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스터가 직접 해주시는 얘기니까 이게 맞다.
루마니아는 꽤 오랜 기간 투르크 아래에서 속국살이를 했다. 그러다 1877~1878년 진행된 Russo-Turkish War가 끝난 후 베를린 조약에 의해 독립국 지위를 얻고(그 후로 러시아 영향을 받긴 하지만), 1881년 카롤 1세가 왕위에 오르며 루마니아 왕국이 됐다. 따지고 보면 근대 루마니아가 성장하기 시작하는 때라 할 수 있다. 물론 깊게 들어가면 내실은 크림 전쟁 전후 1850년대부터 다지기 시작했고, 60년대에 별개의 두 속국이던 왈라키아와 몰다비아아가 루마니아 공국으로 통합되는 변화는 계속 있었지만, 일단 우리는 가시적 성과가 나타난 시기에 집중하기로 했다.
어쨌든 각설하고. 그러면 왜 나는 캠페인에서 1870~1880년대에 섀도우로드 PC의 킨포크 가문이 몰락하고 있는 것으로 묘사했을까? 우리 플레이어는 생략하고 서술했지만, 사실 그 가문은 매국노였다는 설정이었거든.
이 가문은 본디 전통 있는 보야르 가문이지만, 1830~1850년대에 할아버지가 직접적인 독립 시도를 포기했다는 설정이었음. 그 할아버지의 영향을 받고 자란 PC 아빠는 독립에 뜻은 있지만 보다 온건한 수단을 써야 한다는 쪽이어서, 투르크인들에게 로비해서 간접적으로 독립을 지원하는 일을 했다. 물론 대부분의 소작인이 봤을 때는 그냥 친투르크파였지만.
어쨌든, PC 아빠가 어떤 선의를 갖고 있었든, 힘든 시기에 농부들한테 어떤 도움을 줬든, 투르크인들과 손을 잡은 것은 사실이었다. 최소한 그렇게 보였다. 그래서 공식적인 독립이 가시화된 1870년대 말이 되자, 촌동네 소작인들은 자기네가 봤을 때 매국노인 사람들을 린치하면서 자체적으로 숙청하기 시작했다. PC 집안은 그래도 재산이 많아 함부로 건드릴 상대는 아니었지만, 상당한 위협을 느끼고 있었지.
여담이지만, 그래서 PC가 성인식 치르러 가는 길에 나무에 목 메달린, 옛날에 투르크인들과 가까이 지냈던 할배의 구더기 꼬인 시체를 보는 장면이 있었다. 중간에 새 시대 왔다고 들뜬 농부들한테 시비도 걸리고.
이러한 설정을 짰었던 이유는 사실 별 거 없다. 그 즈음 안동에 답사 가서 인상적인 집안 종가를 봤거든. 원래 독립운동 하던 집안인데, 정면승부로는 희망이 없으니까 무장노선을 포기한 집안이었어. 대신 자기 집에 근대교육을 하는 학교를 차리고, 돈 모아서 몰래 독립군 후원하는 등의 활동을 한 거지. 그런데 그러한 노선변화가 일제를 인정하는 것이라고 본 옆 동네 사람들이 앙심을 품어서, 훗날 그 집안 남자들을 큰 바위에 눕히고 싸그리 목 잘라 죽였어. 그래서인지 종가인데도 허름하기 그지 없더라.
다시 캠페인 얘기로 돌아가서, PC 집안 사람들이 몰살 당한 이유도 투르크인들에 대한 로비 활동이 '친투르크 행보'로 비춘 탓이었어. 다만 당시 루마니아 근대 미시사 논문들을 직접 보지는 않았던 거 같고, 거시사만 보고 시대 분위기에서 있을 법한 사건들을 재구성한 거야. 물론 속국을 일본 만큼 악랄하게 대한 국가가 흔하지는 않지만, 그 동네 사람들도 투르크계에게 시달린 역사가 대단히 길어서 그 정도 민족감정과 린치는 있었으리라고 봤거든. 1850년대까지 투르크가 기독교 속국민들에게 제도적인 차별을 가한 것도 많았고.
굳이 이러한 설정과 이벤트를 도입부에 넣은 이유는 섀도우로드 부족, 그리고 PC의 테마를 부각시키기 위해서였어. 대의를 위해서 얼마나 자기 손을 더럽힐 수 있는가? 그리고 남들의 손가락질을 얼마나 감내할 수 있는가? 이 주제의식을 섀도우로드 PC의 스토리에 반영할 생각이었거든.
