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마를 비롯한 초자연적 존재들이 배회하는 19세기 서부개척시대에 로망이 있는가? RP 기회가 많은 드라마 중심의 플레이에도? 하지만 길고 장황한 미사여구와 복잡한 수식으로 꽉 찬 룰북 보기는 부담스럽고? 마침 그런 사람을 위한 좋은 인디 RPG가 하나 있다. 지금 소개할 더 머스탱(The Mustang)’이다.

 

원 세븐 디자인 스튜디오가 제작한 더 머스탱 4명이 즐길 수 있는 짧은 게임이다. 이 게임은 북미 서부 황야에서 머스탱이라는 야생마 모습 악마에 의해 한 마을이 불타고, 이에 가족과 살 곳을 빼앗긴 4명이 모여 악마의 소굴을 찾아 복수에 나선다는 내용을 다룬다. '더 머스탱'은 철저한 스토리 게임으로, 강한 서사와 빠르고 극적인 이야기 전개가 특징이다.


더 머스탱은 진행자 없이 플레이어 네 명으로만 진행된다. 각각의 플레이어는 주인공인 당신’, 주인공의 수호자이자 연인인 캐시’, 침착하고 조용한 사수 ’, 용감하고 신앙심 깊은 윌리엄중 하나를 맡는다. 기본 콘셉트 외 설정은 게임에서 플레이어들이 직접 RP를 통해 즉석으로 만들어내야 하며, 이렇게 만든 설정을 바탕으로 '머스탱'에 맞선 처절한 드라마를 완성시키는 것이 이 게임의 목표다.

 

구조상 ‘더 머스탱’은 크게 세 부분으로 나눌 수 있다. [모닥불 앞에서의 대화를 통한 캐릭터 설정], [야생마 악마 머스탱’을 막아서는 동료들], 그리고 ['머스탱'과 대면한 '주인공'의 사투와 결말]이다.

 

1. 모닥불 앞에서의 대화 - 드라마를 위한 재료 만들기

 

첫 번째 단계에 캐릭터들은 머스탱이 사는 불탄 나무 앞으로 숨어든다. 그러나 마침 머스탱은 소굴을 비운 상태고, 일행은 어쩔 수 없이 악마가 돌아올 때까지 모닥불을 피우고 기다리게 된다. 플레이어들은 여기서 운명적 일전을 앞두고 위스키를 홀짝이며 최후의 휴식을 취하는 4인을 연기한다. 여기서 네 사람이 왜 목숨을 걸면서까지 머스탱에게 복수하길 원하는지, 서로간의 관계는 어떻게 되는지 등을 RP를 통해 상세히 정해야 한다.

 

여기서 나올 수 있는 이야기는 전적으로 플레이어의 상상에 달렸다. 실은 캐시를 짝사랑해서 머스탱사냥에 동참했다는 삼각관계를 만들 수도 있고, 어쩌면 윌리엄목사가 실수로 옛 북미 원주민들이 봉인한 고대 악마를 깨운 장본인이라고 할 수도 있다. 그에 따라 일부 캐릭터는 서로 사랑하고 신뢰할 수도, 미워하고 불신할 수도 있다. 이러한 설정은 가급적 플레이어가 아닌 캐릭터들 사이의 대화를 통해 자연스럽게 드러내는 것이 좋다.

 

첫 번째 단계에서 중요한 점은 캐릭터들 사이의 대화를 중요한 일을 앞두고 빨리 처리해야 할 작업으로 여기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캐릭터들의 대화를 통해 과거사, 서로간의 관계, 목적과 동기에 대한 이야기를 즉흥적으로 만들어내는 과정을 즐겨야 한다. 여기서 만든 이야기는 이어지는 두 번째 단계의 '추억'에 중요하게 쓰인다.

 

2. 머스탱과의 결전 드라마틱한 희생 묘사하기

 

플레이어들이 어느 정도 대화가 마무리되었다고 판단하면 바로 두 번째 단계로 넘어간다. 여기서 드디어 머스탱이 등장한다. ‘머스탱과 싸우는 장면의 흐름은 정해진 각본을 따라간다.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나타난 머스탱캐시에게 불을 내뿜고, 그 다음 을 들이받으며, ‘윌리엄과 영적 전투를 벌인 후, ‘당신의 기습을 받는다. 캐릭터는 저마다의 무기로 머스탱에 맞서고, 동전을 던지는 간단한 판정을 통해 캐릭터의 운명이 하나씩 결정된다.

