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옛날에 썼던 뻘글을 좀 옆그레이드해서 다시 적어보자. 뻘글을 옆그레이드했으니 개소리라고 하겠다.


옛날에 바바 히데카즈라는 아재가 썰을 풀었는데, 쉽게 말해서 이 아재 관점에서는 RPG의 RP는 '역할 플레이'지

'연기'가 아니라고 했음. 그러니까 MMORPG에서 탱딜힐로 나뉘는 그런 역할 분배가 원래의 RP라는 거지. 맞나?

일단 그건 나중에 생각하자. 어쨌거나 바바는 RPG 내에서 "할 수 있는 / 해야하는" 일들이 점점 심화되며 RP의

범위가 확장되었다고 봄. 원래 탱딜힐만 하면 됐는데 이제는 요리도 하고 설득도 하고 때로는 벽도 타고 올라가고

그래야 한다는 그런 거임. 이걸 다른 의미로 보면 바바가 말하려는 것은 우리가 RPG하면 떠올릴 요소 중 하나인

'감정이입' 또는 '연기'는 바바 입장에서 봤을 때 RPG에서 없어도 되는 양념과 같은 요소다, 이거임.


그래서 바바는 이런 RP에 연기나 감정이입이 약간의 양념으로 들어간 경우를 "약한 캐릭터플레이"라고 부르고,

양념이 아니라 게임과 대등하다거나 오히려 그보다 우선시되는 수준으로 들어가는 걸 "강한 캐릭터플레이"라고

부르며, 강한 캐릭터플레이를 하는 사람들을 "캐릭터플레이어"라고 부름. 물론 이것은 꽤 극단적인 관점 맞음.


현실에도 자존심 같은 것 때문에 남이 보기에 바보같은 짓을 하는 사람은 흔한데 대체 왜 RPG를 할 때는 그러면

안 된다는 거임? 하지만 바바의 관점이 낡았고 과격하다는 이유로 이 "캐릭터플레이어"라는 개념까지 버리기는

아깝다고 생각함. 나는 턀갤에서 말하는 소위 '라그나'들이 바바가 말했던 "캐릭터플레이어"들의 한국판이라고

생각하거든.


한국식 캐릭터 플레이어 또는 라그나

바바는 "캐릭터플레이어"의 해악에 대해 몇 가지를 논하고 있음. 시스템 경시의 풍조를 확산시켜 시장을 좁히고

규칙 시스템의 발달을 저해하고 RPG 기량 향상을 방해하고 일반인에게 부정적인 이미지를 심고.... 뭐 그런 것들.

한국에서는 지금도 저 해악들이 대부분 적용되고 있다고 생각하고, 좋든 싫든 그런 움직임의 중심이 되었던 룰이

던전 월드였다고 생각함. 던전 월드는 높은 접근성 + 비교적 널널해 보이는 룰(마스터는 제외) + 적당히 왜곡한

자체해석이 맞물리면서 수많은 라그나를 양산했고, 지금도 그런 거 썰 읽다보면 우리도 갸아아악 구와악 하잖아?

그리고 그 자리를 메운 것은 CoC임. 트위터 같은 데 가면 CoC = TRPG라고 여긴다거나 '무섭지 않은 크툴루' 등

기존의 호러 RPG와는 전혀 다른 뭔가를 원하는 이들이 간간히 눈에 들어오고 그래. 근데 그러면 왜 CoC를 굳이

사서 그걸로 플레이하는 거지? 이런 게 바로 바바가 말하던 해악이 아닐까 싶음. 


그래도 한국의 시장이 워낙 좁은 판이었으니 시장을 좁힌다는 해악 하나 정도는 얘들 해악에서 빼도 될 것 같음.

후술하겠지만 오히려 얘들이 한국 시장의 미래가 아닐까 싶거든. 한편 바바는 이놈들이 말을 듣지 않는다면서

"캐릭터플레이어"들은 근거 없이 자신들의 스타일이 틀린 게 아니며, RPG 플레이어로서의 방향 중 하나니까

비난하는 것은 부당하다고 주장한다거나 "RPG에서는 강한 캐릭터 플레이가 중요하다" -> 그러므로 자기들이

옳다"는 주장을 편다고 봄. 아주 쉽게 말해서 캐붕 운운한다 그러는 거지.


그리고 그 본질에는 캐릭터플레이어들이 "상처입는 것"을 두려워해서 이렇게 반격하려는 생각이 있다고 보며,

따라서 이들은 논의에 참여하더라도 "내 마음을 상처 입히지마. 다들 나를 돌봐주지 않으면 미워"라는 내용만을

반복할 뿐이라 봄. 물론 방백이라고 보는 게 좀 더 어울릴 거 같다만... 어쨌거나 쉽게 말하면 뭔가 이상하다거나

잘못되었다고 들어도 이 "캐릭터플레이어"들은 자기가 이상해 보이는 것을 인정하기는 싫으니까 그런 말을 대개

제대로 듣지 않는다는 것임. 아무리 봐도 이거 라그나 이야기 아닌가? 생각이 들었음.


