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화 – “THREAT NULL (iii)”



“야앗…”


루나가 머리를 부딪히며 고개를 숙인다.


“아야야…”


대령이라는 계급이 어울리지 않는 신음 소리. 사실 겉보기도 별로 대령에 어울리지는 않지만. 의식적으로 나누는 대화에서는 군인 같은 말투지만 무의식적으로 나오는 아파하는 소리 같은 것은 어릴 적으로 돌아가 있는게 분명했다. 전후 사정을 전혀 모르는 사람이 보면 뜬금없이 어린 학생이 군인 흉내를 내며 애늙은이 같은 소리를 하는 것처럼 보일 것이다. 


“도로시 요원, 진이랑 일하는 건 어떤가?”


하은과 루나 두 사람은 열심히 코어로 향하는 정비용의 통로 속에서 기어가고 있었다. 


“특별한 의견은 없습니다.”


루나는 이미 하은이 사람보다는 히트마크나 클론에 더 가깝다는 걸 체감하고 있었기 때문에 특별히 캐묻지는 않는다. 한때 NWO에서 운용했던, 트래디션 메이지의 육체를 사용해 만든 히트마크인 아틀라스 시리즈를 떠올리게 하는 하은의 모습에 그녀가 꺼림칙해 한다. 


“최선을 다해줬으면 좋겠군. 진한테 있어서 첫 직속 부하니까… 뭐 에이다가 있긴 한데, 에이다는 부하보다는 아무래도 친구에 가까워서.”


“질문이 있습니다.”


“뭐지? 아얏…”


루나가 또 가볍게 머리를 부딪히며 말한다. 뭐지, 라는 말과 아얏, 이라는 비명의 미스매치가 적막한 통로를 울린다. 그들이 간신히 조금 넓은 공간으로 빠져나온다. 그래봐야 머리를 완전히 숙이는 것에서 머리를 드는 정도에 불과하지만.


“그레인저 감독관님은 류 국장님, 그리고 루나 대령 님과도 비슷한 시기에 유니언에 들어오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건 그렇네만.”


정비용의 통로 멀리서 웅웅 거리는 소리가 들려온다. 코어에 거의 다 온 모양이었다. 어두운 통로도 점점 밝아지고 있었다.


“지금까지 아말감의 지휘관을 맡지 않으신 이유가 알고 싶습니다.”


“음… 하긴.”


생각해보면 당연했다. 류 국장은 AP 심포지움의 총 감독역이고, 루나는 스테이션 하나를 지휘할 뿐만 아니라 패러독스로 인한 부작용이 오기 전에는 함대 지휘관이었다.


“그건 진이 마법사 사회… 음, 그러니까  오더 오브 헤르메스 출신이어서 그렇다네. 정확히는 못 맡은거지.”


“그렇군요.”


하은이 납득한다. 당연히 상관에 대한 정보를 모조리 캐고 다닐 하은이 아니기에 지금까지 모르고 있었다. 트래디션에서 유니언으로 전향하는 자는 드물었지만 분명히 있었으니까. 그 반대도 마찬가지다.


“이제 류 국장이 그 정도 위치에 올랐으니까 다른 요원들이 쉽게 면전에서 진을 차별하지는 못할테고. 진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모양인데, 내 입장에서는 스페이스 마린 사이에도 류 국장만한 동기애는 찾기 힘드네.”


루나가 잠시 멈춰 서서 갈림길에서 방향을 가늠한다. 그녀가 알았다는 듯한 표정을 짓더니 왼쪽 통로로 기어간다. 그녀가 입은 항해사용의 간이 파일럿 슈츠의 팔에 달린 소형 모니터가 그들의 위치를 실시간으로 나타내 주고 있었다.


“무슨 말씀이십니까?”


“…도로시, 혹시 류 국장의 이름을 알고 있나?”


“모릅니다.”


“류 국장이 아카데미에서 처음 졸업했을 때 처음 지원한 부서는 NWO내에서도 굉장히 악명 높은 곳이었다네. 스파이 기관의 최정점이랄까. 그런데 그 부서는 태어날 때부터 거기에 들어가기로 예정된 후보생들 중에서만 뽑는 곳이라네.”


