐다본다. 그레인저가 그녀의 손 끝이 붉게 달아오르는 것을 본다. 초고열로 달구어진 그녀의 의수에서 타는 냄새가 희미하게 풍겨져 온다.


…?



그레인저가 위화감을 느낀다.


평소의 노하은과 무엇인가 다르다. 그러나 바로 짚어낼 수가 없다. 그러나 그녀가 생각을 끝마치기도 전에 하은이 그녀 바로 앞으로 다가온다. 


“순순히 말하면 고통은 없을 겁니다. 말할 준비가 되었습니까?”


그레인저가 입술을 질끈 깨문다. 그 알량한 오버라이드 코드만 없었어도.


“…절대 말하지 않을거에요.”


“그렇다면.”


하은이 손을 천천히 들어올린다.


깜빡.


그녀가 윙크한다. 그레인저가 그 의미를 이해하기도 전에-


“푸억-“


붉은 피가 벽을 적신다. 


하은의 의수가 트랜스휴먼의 가슴을 꿰뚫어 버린다. 아직도 펄떡이며 뛰는 심장, 인간의 것과 닮으면서도 흉측할 정도로 완벽하게 조형된 심장이 그녀의 손에 쥐여진 채 그 흉측한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무… 컥…”


손발을 버둥거리지만 아무리 트랜스휴매니티의 부속품이라해도 최신형의 의체의 최고 출력을 버틸 수는 없다. 하은이 봐주지 않고 트랜스휴먼을 벽으로 던져버린다. 그것이 바닥으로 떨어지기도 전에 하은이 그것의 목을 잡는다. 


“우직-“


목이 부러진 트랜스휴먼이 팔을 휘둘러 저항하려 하지만 하은의 의수가 어깨 관절을 꿰뚫는다. 하은이 마치 동물의 시체를 해체하는 맹수처럼 트랜스휴먼의 사지를 찢어발긴다. 달아오른 그녀의 손가락이 피부를 불태우고 내장을 꺼내 기능을 마비시킨다. 인간의 생물학적 완성본으로 만들어진, 무한한 하이브마인드의 단말인 트랜스휴먼이라는 말에 어울리게 사지가 뜯겨져 나가면서도 끝까지 저항하지만 결국 움직임을 멈춘다.


“…”


하은이 천천히 고개를 들어올린다. 그녀의 손에서 찢겨진 피부와 내장, 지방질과 관절, 인공적으로 만들어진 신경이 뚝뚝 떨어진다. 옷은 물론이고 얼굴에도 피와 체액이 잔뜩 묻어 있었다. 그녀가 멈추지 않고 에이전트에게 달려든다.


“쉬익-“


그녀의 손이 허공을 가른다.


“…?”


하은이 한 발 물러선다. 전혀 손에 잡히는 느낌이 없다. 에이전트라고 생각했던 것은 그저 홀로그램에 불과했다.


“역시… 무엇인가 의심되었지만, 요원. 저까지 거의 속일 뻔 했군요.”


그 밑에는 언제 놓고 나간 것인지 초소형의 홀로그램 프로젝터가 있었다. 아마도 구두에 장착해 놓고 나갈 때 설치한 것이겠지. 그레인저도 알아차리지 못한 하은의 진의를 그는 처음부터 의심하고 있었던 것이다.


“만나서 반가웠습니다. 참, 아직도 제 소개를 하지 않았군요.”


그, 정확히는 그의 홀로그램이 그레인저에게 고개를 꾸벅 숙이며 말한다.


“제 이름은 퀸란 윌로우…”


그 이름에 그레인저의 눈이 커진다.


“-1세입니다.”


그 말과 함께 하은이 홀로그램 프로젝터를 밟아 박살내 버린다.


“죄송합니다, 감독관님.”


하은이 다가와 그레인저의 손발을 구속하고 있는 수갑을 조심스럽게 해체한다. 온갖 피와 생체 물질에 뒤덮인 그녀의 모습은 마치 호러영화에나 등장할 만 한 살인마 같았지만 그레인저에게는 전혀 상관없는 일이었다.