 

판정법은 간단하다. 동전을 던지는 것이다. 우선 캐릭터가 어떻게 머스탱과 맞서고, 그 모습을 지켜보는 주인공은 해당 캐릭터와의 추억을 떠올린다. 이 과정을 주인공플레이어와 해당 캐릭터 플레이어가 함께 서술한다. 싸움 서술이 끝나면 '주인공' 플레이어는 동전을 던지는 판정으로 머스탱에 맞선 캐릭터의 운명을 정한다. 앞면이 나오면 '좋은 결과'를 거두고, 뒷면이 나오면 '나쁜 결과'가 이어진다. 여기서 주의할 점은, 앞면이 나와도 세 번째 단계 전까지는 누구도 '머스탱'을 완전히 막아낼 수 없다는 점이다.

 

간단한 예를 들어보자. 어둠 속에서 나타난 머스탱’은 깊게 숨을 들이마시더니 캐시에게 유황불을 뿜어낸다. ‘캐시의 무기는 지옥불을 막기 위한 철판이다. ‘캐시플레이어는 등에 메고 있던 철판을 끌러 있는 힘껏 땅에 꽂고 불길을 받아낸다. ‘주인공캐시뒤에서 그 모습을 지켜보며 과거를 회상한다. ‘캐시는 어떤 사건을 계기로 주인공을 사랑하고 지켜주기로 맹세했을까? ‘주인공캐시플레이어는 함께 그 이야기를 서술한 후 동전을 던진다.

 

던진 동전이 앞면이 나왔다고 치자. ‘주인공플레이어는 머스탱의 불꽃은 철판을 반쯤 녹였고 캐시도 지옥의 열기와 매캐한 연기 속에 의식을 잃는다고 묘사해준다. 하지만 캐시는 살아남아 일행을 지켜냈으며, 이에 분노한 머스탱은 불을 토하길 멈추고 다음 공격을 준비한다. ‘머스탱을 완전히 막지 못했지만, 자기가 맡은 임무를 완수했고 죽지도 않은 것이다. 이 정도면 판정 결과에 따른 좋은 성과를 묘사했다고 볼 수 있다.

 

반면 동전 뒷면이 나오면 주인공플레이어는 캐시의 비극적 운명을 묘사해줘야 한다. 악마의 불꽃 앞에 캐시의 철판은 점점 시뻘겋게 달아오르며 녹아 내린다. 얼마 안 있어 캐시는 뜨겁게 달군 철판을 든 꼴이 됐고, 열기에 몸이 익어 끔찍한 화상을 입는다. 그러나 캐시는 마지막까지 철판을 놓지 않는다. 운명을 직감한 캐시주인공을 돌아보며 마지막 미소를 짓는다. 그렇게 캐시는 일행을 지키지만, 불 공격이 멈췄을 때는 이미 시커먼 숯이 되어 있었다는 식이다.

 

캐시다음은 윌리엄이다. ‘무기는 자기 아버지의 라이플이고 윌리엄무기는 악마를 구속하는 주문이나 기도문이다. 그 외 흐름은 캐시와 동일하다. 캐릭터가 머스탱에 맞서는 모습, 그리고 주인공과의 추억은 주인공플레이어와 해당 캐릭터 플레이어가 함께 서술한다. 그러나 동전을 던진 결과는 주인공플레이어가 혼자 서술한다. 이렇게 세 동료 캐릭터가 한 번씩 '머스탱'을 막아서고 나면, 그 다음 드디어 '주인공'이 악마와 결판을 짓게 된다.

 

3. 주인공머스탱의 대결 이번에는 네 차례다

 

마지막 세 번째 단계는 주인공머스탱과 대면해 결말을 내는 과정을 다룬다. 동료가 하나씩 쓰러지며 틈을 만들어준 덕에 주인공머스탱위에 올라타 드잡이를 한다. ‘주인공은 특별한 나이프가 있고, 이 무기를 사용해 머스탱의 목을 딴다.