루나가 숨을 고르더니 말을 계속한다.


“일반인의 세계에 이름이나 정체가 밝혀질 만한 자들은 절대 못 들어가는 곳이지. 뭐 주민등록을 말소한다 해도 어딘가의 문서, 삭제 된 지 오래된 파일 등에 이름이 남아있으면 NWO는 물론이고 네판디나 VA 해커들이 어떻게든 추적해올 수 있으니까. 그래서 처음부터 외부와 격리된 아이들 중에서만 뽑는 거고. 그래서 어떻게 했냐 하면…”


루나의 목소리가 조금씩 불편한 어조로 바뀐다. 


“일련의 프로시져를 통해서 자기의 이름을 모두 지워 버렸다네.”


“…무슨 말씀이십니까?”


“무슨 호러 영화 같지? 대충 3년이었나, 아니, 5년인가? 어쨌든 류 국장이 아카데미를 졸업하고 난 뒤 그 정도 시간이 지나고 나서는 그 어떤 기록에서도 그의 본명을 찾을 수 없게 됐어. 출생기록은 물론이고 유니언 내부의 전자문서, 수기문서, 유전자뱅크, NWO내사과의 감시망, 여튼 인간이 읽을 수 있는 그 어떤 종류의 기록에서도 더 이상 이름을 찾을 수 없게 됐다고 하더라고. 심지어 언제부턴가 그의 이름을 아는 사람들도 전부 그의 이름을 잊었고. 성씨인 류 밖에 안 남긴 했는데 글쎄… 원하면 그것도 지울 수 있었을지도.”


“…”


하은이 류 국장의 능력을 다시한번 실감한다. 희미한 기억이지만, 그가 정말 대단한 요원임은 일찍이 알고 있었다. 그러나 이 정도일줄은.


“그리고 자기 이름 뿐만 진의 이름도 지워 줬다네. 친구인 사람들에게서는 빼고.”


“왜입니까?”


“마법사 사회에 속해 있었을 때의 이름만 지워 준 거니까. 더 이상 그녀의 출신을 가지고 왈가왈부하지 말라는 무시무시한 경고지. 지금도 가끔 눈치 없는 놈들이 있긴 하지만.”


하은의 의체는 루나와는 달리 무척이나 부드럽게 움직이고 있었다. 루나가 귀를 기울인다. 그녀의 생각이 맞다면 이제 곧 코어실 바로 위다.


“그렇다면 국장님 본인은 스스로의 이름을 기억하고 계십니까?”


“날카로운 질문이네.”


루나가 위화감을 느낀다. 히트마크 같으면서도 가끔씩 하은의 행동이나 말을 보면 분명 계몽된 자의 날카로움이 느껴지기 때문이다.


“패러독스라는게 참 아이러니 하지? 류 국장 본인마저 스스로의 이름을 기억 못하고 있으니까. 엇차, 쓸데없는 얘기를 하는 시간에 다 왔구만.”


루나가 자리를 비켜주자, 하은이 간단히 해치를 힘으로 열어 젖힌다.


“부탁하네.”


루나를 안전하게 안아 든 하은이 거대한 코어실 안으로 부드럽게 낙하한다. 바닥으로 떨어지기 직전 루나를 공중으로 던져 올려 그녀의 속도를 줄이고는, 바닥을 박차고 다시 한번 뛰어 그녀를 공중에서 안아 든 채로 다시 착지한다. 


“휴, 마린들보다 낫군. 어디보자…”


코어실을 지키고 있던 트랜스 휴먼 두 개체가 동시에 돌아서서 그들을 응시한다. 그들이 동시에 합창하듯 경고한다.


“항복하라, 그리고 완벽해지도록 하라.”


하은이 번개처럼 튀어나간다. 그녀가 든 거대한 소총이 불을 뿜는다. 마린 전용으로 제작된 소총이지만 전신 의체인 하은에게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 미처 피하지 못한 트랜스 휴먼의 오른팔이 관절 부위부터 절단되어 날아간다.


