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의회에서 마력핵의 추가적인 생산을 제의했습니다.\"
서류를 바라보던 여제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예상대로의 반응에 서기관은 속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여제가 의회와 사이가 나쁜 건 하루이틀이 아니었다. 보아하니 오늘도 잘나신 의원분들께서 건의하신 의견이 그녀의 심기를 건드린 모양이었다.
마력핵 추가 생산. 세계를 간편하게 멸망시킬 수도 있는, 그 위험성에 개인이 관리할 수 없도록 대의회에 관리권이 주어진 병기. 그것을 추가적으로 생산하겠다는 것은 대의회가 더욱 군사력을 가지겠다는 의미였다.
\"서기관, 내가 검을 어디 뒀더라?\"
\"고정하시지요. 아직 확실히 결정된 사안은 아니지 않습니까.\"
\"자네는 대의원 놈들이 내가 반대한다고 알겠다며 포기할 것 같은가?\"
서기관은 회의 때마다 보던 의원들을 떠올렸다. 대답이 나오는 데는 3초도 걸리지 않았다.
\"그럴리가요. 어떻게든 밀어붙일껍니다.\"
\"잘 아는군. 그럼 내 검을 좀 가져오겠나?\"
\"제발 고정하십시요.\"
굉장히 마음이 끌리는 명령이었지만, 서기관은 고개를 내저었다. 여제는 한참을 혼자 씩씩거리며 대의회에 대한 갖가지 욕들을 쏟아냈다. 그녀의 옆에 선 지 벌써 이십년이 다 되어가건만 이 불같은 성격은 사라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그는 푸념을 한귀로 듣고 한귀로 흘리며 익숙한 손놀림으로 잔을 꺼내 물을 따랐다.
\"빌어먹을 의원 놈들... 찬물이나 한잔 줘.\"
아니나 다를까, 목이 타는지 물을 찾는 여제에게 서기관은 기다렸다는듯 잔을 건넸다. 단숨에 물을 들이키고 숨을 고른 후, 그녀는 다시 입을 열었다.
\"그래, 놈들이 이걸 반대하면 다음엔 뭘 가져올 것 같나?\"
\"B-725A7세계의 경우를 내세워 차원함대 증설을 요구하겠지요. 적어도 전함 5척 정도는 건조하려들껍니다.\"
\"카베급? 아니면 프란체스카급?\"
\"카라잔 급 말하는겁니다.\"
\"미친놈들. TL6 밑의 세계면 작살날 전력을 새로 가지겠다고? 돌아버린건가? 평범한 기계문명이면 카라잔 하나로도 멸망시키는게 가능한데 다섯 척이나?\"
거칠게 펜을 책상에 내려두고는 그녀는 의자에 몸을 기댔다. 머리가 지끈거렸다. 의회의 요구를 들어주지 않았다가는 일이 더 복잡해질 것이었다.
\"괴력난신을 추가적으로 투입해 B-725A7의 반란을 종결시키는건?\"
\"개인이 관리하기엔 너무 큰 무력이라며 친위대를 해체하려 들겠지요.\"
\"중도파 의원을 이쪽으로 끌어당겨보는건?\"
\"그들도 결국 이익을 쫓는 자들입니다. 폐하께서는 그들이 흥미로워할 무언가를 그들에게 주실 수 있으십니까?\"
\"...브라더후드를 움직이는 건 어때, 가능할 것같나?\"
\"저도 이미 그들과 연락이 끊긴지 오래입니다.\"
\"...가디언은?\"
\"스스로도 잘 아시지 않으십니까?\"
아무래도 반란을 종결시킴으로 사태를 해결하는 건 무리같았다. 아니, 애초에 반란을 재빠르게 끝낼 힘이 있었다면 이런 요구가 들어오지도 않았을 것이었다.. 설령 있다해서 해결하더라도, 의회는 다른 구실을 들먹이며 전력을 강화하려들 것이 뻔했다. 반란을 진압해내더라도 결국 시간을 끄는 것에 불과하리라.
\"...역시 내가 직접 출전하는게?\"
\"안됩니다. 연세를 생각하셔야지요.\"
\"미안한데 나 불로거든?\"
농담을 주고 받으며 여제는 자신의 손을 바라보았다. 가장 마지막으로 검을 휘둘러 적을 벤게 언제인지도 잘 기억나지 않았다. 신체는 늙지 않았지만, 분명 그녀는 늙어가고 있었다.
구세대는 신세대를 이길 수 없다.
누구나가 하는 말이었다. \'그 전쟁\'을 겪은 구세대에게 경험의 질로는 지는 신세대였지만, 그들에게는 \'마법\'이라는 강력한 무기가 있었다. 마법, 체계화된, 누구나 조금의 훈련이면 사용할 수 있는 인간의 한계를 넘은 기술. 마법이 보급되며 세계는 너무나도 변해버렸다. 이제 더이상 자신들은 강자가 아니었다. 어느샌가 꽉 쥔 주먹에서 피가 배어나왔다.
\"그래서 의회쪽에선 현재 사냥개부대를 투입할 방향으로... 듣고 계십니까?\"
\"응? 아아 미안하네. 뭐라고 했지?\"
\"대의회 측에선 사냥개부대를 투입하자는 의견이 현재 다수의 지지를 얻고있는 상태입니다.\"
사냥개 부대. 신세대로 구성된, 사실상 대의회의 사병이나 마찬가지인 집단이었다. 그 전력은 확실했지만 그들의 과격한 마법우선주의사상과 여태까지의 전적을 보면 결코 결과가 좋게 끝나지 않으리란 것은 쉽게 예상할 수 있었다.
