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룰링에 대한 좋은 글이 올라왔길래 난 룰에 대한 글을 올려봤음.

이전에 올린 글에도 나왔지만, 규칙은 나쁜 GM을 좋은 GM으로 만들어주는 도구가 아니다.

플레이에서 큰 역할을 차지하는 건 역시 룰보다는 룰링인데, 그래서 룰이 존재의의가 없냐 하면 그건 또 아님.

나쁜 GM을 좋은 GM으로 바꾸는 게 아니라, 좋은 GM을 뛰어난 GM으로 이끌어줄 수 있도록 돕는 게 룰의 역할이라고 봐.

그런 의미에서 룰을 GM이나 플레이어를 규제하는 억제장치로 이용하는 건 룰을 이해하는 시작점이 잘못되어 있다는 거였고.

원문 링크는 - https://web.archive.org/web/20130622103337/http://www.wizards.com/dnd/Article.aspx?x=dnd/4ll/20110719


아래에는 이 글이랑 같이 읽으면 괜찮을 최근 턀갤 개념글을 모아봤음.


http://gall.dcinside.com/mgallery/board/view/?id=trpg&no=72834

http://gall.dcinside.com/mgallery/board/view/?id=trpg&no=72844

http://gall.dcinside.com/mgallery/board/view/?id=trpg&no=73251





"마스터들에게 알려주면 안 되는 비밀이 하나 있지. 그건, 사실 룰은 불필요하다는 거야."

- 개리 가이각스



룰 0: 게임 마스터는 필요하다면 적혀있는 게임의 규칙을 무시하거나 고쳐써도 된다는 (D&D 등의) TRPG의 불문율.

- urbandictionary.com





이 칼럼 연재에서는 그 동안 캐릭터 클래스를 비롯한 많은 주제들을 플레이어의 시점에서 다루었습니다.

하지만 이건 D&D에서는 절반의 이야기일 뿐이죠. 이번 주에는 스크린 뒤에 있는 DM의 관점을 알아보겠습니다.



DM이 최종 판단을 내린다는 점을 고려했을 때, 어떻게 보면 RPG 메카닉이라는 개념 자체가 말이 안 될 수도 있습니다.

룰로는 나쁜 DM을 좋은 DM으로 바꿔놓을 수도 없고. (무슨 의미든 간에) '공정한' 게임을 보장하는 것도 아니죠.

제 생각에는 DM에게 공정한 게임을 강요하도록 하는 룰은 그저 시간낭비일 뿐입니다.

단적으로 DM이 던전 다음 방에 난데없이 티아마트를 떨궈놓고 모조리 죽여버릴 수도 있잖아요?

왜 굳이 DM의 권력을 그나마도 일부만 규제하는 데에 이곳저곳을 구멍투성이로 만들어야 하나요?

아니, 그렇게 하면 책이 갑자기 자기 혼자 움직여서 그런 저질 DM을 두들겨 패기라도 한단 말입니까?


게다가, DM 자신이 곧 심판이자 룰 중재자라는 역할이잖아요?

룰로 DM을 제약해야 한다고 생각하시면, 그건 곧 (TRPG가) DM이 나머지 플레이어와 싸우는 경쟁 보드게임이 된다는 뜻이겠죠.


D&D는 근본적으로 DM과 플레이어가 대결하는 경쟁 게임이 아닙니다.

만약 그랬다면 DM이 일부러 스스로 지려고 하지 않는 이상 DM이 못 이길 수가 없죠.

그렇다면, 한 가지 간단한 질문을 해 봅시다.

DM이 게임이 어떻게 흘러갈 지 마음대로 결정할 수 있다면 애초에 룰은 왜 존재하는 걸까요?



룰의 역할


잠시 이런 모노폴리 게임을 연상해 봅시다.

부동산 재벌이 되려는 다른 세 플레이어가 가격 폭등을 주도하는 상태가 아닌 지역을 찾기 위해,

한 플레이어는 파크 플레이스(역주: 모노폴리에서 2번째로 비싼 칸)를 떠나 왼쪽으로 차를 타고 갑니다.

다음 플레이어는 감옥에 갔는데, 갑자기 레이스카를 한 대 사서 그걸로 교도소 문을 박아 부숴버렸네요?