“코어 쪽으로 쏘면 안되네!”


루나가 싸움을 무시하듯 제어 패널로 다가가 능숙하게 콘솔을 조작하기 시작한다. 트랜스 휴먼의 손가락이 떨어져 나간다. 피부가 갈라지며 마치 벌레 같은 날개로 변한다. 메스껍게 생긴, 인간의 손가락으로 만들어진 벌 같은 형상의 드론들이 하은의 관절 부위를 노려온다. 오른손 관절에 강산성의 체액을 주입하는 침이 쏘아진다. 기능 이상을 알리는 HUD. 그러나 첫 메시지가 점멸하기도 전에 고온으로 달아오른 하은의 의수가 트랜스휴먼의 팔을 잘라낸다.


“어디보자…”


평화롭게 기기를 조작하는 루나. 그 옆으로 하은이 방금 잘라버린 트랜스휴먼의 팔이 철퍽 소리를 내며 떨어진다.


“위잉-“


그녀가 태연하게 플라즈마 피스톨을 꺼내들어 잘려 나간 팔을 완전히 재로 만들어버린다. 다행스럽게도 콘솔에는 아무런 피해가 없다.


“퍼억-“


팔이 잘려 나간 트랜스 휴먼의 심장을 꿰뚫기 위해 하은이 엄청난 속도로 팔을 뻗지만, 피부가 급속도로 경질화 되는 바람에 그를 쳐내는 것에 그친다. 그 -아니면 그녀- 가 코어실 밖으로 나가떨어진다.


“대령님, 부탁드립니다.”


“걱정말게!”


하은이 나머지 트랜스 휴먼에게 달려든다. 피해를 감수하면서까지 그를 덮쳐 코어실 밖으로 끌고 간다. 동시에 루나가 격리 해치를 조작해 코어실을 봉쇄한다. 이제 루나와 에이팍이 코어를 재가동 시키는 동안 하은이 코어실의 입구를 지켜야한다.


천천히 일어나는 트랜스 휴먼들. 그 뒤로 거대한 하이브 마인드의 부속품인 다른 개체들이 서서히 다가오고 있었다.




“에이팍!”


“예, 대령님. 현재 내부 IFF 시스템을 유용하여 대상자를 분리해내고 있는 중입니다.”


에이팍이 노이즈가 낀 통신으로 보고한다. 루나의 손이 재빠르게 콘솔을 달린다. 사실 이런 일은 몇번이나 해봤다. 함대 전체의 계몽된 인원이 DA로 인해 제정신이 아닌 상태에서 함대를 통째로 귀환 시키는 일도 있었고, 혼자 하드 수트를 입고 EDE들 수십을 해치우고 동기들을 구해온 경험도 있다. 그러니까 이 정도 나이에 벌써 대령 계급장을 달고 있는게 아니겠는가?


이번에도 할 수 있을 것이다. 아니, 해야만 한다.


루나가 떨리는 손을 진정시킨다. 그녀가 살짝 밖을 곁눈질 한다. 하은이 단신으로 수 명의 트랜스 휴먼과 맞서 싸우고 있었다. 사실 루나는 보이드 엔지니어의 이상이라던가 다미엔의 계율 같은 것은 별로 중요하지 않았다. 중요한 것은 친구들을 지키는 것이다. 그녀가 마법사의 사회에 속해 있었을 때도 그렇고, 지금도 그렇다. 




“푸악!”


하은이 트랜스 휴먼의 머리를 날려버린다. 생체 드론을 피해 공중으로 뛰고, 격리 해치를 열기 위해 오버라이드 패널을 열려는 놈의 위로 뛰어들어 척수를 박살낸다. 그러나 그들의 수는 끊임없다. 하나가 죽으면 둘이 어디선가 나타난다. 처음에는 하나 하나가 개별적으로 행동하던 그것이 점점 하은의 행동을 학습한다.


