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lood Red Sand를 보다 형언할 수 없는 짜증을 느껴서 중간에 접고 두 번째로 볼 계획이던 A Single Moment를 봄. 언젠가 BRS에 대해서도 이야기 할 기회가 있겠지. 지금 말고. 어쨌든 그래서 리뷰는 아니고, 이게 대충 뭐하는 게임인가에 대해 간단한 설명을 써봤다.


A Single Moment는 1:1 내러티브 RPG야. 특정한 주제에 맞춰 두 사람이 극단적이고 치열한 비극 드라마를 하게 만들어주는 게임임. 아주 쉽고, 별다른 준비 없이 시작할 수 있다. 문제는 애드립에 능한 게이머가 아니면 조금 힘들 수 있어. 전에 얘기한 The Mustang이랑 비슷하지.


내용은 이래. 기본적으로 A Single Moment는 두 사무라이가 둘 중 하나는 죽어야 하는 결투를 앞두고 과거를 회상하는 액자식 내용임. 원래 둘은 사이가 좋았지만, 모종의 사건으로 틀어지고, 결국 서로 불구대천의 원수가 되서 이 지경에 오게 된 거거든.


참고로 기본은 사무라이지만, 사실 판타지 기사든, 황야의 총잡이든, 심지어 냉전시대 첩보요원이나 하드보일드 히어로도 상관 없어. 이야기 구성과 전개만 비슷한 감수성이라면.


게임은 총 7개의 챕터로 구성된다. 사실 정규 챕터는 5개인데, 오프닝 씬, 피날레를 포함하면 사실상 7개임. 이 과정을 거치며 플레이어들을 얼마나 상호협조적으로 쩌는 스토리를 만들었는지에 따라 Edge(일종의 목적의식)라는 점수를 얻고, 마지막 피날레에서 이 점수를 쏟아부어 배틀로얄을 벌이게 돼. 그리고 이긴 놈이 이야기 결말을 정하지.


아래는 게임 방법을 간단히 정리해봤어.


1. 오프닝 씬


게임 순서는 이래. 오프닝 씬에서 두 플레이어는 게임의 핵심 주제, 무대, 캐릭터를 정한다. 여기서 가장 특이한 점은 '주제'인데, 이 게임에는 'Virtue Cards'라는 덱이 있어. 이 덱은 사무라이의 일곱 미덕 카드가 있고, 이 카드들은 게임에서 중요하게 활용됨. 오프닝 씬에서는 이 카드 중 한 장을 플레이어 합의 하에 골라서 게임 핵심 주제로 삼아야 한다. 이 게임이 명예를 주제로 하는지, 자비를 주제로 하는지, 뭐 그런 거지. 어쨌든 처음에는 타이트하게 잡을 필요는 없고 일단 방향성만 정하는 정도임.


그 다음 무대는 당연히 언제 어디서 사건이 시작됐다는 걸 얘기함. 전국시대 일본 간토 지방 어딘가의 산간지역이라거나 말이지. 그리고 특기할 점은 '모든 일이 시작된 것은 마지막 결투로부터 시간적으로 몇 년 전이다'라는 시간적 간극을 미리 이야기해야 한다는 것 정도? 캐릭터야 말 안 해도 알 테지.


이렇게 오프닝 씬에서 대충 설정이 맞으면 같이 개폼을 잡으며 연출을 한다. 룰북의 예시를 빌리면 "내 이름은 쿠로사와. 야마마토 씨족의 사무라이다. 이것은 내 이야기다. 우리는 야마토 성의 유적 위에 서 있고, 주변으로 불꽃이 휘날린다. 우리 주위로는 수백 명이 죽어 쓰러져 있다. 이 모든 이야기는, 겨울이 이 땅에 찾아올 때 시작됐다. 이것은 명예에 대한 이야기다." 같은 식.


2. 챕터 (1) 준비


오프닝 씬이 끝나면 본격적인 게임이 시작된다. 이 모든 좆같은 일의 발단이 된 사건부터 차근차근 썰을 푸는 거지. 챕터는 총 다섯 개로, 두 게이머가 서로 번갈아 가며 'Active Player'를 맡는다. 이 'Active Player'는 대충 GM 역할 같이 하는 플레이어라고 보면 됨.


