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화 – 더 울프맨!
“으히히! 이 돈 덩어리를 보라고!”
그믐달의 밤. 아무도 없어야 할 은행에 가면을 쓴 은행털이범들이 침입해 있었다. 그들은 금고문을 열고 있는 대로 돈을 쓸어 담고 있었다.
“닥치고 빨리 자루에 돈이나 넣어!”
그들 중 하나가 나머지 은행털이범들을 닥달 한다. 수백만 달러의 현금과 금괴를 잔뜩 짊어진 강도들이 재빨리 움직여 은행의 뒷문으로 나선다. 경비 시스템은 이미 다 해제되어 있었다. 그들이 타고 온 밴에 자루를 넣고는 재빨리 탑승한다.
“어?”
운전석에 앉은 강도가 계속 키를 돌리지만 시동이 걸리지 않는다. 푸르륵, 하는 소리를 봐서는 고장난 모양이다. 그가 당황한 목소리로 욕설을 내뱉는다.
“제기랄…”
그 중 한명이 밖으로 나가 밴 주위를 둘러본다. 누군가 고장 낸 것이 분명했다. 엔진에서 풍겨오는 매캐한 냄새. 그 뿐만 아니라 타이어도 전부 펑크 나 있었다.
“뭔…”
“두려운가, 이 악당 놈들아!”
갑자기 위에서 쩌렁쩌렁한 소리가 들려온다. 강도들이 전부 차 밖으로 뛰어나온다. 은행 뒤편에 실외기를 설치하기 위해 튀어나온 철제 발코니에 덩치 큰 누군가가 그들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뭐야, 씨… 미친 놈인가?”
강도들이 입술을 다신다. 이들은 단순한 인간 강도가 아니라 뱀파이어의 피를 먹은 구울이다. 제대로 된 공권력이 상실된 이 도시에서 그들을 막을 사람이라면 정말 정의로운 마음을 가진 경찰이나, 미친 사람 밖에 없을 것이다.
“두려워하라! 사악한 자들아!”
그리고 방해꾼은 아마도 후자인 모양이었다.
“아, 뭐해! 쏴!”
강도들이 총을 난사하기 시작한다. 한참이나 골목에 울려 퍼지는 총성. 철제 발코니에 총알이 튕기는 소리가 울려 퍼지는데도 경찰차의 사이렌 소리 같은 것은 전혀 들리지 않는다. 어느덧 탄창이 비었는지 총격이 멈춘다.
“어?”
그러나 그들을 내려다보는 형상은 멀쩡했다. 그가 얼굴을 가린 팔을 서서히 치운다. 마치 늑대를 연상케 하는 가면의 눈이 붉게 변한다. 그가 구울들 한복판으로 뛰어든다. 공중에서 떨어지는 그에게 덮쳐진 놈은 턱이 부서져 바닥에 나뒹군다.
“죽어!”
개머리판으로 그를 내려치려는 강도. 그러나 그가 한손만으로 개머리판을 잡아낸다. 오히려 강도를 몇배나 압도하는 힘으로 강도와 총을 한꺼번에 던져버린다.
“으아아!”
강도가 벽에 부딪치더니 그대로 기절해서 바닥에 떨어진다. 강도들이 당황해, 자신의 앞에 서 있는 것이 일종의 강화복을 입은 사람임을 눈치채지 못한다. 잘 들어보면 관절 곳곳에서 기계음이 나지만 그것 마저도 들리지 않는 모양이다.
그들이 한꺼번에 달아난다. 한손만으로 저 정도라면, 말로만 듣던 늑대인간이나 그것보다 더 위험한 것임이 틀림 없었다. 그러나 그들을 엄청난 속도로 쫓아오는 형상. 그들이 하나 하나 잡혀 아무렇게나 내동댕이쳐진다. 마침내 마지막 남은 강도가 골목 끝에 몰린다.
“주… 죽어!”
총을 쏘지만 그 형상의 배에 맞고 튕겨 나온다. 속절없이 그의 손에 잡혀 허공으로 떠오른 채 발을 버둥거리는 강도.