한 개체가 공격을 가하기 위해 다른 개체를 방패로 삼는다. 그 개체는 기꺼이 방패가 된다. 고온의 의수에 피부와 내장이 불타면 다른 개체가 재빨리 그 자리를 대신한다. 쓰러진 개체는 계몽과학의 극치라고밖에 할 수 없는 재생 프로시져를 사용해 순식간에 갈라진 피부를 생체 나노 머신으로 접합하고, 부서진 근육을 흡수해 에너지원으로 삼으며, 당장은 필요 없는 장기의 기능을 정지시켜 생명을 보존한다. 그리고 얼마 되지 않아 다시 일어나 하은과의 싸움에 참여한다.


“!”


양 팔이 동시에 잡힌다. 하은이 저항하지만 한 팔에 셋이나 되는 트랜스 휴먼이 달라붙어 있기에 벽까지 밀리고 만다.


“완벽해지도록 하라.”


그렇게 이야기 하며 하은의 머리에 생체병기를 겨누는 트랜스휴먼. 움직일 수 없다. 다리를 움직였다가는 그 움직임을 감지한 트랜스휴먼이 먼저 자신의 머리를 날려버릴 것이다.


찰나의 순간, 오랫동안 억눌려온 하은의 천재성Genius이 지혜를 속삭인다. 그녀의 어금니가 소형 폭탄으로 쓸 수 있는 부품으로 교체되어 있었음을 기억해낸 것이다. 서브루틴이 어금니를 분리하는 순간, 그것을 뱉어 총을 겨눈 자의 머리를 박살내 버린다. 한쪽 다리를 축으로 삼아 다른 다리로 한쪽을 잡고 있는 트랜스휴먼들을 모조리 밀어내고는 공중으로 뛰어오른다. 


“그 패턴도 학습했다.”


마치 곤충떼가 말하는 것 같은 꺼림칙한 목소리로 그들이 속삭인다. 대기하고 있던 트랜스 휴먼이 뛰어올라 하은과 공중에서 뒤엉킨다. 하은이 간신히 균형을 맞추며 착지한다. 그러나 함정이다. 카멜레온처럼 피부를 벽의 색으로 바꿔 위장하고 있던 트랜스휴먼이 그녀의 왼팔에 달라붙는다.


“파앗!”


터져 나가는 소리. 스스로의 유전자를 생체 폭탄으로 즉시 개조한 그 개체가 폭발하며 하은의 왼팔을 완전히 날려버린다. 폭발로 인해 얼굴의 피부가 반 정도 날아가 그 밑으로 푸른색의 프리미움 골격이 드러난다.


그러나 쉴 수 없다. 폭염을 뚫고 뛰쳐나온 그녀가 해치로 달려드는 트랜스휴먼의 두개골을 한 팔로 박살내버린다.


가동률 55%, 라는 메시지가 HUD에 뜬다. 


멈출 수 없다. 멈춰서는 안된다.



왜?



갑자기 잡념이 떠올라온다. 


왜?


유니언의 명령이기에?


상급자의 명령이기에?



잡념을 억누른 채 하은이 다시 트랜스휴먼 무리의 사이로 뛰어든다. 팔이 하나 없다면 다리를 쓰면 된다. 동력 루트를 재 설정하고 전투 루틴을 최적화한다. 


버틴다.


버텨야한다.




“에이팍 소위, IFF 연동은?”


“서두르고 있습니다!”


콰앙, 하는 소리와 함께 머리 위에서 폭발이 일어난다. 실전을 처음 경험해보는 그로서는 가혹한 경험이다. 그가 가능한 최고의 속도로 IFF 시스템을 프로그래밍 한다. 그러나 시간이 부족하다. 그가 최상의 컨디션이었어도 시간이 부족할 것이다.


“제길… 제기랄…”


“소위!”


마린들의 지휘관 역시 그를 다그친다. 그들은 격납고 입구에 셔틀과 각종 기물들을 이용해 바리케이트를 치고 몰려드는 트랜스휴먼들과 난전을 벌이고 있었다. 벌써 몇 명이 중상을 입어 바닥에 쓰러진 채였다. 아무리 진공의 극한 상태에서 괴물들과 싸우기 위해 설계된 하드수트라도 한계가 있다. 디졸버 바이러스, 카본 탄환, 폭발형 포자 등을 흠뻑 뒤집어 쓴 또 한 명의 마린이 피를 토하며 쓰러진다. 