거기다가 이보다 끔찍한 것은 한국의 "라그나"들은 대개 필요하다고 생각될 때는 자신이 정한 틀을 자기 손으로

얼마든지 깰 수 있는 놈들인 주제에 남들이 그런 걸 요구하면 '자기 캐릭터에 맞지 않는다'는 소리를 하는 것임.

이 얼마나 끔찍한 방향으로의 '진화'인 거냐? 이 부분에 대한 내 생각을 구체적으로 말해보자면 '라그나'들에게

RPG라는 것은 결국 자신이 창작해 낸 캐릭터 / 혹은 자신이 어디선가 가져 온 캐릭터들이 '자기가 원하는 대로'

뛰노는 것을 볼 수 있는 무대로 여겨지는 거임. 나머지 부분들은 별로 중요하지 않고. 거기다가 자신의 캐릭터는

이미 RPG의 "주역"임에도 자기 기준에서 만족할 수 있을 만큼 "주역"으로서 비중을 가져야 한다고 여김. 그래서

나는 이런 라그나들이 갖는 사상(물론 이렇게까지 깊은 생각은 안 했겠지만)을 "캐릭터주의"라고 부르고 싶음. 


캐릭터주의적 발상
그러면 위에서 정의한 "캐릭터주의"라는 개념을 구체화해 보자. "캐릭터주의"라는 건 말 그대로 자기가 만든 /

혹은 어디선가 가져온 캐릭터들이 적당한 무대에서 자기가 원하는 방식으로 뛰노는 걸 보는 것이 RPG의 목표인

그런 개념임. 대부분 이런 사상을 갖고 플레이하는 애들에게 다른 것들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음. 어떻게 본다면

주제도 없고 결말도 없고 의미도 없는 그런 전개가 나와도 이상할 건 아님. 그리고 이런 사상을 가진 애들은 대개

이쪽 짬밥이 부족하니까 자기들이 아는 룰을 일종의 "에뮬레이터"화해서 원래 그 룰이 지향하던 장르나 지향점은

다 팔아먹고 자기 캐릭터로 즐기고 싶은 상황을 즐기는 데 중점을 두게 될 수도 있음.


아니 멀쩡한 다른 룰 많은데 굳이 그걸 갖고 그러냐고 물으면 아마 다른 룰은 한국어 아니어서 어렵고 / 해외에서

룰북 구입할 줄 모르고 / 어쩌면 그런 룰들이 있는 줄도 모르고 등등 다양한 이유가 붙지만 어쨌든 안 사고 안 보고

안 쓴다로 정리될 거임. 그래서 이런 "에뮬레이터"를 지원하기 위해서 나온 가장 대표적인 물건들이 뭐냐.... 바로

KPC가 나오는 CoC 시나리오임. 안타고니스트가 아니라 대략 이것저것 감성적인 분위기를 만들기 위한 GMPC.

근데 룰이 CoC라 마스터가 아니라 키퍼라 부르니까 KPC다 이거지.... 


또한 이런 캐릭터주의의 폐해 중 하나는 "깊이가 없어지는" 거임. 일단 캐릭터가 뛰놀기만 하면 만사 오케이거든.

룰북을 "깊게 정독한다" 그런 건 얘들 머릿 속에 대부분 없는 게 아닌가 싶고, 국내에서는 가뜩이나 룰 부분 설명이

개판 5분전인데(번역이 아닌 원문부터) 보급성 하나는 개쩔었던 던-월과 맞물려 수많은 괴담을 양산했다고 생각함.

대표적인 예로 몇 번 전에 설명한 "캐릭터들의 팬이 된다"는 개념이 있음. 물론 나도 던-월 룰북을 다른 PbtA 계열

룰북에 비해서 정독한 편은 아니긴 함. 어쨌든 나는 그런 온갖 괴담을 보면 이게 그 비전서를 잘못 읽고 따라하다

주화입마했다는 그런 건가 싶은 느낌이 들 수 밖에 없었고, 그런 거 때문에 그에 대한 반발로 여기다 AWE 엔진에

대한 썰을 풀어놓고 그랬었음. 그런데 오히려 크툴루보다 그게 더 조회수나 추천수가 높게들 나오더라.....


그러면 왜 깊이가 없어지냐.... 거기에도 이유는 있음. 일단 얘들의 관점에서는 캐릭터가 뛰놀 무대만 제공된다면

충분하다고 보는 그런 것도 있고, 대개 얘들이 하는 룰은 널널해 보여서 (한국어로 되어있다거나 뭐 그런 이유로)

"일단 룰북을 정독을 해 봐야한다"나 "깊게 생각해 봐야 한다"는 생각이 잘 안 떠오르는 거 같음. 그러니 룰북이나

혹은 그와 관련된 매체를 작정하고 좀 깊게 읽은 사람하고는 플레이의 질적인 차이가 날 수 밖에 없는 게 당연함.

