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iewimageM.php?id=trpg&no=24b0d769e1d32ca73cef85fa11d02831dc7f5dc338ba31e98e3bde94c402fdb141dbe7c2e837a84ac22b6efa7a1c4a3138a25fc4b443a64033e8bdaa253a2f09fe7b22b89c2d61ec2431610f83eda2baba72ebd64668bc9b194869


22화 – 세 클론 이야기, 둘.


“Operation Ephemera…”

그레인저가 중얼거린다. 하은의 의체화를 골자로 한 그 계획과, 쓰렛널이 추출한 그녀의 기록.  아무런 관련이 없어 보이지만 그레인저가 생각하기에는 그렇지 않다. 분명히 무엇인가 있을 것이다. 그녀가 다시 한번 기록을 재생한다. 홀로그램이 어두운 방 안에 펼쳐진다.

굉장히 오래 된 것 같은 공동. 아니, 어쩌면 그냥 동굴이나 지하에 만들어진 일종의 시설일지도 모른다. 그 한가운데서 무언가 담긴 잔을 들어올려 마시는 하은. 벽에 새겨진 문자. 붉은 안개.

그레인저가 지금까지 알아낼 수 있었던 것은 단 하나뿐이다. 벽에 새겨진 문자들이 뱀파이어와 관련이 있다는 것. 그것도 유니언이 뱀파이어들을 불태우고 압수한 수많은 문건 중에서도 ‘유물’이라고 부를 만한 기록에서만 등장하는 종류였다. 그레인저가 집무실의 책상을 손가락으로 두드린다. 이해가 가지 않는다. 이 기억은 무엇인지, 그것이 왜 뱀파이어와 관련이 있는지도 전혀 알 수 없었다.

그러나 그녀의 직감이 에페메라 작전과 이 기억이 관련이 있다고 소리치고 있었다.

분명, 무언가 관련이 있을 것이다. 무언가-

[진.]

에이다가 내부 통신망으로 연락해온다. 의수의 신경망을 통해 재구성된 음성이 에이다가 뭔가 서두르고 있음을 알려주고 있었다.

[에이다. 무슨 일이죠?]

[문제의 클론 개체가 탈출했습니다. 저희는 조력자를 쫓고 있습니다. 클론을 추적해 줄 수 있겠습니까?]

그레인저가 즉시 의자에서 일어난다. 현장에서 너무 오래 뛰어서일까. 어릴 때 모범생이었던 자신과는 다르게 지금의 그레인저로서는 오히려 이런 업무가 더 할 만하다고 느껴진다. 그렇게 되고 싶었던 건 아니지만.

[가용한 정보를 모두 보내줘요. 즉시 감시 자산을 띄울 테니까.]

그레인저가 의자에서 일어나 뛰쳐나간다. 내부 통신망으로 예상 위치가 전송된다. 같은 대륙 안에는 있지만, 상당히 먼 거리다.

[에이팍. 수송기 준비 바랍니다.]

[네, 감독관님.]

그에게 지시하고 나서 즉시 영공 허가를 위해 관련 부서에 연락을 취하는 그레인저. 그러나 그 와중에도 아까 하고 있던 생각이 계속 떠올라온다. 그녀가 그 생각을 잊기 위해서인지 발걸음을 재촉한다.



“에이다 요원님.”

“네.”

“포획이 우선입니까, 사살이 우선입니까?”

에이다가 잠시 생각에 빠진다. 두 사람은 타고 왔던 차량으로 클론 호송 차량을 쫓고 있었다. 운전은 에이다가 조종하는 클론이 담당하고 있었다. 에이다 본인은 전술 정보를 체크하며 동시에 방금 전부터 시그널이 들어오기 시작한 호송 차량의 위치를 추적하고 있었다.

“사살을 우선합니다. 호송 차량의 추적이 다시 가능해진 건 아마도 함정일 겁니다. 함정에 투입되는 인원을 포획해 봐야 얻어낼 정보는 없으리라고 생각됩니다.”

그녀가 간단하게 전술적인 판단을 정리한다. 하은이 끄덕이며 의체의 기동 파라메터 조정에 들어간다. 에이다가 W 프로젝트 데이터 링크를 통해 호송 차량의 위치를 지속적으로 확인한다. 두 시간 거리의 대 도시를 경유하여 지금은 이미 외곽으로 빠진 상태. 아마 곧 따라잡을 수 있을 것이다.

도시를 경유한 것을 보았을 때 아마도 헬렌이나 헬렌의 조력자 둘 중 하나가 그곳에서 내린 것이 틀림 없었다. 그렇다면 추적 자산을 완비하고 해당 도시의 아말감과 즉시 연계할 수 있는 그레인저 쪽이 도시 내부를 수색하고 하은과 에이다가 호송 차량을 추적하는 것이 합리적이다.

“…”

헬렌이 저항하지 않는 한 포획할 의향도 있었다. 웬만하면 자신의 손으로 일을 정리하고 싶었는데, 라는 생각으로 자책하는 에이다. 그러나 즉시 그런 생각을 억누르려고 하지만 자신이 헬렌의 입장에 있었다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가시지 않는다.



“진 그레인저 감독관님?”

“그렇습니다.”

그레인저가 VTOL 수송기에서 내리며 고개를 끄덕인다. 수송기가 내려앉은 헬리패드에는 헬리콥터가 기다리고 있었다.

“여기서부터는 헬기로 가시죠.”

해당 도시를 담당하는 아말감의 요원이 그레인저를 헬기로 이끈다. 뒤처리를 고려해보면 아무 생각 없이 하이퍼테크 수송기를 도시 한복판에 착륙 시킬 수는 없는 일이다. 도시 외곽에 먼저 도달 한 후 좀 더 이목을 덜 끌만 한 수단을 동원하는 것이 훨씬 합리적인 방법이다. 경찰헬기를 의심할 사람은 없으니까.