“제기랄!”


마린 중 한명이 외치며 플라즈마 기관총을 복도쪽으로 난사한다. 그러나 이미 경화 키틴질 장갑으로 전신을 보호하고 있는 개체들이 앞으로 나서 탄환을 뒤집어쓰며 저격수 역할을 하는 자들을 보호하며 천천히 다가오고 있었다. 저격수 역할의 트랜스 휴먼들은 팔이 기계식 매커니즘 대신 엄청난 힘의 배양 근육을 이용해 탄을 발사하는 생체 총으로 바뀌어 있었다. 그들이 무차별적으로 탄을 쏟아 붓는다. 탄에 맞은 장애물들이 디졸버 박테리아로 인해 순식간에 녹아내린다.


“소위!”


“거의 다 됐습니다!”


에이팍의 비명 같은 소리가 울려 퍼진다.


그러나 그것은 희망사항일 뿐이다. 늦는다. 기술은 있지만 경험이 부족하다. 분명히 늦는다. 그것을 부정하며 그가 필사적으로 프로시져를 완성시키려 노력한다.




“…”


하은이 무릎을 꿇는다. 그녀의 다리 쪽 관절이 당해 운동계를 반 정도 상실한 상태였다. 그녀의 두뇌에 심어진 프로그램들이 엄청난 속도로 관절 조정용의 패러미터를 재설정하기 시작한다.


“항복하라.”


그러나 하은이 남은 한 팔을 이용해 격리 해치를 붙잡고 일어난다. 격리 해치를 열려면 자신을 박살내야 한다는 의지의 표시다. 그녀의 눈동자는, 아직도 초록색으로 빛나고 있었다.


“요원!”


루나의 통신이 들려온다.


“대령님, 버틸 수 있을 때까지 버티겠습니다.”


“지금 당장 수복 모드로 들어가게!”


“아닙니다.”


하은이 달려드는 트랜스휴먼과 뒤엉킨다. 그녀가 순식간에 개미떼처럼 달려드는 트랜스휴먼의 무리에 뒤덮인다. 


“소위, 아직인가!”


“…”


그는 상급자의 명령에 대답할 여유조차 없이 몰두해 있었다. 에이팍의 눈에서 계몽된 자의 의지가 빛난다. 그의 손이 지금까지 그 어떤 순간보다도 빠르게 콘솔 위를 달린다.  방금까지만 해도 막혀 있던 구문의 조건이 완성되고, 피아식별 시스템을 조정하는 알고리즘이 최적화된다. 항법 시스템의 AI가 다섯 군데의 노드를 거쳐 코어실의 콘솔과 연결된다. 그러나, 그래도 시간이 부족하다.


“시간이… 시간이… 제기랄…”


에이팍이 입술을 깨물며 말한다. 조금만 더 일찍 완성했으면, 조금만…! 이대로 가다가는 프로시져가 완성되기도 전에 트랜스휴먼들이 바리케이드를 돌파할 지경이었다.


루나가 자신의 실수를 깨닫는다. 처음부터 코어실 쪽의 패러미터 조정을 늦춰 두고 에이팍을 도와야했다. 경험의 부족은 아무리 천재로 태어난 계몽된 자라도 피해갈 수 없다. 그것을 알아차리지 못한 것은 상급자인 자신의 실책이었다.


“…내가 보조하겠네.”


“대령님!”


마린들의 지휘관이 통신으로 이의를 제기한다. 그의 플라즈마 라이플이 방사 모드로 바뀌어 근접한 트랜스휴먼들을 불태우기 시작한다.


“이의는 듣지 않겠네.”


“…”


그가 말 없이 사격을 계속한다. 루나가 무엇을 하려는지 그는 알고 있었다. 루나가 원격 시스템을 통해 에이팍이 사용하는 콘솔에 접속한다. 그녀의 팔과 목 뒤에 이식된 포트에 콘솔의 케이블이 삽입된다.