어쨌든, 플레이어에게 이 주제의식에 대해서는 상세히 설명했지만, 루마니아의 시대적 배경에 대해서는 자세히 설명하지 않았어. 게임의 주된 무대는 어디까지나 미국이었으니까. 한 번 사용할 루마니아 배경을 너무 자세하고 복잡하게 설명하는 건 시간과 정력 낭비였거든. 그래서 대충 훑고 지나가는 정도만 설명했고 긴 시간이 흐른 후 플레이어는 기억력의 감퇴가... 온 것 같군. 기억은 하지만 그 부분까지 중요하게 서술하는 건 지면낭비라고 생각했을 수도 있고.
나는 개인적인 집착이 있어. 실제 역사를 배경으로 하는 캠페인은, 시나리오 내용을 어느 정도 해당 시대 주요 사건과 연표에 맞춰야 한다는 거지. 어쌔신 크리드 비슷한 느낌이야. 같은 캠페인에서 섀도우로드 PC와 비슷한 나이대였던 실버팽 PC는 북미 원주민과 관계가 있었기 때문에 1876년에 있었던 The battle of the Little Bighorn과 엮었지. 전공병이지 않을까 싶네.
다만 그걸 플레이어들에게 불필요하게 상세히 설명하지는 않아. 캠페인에 역사를 끼워넣는 건 내 소소한 재미지만, 본격적으로 고증하겠다고 들어가면 플레이에 방해가 될 때가 많거든. 플레이어들이 썩 좋아하지 않기도 하고. 예를 들어 7세기 헤라클레이오스 시대 비잔틴을 배경으로 한 캠페인에서 은화 종류를 고증했을 때는 모두 분노했지.
그래서 고증은 나 혼자 하고, 실제 플레이에서는 양념 정도로만 짚고 넘어가는 거지.
일하기 싫어서 농땡이 치며 써봤음.
P.S. 아침에 쓴 걸 보니 내가 봐도 가독성이 떨어져서 전반적으로 수정함.
흠 그런짓을 하고도 플레이어들로부터 용케 살아남았꾸뇨
와;; 대단하네 - dc App
저 "내실을 다지기 시작한 시기"에 대해 좀더 보충해 보자면.... 당시 왈라키아/몰다비아 동군연합은 이전 지배자였던 이오안 쿠자를 내몰고 새로 딴 데서 카롤 1세라는 친구를 모셔왔는데 이 친구는 저어기 호엔촐레른 집안 출신임. 그래서 1866년에 이 양반 앉히고는 루마니아 놈들이 작정하고 "속국은 개뿔"이라고 자기네 헌법에 "루마니아 땅은 외국놈들의 식민지가 될 수 없다" 뭐 그렇게 박고 그러던 시절임.
여담으로 나도 전공이 그쪽이라 "실제 역사를 배경으로 하는 캠페인은, 시나리오 내용을 어느 정도 해당 시대 주요 사건과 연표에 맞춰야 한다"는 강박 관념이 좀 있어서 이렇게 물고 늘어지게 됐음 ㅎㅎ;
이오안 쿠자의 축출 이후 정치적 혼란이 있었고, 그 혼란을 봉합하고 주권을 세우기 1866 Constitution이 있었던 거지. 그러고도 루마니아 독립 선언은 1877년에나 있었고, 카롤이 카롤 1세로 즉위한 건 1881년 이야기고. 그 사이에 트란실바니아에서 일어날 수 있었을 일들을 상정한 내용임.
그리고 시간이 난 김에 첨언하자면, Russo-Turkish War로 인한 영향이 저 설정에 꽤 중요했음. 그 전까지는 루마니아 공국이 말로는 뭐라고 해도 직접적으로 투르크를 까지는 못했으니까. 그러다 1870년대 중반 발칸 반도 국가들이 하나씩 봉기 일으키고, 투르크는 그거 막겠다고 깽판 놓고, 그 와중에 러시아가 끼어들 때 루마니아가 길 열어줬다가 보복으로 투르크한테 포격 맞았지. 그 후에야 독립 선언하고 전쟁에 낀 거니까, 이전에는 눈치를 봤다고 봐야겠지. 루마니아 내 투르크계 인구도 꽤 컸고.
