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4월 20일 발매된 따끈따끈(?)한 신작 호러 RPG입니다.
『15 -FIFTEEN-』이라는 동인 RPG 제작자가 모험기획국과 함께 제작한 작품이고, 인세인이라는 괜찮은 호러 RPG(혹은 의심병 제너레이터)를 갖고 있는 모험 기획국에서 호러물을 냈다는 게 신기해서 구매했습니다.(제목인 ‘쿠라야미 크라잉’에서 쿠라야미란 어둠暗闇을 뜻하는 말입니다.)
제작자인 芥邉 雨龍씨는 이 작품이 첫 공식작이지만 그 이전에도 동인 시나리오나 RPG 제작 등을 했었는데요, 특히 이전작인 『15 -The FIFTEEN』이 ‘15분 내에 클리어하지 못하면 배드엔딩’이라는 컨셉으로 눈길을 끌었었지요. 본작인 쿠라야미 크라잉도 ‘1시간 전후로 끝나는 RPG’라는 점을 어필했었는데요, 아마도 본작의 핵심 컨셉 중 하나가 아닐까 예상해 볼 수 있었습니다.
도착하고서 일단 간결하게 읽어 보고 소개글 써 봅니다. 실 플레이 미경험 상태에서 제멋대로 하는 판단이므로 너무 의미를 두지는 말아주세요~.
주사위 굴림 3회 + ‘광기’ 선택으로 캐릭터 메이킹 완료
게임의 기본적인 내용은 ‘누군가의 광기에 의해 만들어진 이세계에 이끌려 들어간 주인공들이, 수수께끼의 존재에게 습격을 받으면서 탈출할 길을 찾는다’는 것입니다. 진상을 파악하고 적을 쓰러뜨리는 등으로 탈출로를 찾아내 현실로 복귀할 수 있으면 좋겠으나, 스스로 안고 있던 광기에 의해 세계에 묻혀 버리거나 스스로 새로운 이세계를 만들어 버리게 될 수도 있겠지요.
게임에는 【두뇌】, 【정신】, 【육체】라는 세 개의 능력치가 있고, 상황에 맞추어 세 능력치 중 하나로 판정합니다. 기본적으로는 2d10을 굴려서 하나라도 해당 능력치 이하라면 판정에 성공한다는 구조입니다.
그럼 이 능력치는 어찌 결정되는가 하면, 캐릭터 메이킹 시에 ‘직업’, ‘체험’, ‘마음의 어둠’이라는 세 개의 항목을 정하면 자동으로 결정됩니다. 기본적으로는 주사위를 굴려서 정하게 되어 있습니다만 감정이입하기 힘든 캐릭터가 나와 버릴 경우엔 수정해도 된다고 합니다.
예를 들어 ‘직업’에서 ‘작가’가 나오면 【두뇌】와 【정신】에 +1, 그 외에 【약】과 【침식】(..)도 +1이 됩니다.
‘체험’에서 ‘무기력’이 나오면 【정신】 -1, 【약】 +3(..)이 됩니다.
‘마음의 어둠’에서 ‘우울’이 나오면 【약】 +3, 【침식】 +2가 됩니다.
종합해 보면 【두뇌】 +1, 【약】 +5, 【침식】 +3이로군요. 【두뇌】, 【정신】, 【육체】의 디폴트는 4이기 때문에, 최종적으로는 이런 캐릭터가 됩니다.
직업 : 작가
체험 : 무기력
마음의 어둠 : 우울
【두뇌】 : 5
【정신】 : 4
【육체】 : 4
【약】 : 5
【침식】 : 3
일단 보기만 해도 ‘잘난 구석이라곤 하나도 없으면서 약에 의지해 살아만 있는 우울한 작가’가 연상되는군요(..). 다른 캐릭터와의 인연을 상징하는 【유대(ツナガリ)】라는 요소도 있고, 【약】외의 다른 아이템, 【이성】이라는 수치도 있습니다만 굴림이 끝난 시점에서 이것들 모두 디폴트 그대로 정해진 셈입니다.
마지막으로 정하면 되는 것이 캐릭터의 ‘광기’인데요, 이것은 이 작품에서 PC들 모두가 갖고 있는 왜곡된 관념입니다. 광기라는 이름과 달리 ‘성실’, ‘관용’, ‘사랑’(..) 이런 것들이 제시되어 있는데(기본 룰북에서 10개), 일반적으로는 미덕이라고 생각할 관념이 좀 더 극단적으로 나타나 광기가 되는 것이라고 생각하면 될 것 같습니다.
작중에서는 이 ‘광기’가 발현하면 쿠라야미라고 불리는 특수한 능력을 쓸 수 있게 되고(..), 판정에 사용하는 주사위가 2d10이 아니라 3d10이 되며, 적에게 주는 대미지가 늘어나고 사건의 진상을 꿰뚫어보는 직관력(?) 같은 것이 생겨나는 등 다양한 장점이 있습니다.
대신 해당 ‘광기’에 반하는 행동을 할 수 없게 되고, 게임 마지막에 정상적인 삶으로 돌아오기 위한 판정을 해서 실패하면 파멸하고 맙니다(..). 미치는 것도 전략적으로…! 라는 것이지요.
이 ‘광기’는 기본적으로 시트 맨 아래쪽에 기록해 두고, 접어서 가렸다가 발현했을 때 펴서 공개하도록 되어 있습니다. 처음에 시트만 봤을 때는 『시노비가미』나 『인세인』의 ‘비밀’ 같은 것을 생각했는데 다행인지 불행인지 그것과는 많이 다르네요.
