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즉흥적으로 생각해낸거 반, 실제 있던 플 내용에 페이크 좀 섞어서 반 스까가지고 만들어보자면...

이거 예전에도 턀갤에 예시로 한번 써먹었던거임.


3차 십자군 원정 당시, 안티오크 공국을 경유해 예루살렘 왕국으로 향하던 벤트루 십자군 기사는 종자도 거느리지 않고 말을 달리고 있었음.

그의 군주가 그에게 명령한 급히 전달할 서신이 있었기 때문임. 그때 맞은편에서 말을 타고 오는 브루하 살라딘의 기사와 마주치게 됨.

둘은 서로가 강한 힘을 지닌 혈족임을 알아보았고 적대하는 입장의 기사들임을 눈치챘기에 긴장감이 감돔.


그때, 브루하 기사가 먼저 입을 열어서 누가복음의 한 구절을 읊는 rp를 함. 사람이 사람을 위한다면 그 보다 큰 복이 있겠는가.

아무런 합의가 없었음에도 벤트루 플레이어도 잘랄 알 딘의 시 한구절로 응수함. 옳고 그름을 넘어선 곳에는 들판이 있으니, 나는 그대를 그곳에서 만나리라.


(이게 아무런 준비없이 막 튀어나올 수 있을리는 없고, 보통 이런 플이 가능한 플레이어들은 여러 상황들을 미리 시뮬레이트해서 고려를 해봄.

a. 여긴 13세기의 중동배경이고, 당연히 이슬람 소속 뱀파이어를 만나는 날이 올것이다

b. 살라딘의 예로도 알 수 있듯 당연히 좀 고급스러운 pc 혹은 npc라면 학식있고 고결한 성품을 가진 인물이 나올 가능성이 높다

c. 그런 인물과 만났을때 적대감을 갖고 있지 않다는 어필을 할 수 있는 대사나 레퍼런스중에 어떤것들이 적절할지 몇가지를 미리 찾아둬서 인쇄해둔다.

당연히 레퍼런스로 쓸 발언같은게 당시 시대에 있던 인물의 발언인지 체크해둬야겠지? 13세기에 프리다 칼로를 인용할 순 없잖아.)


둘은 서로에게 적의가 일단은 없다는 걸 깨닫고는 동행하게 되면서 친분을 쌓으며 길동무를 하게 됨. 중간에 습격해오는 세타이트나 바알리와 같이 싸우면서 편력도 하고, 아싸마이트들이 습격해올때 일단 자기 입장을 이용해 살라딘의 기사가 물러날것을 권유한다던지.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보두앵 4세가 요절하고 탐욕스런 십자군 군주들이 개입하면서 두 기사가 예루살렘에서 기대했던 이상과 지상에 세울 수 있던 인간의 선한 성품을 상징하는 왕국이 될 가능성은 타락하고 무너져버림. 벤트루 기사는 피눈물을 흘리며 물러나고 (일시적으로겠지만) 예루살렘을 수복하고 입성하는 살라딘 기사는 착잡한 얼굴로 기독교인들을 학살하진 말것을 부하들에게 명함.


수세기가 흘러서, 현대배경이 되면 벤트루 기사는 미국에 본사를 둔 거대 pmc의 ceo가 되어있음. 군인을 모으고, 전쟁을 준비해 이국에 침공해 들어가는 건 여전히 똑같지만 이제 벤트루도 아는거지. 부시 정부는 이라크 침공을 성전처럼 묘사했지만 이제 그런건 어디에도 없고 고대에 있었던 인간의 고결한 품성같은건 타락해 사라진지 오래라는걸. 복수와 증오, 돈과 권력만 남아있었음. (사실 그건 중세때도 마찬가지였던것 같지만 일단 예시니까 넘어가자)


뱀파이어들의 거대정당인 카마릴라가 출범하고나서는 이전처럼 클랜왕조같은 여러 집단들이 남기엔 애매해진 글로벌시대가 됐기도 하고 그래서, 이제 더 이상 소속감이나 종교적 사명같은건 없는거지. 아프간에 미 정부의 요청으로 용병들을 파견하는 계약을 체결하고 나서 돌아오는 자리에 비서가 손님이 찾아왔다고 말함. 누굴까 하고 가봤더니 수백년만에 찾아온 그 브루하였던거지. 그는 아프간에 서방세계가 찾아와 자행하는 폭력과 파괴를 호소하며 그걸 막을 힘이 있는 벤트루에게 생각을 돌리게 하려고 찾아왔음.

벤트루는 타락하기엔 충분한 긴 세월동안 그가 자기 품성을 지켜왔단 사실에 경외를 느끼면서도 그건 불가능하다는 걸 알고있었음. 이건 카마릴라가 범대륙적인 규모로 오랜 세월에 걸쳐 만들어온 장기판이었고 그가 혼자 저항한다고 해서 바뀔 문제가 아니었기 때문임. 무엇보다도 벤트루 본인이 이제 더 이상 그런 가치를 추구하지 않게된게 크기도 했고.


하지만 옛 친구에 대한 존경의 표시로 그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음. 늘 달변가인 벤트루로서는 드문 일이었고, 브루하는 그걸 눈치채고는 씁쓸하게 물러나면서 벤트루가 처음 만났을때 말해줬던 시구절을 다시 읊음. 입장이 다르고 그게 실망스러움에도 용서하고 이해하겠다는 제스쳐였음. 하지만 벤트루는 거기에 돌려줄 말이 아무것도 없이 재회는 끝남.


대충 이런식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