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부터 턀갤에서 심심할 때마다 한 번씩 나오는 떡밥이 'PC가 아무것도 안 하는데 어떻게 해야 됨?' 이지.

원인은 다양한데 증상은 비슷하니 뭐가 어떻게 된 건 지 잘 모르겠다는 사람이 많다는 점에서,

개인적으로는 이걸 세션의 '감기' 같은 현상으로 본다.



글을 시작하기 전에, 혹시 자신이 지금 저 문제를 경험하는 마스터라면 스스로에게 하나 질문을 해 보자.



"플레이어들에게 이 문제에 대해 이야기를 꺼내서, '어째서 아무것도 하지 않는 지' 물어본 적이 있나?"



만약 이 질문의 대답이 'No'라면, 조용히 뒤로가기를 누르고 플레이어에게 물어보는 것부터 시작해라.

정답을 정확히 알고 있는 사람들이 바로 옆에 있는데 왜 굳이 헛고생하면서 관심법을 적중시키려고 애쓰는가?





오늘의 세션이 시작되었다. GM은 열심히 현재 상황에 대한 배경 묘사를 하고, 플레이어가 어떤 행동을 할 지 기다린다.

그 내용이 한산한 마을의 풍경일 수도 있고, 북적거리는 대도시의 한가운데일 수도 있고, 외딴 곳에 있는 숲 속일 수도 있지.

그런데도 한데 모인 캐릭터들이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면 그 이유는 크게 2가지로 나눌 수 있다.



1. 정말로 뭘 해야 할 지 모른다.


2. 진행을 위해서 뭘 해야 할 지는 알고 있지만, 행동을 하고 싶은 의지가 없다.




1번의 경우에는 좀 더 자세하게 구분하자면 2가지로 분류한다.



A. 캐릭터가 움직일 동기나 목적 자체가 존재하지 않는다.


B. GM이 제공한 정보가 부족해서 판단을 내리지 못했다.



A의 경우에는 캠페인의 기본부터 빠져 있는 정말 심각한 상황이다.

하다못해 온갖 함정과 인카운터로 도배된 고전 던전까기에서도 캐릭터의 참여 동기와 목적의식은 존재한다.

던전에 잠든 보물을 노리든, 던전에 봉인된 고대의 악을 처단하든, 던전을 정복해서 명성을 날리는 등...

이런 최소한의 기준도 없는 상황이라면 즉시 그런 플레이어와 상의를 해서 이 캠페인에 참여하는 이유를 상기시키거나 제작해야 한다.

'귀찮은데 왜 굳이 그래야 되냐?'는 반문을 한다면 플레이어와 함께 스토리를 풀어나갈 생각이 없다는 선언이나 마찬가지니,

마스터링을 할 의지가 없는 그런 놈은 당장 마스터 관두고 플레이어를 하면 된다.


B의 경우에는 GM이 가진 정보와 플레이어가 가진 정보가 서로 절대적인 차이가 난다는, 정보 불균형을 망각한 케이스다.

GM은 세션의 진행 방향뿐만이 아니라 캠페인 전체의 내용을 알고 있는 데다, 그걸 원하는 대로 수정하고 첨삭할 수 있다.

반면 플레이어는 말 그대로 'GM이 알려준 정보 외에는 아무것도 알 수 없다'.

물론 스스로 추리를 하고 행동을 선언할 수는 있지만, 바로 그 선언들을 GM이 받아서 정보가 나오는 거니까.

세션 로그에서 플레이어의 발언은 모두 숨기고 GM이 말한 내용만 뚝 떼어놓아서 읽어보자.

과연 그 내용만으로 플레이어의 방침을 결정할 수 있는가?

이 대답이 'No'라면, NPC가 더욱 자세한 정보를 제공하거나, 단서가 되는 아이템을 배치하거나,

플레이어들이 놓친 요소가 있다면 GM이 '어느 부분의 로그를 다시 읽어보라'는 식의 발언을 해서라도 정보를 더욱 자세히 주어야 한다.


사족을 붙이자면, 이런 이유 때문에 어줍잖은 복선은 내지 않는 게 좋다.

혹시 떡밥이랍시고 등장한 요소의 이상한 점을 아무도 알아채지 못한다면 더욱 강하게 힌트를 줘서 한 명이라도 인식하게 하거나,

아예 반전 전개를 폐기하도록 하자. 반전이라는 건 이야기의 전개를 납득하는 사람이 있어야 반전으로 성립한다.

안 그러면 그냥 통수지. 애크로이드 살인 사건 같은 마스터피스에도 독자 뒤통수 때리는 전개라고 하는 악평들이 수두룩한데 뭐...




2번의 경우에도 2가지로 분류할 수 있다.



C. 제시된 상황에서의 행동이 실패했을 때의 결과를 두려워한다.


D. 제시된 상황에서의 행동에 별 관심이 없다.



C의 경우에는 그런 반응을 보이는 플레이어와 이야기를 해 보자.

마스터가 예전에 어떤 난관의 해결에 실패했을 때의 페널티를 너무 심하게 냈거나,

제시된 행동들 자체가 딱 봐도 리스크가 너무 커 보이도록 묘사했을 가능성이 제법 높다.

가령, 현실적인 판타지를 한답시고 시작하자마자 오크 전사의 존나 큰 도끼에 한 방 맞아서 바로 눕거나 죽으면,

과연 이런 세션을 계속 플레이 할 생각이 드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이건 꽤 극단적인 예지만, 그 플레이어가 과거에 이런 식의 세션을 경험했을 수도 있고,

캐릭터가 위기에 빠졌을 때 GM이 내는 도전 대상들이 지나치게 위험하다고 느꼈을 지도 모른다.

무릇 사람이란 지는 거보다는 이기는 게 더욱 기분좋지 않은가? 하물며 즐기려는 취미생활로 하는 건데 말이지.

어차피 GM은 적당히 져 주는 역할이기도 하고. (마음만 먹으면 PC 따위는 얼마나 강하던 언제든지 밟을 수 있는 게 GM이라는 걸 잊지 말자)


D의 경우에는 보통은 플레이어 혹은 캐릭터가 원하는 행동과, 세션이 흘러가는 방향에서 제시된 행동이 일치하지 않는 경우가 되겠다.

이럴 때는 어느 쪽의 불일치인 지 직접 플레이어와 대화를 해 보고 조율을 해서 서로 어느 정도 수정을 거쳐 진행하는 게 베스트.

혹은, 턀갤에서는 '라그나'로 부르는, 그냥 자기만의 세계에 빠져서 세션 내용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엉뚱한 행위를 하려는 놈도 있는데...

어차피 세션에 관심이 없다면 뭣하러 시간낭비를 하게 만드는가? 얘네들은 즉시 쫓아내서 혼자서 잘 놀게 만들어주자.




플레이어 캐릭터가 움직이지 않는다는 건 스토리도 모멘텀도 정체되게 해서 세션을 망치는 주 원인이 된다.

그러니까 그런 상황이 발생하면 반드시 먼저 플레이어와 이야기를 하고, 원인이 뭔지 파악해서 꼭 해결을 하도록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