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의 TRPG에서는 과거보다 게임보다 롤플레이의 비중이 확연히 늘었지만, 과연 그게 옳은 방향이냐는 논쟁은 자주 있었지.

오늘도 게이미즘 떡밥을 던진 사람이 보이길래 D&D의 전투에 대해 이야기하는 글을 가져왔음.

이 글에서는 어느 쪽이 옳거나 틀렸다는 이야기를 하는 게 아니라는 점을 염두에 두면서 읽어보자.


원문 링크 - https://web.archive.org/web/20130622112052/http://www.wizards.com/dnd/Article.aspx?x=dnd/4ll/20110531





저는 D&D의 전투를 좋아합니다. 제가 가장 좋아하는 부분은 아니지만 확실히 재미있으니까요.

이 게임이 생겨날 때부터 전투는 존재했었고, 그 근원은 70년대 초기의 미니어처 워게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D&D에 영감을 불어넣은 판타지 문학에는 수많은 크고 작은 전투들이 존재했고,

1판과 2판에서는 D&D의 세계에서 벌일 수 있는 대규모 미니어처 전투 규칙이 있었지요.


(D&D에서) 전투는 꾸준히 남아있었지만 (다른 게임의 요소들처럼) 시간이 지남에 따라 꾸준히 바뀌었습니다.



옛날 시절


제가 베이직 D&D로 입문하고 AD&D로 넘어가면서 D&D를 처음 접했던 시기에는 전투를 전적으로 받아들였습니다.

위저드리(Wizardry)나 바드의 이야기(The Bard's Tale) 같은 컴퓨터 게임을 통해 도화선에 불이 붙은 저희는 몬스터와의 끝장승부를 즐겼죠.

하지만 얼마 뒤 지나지 않아 저희는 캠페인에서의 이야기, 줄거리, 탐험에 빠져들기 시작했습니다.


저희들의 첫 게임은 영웅적인 모험가들을 오크, 오거, 또는 더욱 나쁜 괴물들과 맞상대하며 경험치와 보물을 모으는 전투의 연속이었지요.


지금 되돌아보자면, 저희는 터무니없을 정도의 속임수를 쓰고 있었다는 걸 깨닫게 됐습니다.

그 당시의 제 게임 그룹에서는 번갈아가면서 DM을 맡았었고,

누군가의 캐릭터를 죽인 DM은 그 캐릭터의 플레이어가 DM 차례를 맡았을 때 마찬가지로 자기 캐릭터도 죽는다는 암묵의 룰이 있었으니까요.

이 사실만으로는 게임이 전투 방면에서 어떻게 돌아갔는 지 일반화하기 힘듭니다만, 제 경험을 기반으로 관찰한 내용이 몇 가지 있었죠:


먼저, 전투는 위험했습니다. HP 굴림 결과가 낮았다면 한두번의 공격만으로도 나가떨어지곤 했지요.

하지만 확률이라는 걸 전혀 모르던 어린 시절에는 자신감에 가득 차서 전장에 뛰어들었습니다.

사실, (암묵적 합의 덕분에) 전투는 FPS의 온갖 목표들처럼 죽어나가는 오크나 버그베어들에게는 확실히 위험했었습니다.


두번째로, 전투는 빨랐습니다. 저희는 미니어쳐를 쓰지 않았기 때문에 어렴풋이 상황을 설명하고 바로 주사위를 굴리기 시작했습니다.

잡다한 능력들을 갖고 있는 몬스터는 별로 없었고, 대부분은 라운드마다 근접전에서 상대방을 썰어제끼는 것들이었죠.

저희들의 전투는 순식간에 누가 d20에서 두 자리 수의 결과를 많이 내는지로 변했었습니다.


세번째로, 저희는 규칙의 상당수를 무시했었습니다. 저희가 AD&D를 할 때는 베이직 D&D의 전투 규칙을 사용했었습니다.