근데 무작정 아무 얘기나 시작하면 또 산으로 갈 거 아냐? 그래서 'Active Player'는 챕터 시작에 앞서 이번에는 어떤 식으로 이야기가 돌아갈 건지 정해야 한다. 여기에는 세 가지 도구가 쓰인다. 하나는 이야기의 주제를 잡아주는 Virtue Cards, 다른 하나는 스토리아크가 되어주는 'Focus', 마지막 하나는 이야기가 굴러가게 만들어줄 주요 인물인 'Key Role'이다.


Virtue Cards를 쓰는 법은 오프닝 씬이랑 비슷한데, 랜덤이라는 게 다르다. 오프닝 씬에서 뽑은 Virtue Card는 빼놓고 나머지로만 덱을 만들고, 각 플레이어가 한 장씩 총 두 장을 뽑아. Active Player는 두 장을 보고 원하는 거 하나를 골라서 이 챕터의 주제로 삼는 거지. 예를 들어 첫 챕터에서 '충성심'이라는 카드를 뽑았다면, 두 사무라이는 '충성심'과 관계된 사연으로 처음 만난 거야. 하지만 모든 챕터는 결국 오프닝 씬에서 뽑은 미덕에 대한 이야기로 연결되어야 해.


Focus는 이야기에 특정 분기가 되어주는 아크야. Focus는 총 세 개가 있음. '우리가 아직 서로를 신뢰하던 때', '네가 선을 넘은 때', '우리가 어떤 약속을 한 때.' 챕터에 Focus를 배정하기로 하면, 그 챕터는 반드시 해당 Focus에 대한 이야기를 다루어야 해. 세 Focus 중 뭘 먼저 쓰든 상관 없지만, 게임이 피날레에 도달하기 전에 반드시 세 개를 다 써야 하고. 물론 Focus의 제약을 받는 이야기를 만든다는 것은 부담이 될 수 있으므로, 패기 있게 자기 챕터에 Focus를 적용하기로 한 Active Player는 Edge 2개를 보상 받는다.


Key Role은 이 게임이 비극으로 치닿게 도와주는 세 nPC야. 두 PC가 싸우게 직접적으로 유도하는 'The Catalyst', 본의는 아니지만 중간에서 희생 당해 두 PC가 싸우게 만드는 'The Victim', 캐릭터 둘 중 하나(혹은 둘 다)의 욕망의 대상이어서 싸움을 일으키는 'The Coveted.' Active Player는 이 세 nPC 중 하나가 이 챕터에 등장한다고 미리 정해두고, 사건이 이 캐릭터를 중심으로 돌아갈 거라고 미리 정해둘 수 있어. Key Role이 아닌 캐릭터는 Active Player가 제한 없이 등장시키고 연기할 수 이뜸.


그 외에도 시공간적 배경과 상황을 정하고 나면, 게임이 시작된다.


3. 챕터 (2) 진행


챕터는 두 플레이어가 자유롭게 번갈아 가며 스토리텔링 하는 식으로 진행돼. 그러면 이득충 둘이 말장난하는 식으로 가지 않느냐고? 그래서 독특한 규칙이 있지.


각 챕터에는 총 7개의 'Choice Token'이 있어. 그리고 특정 캐릭터에게 유리하게 진행될 수도, 아닐 수도 있는 상황이 되면, 선택지가 생겨. 자기 캐릭터에게 유리하게 이야기를 이끄는 대신 상대 플레이어에게 'Choice Token'을 주거나, 혹은 자기에게 유리한 이야기를 포기하거나. 이건 GM 역할인 Active Player도 마찬가지. Active Player도 자기 캐릭터에게 유리한 이야기를 진행시킬 때는 상대 플레이어에게 토큰을 줘야 한다. 이 토큰은 챕터가 끝날 때 점수로 환산되므로 상당히 중요해.


