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랫만에 돌아온 오늘의 뻘글. 저번에 슬쩍 다룬 이야기를 다시 좀 더 해 보자.
마게의 마법에서는 촉매(Focus)라는 개념이 나오는데, 패러다임(Paradigm), 방법(Practice), 도구(Instrument)로
구분이 가능함. 수치 기반 메커니즘 위주로 설명한 저번 해석에서는 이것들을 두루뭉실하게 넘어갔으니까 이번에는
이쪽에 집중해서 설명해 봄.
패러다임(Paradigm)과 믿음(Belief)
많이 들어봤겠지만, 메이지의 패러다임은 곧 그 메이지가 세계 만물을 바라보는 관점인데, 문제는 이게 묘한 방식으로
설명되어있다는 것임. 대부분 말이지..... 그나마 좀 이해하기 쉬운 패러다임의 예를 들어보자.
기술에 모든 답이 있다(Tech Holds All Answers)
어, 그렇다고 한다.... 그러면 이걸 좀 뜯어보자. 이 관점에서는 세계는 겉으로는 어떻게 보이든 합리적으로 돌아가며,
이성적인 관점을 통해서 우리가 이해와 해석을 할 수 있는 존재로 간주됨. 쉽게 말해서 모든 질문에는 답이 나온다는
거임. 단지 아직 우리가 답을 찾을 수단과 시간이 부족해서 못 찾은 거지. 그리고 그런 문제를 해결할 도구를 제공해
주는 게 기술이라는 거야. 이 관점에서는 '마법'은 단지 대중에게 이해받기에 좀 멀리 있는 과학 기술이 되는 거고,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럽게 대중에게 이해된다는 거임. 이쯤 되면 이렇게 믿는 애들이 누군지 알겠지? 대개 테키들임.
근데 꼭 테키만 이걸 믿는 건 아니야. 트레디션에도 저렇게 믿는 애들은 있을 수 있어. 그리고 테키라고 해서 다 저걸
믿는 것도 아니고.
그런데 문제는 저런 패러다임을 '그대로' 날 것으로 믿거나 사용하는 메이지는 없으리라는 것임. 왜냐면 얘의 개인적인
믿음(Belief)이 끼어 들거든. 마게 20주년판에서는 이 둘의 관계를 패러다임이 '세상이 이 메이지의 관점에서는 어떻게
돌아가는가'이고 믿음은 '왜 이 메이지가 그렇게 생각하는가'라고 요약해서 설명함. 그러니까 같은 패러다임을 가져도
그 해석이라든가 그런 건 달라질 수 있다는 거지. 그러면 일단 패러다임의 적용에 대해 덜 구체적으로 간단하게 왜곡과
축약을 한 예시부터 좀 들어보겠음.
<간단한 예시>
오늘도 골골대며 호흡기에 의지하는 상태로 죽어가는 '소닉'을 치료하려고 세가에서 메이지를 부르기로 했다고 치자.
미국 일본에서 '토도키 하와도'라는 양반이 왔는데, 토도키는 '기술에 모든 답이 있다'는 패러다임을 믿는 메이지였음.
그렇다면 토도키가 믿는 '기술에 모든 답이 있다'는 패러다임은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적용될까?
1. 소닉이 죽어가는 데는 원인이 있을 것이다. 아직 그 원인을 아무도 못 찾았다면 기술을 통해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2. 소닉이 죽어가는 원인을 찾았다면, 기술을 통해서 그것을 제거하거나 혹은 원상복구, 업그레이드할 수 있을 것이다.
3. 그러면 그렇게 하면 되겠네? 끝!
대략 이렇게 정리됨. 여기까지는 아주 쉬움. 그러면 일단 토도키를 치우고 그 대신 헬조선에서 온 중갤러를 넣도록 하자.
이 중갤러는 진짜 고전 게임들을 감명깊게 플레이한 덕분에 '황금 시대로 돌아가자(Bring Back the Golden Age!)'는
패러다임을 갖고 있음. 쉽게 말해서 지금의 현실은 좋았던 옛날에 비하면 시궁창이며, 마법은 그런 좋았던 옛날과 같은
상황을 구현하고자 하는 수단이라는 패러다임임. 그러면 이 패러다임은 이 상황에서 어떻게 적용될까?
1. 소닉이 죽어가는 이유는 당연히 옛날 잘 나가던 시절의 장점들을 폐기하고 이상한 요소들을 적용했기 때문이다.
2. 따라서 소닉을 살리려면 더 나았던 옛날의 장점들을 살리고 요 근래 추가된 이상한 요소들을 도로 떼어내야 한다.
3. 그러면 록맨처럼 1세대 명작을 리메이크해 보면 되겠군. 어 잠깐만...?
뭔가 이상해 보일지도 모르겠지만 아무튼 진짜 고전게임을 잡고 놀았던 중갤러라면 충분히 이렇게 여길 수 있을 거임.