그녀의 두뇌가 콘솔의 촉매가 된다. 두뇌의 연산 기능을 한계까지 몰아붙여 콘솔의 계산 과정을 최적화 시키고, 계몽 과학자가 밤새 고민해 풀어내야 할 문제를 무차별 대입을 사용해 풀어버린다. 에이팍의 콘솔이 몇배는 빠르게 가동하며 그의 프로그램을 순식간에 완성하는 것을 돕는다. 깨어난 자만이 사용할 수 있는 시간 영역의 프로시져다.


“됐습니다!”


에이팍의 보고를 들은 루나가 순식간에 코어 재가동 프로세스를 시작한다. 동시에 다른 콘솔을 가동시켜 피아식별 시스템과 위상 변환 시스템을 연동시킨다.



깨어나거라, 아이들아.



그녀가 속삭인다. 그녀의 속삭임이 그녀가 직접 작성한 휴먼-머신 인터페이스를 통해 번역되어 수천, 수만줄의 코드로 승화해 중추 네비게이션 시스템과 특이점 코어를 재가동 시킨다. 그녀의 눈 앞에 네비게이션 시스템이 보내오는 다중 차원 인식 시스템이 펼쳐진다. 그녀의 눈앞에 단순한 컨벤셔널 스페이스 뿐만 아니라 계몽된 자가 아니면 인식할 수 없는 차원들이 어른거린다. 딥 움브라와 컨벤셔널 스페이스의 경계에 세워진 스테이션이기에 그럴지도 모른다. 멀리서 아름다운 푸른 지구와 그것이 드리운 움브라의 그림자가 일렁인다. 불타는 태양 주위를 천천히 도는 행성과 인간이 인식할 수 없는 색깔로 흔들리는 샤드 렐름. 공포가 도사린 딥 움브라와 그 경계가 되는 소행성대의 장엄함까지.


그녀의 눈 앞에 배의 ‘요정’이라고 밖에 설명할 수 없는 것 -AI- 들이 나타난다. 항해용 AI, 차원 과학 프로시져를 보조하는 AI, 동력계를 관리하는 AI 등, 모든 AI가 차가운 파란색으로 빛나는 형체가 되어 지휘관의 명령을 기다린다.


“-그럼.”




우웅-




스테이션의 특이점 코어가 재가동을 시작한다. 낮은 진동음과 함께 그 공명이 컨벤셔널 스페이스부터 다른 차원으로 퍼져 나간다. 양자 차원 중첩 현상이 스테이션 전체를 한 차원에서 존재하면서 동시에 존재하지 않고, 존재하지 않으면 다른 차원에 존재해야 하는, 그러면서도 그 차원에는 존재할 수 없는 무언가로 탈바꿈시킨다.


일초에도 수번 차원 간을 왕복하는 위상 진동 현상이 스테이션 전체를 집어삼킨다. 


그 모든 것을 지휘하는 루나의 눈동자가 마치 시퍼런 불길로 일렁이는 듯 하다.


“위상 진동, 개시.”




-비명.


하은이 무릎을 꿇은 채 그것을 듣는다.


장엄하면서도 잔인하고, 다시는 듣고 싶지 않으면서도 귀를 기울일 수 밖에 없으며, 무한의 거리에서 들려오면서도 귀 옆에서 속삭이는 듯한 비명.


눈 앞에서 번쩍이면서도 절대 초점에 잡히지 않는, 눈 앞을 꽉 채워 아무것도 보이지 않게 하면서도 한없이 투명해 무한의 심연을 드러내며, 칠흑이자 동시에 눈이 멀듯 한 찬란한 색깔.


컨벤셔널 스페이스라는 거대한 수면 밑에 잠든 수없이 뻗어 나가는 차원들. 죽은 자의 세계, 수 없는 평행세계, 이 세계가 드리우는 수학적 그림자, 끝없는 하늘에 도달하고자 몸부림치는 공간, 생각이 만들어낸 화염과 허공, 본능이 만들어낸 수렁, 악몽 그 자체가 응축된 공허, 그 모든 것 사이를 갈라놓으며 비명 지르는 경계의 파수자. 