“기억하라, 악당아! 이제 이 도시의 공포는 끝났다! 내 이름을 네 비겁한 동료들에게 모두 알려라! 나의 이름은-!”
그가 약간 과장된 연극풍으로 말한다.
“밤의 공포, 약자들의 수호자, 사악한 자들의 천적! 울프맨이다!”
“…그러니까, 지금 그게 실화라구요?”
“네. 당시 그 도시 안의 유니언의 움직임은 정치적인 이유로 상당히 제한된 터라. 거기에 뱀파이어가 창궐하는 도시여서…”
몰레티가 담담하게 말하며 전채요리를 입에 넣는다. 에이팍의 합류와 에이다의 회복을 기념하여 그들은 최고급 레스토랑에서 식사를 하는 중이었다. 정말 다행스럽게도 따로 방을 잡아 놓은 상황이라 이 부끄러운 이야기가 새어 나갈 일은 없을 것이다.
“그리고 이… 어… 울…”
“울프맨 입니다.”
몰레티가 그레인저의 말을 바로잡아준다. 그레인저는 울프맨이라는 유치한 이름을 발음하는 것 조차 힘들어하고 있었다.
“어떻게 생각하실진 모르겠지만 70년대에는 울프맨이라는 히어로 이름은 그렇게 나쁜 이름이 아니었습니다.”
연명 조치로 인해 겉보기에는 30대지만 몰레티는 어디까지나 이 자리에서 최고령자다. 단순히 최고령자인 정도가 아니라 이미 환갑을 넘긴 나이. 그는 지금 자신의 어릴 적, 다시 말해 자경단 활동에 대해 말하고 있었다.
그레인저의 골치가 아파온다. 그의 경력 파일에는 단순히 “자경단 활동” 이라고만 쓰여 있었기 때문에 지금까지 막연하게 도시 내의 자경단 결성이나 민병대 활동 정도라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몰레티의 자경단 활동이란, 마치 만화 속 슈퍼히어로를 연상케 하는 종류였던 것이다.
“하지만 그 정도의 장비를 마련하려면 쉽지 않았을텐데요.”
“뭐, 제가 가진 게 뭐가 있었겠습니까. 당시에는 세무조사도 그렇게 철저하지 않아서 비자금으로 만든 겁니다. 세계 최고의 공학자들을 모아서요. 하드 수트랑 비슷한 거죠.”
“성능은 어느 정도 였습니까?”
에이팍이 눈을 빛내며 묻는다. 몰레티가 상세히 울프맨 수트의 성능에 대해 설명해주자 에이팍이 눈을 빛내며 한손으로 타블렛에 그 스펙을 모두 기록한다. 70년대에 그 정도 성능이라니. 정말 놀라운 일이다. “돈으로 마법을 부린다”라는 농담은 가짜가 아니었다.
“뭐 처음에는 다들 미친놈인가 하고 말았던 것 같습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좀 달라졌죠.”
“보스.”
“뭐?”
어둑어둑한 항만. 마약 밀수꾼들이 총기를 든 채 서성거리고 있었다.
“혹시 울프맨이란 놈에 대해 들어 보셨습니까?”
“뭔 개소리를 하는거야. 그런 미친놈이 있으면 진작 총맞고 뒤졌겠지.”
“하지만 옆 동네 놈들도 크게 당했다는데요.”
“하, 그 말을 믿나?”
보스라 불린 남자가 쓸데없는 소리를 하는 부하의 등을 친다. 안 그래도 거래 대상이 제 시간에 나타나질 않아 짜증이 잔뜩 나 있는 상태였다.
“자, 다들 헛소리 말아. 그런 도시전설을 믿을 시간 있으면 돈 벌 궁리나 하라고. 그건 그렇고 이 놈들은 왜 이렇게 안 오는-“
쿵-
큰 소리와 함께 그들이 타고 온 차 위에 사람이 떨어진다. 바닥으로 피투성이가 되어 굴러 떨어진 그의 가슴에는 마치 늑대가 긁은 것 같이 큰 발톱자국이 나 있었다.