예를 들어보자. Active Player인 A는 Choice Token이 필요한 상황이야. 그래서 상대 플레이어에게 "야 니 캐릭터는 개쩌는 전설적인 검을 갖고 있어"라고 제안해. 상대가 고민 좀 해보고 괜찮다 싶어서 "ㅇㅇ"라고 하면, 그 캐릭터는 쩌는 검을 지닌 거야. 대신 A는 그 검과 관계된 이야기를 풀어내야 할 부담이 생긴 거니까 토큰을 받는 거지. 딜은 누가 치든 상관 없지만, 이야기 전개상 이득을 얻은 플레이어의 반대쪽이 토큰을 받는 거지.


어지간한 병신 두 마리가 플레이 하는 게 아닌 이상, 주인공 PC에게 좋은 일이나 안 좋은 일이 생기는 건 당연하겠지. Choice Token은 분배될 수밖에 없음. 그렇게 Choice Token이 다 쓰이면, 두 플레이어는 주사위 대결을 벌인다. 각 플레이어가 던지는 주사위 개수는 이번 챕터에서 얻은 Choice Token 수와 같아. 수틀리면 'Scar(신체나 정신에 남은 상처)' 패널티 토큰을 받고 주사위 수를 최대 7개까지 늘릴 수 있는데, 좀 위험한 도박이지. 피날레에서 결과는 Scar를 더 많이 가진 놈이 불리하게 끝나거든. HP 깎고 주사위 받는 거랑 비슷함. 여기에 추가로 보정이 들어가. 토의 끝에 챕터의 주제를 더 잘 구현한 플레이어에게 주사위 2개를 더 받지.


그렇게 각자 주사위를 몇 개 던지는지 정해지면, 주사위를 굴리고 그 값을 비교한다. 이긴 놈은 이 챕터가 어떻게 끝날지를 정할 수 있어. 이야기를 마무리 할 권리를 쟁취하는 거지. 그리고 이긴 놈은 자기 Choice Token 만큼의 Edge를 얻고, 진 놈은 Choice Token 만큼의 'Hatred(상대 캐릭터에 대한 앙심)'를 얻어. Hatred가 어떻게 쓰이는지는 곧 설명. 비길 때는 일단 생략.


이렇게 챕터가 끝나면, Active Player를 바꿔서 반복. 그렇게 다섯 챕터를 다 끝내면, 이제 최후 결전을 위해 포인트를 정리할 때야.


4. 분노 처리


다섯 번째 챕터 종료 시 두 PC는 서로 반드시 죽여야 하는 불구대천의 원수가 되어 있어야 한다. 이쯤 되면 매 챕터마다 지거나 이기면서 상당한 Edge와 Hatred가 쌓여 있을 거야. 이 단계에서는 Hatred는 소모해 점수를 정리하고, 두 캐릭터 관계를 더욱 첨예하게 만들 수 있어.


각 플레이어는 Hatred를 두 방식으로 소모할 수 있어. 일반적으로 쓰이는 방식은 'Channeling their Anger.' 분노를 토해내 깽판을 쳐서 목적의식을 강화하는 방식이야. 이 방식을 택할 시 플레이어는 자기 Hatred 1점당 상대 캐릭터에 대한 앙심과 적개심을 폭발시키는 선언을 해야 해. 예를 들어 Hatred가 5라면, 다른 PC의 아내를 찾아가 죽이고(1), 여동생도 죽이고(2), 그 시체를 삼거리 나무에 메달아 모두 볼 수 있게 해 수치심을 주고(3), 그 동네 밭과 곳간을 싸그리 태우고(4), 돌아오는 길에 만난 그 친구 사무라이까지 죽이는(1) 식이지.


이렇게 연출을 다 한 플레이어는 Hatred 만큼의 주사위를 굴릴 수 있어. 그리고 주사위 눈이 짝수인 수만큼 Edge를 얻고 홀수인 만큼 Scar를 얻지. 분노를 연료 삼아 더욱 강한 목적의식을 고취시키지만, 내면도 피폐해진다는 거지.


반면 분노와 적개심을 포기할 수도 있어. Hatred가 10점 이상일 때만 가능한 선택지인데, 이때 PC는 상대에 대한 복잡한 감정 속에서 갈등하다 내면의 분노를 털어버려. 자포자기에 가깝지. 대신 그렇게 소모한 Hatred의 절반 만큼 지금까지 입은 Scar를 상쇄할 수 있어. Hatred 6점을 태우면 Scar 3점을 지우는 식.


