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드게임 좀 하는 사람이라면 보드게임 <카르카손>이 프랑스 남부에 실제로 존재하는 동명의 지역을 모델로 만들어졌고,


중세 시대의 건물과 성벽이 잘 보존되어 있어서 관광지로도 유명하다는 사실을 들어봤을 거다.


자, 그럼 <카르카손>은 현실의 소재를 가지고 중세 시대의 마을이 형성되는 과정을 "고증"한 게임일까?


말도 안 되는 소리. 고대 로마로부터 이어지는 성 축조 기술, 폐쇄된 장원 경제에 기반해서 돌아가는 일상, 상인과 장인들의 조합인 길드의 운영,


흑사병을 기점으로 바뀌는 인구와 경제 구조, 이런 것들을 직접 다루지 않는 <카르카손>이 어떻게 중세 유럽을 고증했다고 할 수 있겠음?


사실 보드게임 <카르카손>은 중세 유럽 하면 떠오르는 마을, 성, 수도원, 여관, 기사, 농부, 도둑, 투석기, 용 따위의 소재에


타일 놓기, 일꾼 놓기, 승점제 따위의 추상적인 규칙을 붙여서 만들었을 뿐이다.


하지만 <카르카손>은 이런 소재들을 중세의 풍경을 묘사한 타일과 일꾼 놓기 규칙(성에 일꾼을 놓으면 '기사'가 되는 등)에 절묘하게 담아냈고,


플레이하는 사람들이 타일을 하나하나 깔면서 점차 완성되어 가는 중세의 마을을 들여다보며


마치 진짜로 성과 마을을 짓고 있는 듯한 "분위기"를 느끼게 해 준다.


즉 "분위기"를 느끼게 하는 것도 게임의 중요한 매력인 거지.


그런데, 고증은 이 "분위기"를 만들기 위해 상당히 좋은 방법이다.


당장 예시로 든 <카르카손>만 해도 실제 보존된 성곽과 가옥 따위를 모델 삼아서 타일 일러스트를 그렸으니까.



다만 이 게임의 제작자들은 중세를 실제로 재현하는 건 그정도까지면 된다고 판단한 것 같고, 그 부분은 확실히 훌륭한 판단이었다.


이미 갤에서 많이들 얘기했듯이 모든 게임에 완벽한 수준으로 필요한 것은 아니다. 뭔가를 제대로 고증하려면 정말 수고도 많이 들어가고 복잡해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RPG 참가자들이 고증을 조금이라도 더 잘하려고 애쓰는 이유는 역시 "분위기"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