그 때문에 1860년대에는 직접적으로 루마니아 내 투르크인, 혹은 친투르크 인사에 대한 적대감 분출이 제한됐다면, Russo-Turkish War 이후로는 적대감이 증폭되어 분출될 수 있는 여건이 조성됐다고 간주했음. 실제로 전쟁도 하고 사상자도 난 데다, 이 전쟁을 트리거로 독립선언과 카롤 1세 즉위가 진행된 거니까. 흥분할 요소가 많지.
그래도 아버지 대에 좀 많이 눈치가 없어서 죽은 거 같은 인상은 남는군..... 결론 : "리얼한 역사물"은 이렇게 위험하다
여담인데, 저 섀도우로드 PC가 미국에 보내지는 일도 Russo-Turkish War에서 이어지는 내용이었다. WoD에서는 전쟁 후 러시아 출신 실버팽인 크레센트 문이 루마니아에 들어거든. 근데 그 때까지 루마니아 섀도우로드들은 뱀파이어와 웜 종자들한테 개털린 끝에 핵심 케언인 'Nightsky'까지 뺏긴 상태였다. 그거 보고 충격 받은 실버팽이 '너네 실력 될 때까지 우리가 케언 보호해줄께 ㅎ.ㅎ;'라며 'Nightsky'를 점유했는데, 그거 듣고 빡친 PC가 깽판을 놔서 반쯤 경질 당하는 느낌으로 미국 보내진 거였음.
맞음. 뜻은 있지만 소극적이고 정적인 인물이었고, 쇠락한 섀도우로드 가문을 상징적으로 나타내도록 디자인했거든. 그래서 죽는 인물이었고, PC에게 남기는 유언도 '너는 이렇게 살지 말아라'였음.
아버지 설정은 1879년인가 1880년인가 기준으로 40대 중반. 1860년대에 친투르크적 행보를 보였고, 1870년대 투르크가 발칸 반도에 대한 군사활동에 나설 때도 야심보다는 걱정이 앞섰던 인물. 1876~1877년에는 뭔가 상황이 크게 바뀐다는 걸 느꼈지만 이미 늦었지. 자신에 대한 사람들의 시선이 굳어진 다음이었으니까. 그래서 '무능한 후계자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강박을 PC에게 남기는 역할을 해줬지.
디시버 영감님네 플이었군
겟펜 피시도 썰풀어주라
그리고 '리얼한 역사물'이 위험하냐고 하면, 여전히 나는 아니라는 입장임. 역사물은 역사 시뮬레이터가 아니거든. 나야 '틀리기 싫다'는 생각으로 캠페인 준비할 때 책 구해다 보면서 연표 맞추면서 인물구상했지만, 그렇다고 좋은 역사물 되는 거 아니니까. 좋은 역사물은 시대정신과 분위기를 얼마나 콘텐츠로 활용할 수 있느냐에 달렸지. 7~8세기 은화 종류가 몇 개나 되고, 그것들의 가치가 어떻고, 명칭은 어떻다는 거 하나씩 읊으면서 한다고 좋은 역사물인 거 아니니까.
겟 오브 펜리스 캐릭터는 집사람 캐릭터인데. 사실 내가 짜주다시피 했음 -_- 나중에 기회가 되면 쓸 텐데, 기본안은 '여자로 태어나 전사로 인정 받을 기회를 박탈 당한 데 분노한' 전사였음. 사실 어스피스도 아룬이었는데 모종의 사건 때문에 강제로 씨어지로 바꿔진 거고.
아니 나도 역사물은 그쪽으로 돌리는 성향이라니까...? 근데 이런 식으로 접근할 게 아니면 그냥 리얼성 같은 것에 목 매지 않고 그냥 트렌디하게 가는 게 좋을 거라고 생각한다는 거지. 물론 난 그렇게 안 돌리겠지만.
재미와 무관하게 고증을 추구하는 건 애초에 '리얼한 역사물 RPG'도 아니라는 이야기임. '리얼성=전방위적 고증'은 아니니까.
재미와 무관한 고증이라....
그리고 위 캠페인 얘기를 하자면, 위험(?)했던 부분도 없었고 말이야. 나는 연표에 맞춰 WoD 시나리오를 짰다는 것으로 개인적인 만족감도 느꼈고, 팀 차원에서도 적절히 도구로 잘 사용됐거든. 물론 '완전히 허황된 것이 아니라 사실에 기반한 이야기다'라는 인식은 묘하게 몰입을 더해준다는 점에서도 유용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