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커뮤니티 과잉 몰입형


- 온라인 상에서 보면 TRPG 판은 크게 세 갈래로 나누어져 있다. 네이버 카페 / TRPG 갤러리 / 트위터로 말이다. 물론, 오무소라든가 헌터홀, 알톡넷 등 군소 커뮤니티 또한 존재하고 있지만, 그 파급력은 앞서 언급한 세 커뮤니티와는 궤를 달리하니 여기서 언급하지 않겠다.


물론, 이렇게 세 개로 나눠진 커뮤니티는 그 성향으로 나누자면 두 개로 나눌 수 있을 것이다. 디씨 특유의 막나가는 발언과 소시오패스적 감성으로 가득찬 TRPG 갤러리와, 그에 대항하는 네이버카페 + 트위터로 말이다. 사실 네이버 카페 이용자들과 트위터 이용자들은 이용자 풀이 겹치니 거의 동일하다고 봐도 무방할 것이다. 물론 TRPG 갤러리까지 이용하는 이들도 많겠지만, 이 곳에서는 자신의 넷 자아를 숨긴다는 점에서 그들이 TRPG 갤러리에 어떤 애착을 품고 있다고 말하기는 힘들 것이다.


다들 알다시피, 이들 대립하는 커뮤니티 이용자들은 서로를 극렬히 혐오한다. 꼬투리 잡아서 확대해석은 기본이고, 스크린샷을 찍어와 조리돌림하는 것은 일상이다. 나아가 자신과 반대되는 성향의 커뮤니티를 한다는 이유만으로 색안경을 끼고 배척한다.


나는 그런 행동들을 옳다고 생각하지 않지만, 또한 막을 수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디씨인사이드처럼 얼굴을 가리고 활동할 수 있는 커뮤니티에서, 이용자들에게 어떤 형태의 자기검열을 요구하는 것은 법의 힘을 빌리지 않고서는 굉장히 힘든 일이며, 수위를 넘어가는 발언을 규제한다고 해서 모두가 그 규제에 수긍하고 자신들의 발언을 억제할 것이라고 믿지도 않는다. 이들 디씨인사이드 이용자들은 그러한 규제를 오히려 조롱하고, 그 규제를 우회하는 새로운 형태의 혐오 문화를 파생시킨다. 막는다고 해서 막을 수 있는 것이 아닌 것이다. 아니, 인간에게 '익명성'을 부여했을 때 이러한 일이 발생하는 것은 오히려 당연한 일인 것이다. 가까이는 네이버 지도의 댓글란이 있고, 멀리는 콜센터 아르바이트에게 가해지는 언어적 폭력을 봐도 알 수 있듯이 말이다.


물론, 트위터나 네이버 카페에도 비슷한 논리가 적용된다. 트위터 / 네이버 카페 이용자들 사이에 뿌리내린 DC인사이드에 대한 깊은 혐오는 이미 하나의 문화가 되었다. 그리고, 그런 주류 문화에 반하는 발언을 하는 이들을 (그 발언이 이치에 맞든 맞지 않든) 집단으로 모욕하고 사이버불링하는 문화 또한 트위터 / 네이버 카페의 고질적인 병페 중 하나이고 말이다. 이들 사이에서 그 주류 문화에 거스르는 발언을 하는 것은 사회적 자살에 가깝고, 그 발언을 한 자에게는 (계정을 날리고 새로 계정을 파지 않는 한) 영원토록 낙인이 남는다.


즉, 현재 양분된 두 파의 TRPG 커뮤니티는 그 태생부터 양 극단에 위치한 상태였고, 그 이용자들끼리 서로를 혐오하는 것은 어찌보면 당연한 일인 것이다. 사실 '대립'하고 '혐오'한다고 앞에서 표현했지만, 그런 사이버-대립이나 사이버-혐오는 실제로 상대방을 박살내고 입을 봉하려는 시도까지 이어지지 않는다. 그저 커뮤니티 끼리의 일상적인 분쟁인 것이다. (네이트 판 - 디씨의 뿌리깊은 대립같은 것을 생각하면 될 것이다.) 이런 일상적인 분쟁은 할 짓없는 넷-찌질이들끼리 서로에게 똥을 던져대며 시간을 죽이는 '유희'에 가깝지, 실제로 서로의 커뮤니티를 분쇄하는 지경까지 흐르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문제는, 이러한 대립되는 커뮤니티 이용자들이 현실에서까지 그런 논리를 대입하려는데서 발생한다. 어떤 이가 TRPG 갤러리에서 고정닉을 파고 활동한다고 해서 그가 디씨 내에서 난무하는 폭력적 / 모욕적 / 반사회적 언행에 모두 동의하는 것은 아니며, 또한 트위터에서 파워 트위터리안으로 활동한다고 해서 그가 트위터 내의 사이버불링 문화 / 극단주의를 포용한다고 볼 수 없다. 그러나, '혼모노' 들은 자신이 몸담은 커뮤니티를 스스로 체화하고 육화한다. 마치 자신이 그 커뮤니티를 대표하는 심볼처럼 행동하는 것이다. 오프라인 모임에서 있었던 일이다.