 

주인공머스탱등에 올라타 나이프를 꺼내는 장면까지는 주인공플레이어가 직접 서술한다. 그러나 나이프를 치켜드는 순간부터는 지금까지 하나씩 쓰러진 다른 캐릭터들 플레이어가 서술을 맡는다. 따라서 주인공머스탱의 싸움은 동전 세 개를 던진다. ‘캐시’, ‘’, ‘윌리엄플레이어가 순서를 정해 한 명씩 동전을 던지고, 그 결과에 따라 주인공머스탱의 싸움을 묘사한다. 동전 세 개를 던지는 만큼, 결말에는 좋고 나쁜 일이 복합적으로 나타날 수 있다.

 

예를 들어보자. 플레이어가 두 번째 동전을 던지고 앞면이 나와 주인공이 머스탱목을 그었다고 서술했다. 하지만 그 다음 윌리엄플레이어가 던진 세 번째 동전은 뒷면이 나왔다. 이에 윌리엄플레이어는 악마의 잘린 목에서 흘러나온 타르 같이 검고 뜨거운 피가 주인공의 팔을 적신다고 이야기한다. ‘주인공은 곧 핏줄이 불거지며 두 눈이 흰자 없는 잉크방울처럼 검게 변한다. 이윽고 다음 날 여명이 비춰올 때, 악마는 말이 아닌 인간의 몸에 깃든 채 새로운 여정을 떠난다. 좋은 결과와 나쁜 결과가 뒤섞인 채 나타날 수 있는 셈이다.

 

4. 따로 준비 필요 없는 한 시간짜리 RPG

 

더 머스탱은 기본적인 이야기 틀은 모두 정해져 있다. 4인의 복수자가 야생마 모습 악마를 찾아 떠난다. 이들은 악마와의 싸움에 하나씩 쓰러지거나 부상을 입어 물러나고, 마지막으로 주인공이 악마 머스탱과 로데오를 벌이며 결말을 낸다. 플레이어는 이 기본적인 이야기 흐름에 큰 변화를 줄 수 없고, 자신만의 모험을 만들어낼 확장성도 없다. 또한 D&D 같은 규칙에 의한 엄밀한 게임 진행이나, 캐릭터 성장도 없다. 기본적으로 제시된 내용과 RP 중심 플레이에 흥미를 느끼지 못하는 게이머를 유혹할 수단이 부족한 셈이다.

 

그러나 더 머스탱의 장점은 확장성에 있지 않다. 이 게임은 동료들이 한 명씩 쓰러지는 처절한 사투 속에서 느끼는 슬픔, 회한, 분노 등 감정을 쉽고 드라마틱하게 느낄 수 있게 해준다. 그것도 약 한 시간이라는 짧은 시간이면 충분하다. 룰도 단 두 쪽이고 준비물은 동전 하나면 충분하다. 일관되고 강한 서사의 드라마를 쉽게 즐기게 해주는 세트라는 것만 해도 더 머스탱은 꽤 가치 있는 RPG. 게다가 무료로 누구나 다운 받아 볼 수 있다는 점에서 접근성도 높다. 다운로드는 http://www.onesevendesign.com/mustang/ 참고.

 

더 머스탱기묘한 서부(Weird West)’ 장르를 좋아하고, RP 위주의 드라마 게임을 하고 싶지만, 두꺼운 룰북을 보거나 직접 시나리오 짜기는 힘든 게이머에게 추천할 만한 게임이다. 무조건 1회 안에 끝나는 짧은 게임이므로 장기 캠페인이 부담되는 이들 역시 쉽게 해볼 수 있다. 그러나 썩 취향을 타는 구성이므로 드라마 RP에 흥미가 없는 사람에게는 권하지 않는다.

 

5. 그래서 주관으로 똘똘 뭉친 제 점수는요

 

3.5/5


어둡고 황량한 '기묘한 서부' 분위기, 사랑하는 것들을 희생해야 하는 처절한 드라마를 쉽게 갖고 놀 수 있게 해준다. 그러나 딱 거기까지. 다른 건 할 수 없다. 굉장히 좁고 특화된 방향성에 치우친 게임이다. RP와 드라마를 좋아하지 않는다면 손 대지 말자. 룰 페이퍼는 무료로 다운 가능하고, 가독성이나 구성도 썩 나쁘지는 않다. 다만 일러스트가 없어서 심상을 쉽게 잡아주지 못하는 점이 아쉽다. 그럭저럭 잘 만든 인디 스토리텔링 RP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