멀리서 포격으로 섬멸하는 주제에 무슨 사냥개냐. 자고로 사냥개면 적들을 추적하면서 포위해가며 몰아넣는-
순간, 번뜩임이 뇌리를 스쳤다.
\"있잖아. 사냥개.\"
\"아마 이번에는 3개 부대를 투입할 것으로 예상... 예?\"
\"사냥개 부대. 우리도 있다고.\"
\"...친위대의 투입은 어려울 것이라고 제가 조금 전 말씀 드렸을텐데요?\"
\"괴력난신말고, 진짜배기들 말이야.\"
서기관은 그녀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알 수 없었다. 진짜배기 사냥개라니? 어딘가 숨겨둔 부대라도 있단말인가?
\"위험인물 지정리스트 17년전꺼 아직 남아있지?\"
17년전, 위험인물 지정리스트. 그제서야 그는 그녀의 의도를 파악할 수 있었다. 전쟁직후의 위험분자들을 기록한 리스트. 여제는 구세대를 다시 모으려하고 있었다.
\"그 놈들보다 전장을 더 많이 경험한 놈들은 없어. 늙은 개지만 포격과 섬멸밖에 모르는 멍청이들보단 백배 낫지.\"
\"하지만 모아봤자 기껏해야 열명남짓일 껍니다. 그 수로 전쟁을 끝내는건 무리예요. 설령 리스트의 전원을 모아 전쟁을 끝내더라도 시간벌기뿐, 오히려 디메리트가 클껍니다.\"
\"누가 B-725A7에 투입한다고 했나?\"
\"그, 그럼?\"
\"시간끌기 따위가 아닌, 대의회 놈들의 시선을 모조리 빼앗을 수 있는 곳.\"
당황한 서기관을 보며 여제는 미소를 지었다. 고혹적이면서도, 장난기가 듬뿍 담긴 미소였다. 불길한 예감이 서기관의 등골을 흝었다.
\"아르카디아 수용소에서 W-0402-M을 탈취한다.\"
\"드디어 미치셨습니까?\"
본능적으로 욕설이 튀어나왔다. 지금 이 여자가 뭐라고 지껄인거지? W-0402-M?
\"워워 진정해. 나밖에 없어서 망정이지 딴 놈이 들었다면 불경하다며 칼을 빼들었을꺼라고?\"
\"그 전에 폐하의 발언을 들었다면 누구라도 폐하의 정신부터 걱정하겠지요.\"
서기관은 감정을 감추지 못한 채 격하게 말했다. \'그 것\'이 저지른 일들을 직접 보고 겪어온 그였기에, 침착함을 유지할 수가 없었다.
\"그래, 나도 그게 얼마나 위험한지는 알아. 어쩌면 세상 누구보다 잘 알지도 모르지. 하지만 그렇기에 말할 수 있어. 의회는 그 녀석을 손에 넣으려 무슨 일이라도 할꺼야.\"
굳게 결심한듯한 표정으로, 여제는 말했다. 이럴 때의 그녀는 결코 굽히지 않았다.
\"...잠시 생각 좀 하고 오겠습니다.\"
대답도 듣지 않고, 서기관은 등을 돌려 집무실을 나섰다. 불경스러운 행동이었지만, 여제는 안타까운 눈으로 흔들리는 그의 등을 바라볼 뿐이었다. 그가 가졌을 아픔을 알았기에, 그저 그가 마음을 추스릴 수 있기를 바랄 뿐이었다. 복잡한 마음으로 그녀는 뒤로 몸을 기댔다.
\"결국 이렇게 되는군.\"
넌 결국 날 다시 필요로 할꺼야
총구가 이마에 들이밀어졌음에도 비웃듯이 말하던 그가 떠올랐다.
\"...판타젠을 위해서일 뿐이야.\"
누군가에게 변명하듯, 나약한 목소리로 내뱉으며 여제는 눈을 감았다.

화려하게 치장된 복도에서 서기관은 거칠게 발을 내디뎠다. 몸의 흔들림은 사라지기는커녕, 더욱 커져갔다. W-0402-M을 탈취한다. 여제의 말이 귓가를 떠나지 않았다.
도저히 감정을 억제할 수 없었던걸까. 결국 그는 발을 멈춰 허리를 숙이고는 얼굴을 손으로 가렸다. 참을 수 없는, 격한 감정이...
킥.
웃음소리가 새어나왔다. 얼굴을 가린 손가락의 틈사이로 힐쭉하게 지어진 미소가 보였다.
드디어.
그 전쟁이 끝나고, 십년을 넘게 여제를 보좌하며 이 날만을 기다려왔다.
웃음을 참을 수가 없었다. 그녀의 신뢰를 차지하고, 제시하는 정보를 조금씩 제한함으로써 그녀의 선택을 유도하는게 얼마나 오래 걸렸는지! 이제 그 결실을 볼 때였다.
조용히, 그는 전화를 꺼내들고는 귓가로 가져갔다. 몇번의 착신음이 울리고, 이윽고 누군가가 전화를 받았다.
\"\'때가 되었다. 모래상자\'를 준비해라.\"
다시 한번, 판타젠에 새로운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실제 플레이했던 티알세션 기반으로 각색해서 끄적여봄
룰은 겁스로 시작해서 AWE로 스핀오프를 거쳐 페코로 됨.
눈치챘겠지만 무한세계에서 영향을 받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