그것이 바로 차원 이상 현상Dimensional Anomaly이다. 


하은은 알 수 있다. 만약에 혼자 이 경계를 건너가려 한다면, 홀로 차원 이상 현상에 휘말린다면 그 계몽된 자라도 결국 미쳐버리고 말 것이다. 그리고 이 스테이션은 지금 위상 진동으로 인해 초당 몇번이나 인접한 차원으로 진입했다가 빠져나오기를 반복하고 있었다. 그 공명Resonance는 지구 궤도상의 위성에서도 관측할 수 있을 것이다. 계몽된 자가 순식간에 미쳐버리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지금은 다르다. 루나 대령의 손길, 양자 항법사의 가호가 그녀를 보호하고 있었다.


어떤 자들은 그것을 초과학의 승리라고 부르며 어떤 자들은 타고난 재능이라 칭한다. 어떤 자들은 그것을 위상간 양자 여과를 통한 경감 조치라 부를 것이며 다른 자들은 이것이 단순히 차원 인식에 대한 메져를 바꿈으로써 가능한 일이라고 말 할 것이다. 에이팍은 이 것을 피아식별 장치를 통해 연동된 위상 진동의 역진동을 통해 그들을 안전하게 보호하는 프로시져라고 할 지도 모른다.


그러나 차가운 기계와 임플란트 안에 억압된 하은의 정신은 이것이 무엇인지 알 수 있었다. 이것은 자신이 아끼는 모든 자를 보호하고자 하는, 세계의 불합리에 저항하며 때로는 그것을 꺾을 수 있는 신성한 힘, 친구와 동료를 아끼고자 하는 마음이 발현된 의지행사자Willworker의 의지다.



그러나, 이 스테이션 안의 쓰렛 널들은 그렇지 못하다.



하은에게 달라붙어 있던 트랜스 휴먼이 제일 먼저 비명 지르기 시작한다. 무한의 의식에 연결되어 있던 개체들. 그 의식이 주던 절대적인 지혜와 안정이 사라진다. 대신 비명 지르는 폭풍이 그들의 의식을 덮친다. 벌써 침을 질질 흘리며 바닥으로 쓰러지는 개체가 나타난다. 어떤 개체는 비명을 지르며 벽에 머리를 박아 대기 시작한다. 다른 개체가 미친듯이 다른 개체에 달려들어 목덜미를 물어뜯는다. 디멘셔널 아노말리에 잠시 휘말려도 계몽된 자는 미칠 듯한 역겨움과 공포에 휘말린다. 그것을 초당 몇 번이나 경험하고 있는 것이다. 끓는 물에 담갔다가 신경이 상하기 전에 빼고, 다시 열이 식기도 전에 끓는 물에 던져 넣는 느낌이라고 할까.


“끄아아아아!”


비명 지르던 개체가 참지 못하고 하은의 옆으로 달려와 머리를 해치에 부딪힌다. 그것의 머리가 완전히 박살 난다. 남아있는 몸은 꿈틀거리는 흉측한 물건이 되었을 뿐이다. 이런 광경이 순식간에 스테이션 전체에서 벌어진다. 


얼마 되지 않아 특이점 코어가 완벽하게 재가동을 멈추고, 스테이션의 위상 진동이 멈춘다. 웅웅 대는 코어의 울림만이 코어실 전체를 울려 대고 있었다.


“위잉-“


격리 해치가 열린다. 해치에 걸려있던 트랜스휴먼의 부서진 턱이 철퍽, 하는 소리를 내며 떨어진다.


“어휴. 며칠간 청소만 해야겠구만… 에이팍 소위, 그쪽은 어떤가?”


“멀쩡합니다! 작전이 제대로 먹혀 들었습니다!”


에이팍이 신난 목소리로 보고한다. 루나가 하은을 올려다본다. 만신창이라는 말이 전혀 아깝지 않다. 


