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식 시나리오든, 팬메이드 시나리오든 (그걸 구입하든 길에서 줍든) 일단 GM의 손에 들어오면 그 시나리오는 오롯이 GM의 권한 하에 놓인다. 시나리오상 가장 중요한 NPC가 초반에 대가리가 터져 뒈지든, 4인용 시나리오가 2인용으로 마개조되든, 시나리오의 스토리가 완전히 뜯어고쳐져 최종 보스가 다른 인물로 대체되든 그 것은 GM의 권한이고 누구도 침해할 수 없다.

근데 이 시나리오를 창작자의 온전한 소유물로 보기 시작하면서 골때리는 이야기들이 터져나온다. 저작권이니, 저작인격권이니, 창작자가 만든 이야기에 대한 존중이 아니니...

앞에서 시나리오에 관한 GM의 권한에 대해 언급했지만, TRPG의 이야기는 GM의 초월적 권한만으로는 완성되지 않는다. 플레이어들의 적극적인 선언과 참여, 때로는 주사위에 따라 캠페인의 이야기가 시나리오를 만든 이가 의도했던 이야기를 심심치않게 벗어나는 것을 우리는 자주 보지 않았던가?

즉, 시나리오 개변 자체를 막으려는 자들은 \'TRPG\'에 대해 잘 알지 못하는 이들일 뿐이다. 이들이 생각하는 TRPG 시나리오는, 창작자가 만든 이야기를 체험하고 즐기기 위한 일종의 4D 소설과도 같은 것이다. 이러한 시선이 기저에 깔린 팬메이드 시나리오를 보면 확실히 알 수 있다. 플레이어의 선택의 자유는 시나리오 내의 인위적인 장치로 인해 구속되고,  가고자 하는 곳에 마음대로 진입할 자유조차 없는 것이 태반이다. 즉, 창작자가 의도한 이야기만을 따라가는 수동적인 구성이라는 것이다.

물론 이 것이 즐겁지 않은 체험이라는 것은 아니다. 창작자가 심혈을 기울여 만든 시나리오를 \'체험\'하며 색다른 감정을 느낄 수 있다면, 그것은 또한 즐거운 체험 아닌가. 그러나, 그 경험을 \'즐거운 TRPG 플레이\' 라고 정말 단언할 수 있는가?

이러한 논의는 물론 \'진정한 TRPGㅋㅋ\' 라는 마법의 봉인을 통해 옛저녁에 언급이 금지된 것이기 때문에 공적으로는 입에 담을 수 없는 것이다. 슬프게도.

그러나 참 재미있는 점은, 이러한 새로운 유형의 \'놀이\'가 기존 TRPG 판에서 지분을 넓혀가고 있다는 점이다. 그리고, 이러한 놀이를 즐기는 이들이 \'취존\'이라는 마법의 단어로 모든 생산적인 의문과 논의를 막아버리려 하고 있다는 것이다. 물론 \'취존\'이라는 것이 얼마나 무가치하고 나태한 단어인지 알 사람들은 다 알겠지만 말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