Hatred를 다 태우고 나면, 그 다음 피날레가 기다린다.


5. 피날레


앞선 플레이에 비하면 피날레는 간단해. 두 플레이어는 공격자와 방어자를 번갈아 맡아. 공격자는 자기 Edge를 1점 소모해 공격 주사위 하나를 받아 패고, 방어자는 무료 주사위 하나를 받아 막음. 여기에 공격자와 방어자 둘 다 추가로 Edge를 두 개까지 써서 다이스풀을 늘릴 수 있음. 예를 들어 방어자가 Edge 2개를 쓰면 주사위 3개로 싸우게 되는 거지. 주사위를 굴려 나온 눈을 모두 더한 값을 비교하고, 낮은 쪽은 Scar를 1점 받아. 자기가 공격자인데도 반격 당해서 Scar를 받을 수 있지.


전투는 그렇게 둘 중 한 쪽의 Edge가 0이 될 때까지 계속돼. 그러면 아직 Edge가 남은 쪽은 Killing Strike라는 일격을 가해야 해. 판정 자체는 일반 공격이랑 같지만, 성공 시 남은 Edge를 전부 자동으로 Scar로 치환해서 입힘. 지금까지는 Scar를 무조건 1점씩만 입힐 수 있었지만, 여기서는 한 방에 대량의 Scar를 줄 수 있어.


그렇게 Killing Strike가 성공하고, 그 결과 방어자가 공격자보다 누적된 Scar 수가 많다면, 방어자는 즉사한 걸로 살해된 걸로 처리돼. 다만 Killing Strike가 성공했음에도 방어자가 공격자보다 Scar가 적다면, 방어자는 패배했지만 죽지는 않은 걸로 처리되지. 어느 경우든 이야기 결말은 승자가 알아서 정해.


하지만 Killing Strike가 실패하면, 방어자가 역으로 공짜 Killing Strike 기회를 얻어. 뭐, 그래봤자 Edge가 0이니까 입힐 수 있는 최대 Scar는 1점이지만 말이야. 반격 후 처리는 앞선 Killing Strike 규칙과 동일.


승자는 이야기가 어떻게 끝나는지, 에필로그를 정할 수 있어. 그리고 게임은 그렇게 끝나는 거지.


6. 그래서...


물론 A Single Moment는 누구나 할 수 있는 쉬운 게임은 아니야. Virtue Cards, Foci, Key Role, 기타 규칙들로 체계적인 스토리텔링이 가능하게 도와주고는 있지만, 그것만 가지고는 두 캐릭터가 불구대천의 원수가 되는 과정을 설득력 있게 연출하기 힘들거든. 결국 플레이어의 상상력과 연출력, 그리고 공동 스토리텔링을 할 수 있는 사회적인 능력이 중요하지.


하지만 몇 가지 아쉬운 점에도 불구하고, A Single Moment는 비극 취향이고 스토리텔링 게임에 익숙하다면 꽤 재밌게 해볼 만한 게임이야. '두 사람의 애증과 결투'를 중심으로 한 비극이기만 하면 확장성도 괜찮고... 두 명이 경쟁적으로 할 수 있다는 점에서도 독특하지. 아, 캐릭터 시트가 필요 없다는 점도 흥미로워.


만약 비극 내러티브를 좋아하고, 스토리텔링에도 흥미가 있으며, 밀도 있는 RPG를 함께 해줄 만한 친구가 한 명 있다면, 이거 한 번 해봐도 괜찮을 거 같아. 참고로 드라이브스루에서 pdf는 7.99달러, 소프트커버 북은 10.99달러에 판매 중이야.


아참, 책 자체의 구성은 나쁘지 않아. 저예산 인디게임이다 보니 흑백이고 일러스트가 적은 건 좀 아쉬워. 하지만 게임 진행 메커니즘은 이해하기 쉽게 잘 요약해뒀고, 단계에 따라 적절한 예시까지 들어주고 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