“이런 씨ㅂ-“
“공포에 떨어라!”
연극풍의 말투가 그들 위에 매달려 있는 컨테이너에서 들려온다.
“울프맨이 당도했노라!”
위압적으로 거대한 남자의 형상. 과장된 연극풍의 말투. 늑대를 연상케 하는 금속제 가면, 손등에 부착된 클로. 그 모습에 밀수꾼들이 잠시 어벙벙한 표정을 짓는다.
“뭐해, 미친놈들아! 쏴!”
총소리가 울려 퍼진다. 그러나 총알은 울프맨의 강화복을 관통하지 못하고 전부 바닥에 떨어진다. 탄창에서 총알이 다 떨어질 때까지 난사했는데도 그는 멀쩡했다.
“으, 으아아! 보스! 보세요! 총도 안 먹히는 괴물이라고요!”
그렇게 말하며 부하들이 혼비백산 달아난다.
“야! 야! 이 새ㄲ- 헉!”
보스라 불린 사내가 뒤돌아선다. 울프맨이 그의 총을 낚아채 마치 수수깡처럼 부러트려 버린다. 물론 강화복의 힘이다.
“으, 으아, 으아아!”
그가 당황한 표정으로 물러선다. 그러나 그가 도망갈 곳도, 그를 지켜줄 부하도 없었다. 울프맨의 날카로운 클로가 그를 향해 천천히 다가온다.
“그래도 제대로 통했다니 다행입니다.”
에이다가 묵묵히 요리를 먹으며 평가한다. 클론 출신 답게 그녀는 별로 이 이야기에서 부끄러움 같은 것은 못 느끼는 모양이다. 철저하게 실용성에 입각한 평가다.
“에이다, 제발 부추기지 말아줘요.”
그레인저가 한숨 쉬며 말한다. 괜히 물어봤다는 생각이 든다.
“진, 도저히 믿을 수 없을 것 같은 소문이 실제로 드러나는 것보다 더 효과적인 심리 전술은 몇 없습니다. 이미 한국에서의 정치 스캔들이라던가, 매독 생체 실험 같은 경우가 있지 않습니까?”
“그런 말이… 휴.”
몰레티는 자신의 편을 들어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이 즐거운지, 그의 나이, 아니, 정확히는 ‘연세’에 어울리지 않는 기쁜 표정을 짓는다. 원래부터 이런 경박한 것은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그레인저는 최고급의 요리를 앞에 두고도 한숨이다. 그러나 이미 몰레티를 제외한 4명 중 에이팍, 그리고 뭔가 방향은 잘못된 것 같지만 어쨌든 에이다도 흥미를 보이고 있었기에 이야기는 계속 될 것 같았다.
“도로시. 당신은 어떻게 생각합니까?”
“…”
하은은 스테이크 대신에 의체용의 음료를 홀짝이고 있었다. 벨벳 커튼이 드리워진 룸에 최고급의 요리가 가득한 자리와 대비되는 혼자만의 이질적인 광경. 거기에 의체용 음료는 원래 사람이 마실 것도 아닌데다가 맛도 전혀 없다.
원래부터 이런 자리에 어울리지 않는 그녀지만 요즘 들어 더하다. 의기소침한 표정이라고 해야할까. 그녀에게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단어겠지만 요즘의 하은은 정말로 그런 느낌이었다.
“비효율적인 것 같습니다.”
잠시 생각하다가 그녀다운 대답을 내놓는다.
“뭐, 인정할 수밖에 없군요.”
몰레티가 항복하듯 손을 들며 말한다.
“당시에는 젊었으니까… 그런 식으로 겁을 주면 범죄자 놈들을 몰아낼 수 있을거라 생각했습니다. 헌데 세상은 제가 생각했던 것보다 무섭군요.”