메이킹이 간결한 만큼 게임 진행도 간결한 편입니다. 다만 그런 만큼 속도를 떨어뜨리는 자잘한 규칙이 약간 (설명하기) 귀찮을 감이 있긴 합니다. 원체 간결한 규칙이다보니…. 개인적으로 재미있었던 요소는 판정에 사용한 주사위 중 하나를 ‘보관’했다가 나중에 필요할 때 바꿔서 쓸 수 있는 규칙인데… 이, 이거 『세이크리드 드래곤』이랑 『카미가카리』에서 사용하는 용맥 시스템……! 역시 주인공들은 보통 인물이 아닙니다….
보통 분량을 많이 잡아먹기 마련인 전투 역시 기본적으로는 단순 판정을 이용한 공격/회피인지라 짤막합니다. 그리고 이런 간결한 규칙은 사망률이 높은 게 흔하므로(..) 위의 주사위 보관/침식을 높이는 대신 성공도 업/광기 발현 등을 써야 할 필요가 있겠지요. 데미지를 입어도 침식치가 상승하고, 침식치가 상승하면 최종적으로 현실로 복귀하는 것이 어려워지므로, 기본적으로는 리스크 관리가 중심이 되는 전투가 될 것 같습니다.(‘침식’이 중요하고 이것에 의해 최종적으로 캐릭터를 소실하게 될 수도 있다보니 이래저래 더블 크로스 생각이 나는군요….)
진행은 카드로? 게임북?
일본 RPG에는 이전부터 ‘핸드 아웃’이라는 이름으로 PC들에게 사전 정보, 혹은 게임 내 정보를 정하는 개념이 있었습니다만, 그 핸드 아웃에 ‘뒤’가 있는 ‘비밀’ 개념을 적극적으로 도입해서 독특한 분위기를 만들어낸 건 『시노비가미』 였죠. 캐릭터의 설정만이 아닌 다른 요소에도 쓸 수 있겠다는 생각이 『시노비가미』의 ‘에니그마’에서 드러나고, 『인세인』에서 적극적으로 계승/발전하면서 게임 내의 ‘카드’가 마구 늘어나는 양상을 보였습니다(..).
그리고 본작, 『쿠라야미 크라잉』에서도 비슷한 느낌이 보입니다. 다만 『인세인』은 씬 단위로 구성되어 캐릭터들이 순차적으로 행동하면서 공개되어 있는 카드들 중 어떤 카드를 깔 것인가에 집중한다면, 본작에서는 카드 자체가 ‘씬’이고 카드 내용에 선택지까지 명시되어 있습니다. 뒤집어 내용 보기, 시킨 대로 판정하기, 다음 카드로 가기 등 다양한 행동이 이어지지요. 이건 분명히 『인세인』의 영향도 있겠지만 게임북에 가까운 느낌이 아닌가 싶습니다. 1인용인 게임북과 달리 여럿이 같이 게임하는 RPG이므로, ‘전원이 하나를 택해야만 하는 선택지’와 ‘각자 원하는대로 가도 되는 선택지’가 함께 있습니다.
사실은 이 부분이 이 책을 구매하게 된 결정적인 동기였는데요, 과연 어떤 점에서 장점이 있고 어떤 부분에서 기존 RPG들과 어찌 다른지가 알고 싶었습니다. 특히 일본에는 『크툴루의 부름』이라는 지옥의 베스트셀러와, 마찬가지로 모험기획국에서 만들어진 『인세인』이 있으니까요!
그런데… 으음… 이 부분이 그리 만족스럽지 못합니다. 레디메이드 시나리오가 네 편 실려 있습니다만, 작중에서 그려지는 상황은 대부분 즉발적인 상황과 선택지입니다. 뭔가 조사한다거나, 스토리에 관여한다거나 하는 요소가 별로 없습니다. 말하자면 컴퓨터 게임에서 QTE 3~4회쯤 하고 난 다음 전투 한 번 하고 나면 끝나는 느낌의 시나리오들….
이게 제작자의 전작인 『15 -The FIFTEEN』처럼 시간 제한이 있는 경우라면 이렇게 간결한 구성이어도 쫓기는 느낌이 들어서 재미가 있을 것 같으나, 딱히 그런 제한도 없는 상태이다보니 상당히 미묘합니다. 캐릭터 메이킹부터 시작해서 카드를 적극적으로 사용하는 부분, 짧은 플레이를 전제로 하고 있는 부분 등을 생각해 보면 의도적으로 이렇게 된 것 같기도 합니다만….
다만 간결한 방식이면서도 캐릭터가 다면화되는 메이킹 방식에는 매력이 있고, 그리 어렵지 않으면서 리스크 관리가 가능한 판정 방식에도 나름 장점은 있지 않을까 합니다. 카드에 신경쓰지 말고 정석적인 방식으로 호러 시나리오를 만들어도 되지 않을까 싶어요. 시나리오 메이킹에 해당하는 부분이라 언급하진 않았습니다만 ‘적’인 괴이를 이런저런 공포의 ‘원형’으로 조합해서 만드는 방식에도 꽤 호감이 가고요.
3줄 요약
마음에 드는 부분이 꽤 있는데,
첨부된 시나리오는 조금 마음에 안 들어요.
테스트를 해 보고 사람들의 반응을 확인해 보고 싶습니다.
알톡에 먼저 올렸던 거라 존댓말
드래군인데...
헛. 그랬었나….
어라? 이거 내가 쓴 글인데 왜 수정 버튼이 안 뜨지?
아무튼 '세이크리드 드래곤' -> '세이크리드 드라군'
좋은 리뷰글은 추천이야
카드 진행은 노비노비trpg같은걸 의식한거 아닌가 주어지는 정보량이 적은건 그때그때 즉흥으로 채우라는거라고 생각함
본문에서 너무 쓰기 곤란해서 생략했는데 실제 카드 보면 그런 정도가 아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