“고마워요. 오버라이드 코드가 안 통했나보죠?”


하은이 잠깐 머뭇거리다가 살짝 고개를 젓는다. 분명 평소의 기계적이고, 살인병기로 완성된 노하은과는 무언가 다르다. 히트마크가 속임수를 쓰는 모습을 보는 느낌이랄까.


“…자세한건 나중에 듣죠. 일단 격납고로 가야하는데…”


“에이팍 소위가 알려줄 수 있을 겁니다. 스테이션 내부의 메인테넌스 터널들을 잘 알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레인저가 에이팍을 살짝 흔들어 깨운다. 


“으… 어…”


“소위, 정신 차리세요.”


 “어… 그레인저 요원님?’


“맞아요.”


“으, 으앗!”


에이팍 소위가 튀어 오른다. 그가 하은에게서 달아나려는 듯이 뒤로 물러선다. 아무리 봐도 별로 용맹한 보이드 엔지니어의 군인이라던가 하는 수식어는 어울리지 않는 장교다.


“미안합니다. 당신을 지키기 위해서였습니다.”


하은이 조용히 말한다. 에이팍이 그제서야 상황을 파악한 듯이 아직도 당황한 얼굴로 끄덕인다.


“그… 그렇게 된… 감사합니다!”


“조용히 해요. 소위, 제 4 격납고로 들키지 않고 갈 수 있는 방법이 있을까요?”


에이팍이 이곳이 수감실인 것을 대번에 파악하고 끄덕인다. 그는 계몽된 자이자 기술 장교로서 스테이션 내부의 구조를 굉장히 상세하게 알고 있었다.


“걱정 마십시오, 요원님! 제가-“


“제발, 조용히요.”


“죄송합니다… 그, 메인테넌스 터널을 통하면 빠르게 갈 수 있습니다. 안내하겠습니다!”


조용히 하라는 말을 듣고도 한 문장을 넘기지 못해 다시 억지로 잔뜩 군기가 든 목소리로 돌아온다. 그레인저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신나게 수감실에서 뛰쳐나가는 에이팍을 따라간다. 


그 뒤를 조용하고 침착하게 따르는 하은의 HUD에서 임플란트의 작동 상태를 알리는 카운터가 점점 올라간다. 깨어난 직후에는 50% 정도밖에 되지 않았던 숫자가 이제는 80%를 넘어간다. 혼란스러운 기억이 점차 사라지고, 자신이 알던 어릴 적, 고아로서의 기억이 다시 돌아온다. 그와 동시에 상대를 뚫어보는 통찰력, 거짓을 말하고 사람을 속이는 기술, 권위로 일반인들을 찍어 누르는 존재감, 그리고 계몽된 자만이 가질 수 있는 지혜가 점점 사라진다. 그 빈 공간을 기계와 같은 살인 병기의 정신이 채워 나간다. 자신의 기억에 무엇인가 문제가 있다는 인식도 점점 희미해져간다.




“진?”


몰레티의 전용 여객기로 들어선 루나가 깜짝 놀란다. 하은, 그레인저, 에이팍 세 사람이 이미 여객기를 확보하고 있었던 것이다. 


“루나!”


“대령님, 이쪽이 친구분들 일행 되십니까?”


루나가 고개를 끄덕인다. 호위 병력의 지휘관이 다행이라는 듯한 표정을 지으며 즉시 호위 병력에게 지시를 시작한다.


“보조용 셔틀이나 작동 가능한 발진용 매스 드라이버의 상태를 점검해라. 최대한 빨리 탈출한다.”


“잠깐만요. 에이다를 구하고 나서-”


“아뇨, 시간이 없습니다.”


그레인저가 그의 앞을 가로막는다.


“미안하지만 시간은 충분해요. 적들은 사방에 분산되어 있고 우리는 여기 모여 있어요. 거기에 저희 측이 훨씬 더 이 스테이션에 대해 잘 알고 있고요. 탈환을 시도조차 하지 않으려는 이유가 뭐죠?”