똑똑, 하는 소리와 함께 웨이터가 들어와 생선요리를 내놓는다. 에이팍이 한입 먹어보더니 눈이 휘둥그래진다. 효율적이지만 그 맛이 무식하기 짝이 없는 우주식량과는 차원이 다른 맛이다. 우주에서 태어난 그는 지구의 모든 것이 신기했다. 무척이나 빠르게 적응하고 있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맛있는 음식은 언제 먹어도 신기할 뿐이다.
“자, 자. 소위. 천천히 먹어요. 앞으로 맛있는게 더 나오니까.”
“가, 감사합니다!”
과연 군인이라는 말이 나오게 하는 먹성. 순식간에 생선요리가 사라져간다.
“그래서 라이벌이라도 있었습니까?”
에이다가 조용히 묻는다. 그녀는 전술적 흥미에 더해 거의 그레인저를 놀리려는 의도가 다분해 보였다..
“에이-“
그레인저가 저지하기도 전에 몰레티가 즐겁게 포크를 들어올린다. 그 옆에서는 아직도 에이팍이 정신없이 식사에 집중하는 중이었다.
“당연히 있었죠. 처음에는 그저 동네 갱스터들을 겁주는 걸로 끝날 줄 알았습니다. 제 실수였죠. 처음에는 뱀파이어 같은 게 존재한다고 믿지 않았습니다. 제 눈앞에서 보기 전까지는요.”
“라이벌의 이름은?”
에이다가 계속 묻는다. 그레인저는 포기한 듯 했다. 그 모습을 보며 에이다가 아주 살짝 미소 짓는다.
“놀라지 마십시오. 바로-“
“코미디언?”
“네.”
그의 조수인 안나가 대답한다. 나중에 선 오브 에테르, 다시 버추얼 어뎁트로 옮기는 화려한 이력을 자랑하게 될 젊은 나이의 기술자였지만 지금은 몰레티의 정보수집을 돕고 수트를 고치는데 도움을 주는 사이드킥이었다. 그녀의 정보 수집력은 놀라워서 공학을 공부하는 대학생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였다.
“뭘 하려고 하는거지?”
“정보에 따르면 돈이나 권력 같은 건 전혀 관심이 없다고 해요. 대신 희생자들을 잡아와서 연극을 시킨다던가, 금고를 털어서 돈은 안 가져 가고 외국 지폐를 이용해서 콜라주를 만든다던가 한다던데…”
안나가 넘겨주는 사진을 몰레티가 받아 든다.
내장을 실처럼 사용해 인형처럼 천장에 매달려 있는 사람들, 피와 다른 물질을 섞은 후 굳혀 만든 조각상, 팔과 다리가 바뀌어 달려 있는 희생자들의 모습.
몰레티가 놀라움에 눈을 크게 뜬다.
“이건 콜라주 정도가 아닌데.”
“으, 도저히 제 입으로 설명할 수가 없어서… 소문에 의하면 사람을 죽여서 피를 빨아 먹는다던데요… 점점 잔인해진대요…”
“알겠다. 고생했어.”
몰레티가 거치대로 다가가 수트를 착용한다. 아무리 방탄 및 근력 강화 기능이 있다고 해도, 80년대나 90년대의 이터레이션 X 수준의 기술에는 한참 떨어진다. 대표적으로 착용과 해제의 불편함이 있다. 안나가 낑낑거리며 한참 스트랩을 조이거나 충전케이블을 분리 한다던지 장갑을 부착하는 작업을 30분 정도 하고서야 드디어 밤의 공포, 범죄자들이 두려워 하는 최악의 그림자, 울프맨이 움직이기 시작한다.
“진짜, 보너스 안주면 화낼 거에요. 시험도 미뤄 놓고 조사한건데.”
“걱정마라. 보너스 뿐만 아니라 원하면 나중에 취직까지 시켜줄 테니까.”
“정말요?”
안나가 눈을 반짝반짝 빛낸다. 확실히 몰레티는 그녀에게 엄청난 돈을 주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일반적인 천재를 한참이나 뛰어넘은, 당연히 그럴 만한 가치가 있는 학생이었다. 그것이 각성한 자의 전조임을 아직은 모르고 있었지만.