속도 요소, 특정한 무기로 특정한 갑옷을 상대할 때의 수정치, 기습과 우선권 시스템의 대혼란 같은 것들은 모조리 쓰지 않았지요.

저희는 그저 몬스터와 싸우고 싶었고, 다음 순서는 누구인 지나 누가 누굴 기습했는 지 같은 건 한낱 장애물일 뿐이었습니다.

어떻게 공격을 하고 주문을 쓰는 지만 알면 그걸로 족했었던 시절이었네요.


네번째로, 저희는 임기응변과 계획에 상당히 의존했었습니다.

어떤 방에 들어찬 오크들을 기름을 잔뜩 끼얹은 채 불을 붙일 준비가 된 복도로 이끌어낼 수 있다면, 왜 굳이 그 방에 돌격해야 합니까?

주사위를 끊임없이 굴려대는 건 얼마 지나지 않아서 귀찮아졌습니다.

요상한 걸 시도해보는 건 게임을 들뜨게 하면서도 아군을 유리하게 만들 좋은 이유였죠.


여기서 사실 네번째는 매우 중요한 대목입니다. AD&D 전투를 위험하지 않게 만들면, 꽤 재미없고 귀찮은 시스템이 되어버리기 때문입니다.

배후에서 적을 급습하는 정도를 빼면 별로 전략적인 선택을 할 여지도 없어요. 저희의 D&D에서 전투는 정말 지루했었습니다.

수많은 비디오 게임으로 단련되어 게임에는 모름지기 많은 전투가 있어야 한다는 생각을 했던 저희에게는,

전투를 활기차게 만들 수 있는 숙련된 DM도 없었기 때문에 점점 D&D 자체에 싫증이 났었습니다.


제 경험이 다른 사람에게도 통하는 이야기일 지는 모르겠지만, 그 시기의 다른 RPG들을 보면 저희만의 일은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대부분의 게임에서는 전술적 위치 선정, 피격 부위, 치명타 표, 그리고 그 외의 복잡한 요소들을 추가하기 시작했으니까요.

저는 전투에서 더 많은 것들이 필요하다는 요구가 많이 있었다고 생각하고, D&D의 진화가 바로 그 증거라고 믿습니다.



피트, 파워, 옵션


2판의 Player's Option: Combat & Tactics부터 시작해서, 3판과 4판을 거쳐 D&D의 전투는 점점 전술적으로 변했습니다.

AD&D에는 비전 규칙이 있었으니까, 전체적인 복잡성 자체가 증가했다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그 대신 게임에는 전투의 모든 범위에 걸쳐 더 많은 옵션, 요소, 선택지가 생겨났죠.

3판의 발매로 코어 규칙이 더욱 명확하고 사용하기 쉽게 변했음에도, 게임의 전술적 복잡도는 눈에 띄게 증가했습니다.


겁스, 룬퀘스트, 롤마스터(Rolemaster)에서 나타난 전술적 복잡성과 구체화는 D&D로 이식되었습니다.

저는 과거 이 변화를 미니어쳐 게임의 용어로 이야기한 적이 있었지만, 이건 그 수준을 넘어선 것이었습니다.

전투에서의 선택은 DM의 결정이나 룰링에서보다는 시스템적으로 더욱 중요해졌습니다.

3판에서는 협공에 대한 정식 규칙을 도입하였습니다.

The Book of Nine Swords와 4판에서는 파이터, 레인저, 또는 유사한 캐릭터가 사용할 수 있는 무술 기동(martial maneuver)을 추가했죠.

아주 단순한 3판의 파워 어택 피트만으로도 이전에는 그저 공격에 공격을 거듭할 뿐인 파이터에게 넓은 선택의 문을 열어놨습니다.



이게 게임에 이롭나요?


어떤 사람들은 전술적 복잡성을 좋아합니다. 옵션과 선택을 좋아합니다. 그러나 다른 사람들은 간단하게 즐기고자 합니다.

4판 에센셜에 대한 반응에서 제가 알아낸 게 있다면, 사람들은 자기가 원하는 플레이 스타일이 사라지는 걸 바라지 않는다는 겁니다.