“정말 그렇게 생각하십니까?”


지휘관이 돌아선다.


“여기까지 오면서 보셨을 겁니다. 저들의 전투력을 간과해서는 안됩니다. 저들이 사용하는 기술을 보셨습니까?”


“유니언의 기술 말인가요?”


정곡을 찌르는 그레인저의 말. 여객기 안에 잠깐 무거운 침묵이 내려앉는다.


“저들이 DA 이전에 우주에 남아있던 자들이라는 건 아시겠죠. 지구 밖에서의 기술 운용에 최적화된 자들입니다. 쓰렛 널이라는 이름은 멋있어서 붙인 게 아닙니다. 저희가 어떤 장비를 갖추고 있던지, 어떤 프로시져를 사용하든지 간에 저들은 더 강하고, 더 진보된 기술을 사용해 저희를 제압할 겁니다. 함대전이나 철저하게 준비된 전투가 아니면 당해낼 수 없습니다.”


그가 반론한다.


“역시, 제 추측이 맞군요?”


“그렇습니다. 이제 제발 쓸데없는 논쟁은 그만하고-“


삑.


갑자기 여객기의 스크린이 켜진다. 스크린에 나타난 것은 약간 저해상도의, 몇 개의 통신 위성 및 스테이션을 거쳐서 수신되고 있는 데이빗 몰레티의 모습이다. MSF 아말감의 AI, 노먼이 그 연결을 유지하기 위해 필사적으로 -AI에게 필사적이라는 말이 적용될 수 있다면- 노력하고 있었다.


“감독관님.”


“몰레티. 지금까지 다 듣고 있었길 바래요.”


“물론입니다.”


스페이스 마린들이 멈칫한다. 살짝 영상과 음성의 싱크가 맞지 않는 몰레티의 형상이 말을 계속한다.


“안녕하십니까, 보이드 엔지니어 여러분. 신디케이트 소속 데이빗 몰레티입니다.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여러분의 통신 시설은 마비되었겠지만 제 전용기의 통신 시설은 아예 분리되어 있기 때문에 그렇지 않을테니까요. 그래서 오셨겠지만.”


“이런 걸 듣고 있을 시간이-“


“아뇨, 그레인저 감독관의 말대로 시간은 아주 많습니다. 왜냐하면 방금의 대화를 전부 녹음 했거든요. 물론 감사부에 고발할 예정입니다. 저희 신디케이트는 VE가 소모하는 막대한 양의 물자와 인적 자원의 수에 대해 의심을 가져온지 꽤 오래되었습니다.”


지휘관의 얼굴을 찡그린다. 쓰렛 널에 대한 상세한 어떤 정보도 VE 외부로 유출시키는 것은 금지되어 있다. 개별 요원 단위로 정보가 유출 되었다면 그 정보를 알고 있는 인원들의 기억을 삭제하기만 하면 되지만 지금 이런 상황에서는 몰레티의 신병을 지상 근무자들이 확보하기도 전에 신디케이트 감사부에 보고가 올라가버릴 것이다.


그리고, 쓰렛 널의 정보에 대한 보안은 양자 여행자 한 사람의 안전보다 더 중요하다. 훨씬.


“하지만… 만약에 여러분들이 감독관님과 루나 대령님을 도와 스테이션을 탈환한다면 이 대화의 원본을 영구적으로, 복구 불가능 하게 삭제하도록 하겠습니다. 어떻습니까?”


몰레티의 목소리에서 순간적으로 교활한 기업가의 느낌이 묻어나온다. 지휘관이 한숨을 쉬며 말한다.


“…제기랄. 좋습니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이 스테이션을 탈환하는건 거의 불가능 합니다.”


“괜찮아요. 머리를 맞대 보죠.”


그레인저가 태연하게 말한다. 


“아까 그… 눈알 없는 기분 나쁜 남자한테서 여러가지를 들었거든요.”