그때 까지만 해도 모든 일이 잘 풀릴 것 같았다. 범죄현장에 뛰어들고, 미친놈을 잡아 때려눕힌다. 아무리 미친 범죄자라도 공포는 지니고 있는 법. ‘코미디언’이라는 되도 않는 가명을 쓰는 놈을 잡아 만천하에 드러내 줄 것이다. 자신감에 가득 찬 울프맨이 그의 아지트, ‘울프 네스트’에서 나선다.
“물론, 제 자만에 불과했습니다. 놈은 인간이 아니라 뱀파이어 중에서도 단단히 미친 놈이었던겁니다. 아마 놔뒀으면 몇 년 내에 진짜 인간의 모습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괴물이 되었겠죠.”
보통 식사 자리라면 유혈이 낭자한 얘기에 학을 뗄 것이다. 그러나 이 자리에 모여 있는 사람들은 피와 연기가 일상이여서일까. 아무도 그런 반응을 보이지 않는다.
“그렇게 대놓고 활동하는데도 다른 뱀파이어들이 제지하지 않던가요?”
“나중에 알고 보니 동네 전체가 놈을 죽이지 못해서 안달이 났더군요. 헌데 어떻게 된 건지 요직을 차지한 거머리 놈들의 치부를 낱낱이 알고 있던 모양입니다. 다들 합심해서 놈을 죽여도 그가 죽으면 정적에게 그 내용을 편지가 가게 되어 있었나 봅니다.”
“그건 어떻게?”
에이다의 질문에 몰레티가 대답한다. 아까부터 에이다는 이제 무용담을 듣는다기보다 철저히 NWO적인 입장에서 접근하고 있었다. 아무리 우스꽝스러운 이야기여도 그 안에 전술적인 교훈이 들어 있다면 상관 없다는 것이 그녀의 기본적인 마인드다.
“제가 놈을 죽이고 나서 도시 내의 뱀파이어들이 내전을 벌여서 거의 전멸 직전까지 갔거든요. 덕분에 유니언이 다시 도시 내의 치안을 회복할 수 있었습니다.”
“의외로 잡기는 어렵지 않았나보죠?”
“아뇨, 그때까지 상대해본 놈 중에 제일 어려웠습니다.”
“크윽…”
“와하하핫! 자, 다들 울프맨의 애처로운 꼴을 봐라! 푸핫핫핫핫!”
울프맨의 강화복 한쪽 팔이 완전히 박살난 상태였다. 아무리 인간의 몇배의 힘과 속도를 지닌 강화복이라지만 맨몸으로도 그런 일을 능히 해낼 수 있는 뱀파이어 앞에서는 역부족이었다.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았다. 대체 어떻게 저게 가능한거지? 놈은 강화복을 입은 것도 아니다. 거기에 신경 가스 같은 생화학 무기를 쓰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놈에게 접근하면 마치 신기루처럼 사라져버리고, 자신의 오감을 교란시켜 계속 같은 자리를 헛돌게 만든다.
거기에 코미디언은 무대까지 준비해 놓았다. 그와 결투를 벌이는 곳 위에서는 코미디언의 부하들이 발코니에 매달려 울프맨과 코미디언의 전투를 감상하고 있었다. 울프맨이 볼썽사나운 꼴로 아무 것도 없는 곳에 주먹질을 하거나 볼링공에 맞아 휘청거리면 그들이 마구 비웃는다.
코미디언은 그에게 총 같은 것은 통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는 모양이었다. 대신 민첩성이 떨어진다는 점과 가면 때문에 시야가 좁아지는 것을 노려 철저히 그의 약점을 공략하고 있었다.
“푸핫핫핫!”
코미디언이 강화복에서 뿜어져 나온 기름으로 덮인 얼굴로 광기어린 미소를 지으며 울프맨의 등에 전기톱을 내려친다. 동력 케이블과 내부 회로가 잘려져 나가며 울프맨이 무릎을 꿇는다.