D&D의 모든 판본은 복잡도에서 적당한 중간 지점을 찾아 거기서부터 설계를 시작했었습니다.

저희가 마주하는 문제는 정확히 그 지점을 원하는 사람들은 많지 않고, 대부분은 범위 바깥에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만약 D&D가 넓은 범위의 복잡도를 지원하고, 각각의 그룹마다 필요에 맞게 게임을 조정할 수 있다면 좋지 않겠습니까?


이걸 나타내는 좋은 예시가 전투에 걸리는 시간입니다. 중간 레벨의 일반적인 D&D 전투는 약 1시간 정도가 소요됩니다.

여기서의 문제는 전투의 위협을 남겨두면서 전투 시간을 줄이기가 매우 어렵다는 점입니다.

대부분의 경우에 있어 최소 소요 시간이 1시간 정도였고, 거기서 더욱 길어지는 일도 자주 있었습니다.

이보다 더 짧은 싸움은 어지간하면 캐릭터에게 별 방해도 되지 않는 수준이었구요.


이상적으로는, DM은 그룹의 취향에 따라 인카운터를 몇 분 정도에서 수 시간까지 마음대로 조정할 수 있으면서도,

DM이 원하는 대로의 위협 수준을 맞출 수 있어야 합니다.

AD&D의 전투는 빨랐지만 선택지가 적었다면, 최근의 D&D 전투는 선택지는 많아도 매우 느립니다.

이런 경향을 (게임을 플레이하는) 그룹의 손에, 하다못해 플레이어의 손에 맡기는 건 어떨까요?

클래스에 무관하게 어떤 사람들은 단순한 캐릭터를 짜고, 다른 사람들은 복잡한 캐릭터를 짤 수 있도록 합시다.

어떤 그룹은 롤플레이나 탐사를 중시하기 위해 전투를 짧게 가져가면서도, 다른 그룹이 어렵고 복잡한 전략적 문제를 중시할 수 있도록 합시다.


D&D는 그 동안 전술적 게임으로서 많은 발전을 거듭했습니다. 전투 규칙은 명확해졌고, 넓은 범위의 재밌고 흥미로운 선택을 제공했습니다.

4판의 파워 시스템이나 3판의 피트는 모든 사람들이 동등한 기준에서 플레이할 수 있도록 도왔습니다.

4판의 파이터와 위저드는 전투의 향방을 바꿀 때에는 동등한 수준의 위력을 발휘했습니다. 좋은 일이지요.


이 경향을 다른 방향으로도 확장시켜 봅시다.

저는 D&D가 전술적인 전투에 집중할 수 있으면서도, 동시에 간단하고 빠른 싸움 또한 구현할 수 있어야 한다고 봅니다.

결국에는, 게임의 초점을 결정하는 건 규칙이나 게임 디자이너가 아니라 게임을 하는 그룹이어야 하겠지요.

Kara-Tur(역주: AD&D의 동양풍 세팅)에서 다이묘의 사무라이들을 불러모아 오니의 군세를 저지하는 캠페인을 할 수도 있습니다.

알렉상드르 뒤마의 작품에서 영감을 받아 눈부신 결투가 돋보이는 궁정 모략물 캠페인을 즐겨도 좋지요.

함정을 피하면서 고대 유적을 탐험하며 드물게는 빠른 싸움을 벌이고 잊혀진 보물을 찾아내는 인디아나 존스 스타일 캠페인은 어떨까요.


이 모든 예시는 (제가) 상상하는 D&D에 어울리는 것입니다.

저의 이상적인 세계에서는, DM이 먼저 캠페인 컨셉을 정한 뒤, 규칙을 컨셉에 맞는 게임에 어울리게 조정하여,

때로는 긴장감 있는 전술적 전투에서, 때로는 주사위를 우르르 굴리지 않는 빠르고 강렬한 결투까지도 포괄할 수 있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