그들이 재빨리 서로 간의 정보를 공유한다. 스페이스 마린들과 지구 출신의 NWO요원, 스테이션의 함장, 기술 요원, 그리고 전신 의체 요원이 한 자리에 모여 있는 것은 꽤나 이상한 광경이었다.


“잠깐, 특이점 코어가 ‘정지’ 되었다는 말씀이십니까?”


그레인저의 말을 듣고 제일 먼저 아이디어를 낸 것은 에이팍이었다.


“네.”


“음…”


“에이팍 소위?”


“아이디어가 하나 있긴 합니다. 제 생각에는 저들이 양자 여행자나 그에 준하는 디바이스를 보유하고 있는 것 같지 않습니다. 그렇지 않다면 이런 식으로 내부에서 기습할 이유가 없을 겁니다.”


에이팍이 뭔가 생각하듯이 허공에 도형을 그리기 시작하며 말한다.


“그렇다면 특이점 코어가 재활성화 될 때 발생하는 양자 차원 중첩 파동을 이용해 스테이션 전체를 위상 진동 상태로 몰아넣을 수 있습니다. 물론 그런 짓을 했다가는 스테이션 전체가 DA에 휩쓸려 파괴되고 말 겁니다. 하지만 저희에게는 양자 항법사가 있으니, 어, 이 중에서 누구인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최소한 중추 시설과 저희 측 인원만 따로 분리해 위상 전환에 따른 피해에서 보호할 수 있을 겁니다. 그렇게 되면 쓰렛 널, 특히 트랜스휴매니티가 사용하는 슈미츠-보로닌 의식 간섭 체계에 위상 반사형 소멸 간섭을-“


“에이팍 소위?”


그레인저가 그를 제지한다.


“미안하지만 무슨 말인지 하나도 못 알아듣겠어요.”


“어, 그, 죄송합니다.”


그가 실수를 깨달은 듯 사과한다. 에이팍 자신과 루나를 빼고는 이 말을 알아들을 사람이라곤 이 자리에 한 명도 없을 것이다.


“어, 그러니까… 양자 항법사를 이용한 DA에서의 보호를 안전벨트로, 저희를 안전벨트를 찬 운전자로, 그리고 쓰렛 널들은 안전벨트를 안하고 있는 탑승자라고 보면 됩니다. 차를 제자리에서 빙빙 돌리면 안전벨트를 안 한 사람들은 전부 밖으로 튕겨나가지 않겠습니까? 원심력을 DA로 생각하고요.”


아직도 큰 설득력은 없지만, 원래 보이드 엔지니어의 기술 장교들이란 다 이런 셈인지 마린들과 루나가 고개를 끄덕인다. 그레인저도 마지못해 동의한다. 


“우선 특이점 코어에 침투할 분이 필요합니다. 물론 코어 바깥은 경비가 삼엄할 테니 위쪽으로 지나가는 정비용 통로를 통해야 할 겁니다. 그리고 격납고 관제탑의 콘솔을 이용해 제가 가능한 모든 인원 및 장비를 선별하는 프로시져를 준비하겠습니다. 어, 그…”


“어서 말하게, 소위.”


루나가 다그치자 그가 자신 없는 목소리로 말을 이어간다.


“어… 코어로 들어가는 정비용 통로는 꽤 좁아서 체구가 작은 분 밖에 못 들어갑니다만…”


모두의 시선이 루나와 하은에게 쏠린다. 아무 반응 없는 하은과는 달리 루나는 모두의 시선에 약간 당황한 듯 했다. 잠시 후, 이곳에서 가장 체구가 작은 사람은 패러독스로 인해 시간이 거꾸로 흐르고 있는 자신임을 깨닫는다.


“…누구, 나 말인가?”


“어, 예, 어… 그러니까, 네. 뭐 그렇습니다…”


에이팍의 자신 없는 목소리. 스페이스 마린 지휘관이 두꺼운 하드 수트의 손가락으로 이마를 짚으며 고개를 절레절레 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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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작품: 스타트렉, 스텔라리스, 워크래프트 3


하루 빨리 개별 육신을 버리고 하이브 마인드에 참여하는 것이 살길입니다 여러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