근데 여기 제시한 예시는 좀 쉬운 거고, 좀 막 나가면 윤회론의 관점이나 혹은 세계 자체를 하나의 살아있는 유기체의
관점으로 보거나 뭐 그런 패러다임을 이 상황에 들이대고 '아무튼 그렇다'고 주장할 수도 있고 그럼. 그러니 예시처럼
항상 패러다임과 상황이 딱딱 맞물려 준다고 단언하기는 좀 묘해.
방식(Practice)과 도구(Instrument)
방식은 믿음과 패러다임을 마법으로 구체화하는 형식임. 쉽게 말해서 같은 패러다임을 공유하는 메이지들끼리도 서로
같은 결과를 내는 마법을 다른 방식으로 사용하고 그럼. 여기다가 그 과정에서 사용하는 도구도 사람마다 다르니까 결국
같은 마법을 모두가 완전하게 다 똑같은 형식으로 쓴다는 보장은 어디에도 안 남을 거야. 소위 격투게임 국민콤보 식으로
퍼진 거라면 그나마 비슷하게 쓰겠지만 말이지....
<간단한 예시>
다시 소닉의 이야기를 하자. 세가의 약 20초간의 고민 끝에 소닉을 고칠 메이지로 선정된 토도키는 자기의 방식에 따라
소닉을 고치기로 했음. 문제는 토도키가 어떤 방식을 사용하려는 메이지냐에 따라 소닉의 운명이 또 달라질 거라는 것임.
일단 토도키가 어찌어찌 빅데이터를 모아 세간의 평가를 살펴본 결과 기존의 액션 어드벤처는 한물 갔다는 결론이 나와
아예 지금까지 소닉 시리즈에 사용된 적이 없던 신기술을 적용해서 새로운 장르에 도전하는 방식을 쓰기로 했다고 치자.
1. 신기술을 적용해서 기억을 잃은 소닉이 미지의 섬에서 미스터 드래곤본과 싸운다는 '소닉 뉴 베가스' 게임을 만든다.
2. 신기술을 적용해서 소닉이 닥터 에그맨의 기지에 잠입한다는 '메탈 기어 소닉' 게임을 만든다.
3. 신기술을 적용해서 격투 게임 '버추어 소닉'을 만든다.
(이하 아무튼 신기술을 적용해서 뭘 만드니까 생략)
도구야 뭐 토도키의 컴퓨터를 쓰겠지 뭐....라고 하기엔 저 신기술이 또 어떤 거냐에 따라서 이야기가 달라질 수 있음.
아크 시스템 웍스하고 반다이남코하고 SNK는 모두 똑같은 격투게임 장르 게임을 만들지만 결과물이 다 다르잖아...?
아, 그리고 위에 나온 선택지가 전부 미친 거 같더라도 걱정할 것은 없음. 토도키는 일단 메이지니까 토도키 입장에서
(사실 그걸 듣는 플레이어들과 스토리텔러 생각에) 그게 말이 된다고 간주될 수 있으면 되거든. 마법이 다 그렇잖아?
이 부분을 어찌어찌 넘긴 뒤에 마법을 쓰기 위한 판정에만 성공하면 어떤 게임이 나왔든 간에 그게 흥하면서 소닉이
살아난다는 거야. 다만 저게 토도키한테는 말이 되어도 대중의 입장에서 말도 안 된다면 아마 저속한 마법이 되겠고,
그에 따라서 성공하기가 더 어려워지고 그에 따르는 문제도 더 늘어날 게 뻔하지.
좀 더 재미있을 사례
그럼 이제 소닉은 어찌 되든 신경쓰지 말고.... 이번에는 따뜻한 남태평양의 섬나라를 찾아가 보자. 이 섬나라에서는
화물 신앙(Cargo Cult)이라는 게 유행함. 쉽게 말해서 이 세상이 아닌 다른 세계에는 지상락원이 있는데, 거기에서
조상들이 이것저것을 섬나라에 갖다주려고 보내면 그걸 왜놈, 양키, 흐긴 등이 일종의 의식을 통해 뺏아간다는 것임.
물론 왜놈, 양키, 흐긴이 야 그런 건 존재하지 않고 우리가 고향에서 만들어 온 것 중에 남는 것들을 나눠준 거야라고
가르쳐 줘도 얘들에게는 그건 다 양놈들이 놀고 먹으면서 자기네 조상들이 보내준 걸 뺏고는 그런 거 사실은 없다고
입을 싹 닦으려는 걸로 들림. 우리 입장에서는 대개 이게 무슨 미친 소리냐고 하겠지만 얘들에게는 이것이 믿음이자
현실이며, 이들 중에 있을 지 모르는 메이지에게는 패러다임과 믿음이 될 거임. 그러면 진짜 여기에 메이지가 한 명
정도 있다고 치고, 이 메이지의 촉매에 대해서 대충 생각해 보자. 당연히 아주 대충 생각했으니 이대로 될 지는 나도
잘 모르겠음.