“큭…”
그가 신음하며 다시 일어난다. 또다시 위에서 코미디언의 부하들의 폭소가 터진다. 어쩔 수 없다. 수트도 정상이 아닌데다가 자만한 탓에 준비가 너무 부족했다.
울프맨이 연막탄을 터트린다. 코미디언은 물론이고 위쪽의 구경꾼들의 시야까지 차단할 정도의 엄청난 연막이 순식간에 퍼진다. 잠시 후 연막이 걷히자 울프맨의 모습은 온데간데 없었다.
“풋, 풋풋. 푸핫핫핫!”
아마 코미디언이 따라가고자 하면 얼마든지 따라갈 수 있을 것이다. 전기톱으로 상처 입은 늑대의 머리를 두 동강 낼 수 있으리라. 그러나 코미디언이 코를 킁킁거리며 광기에 찌든 표정으로 춤춘다.
“냄새가 난다… 늑대 둥지로 가는 피의 냄새가 말야!”
“무척 드라마틱한 장면이군요.”
“아무렴요. 거기서 끝나는게-“
노크도 없이 웨이터가 들어온다. 아까와는 달리 키가 상당히 작은 남성이다.
“음? 벌써 다음-“
툭, 하는 소리와 함께 웨이터가 던진 것이 테이블 한 가운데에 떨어진다.
“!”
안전핀이 뽑힌 수류탄이다. 동시에 벨벳 커튼 뒤에 숨어있던, 에이다의 조종을 받는 클론이 튀어나와 몸으로 수류탄을 덮는다.
“콰앙!”
폭발음과 함께 수류탄이 터지며 클론이 천장으로 날아간다. 방탄 기능이 있는 복장을 입은 클론이 몸으로 막은 탓인지 천만 다행으로 아무에게도 파편이 명중하지는 않았지만 충격파로 인해 모두가 뒤로 밀려난다. 박살난 테이블 위로 방금 전까지만 해도 에이팍이 먹고 있던 생선요리가 흩뿌려진다.
웨이터로 위장한 남자가 허리춤에서 두개의 단도를 뽑아 든다. 한눈에 봐도 종교적인 각인이 섬세하게 새겨져 있는, 명인의 솜씨로 만들어진 검이다. 그가 가장 가까이에 있는 그레인저를 향해 검을 내려친다.
둔탁한 소리와 함께 검이 막힌다. 그녀의 의수에서 뻗어 나온 카본 블레이드가 한쪽 검을 봉쇄하고 있었다. 에이다가 일어서며 권총을 뽑아 든다. 동시에 커튼 뒤에서 클론이 셋 튀어나오며 그녀와 한치의 차이도 없이 동시에 권총을 쏜다.
“!”
그러나 총탄이 그에게 명중하기 직전, 그의 몸이 마치 유령처럼 반투명하게 변한다. 비실체화된 그의 몸을 뚫고 총알이 벽에 박힌다. 사냥감을 찾는 그의 눈이 하은에게 고정된다. 하은도 그것을 알아차리지만 그녀는 지금 도저히 전투를 할 수 있는 상태가 아니다.
[요원!]
음성보다 몇배는 빠른 신경통신망의 다그침. 하은이 아슬아슬하게 머리 옆으로 지나가는 칼날을 피해낸다. 지금의 그녀는 전투는 커녕 일상생활 정도만 가능할 임시 의체를 착용하고 있다. 심지어 그 흔한 방탄기능조차 없다. 만약에 머리가 잘려 나간다던가 동력계가 전부 파괴되면 그 자리에서 사망이다.
“챙!”
다시 한번 휘둘러지는 칼날을 에이다가 직접 권총의 슬라이드로 막아낸다. 수술에서 회복하는 중이었지만 애초부터 전투용 클론으로 만들어진 그녀는 일반인보다는 훨씬 빠르다.
“몰레티!”
몰레티가 그레인저의 명령이 떨어지기도 전에 하은을 일으켜 몸으로 보호하며 방에서 뛰쳐나간다. 암살자가 수트 안으로 손을 집어넣어 기관단총을 -대체 수트 안에 그런 게 어떻게 들어가는지는 모르겠지만- 꺼내 몰레티와 하은을 향해 난사한다.