그 플레이어는 돈을 잔뜩 들고는 도망쳐서 국제 범죄자로 지명됩니다.

여러분이 D&D 플레이어라면 금세 차이를 알아차리실 수 있을 겁니다.

RPG에서는 온갖 괴상한 짓이 가능하지만, 다른 게임에서는 룰이 무엇을 할 수 있을 지와 없을 지를 구분해주죠.

모노폴리에서는 감옥을 탈출하는 카드가 없으면 나올 수 없듯이 말이지요.

D&D에서는 DM이 무엇을 할 수 있을 지와 없을 지를 결정합니다.

룰은 그것을 어떻게 다룰 지를 말해주는 겁니다.


이건 알아채기 어렵겠지만 매우 중요한 점입니다.

D&D의 규칙은 게임보다는 스포츠와 유사합니다. 축구를 예로 들어보죠.

수비진을 공략하면서 너무 지나치게 앞질러 나간다면 오프사이드가 되는 규칙이 있을 겁니다.

점수를 얻으려면 축구공을 골망에 집어넣어야 하죠.

축구 규칙은 어떻게 점수를 얻는 지 설명하고 있지만, 점수를 얻는 방법은 규정하지 않았습니다.

코너킥에서 올라온 공을 머리로 쳐서 집어넣거나, 좀 멀리 떨어진 곳에서 중거리 슛을 날릴 수도 있겠지요.

규칙에서는 (골키퍼나 바깥으로 나간 공을 집어넣을 때 외에는 손 사용 금지 같은) 공을 어떻게 다루어야 하는 지와,

경기장 내에서의 위치 제한의 지침은 설명하고 있지만, 그 규칙을 지키면서 과연 어떻게 할 지는 여러분에게 달려 있습니다.


D&D의 룰은 공격을 어떻게 처리할 지에 대해서 규정하고 있지만,

무엇으로 공격해야 할 지에 대해서는 아무 언급이 없다는 점에서 이 예시와 비슷한 것입니다.

주먹을 내지를 수도, 도끼를 휘두를 수도, 의자를 던질 수도 있습니다.

뭔가 요상한 걸 하려고 한다면 DM은 룰을 기반으로 그 행동을 어떻게 처리할 지 결정합니다.


예전에 언급한 복잡도 조절과 이걸 떠올려보면, 이제 DM에게 있어 게임의 룰이 어떤 것인지 대강 그림이 잡힐 것입니다.


D&D에서 룰은 크게 2가지 목적이 있습니다.

어떤 룰은 어떻게 행동을 하는 지에 대해 형식에 맞춘 정의를 내립니다.

플레이어와 DM은 자신들의 행동이 어떻게 처리되는 지 서로 명쾌하게 이해할 수 있어야 하므로 이 점은 매우 중요합니다.

가령 DM이 힘 체크를 선언한다고 해 봅시다.

DM은 당신의 캐릭터에 힘 능력치가 있고, 그게 무슨 의미를 갖는 지 알아야 합니다.

물론 당신도 어떻게 체크를 하는 지, 그 결과를 어떻게 활용하는 지에 대해서 알아야 하지요.

게임 도중 서로의 이해와 명료성을 낳는 종류의 룰인 것입니다.

이건 축구 규칙에 공을 어떻게 다뤄야 하는 지 적혀있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만약 미드필더가 손으로 공을 들어 골망에 던져넣었다면 누구라도 그게 페널티긱 감이라는 걸 알겠지요.

(필자 주: 대부분의 경우에는 말입니다. / 역자 주: 마라도나의 '신의 손' 사건에 대한 이야기임.)


두번째 종류는 메타-룰(meta-rule)로서, 미리 설명된 룰에 제시되지 않은 상황을 해결하는 것입니다.

어떤 캐릭터가, 부상당한 드워프가 안전한 곳까지 기어가는 사이 머리 위로 넘어지려는 천장을 지탱하고자 한다면,

DM은 그 캐릭터가 과연 그 자세를 (드워프가 빠져나가는 동안) 충분히 유지할 수 있을 지 알아보기 위해,

적절한 DC를 정하여 건강 체크를 시킬 수 있겠네요. 이 체크는 좋은 예시군요.

DM은 체크가 어떻게 돌아갈 지, DC가 어떻게 기능할 지, 그 상황에는 무슨 능력치가 적절할 지 이해해야 합니다.