패러다임 : 천상의 질서와 세속적인 혼돈(Divine Order and Earthly Chaos)
이 패러다임은 쉽게 말해서 세속적인 세계는 불완전하며, 고차원적인 뭔가 더 나은 질서 같은 게 따로 존재하고 있다는
그런 내용임. 대개 기독교 이슬람 등 천국의 존재를 긍정하는 쪽이나 뭐 이데아 그런 거 들먹이는 철학하는 놈들에게서
볼 수 있는데, 여기에도 그걸 적용해도 무리는 없을 거임. 조상님들이 계신 곳이 그런 동네 아니겠냐? 거기다가 얘들의
현실은 왜놈, 양키, 흐긴들이 이래저래 개입해서 귀찮게 하는 중이었거든.... 아 지금도 안 그런다는 건 아니야.
믿음 : 조상들은 간간히 선물을 보내주고 진짜 그걸 우리가 받기도 했지만 요새는 왜놈, 양키, 흐긴 등이 의식을 통해서
빼앗고 우리한테 그런 건 없고 전부 자기들 건데 남는 걸 우리한테 나눠준 거라고 계속 거짓말까지 하는 중임.
아무튼 이게 맞는 거임. 그렇지 않다면 우리 할아버지가 BAR인지 뭔지 하는 총이라든가 그런 걸 받았을 리가 없잖아?
그리고 그놈들이 맞다면 우리 조상들이 아무 것도 안 하는 찐따들이라는 건데 백인들이 그냥 놀고 먹어도 뭔가가 계속
오는 걸 보면 그럴 리도 없잖아? 그렇지? 그렇겠지?
아, 그래. 네 이성은 이게 틀리다고 해도 네가 플레이하려는 이 메이지는 대개 플레이 내내 그렇게 믿고 있어야 할 거야.
그러니까 이런 걸 생각할 때는 처음부터 잘 생각해 보는 게 모두의 정신 건강에 좋을 거임.
방식 : 그야 당연히 양놈들이 조상들이 보내는 물건을 뺏는 의식을 따라하는 것이 됨. 그러면 일단 최소한 일부분이라도
우리한테 제대로 오겠지? 그렇다고 양놈들에게 덤벼들어서 물건을 되찾는 건 좀 많이 무리인 거 같고 말이야......
그래서 화물 신앙에서는 공항을 흉내내서 시설을 짓고, 거기서 비행기가 착륙할 때의 광경을 모사하는 것이 종교 의식임.
대개 사제는 헤드폰을 닮은 장신구를 끼고 막 관제탑에서 이리저리 움직이면서 관제사 흉내를 낸다거나 뭐 그렇게들 함.
좀 유명한 걸로는 열병식을 흉내내는 친구들도 있고 그럼.
도구 : 당연히 이것도 양놈들이 의식을 할 때 쓰는 도구를 따라 만들면 됨. 거기에 우리 나름대로 마나를 더 불어넣거나
그런 식으로 나름대로 손을 볼 수도 있겠지.
위에서 나온 의식을 하는데 쓰는 도구들임. 나무를 깎아 목총을 만든다거나 뭐 위에서 말한 헤드폰을 닮은 장신구라든가
그런 것들 말이지.
자 여기까지 전부 이해했지? 끝!
간만에 개드립추
패러다임이 테크랑 똑같은건줄 알았는데 사회정책 비슷한거였구나
섹시우스인가
이해추
이번 건 좀 열심히 쓴 거 같아서 1추. 플레이어 전원이 각자 자기 캐릭터의 패러다임을 논리적으로 설정하고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는 점이야말로 메희지에서 가장 개 같은 부분이지.
사실 사교도 컬트를 좀 그럴싸하게 만드는 과정에서 비슷하게 사상 정리하는 거 자주 해봐서 그런지 딱히 저번 보다 열심히 쓰진 않은 듯.
사교도 컬트 조사할 거면 사이비종교관련 서적을 봐야하지 안냐
내 경우는 컬트를 깊게 다룰 때는 누구를 섬기는가 / 세상을 어떻게 바라보는가 / 교단의 중심은 누구인가 / 현재의 목적은 무엇인가 / 신앙심을 어떤 식으로 표현하는가 등부터 정리한 다음에 그런 디테일을 다듬거든.
메희지에서 가장 힘든 건, '말은 안 되지만 제 캐릭터는 걍 믿어요'면 안 된다는 부분이지.
이런 부분이 납득 되는 캐릭터는 그 사상이 뭐건 정말 재밌을 듯
그런 거라면 종합선물세트 Cult compendium을 샀어야하지 않을까
ㅇ.ㅇ 잘 되면 만족도는 아주 높음. 문제는 팀의 모두가 언제나 그 정도로 캐릭터의 형이상학적 세계관과 철학, 신념, 목표를 알아서 짜오리라는 보장은 없다는 데 있지. 그리고 룰에는 이를 돕기 위한 시스템적 장치도 없고.
그래서 결국 메이지를 하고 싶었던 고대의 RPG 결사단은 외부와의 연을 끊고 자기들끼리 메이지를 잘하기 위해 철학공부를 시작했고, 그 결과 '이럴 바엔 딴 거 한다'는 깨달음을 얻어 승천했다. 일부는 같은 짓을 하다 주화입마에 빠져 미쳤고.
그래봐야 답은 "테크노 유 " , (&**(^ 버추얼 어뎁트임 ㅎㅎ
잘만 짜면 최고일것 같기는 한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