“윽!”
관통력이 부족한 탄은 몰레티가 입은 팔코니 정장의 방탄 직조를 뚫지 못하고 튕겨 나간다. 그렇지만 그 충격이 그대로 전달되어 몰레티를 쓰러트릴 뻔 한다. 그가 비틀거리며 하은을 밖으로 호위한다.
“음.”
암살자가 낮은 신음을 내며 마치 춤추듯 박살난 테이블을 타고 넘는다. 그레인저가 그를 가로막는다. 마치 화려한 춤 같은 싸움이 시작된다. 카본 블레이드가 허공을 가르고 암살자의 칼날이 번뜩인다. 그레인저의 목을 노리는 검을 클론이 착용한 방검 기능의 글러브가 받아낸다. 암살자가 칼을 놓자마자 칼날이 허공으로 사라지고 다시 그의 손에서 검이 나타난다. 누가 보더라도 현실위반적Vulgar인 마법.
그의 목에서 작은 목걸이가 찰랑인다. 그럼 그렇지, 하고 생각하며 그레인저가 던져지는 단도를 피해낸다. 암살자가 걸고 있는 목걸이는 퀸티센스를 잔뜩 머금은 호부Periapt가 틀림 없었다. 그렇다는 말은 이 자는 프라임 영역의 대가라는 것이고, 당분간 패러독스를 억누르며 현실을 마음껏 어지럽힐 수도 있다는 뜻이다.
에이다가 단도를 던진 암살자를 향해 총탄을 내쏜다. 명중하기 직전, 그의 몸이 마치 시간을 거스르듯 거꾸로 움직여 테이블을 타고 넘기 전의 순간으로 돌아온다. 그리고 허를 찔린 에이다를 향해 검을 던진다.
“윽-!”
그녀의 어깻죽지를 스치고 지나가는 검. 거기에 검의 시간이 거꾸로 흐르듯 다시 날아 되돌아오며 그녀의 상처를 다시 한번 벤다. 몸 속에서 자동으로 분비되는 진통제의 영향을 느끼며 그녀가 그에게 달려들지만 그의 모습이 다시 한번 유령처럼 변하며 그녀의 공격을 흘려 보낸다. 그레인저가 나노 피스톨을 꺼내려 하는 모습을 보자 그가 손을 뻗는다. 그의 모습과 정확히 닮은 형체가 빛을 발하며 그레인저에게 쇄도해 그녀의 손을 쳐낸다. 그와 은빛의 흐름으로 연결된 듯한 형체가 순식간에 다시 돌아와 그의 모습과 겹쳐진다. 동시에 그가 클론 하나의 목을 베고 에이다의 손을 발로 쳐낸다.
인간의 몸으로는 거의 불가능한 속도다. 에이다가 몇 번 더 그에게 접근하려 시도하지만 그는 작은 체구만큼이나 민첩한 움직임으로 그녀의 리치에서 몇번이나 벗어난다. 그 뿐만 아니라 그녀의 빈틈을 노려 검으로 계속 상처를 낸다. 완벽한 풋워크와 검술의 조합.
“음.”
그의 동작이 멈춘다. 마치 현실 법칙의 위반 그 자체를 인간으로 만들어 놓은 것 같은 암살자. 그가 잠시 생각하는 표정을 짓는다. 동시에 그의 호부의 빛이 약간 희미해진다. 빛이 꺼지면, 그 역시도 패러독스의 먹이가 되리라.
그레인저가 그를 노리고 달려들지만 그는 다시 유령처럼 실체화 하여 그녀를 흘려 보낸 후 엄청난 속도로 방을 뛰쳐나간다. 그레인저와 에이다가 그의 의도를 대번에 파악한다. 이유는 모르지만 그는 하은을 노리고 있었다. 두 사람은 단지 방해물일 뿐. 그들과 싸울 시간이 없다는 듯 그가 순식간에 시야에서 사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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ㅇㅣ게 왜 안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