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세기 유럽, 세포들이 죽어가는 괴저의 확산을 막는 유일한 방법은 감염된 사지를 절단하는 방법뿐이었다.
사자왕 리처드는 왼쪽 어깨에 화살 한 대를 맞았고 어깨는 절단할 수 없는 부위였다.
상처는 감염을 불러왔고 곧 괴저가 일어났다.
괴저의 확산을 막을 수 없었고 2주 뒤 사망했다.

그때는 죽음에 대해,
더 자세히 말하자면 괴저에 대해
신의 의지와 인간의 운명에 대한 나름의 의미부여밖에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하지만 요즘은 소독과 항생제로 해결해 낼 수 있었다.

그 당시엔 팔다리를 절단하는 게 유일한 방법이었지만 지금은 다르다는 것에 주목해야 한다.
어떤 만고 불변의 진리가 있는 게 아니라 방법은 개선되고 변화되어 해결될 수 있다고 말이다.

RPG도 그렇다.
예전엔 주사위가 안 나오는 것만으로도 불이익을 감수해야 했던 상황들이 많았다.
진행자의 호감도에 따라 기회가 편파적으로 나뉘었던 시절도 있었다.
다른 사람의 발언 기회를 뺏는 게 실력이고 본인 노력의 산물이라 당당하게 말하던 사람도 있었다.

이 모든 이유가 그저 사람의 문제라고 하고 뭉그러뜨려 졌던 적이 있다.
하지만 사람은 겪어보지 않으면 알기 힘들고 팔다리를 잘라내는 건 힘센 네 명의 사람과 톱만 있으면 된다.
RPG에서 사람을 잘라내는 것도 비슷하다.
하지만 언제까지 팔다리를 쌓아놓아야 하는가?

만병통치약과 범용적인 해결법, 그리고 자기연민을 수반한 의미부여의 유혹은 편하고 달콤하다.
하지만 무엇이 괴저를 일으키는지, 캐릭터와 플레이어는 왜 분리가 이루어져야 하는지,
평등한 기회가 왜 보장되어야 하는지, 진행자의 변덕이 왜 플레이에 개입돼선 안 되는지,
준비가 왜 필요한지, 협의 하나면 정말 모든 것들이 다 해결되는지.

원인을 알아야 한다.
그래야 근본적인 부분에서 문제점을 들어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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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이 글에는 치명적인 오류가 하나 있는데, 알피지는 놀자고 하는거지 사람 살리자고 하는게 아니라는 것이다.
사람을 살리는건 온전히 살리는 것이 중요하지만, 내가 재밌게 놀기 위해서는 나랑 안맞는 플레이어를 굳이 테라피스트까지 해줄 필요가 없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