나 : 안녕하세요.


A : 안녕하세요.


혼모노 : 안녕하세요.


나 : 아, 이 룰 굴리게 되는게 얼마만인지...재작년에 한 번 굴려보고 팀이 공중분해되었거든요. 근데 이 룰의 소재가 굉장히 호불호가 갈려서 구인하기가 너무 힘들었어요.


A : 아...의외로 이런 취향 많이 없군요.


혼모노 : 하긴 TRPG 인구 자체도 적은데, 여기서 취향 맞는 이들 만나기도 쉽지는 않지요.


나 : 원래 카페에서만 구인하다가, 요새는 커뮤니티가 많이 퍼졌잖아요? 그래서 이곳저곳에 많이 뿌렸거든요. 혼모노 님은 카페 통해서 오셨구요.


혼모노 : 아...카페나 트위터에서만 구인하신거 아니군요. A 님은요?


A : 아 전 그저께 턀갤에서 구인글보고 왔어요.


혼모노 : 턀갤요?


A : 네.


혼모노 : 그런거 하세요? 헐...


나 : (?)


나 : 아니 뭐 그래도 일단 유동인구도 많고, 사람 최대한 많이 보이는 곳에 구인글을 올려야 사람이 쉽게 모이잖아요.


혼모노 : 아니 거기 좀 이상하잖아요.


A : ㅋㅋ 네 이상하긴 하죠. 근데 디씨가 뭐 그렇죠...저도 고닉 파고 활동하진 않아요. 그냥 눈팅이나 좀 하고 가끔 고닉들이 올리는 정보글 같은거 보러가는거죠.


혼모노 : 아니, 근데 일베도 그런 논리였잖아요.


나 : ? 일베는 사이트 전체가 약간 반사회적인 그런...범죄 용인하고 그런...이상한데잖아요.


혼모노 : 턀갤이나 일베나;


A : 아니 근데 그게 중요한가요 지금...제가 뭘 잘못했는지 잘 모르겠고, 왜 기분 나빠하시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혼모노 : 아니 그냥 저는 디씨 감성이 별로라서요;


나 : 음...디씨 안하는 사람 없을텐데요 인터넷 좀 하는 사람들은...뭐 여성들은 해연갤이나 남연갤 이런데서 떡밥 만들고 조공 문화 만들고 그러잖아요.


혼모노 : 아뇨 그건 카페같은데서 하는거구요, 남연갤이나 해연갤도 이상한 애들이나 하는거죠.


A : 근데 제가 TRPG 갤러리하는게 범죄인가요?


혼모노 : 아니 뭐 딱히 범죄라고 꼬집는게 아니라, 그냥 문화가 그렇잖아요.


나 : 그렇군요...그럼 일단 시작할까요. 커뮤니티 얘기는 저도 좋아하긴 하는데, 좀 이야기가 길어지네요. 사실 디씨랑 트위터랑 사이가 안 좋은거지, 우리끼리 그런 커뮤니티로 사이 안좋게 만들 필요는 없잖아요? 우리가 커뮤니티 대표하는 것도 아닌데...


혼모노 : ...그러죠. 일단 시작합시다.


이렇게 잠시 삐걱이며 시작된 캠페인은 두 회를 이어가지 못하고 터지고 말았다. 혼모노는 A나 내가 간간히 던지는 메타 발언과 디씨 감성의 유머(주로 중세게임 갤러리에서 파급된 스카이림 / 뉴베가스 관련 밈)를 자신에 대한 개인적인 모욕 비슷한 것으로 받아들였던 것 같다. 혼모노와 A는 플레이 중간중간 특정 발언에 대해 의견차를 내보였고, 그때마다 내가 중재를 해야만 했다. 그렇다. 혼모노에게는 자신이 싫어하는 커뮤니티 문화를 알고 있는 이들과 함께 플레이를 하는 것 자체가 어떤 거대한 불의와의 타협처럼 느껴졌을 수도 있다. 자신의 개인적인 (확신하긴 힘들지만) 즐거움을 위해 디씨라는 거대한 악과 연대한다는 것이 혼모노에겐 견디기 힘든 도덕적 시험으로 여겨졌을 수도 있다.


혼모노는 한 회 이후 팀에서 나갔다. 내게는 개인적인 사정이 있다고 말했지만, 나는 혼모노가 플레이 중간에 내보였던 기이할 정도로 극렬한 공격성 - A로 대표(?)되는 특정 커뮤니티를 향한 - 에 아연했기 때문에, 혼모노의 탈주가 오히려 반가웠기도 했다.


-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