“고생했네, 요원.”


“아닙니다.”


“자, 이제 통제실로 가지. 자고 있는 생도들을 전부 깨워야지. 전부 대청소 후 고중력 하에서 PT다!”


기합이 잔뜩 들어간 루나 대령과 하은이 질척질척한 피의 바다를 지나, 지휘통제실로 향하기 시작한다.




“제기랄…”


무균 수술실 밖에서 레지던트가 벽으로 물러선다. 도망갈 곳은 없다. 이미 그를 호위, 그리고 감시하기 위해 붙어있었던 트랜스휴먼은 서로의 심장을 뽑아버린 채 절명해 있었다. 오직 그만이 간신히 차원 진동에서 살아남은 상태였다. 그의 양쪽 코에서는 코피가 흘러내려 최고급의 양복을 흉하게 적시고 있었다. 


트랜스휴먼들의 흉측한 시체를 치워버리며 그레인저가 그에게 다가선다. 그도 분명 한때 계몽된 기술을 훈련 받은 몸, 이런 상태가 아니라면 저항이라도 해볼 것이다. 그러나 이런 상태에서는 도망가는게 고작이다. 물론 얼마 안되어서 뒤통수에 구멍이 뚫리겠지만.


“당신.”


나노 피스톨이 그의 이마에 겨눠진다. 레지던트가 바짝 붙어 있는 무균실 안쪽으로 환자복을 입은 채 허공에 고정된 에이다의 모습이 보인다. 에이전트가 협상 카드로 쓰려고 했지만, 오히려 그 덕분에 지금까지 표본 신세가 되지 않고 살아있었던 것이다.


“한가지만 주면 살려 보내주죠.”


그레인저의 입에서 예상하지 못하던 말이 튀어나온다. 


“오호…”


레지던트가 미소 짓는다. 상대가 원하는 것이 있다면 그것이 아무리 사소한 것이라도 레지던트에게는 거래, 때로는 협박의 수단이 된다.


“내가 원하는게 뭔지 알겠죠?”


“…물론.”


레지런트가 순순히 단말에서 무엇인가 꺼내 그녀에게 건넨다. 하은의 기억을 담은 작은 데이터 저장 장치다. 


“자, 그 장치에는 내 심박 센서와 연동된 암호화가 되어 있다네. 내가 죽거나 하면 영원히 열 수 없지. 반면에 내가 안전하게 어느정도 거리 이상을 벌리면 즉시 복호화 될 거야. 원래는 그 기분 나쁜 놈과 거래하려고 입수한 거지만…”


그의 말이 각혈과 함께 중단된다. 그레인저가 경계하는 눈빛으로 장치를 VDAS로 스캔하여 몇 개의 통신 위성을 거쳐 MSF 아말감의 데이터베이스에서 조회한다. 아말감 내부의 DB 뿐만 아니라 노먼이 몇 개의 소스에서 확인한 결과 그의 말은 틀림이 없었다. 애초에 NWO의 개발 부서Q Division에서 만든 정품이라는 것을 알게 되자 실소를 할 뻔 했다. 심지어 일련번호를 통해 언제 어디서 망실되었는지도 알 수 있었다.


“이 복호화 장치는 어디서 입수했죠?”


“오호라, 그 답을 알만큼의 대가를 치르실 수 있나? 그렇다면 바로 대답해드리지.”


그의 말은 진심일 것이다. 레지던트라는 부류를 처음으로 만나보지만, 그레인저는 본능적으로 이들이 그런 존재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들이 팔지 못하는 것은 없으며, 채무 관계로 묶지 못하는 존재는 없다. 악마를 상대로 철저히 합법적인 사기를 칠 수 있는 것은 오직 이들 뿐일 것이다.


그와 조금이라도 더 거래하는 것은 위험하다. 그렇게 생각한 그레인저가 위협적으로 권총을 휘두른다. 레지던트가 몸을 추스르며 일어나 손을 든 채 천천히 문을 열고 사라진다. 


대체 ‘클라이언트’가 누구였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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