특히 다른 건 모르겠다만 AWE 계열 마스터링 쪽 내용은 정독 여부에 따른 차이가 적지 않을 거임. 그만큼 AWE

계열의 강령이나 원칙이니 그런 거 표현이 대체로 구리거든..... 다시 말하지만 번역이 아니라 원문 자체의 표현이

구린 거. 어쨌든 그러다보니까 이런 캐릭터주의적 발상을 갖고 룰에 접근을 하다보면 룰에서 다루고자 했던 것이

거기에 방해되는 경우 대개 저 멀리 꿈나라 드림랜드로 내던지거나 잊어버리는 게 아닐까 싶음.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하나?

바바는 이런 "캐릭터플레이어"들에 대해서 대안을 제시하는데, 그 대안이라는 걸 알아먹기 쉽게 바꿔 설명해 보면

아마 "어휴 XX충 극혐 자살추천" 정도가 될 것 같음. 솔직히 말해서 나 역시 누가 윳툴루를 들고 나와서 산치핀치

어쩌고 저쩌고 하면 그런 반응을 보일 거 같음.  근데 과연 한국에서 "XX충 극혐 자살 추천" 그럴 수 있을까? 없어.


물론 당연히 이거는 인류애라든가 그런 문제가 아니라 그러기에는 판도가 너무 많이 기울어졌다고 생각하기 때문임.

솔직히 나는 한국의 RPG 소비층은 던월 - CoC 등의 발매를 거치면서 이미 "캐릭터플레이어"가 다수가 됐다고 봐.

턀갤에 자주 오는 갤럼들은 그런 쪽 성향은 별로 아닌 것 같지만 결국 여기는 DC의 수많은 마이너 갤러리들 중에도

그냥 촌구석의 박물관과 같은 수준이고, 여기 턀갤러들이 심심할 때마다 까고 또 까는 '트짹이'들이 국내 시장에서는

감놔라 배놔라 하는 턀갤러들보다 오히려 더 많이 사주는 고객님들로 보일 거임. 그리고 나의 이런 생각은 오늘 바로

입증이 되었지. 트위터에 소문 도니까 하루만에 파라노이아 펀딩 치솟던거 푹 꺼졌다가 다시 올라간 거 봐라.


왜냐면 경험자들은 자생해 온 경험을 바탕으로 삼아 이미 해외 결제로 이것저것 사고, 거를 건은 알아서 거를 수 있고

그러는 수준(파라노이아 펀딩에 대한 턀갤의 첫 반응은 대략 '리부트판은 어디 두고 25주년 판임?'에 가까웠음)이니

국내 시장의 "양적" 확장에는 별로 도움이 안 될 거거든. 그래서 나는 일단 해외에는 이런 것도 있다고 소개라도 조금

해 볼 생각으로 크툴루 신화물 위주의 소개글을 올리는 거야. 잘 모르겠으면 이 기회에 한 번 맛이라도 보라 이거지.  


거기다 이번 파라노이아 펀딩이 푹 꺼진 원인인 '그 문제'도 영향이 적지는 않음. 그러니까 '그 문제'에 대한 정치적인

관점도 RPG 층의 소비에 영향을 준다는 거임. 트위터에서 파라노이아 펀딩하는 애 갤로그 캔 거도 '그쪽' 성향이었고,

반대로 근근웹에서는 저 소문이 도니까 초여명 반대라니까(뭔지는 몰라도) 사주려는 사람도 나오고 그러는 거 같더라.

물론 그에 대해서 우리가 뭐라 할 건 없겠지. 우리도 마음에 안 들면 환불받고 그럴 거잖아? 특히 나는 CoC 펀딩 때

취소했으니 나나 걔들이나 그 부분에선 똑같으니 할 말은 없다고 보거든.


그러니까 어쨌든 결국 이런 "캐릭터플레이어"들을 고전적인 관점 기준으로 '건전하게(진짜 그런 건지는 모르겠지만)'

돌려 놓는 시도는 시작하기도 전에 그런 거 없는 걸로 끝났고, 이제는 반대로 대박을 원한다면 걔들의 요구에 맞춰주는

물건을 팔아야 한다는 거임. 전에 누가 썰을 풀었지만 그런 흐름 덕분에 "모XXX TRPG" 같은 것도 펀딩에 대성공하고

그랬던 거라고 봄. 그게 왜 대성공이냐고 할 사람도 있겠지만 솔직히 거기다가 펀딩하면 "호구"란 말이 안 나올 수 없던

퀄리티였던 물건이 600명 넘게 모았으니 "대성공"이래도 될 거 같음. 물론 여기 DC의 어두운 음지에 모여드는 우리는

아마도 ㅇㅇㅅ님이나 ㅅㅁ이나 이번에 찾아온 파라노이아 펀딩하는 애 정도를 제외한다면 그런 건 딱히 신경을 안 써도

문제가 없는 사람이 대다수기 때문에 여기서 감놔라 배놔라 해도 별 상관이 없을테니까 계속 우리끼리 이상한 마이너 룰

파면서 떠들고 놀도록 하자. 잠깐만, CoC는 이제 메이저해졌으니 난 빠져도 되나?


P.S : 저번에 이 글 쓸 때는 알 거 다 아는 갤럼들만 들러붙던데 이번에는 아니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