룰에서는 DM에게 이 상황을 어떻게 처리할 지 직접 알려주는 건 아니지만,

룰의 정의를 통해 좋은 방법을 추론해낼 기준점이 되는 것입니다.


스포츠에는 이런 규칙이 존재하지 않습니다.

스포츠는 경쟁적이기 때문에, 규칙 외의 상황이 발생하면 진행이 멈추게 됩니다.

심판이 나름대로의 판단을 내릴 수도 있지만, 공식전에서는 아마 항의나 불만, 심지어는 소송까지 쏟아질 지도 모르죠.

프로 스포츠에서는 변칙적인 판단을 바로잡기 위해 과거의 경기를 부분적으로, 또는 통째로 돌아보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룰의 초점


이걸 고려했을 때, 저는 정도는 다르지만 과거 다른 RPG들이 그랬던 것처럼,

이 게임을 살짝 다른 새 관점에서 바라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플레이어가 코어 파이터에 새로운 종류의 옵션을 더할 수 있는 것 같이,

DM도 미리 적혀있는 룰 설명에 새로운 요소들을 추가해서 원하는 종류의 캠페인을 만들어내고 깊이를 바꿀 수 있습니다.


코어 룰은 전투, 롤플레이, 탐험의 기본 요소를 구성하게 될 겁니다.

기본 규칙은 DC에 대해 d20으로 능력치 체크를 굴린다는 것입니다.

전투 룰은 미니어처가 필요없는 단순한 시스템을 제시합니다.

롤플레이 룰은 임기응변과, (게임 내의) NPC와 조직을 만들 때의 아이디어, 그리고 카리스마 체크를 쓸 때의 조언이죠.

탐험 룰은 떠돌아다니는 몬스터와, 탐색, 그리고 생존을 어떻게 버무릴 지 설명하고 있습니다.


플레이어가 복잡한 옵션을 사용하는 것처럼,

DM은 캠페인을 돋보이게 하거나, 선호하는 옵션과 복잡도를 만족시키려는 목적으로 추가 룰을 도입할 수 있습니다.

정치물에서는 아마 영지를 관리하거나, 협상하는 방법, 동맹을 맺는 법 등의 규칙을 넣을 수 있겠네요.

아마 이런 규칙을 통해 NPC가 PC를 속이거나, 심지어 PC에의 지배력을 행사하게 할 지도 모릅니다.

대부분의 캠페인에서는 자신의 캐릭터에 대한 통제권을 잃는다면 플레이어들은 격렬히 반발하겠지만,

정치적 분쟁이 곧 싸움인 게임에서는 서로의 의지력 대결이 전투를 대신할 겁니다.


전술적 전투에 중점을 둔 캠페인에서는 시선 방향(facing)이나 행동할 때 사용할 수 있는 행동점 시스템 같은,

더욱 깊은 규칙과 옵션을 이용해 세밀한 미니어쳐 사용을 지원하면서 전술적 복잡성을 높일 수 있습니다.

검으로 벌이는 대결에 대한 룰은 정치 방향에 관심을 가진 그룹에게는 별 의미가 없겠지만,

세세하고 격렬한 전투를 원하는 게이머들의 흥을 돋굽니다.


추가 규칙이 캐릭터 시트에도 반영되거나, 캐릭터가 사용할 수 있는 새로운 옵션들을 더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중요한 건, DM이 새로운 룰을 받아들인다는 건 그 룰의 분야가 캠페인을 풀어나갈 열쇠라는 거죠.


물론 DM은 언제든지 코어 룰만을 사용하면서 결과를 즉석으로 해결하거나 상상할 수도 있지요.

DM은 이런 방침을 통해 캠페인을 자신의 생각뿐만이 아니라 그룹 전체의 요구에 어울리도록 조금씩 맞춰나갑니다.


스포츠처럼 D&D에는 공통 출발점으로서의 의미를 갖는 기본 룰이 있습니다.

하지만 스포츠와는 달리, 각각의 캠페인에는 DM과 플레이어의 취향에 맞는 다른 규칙이 필요할 지도 모릅니다.

이러한 D&D의 모델에서, 룰이란 그룹으로서, 또는 캠페인에서 생겨나는 차이점 아래에 깔려있는 모두의 기반인 셈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