“알겠습니다. 현 상황은?”

“일단 자료를 전송해드리겠습니다.”

그레인저가 사용하고 있는 범용 주파수를 통해 현 상황을 정리한 자료가 송신된다. 노먼의 정리를 거쳐 신경망을 통해 그녀의 두뇌로 정보가 직접 전달된다. MSF 아말감 전용 통신망보다는 못하지만 상황을 파악하는데는 별 문제가 없었다. 다행스럽게도 담당 아말감의 감독관이 몰레티와 친분이 있는 요원이었기에 무척이나 협조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었다.

“음. 일단 몰아넣긴 했네요.”

“그렇습니다. 만약 원하신다면 지금 당장 부대를 투입해서 사살 가능합니다.”

“아뇨. 일단 가능하면 포획하려고 해요.”

“알겠습니다.”

요원이 즉시 휘하 부대에게 지시를 내린다. 추적 자체는 맥 빠질 정도로 쉬웠다. 도시에 도착하자마자 들어간 쇼핑몰에서 아직도 나오지 않았던 것이다. CCTV가 사방에 널린 쇼핑몰에서라면 그녀의 일거수일투족을 모조리 파악할 수 있었다. 이미 담당 아말감이 보도관제를 내리고 폭발물 테러로 위장해 쇼핑몰 전체를 봉쇄한 상태였다. 민간인의 대피도 완료된 상태였다.

“협조에 감사드립니다.”

“아닙니다. 일이 잘 풀렸으면 좋겠군요.”

요원이 계속 이것저것 지시를 내리며 대답한다. 괴물이 공공 장소에 출몰한 것을 테러로 위장해 보도 관제를 내리고 포위 섬멸하는 것은 지역 담당형 전투 아말감이라면 항상 하는 일이니까. 능숙한 것이 당연했다.

“탈출한 클론 개체라고는 들었습니다만, 혹시 저희가 더 주의해야할 사항이라도 있습니까?”

“일단은 없습니다. 다만 공모자들이 있을 수 있습니다.”

요원이 끄덕이며 지시 사항을 계속 하달한다. 그레인저가 의수와 장비의 상태를 점검한다. 그 뿐만 아니라 지역 아말감이 현장에 조달해 놓은 각종 제독 장비의 리스트를 점검한다. 그 뿐만 아니라 클론이 있었던 시설에 보관되었던 생물병기의 목록을 훑어 즉시 상부에서 그에 대비할 수 있는 장비를 요청한다. 단순히 도망가려는 건지 아니면 테러를 하려는 건지 알 수 없었기 때문이다. 둘 다일지도 몰랐다.

경찰 헬기로 위장한 유니언의 헬기가 도시 위를 날아간다. 저 멀리에서 서서히 쇼핑몰의 모습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부웅-!”

클론이 힘차게 엑셀을 밟는다. 현장 임무용으로 만들어진 차량인 만큼 그 가속력은 무시무시하다. 이미 에이다와 하은이 탄 차량은 호송차량을 따라 잡은 지 오래였다. 에이다가 3개의 의식을 동시에 완벽할 정도의 움직임으로 조율한다. 에이다 자신과 뒷좌석의 클론은 창문으로 몸을 내밀어 호송 차량의 바퀴를 저격한다. 운전을 담당하는 클론은 거칠게 차를 몰아 호송 차량을 옆으로 몰아 붙인다.

“끼이익!”

호송차량이 몇 번 가드레일에 부딪히며 찌그러진다. 운전자가 이런 일에 익숙하지 않은 것인지 호송 차량은 추적을 뿌리치지 못한다.

“하은 요원!”

에이다의 말과 함께 하은이 천장의 해치를 열고 뛰쳐나간다. 완벽한 균형을 잡은 그녀가 차 위에서 뛰어오른다. 그녀의 몸이 포물선을 그리며 속력이 늦춰진 호송차량의 보닛에 착지한다. 보닛이 충격 에너지로 우그러든다.

“콰직!”

금속이 찢겨 나가는 소리와 함께 하은이 보닛을 뜯어내고 엔진을 박살낸다. 엔진의 부품과 유동액이 그녀에게 튀지만 그녀는 아랑곳 하지 않는다. 하은이 한손으로 엔진의 반쪽을 뜯어 내버리고 그대로 다시 뛰어 원래의 차량 위에 순식간에 착지한다. 그 앞에서 호송차량이 균형을 잃으며 옆으로 전복되어 도로를 구른다.

“콰앙!’

호송 차량이 마침내 가드레일에 부딪혀 멈춘다.

“끼익!”

에이다가 스키드 마크를 남기며 그 옆에 차를 멈춘다. 해치를 부여잡고 있는 하은은 전혀 균형을 잃지 않은 상태였다. 에이다가 차에서 내려 옆으로 넘어진 호송 차량 위로 뛰어오른다. 그녀가 거칠게 차량문을 열어 젖힌다.

“안녕하신가?”

그 안에서 태연하게 인사하는 익숙한 얼굴. 에이다가 아무렇지도 않게 안전벨트를 풀기위해 노력하고 있는 이시야마의 모습을 보며 표정을 일그러트린다.



“헬렌.”

“안녕하세요.”

헬렌을 찾아내는 것은 간단했다. 애초에 쇼핑몰에 틀어박혀 있는 상황에서 그녀의 운명은 정해진거나 다름 없었다. 민간인들을 대피 시키는 와중에 그 혼란을 이용해 탈출하려는 시도조차 하지 않았다.

헬렌과 그녀의 조종을 받는 클론이 그레인저에게 총을 겨눈다. 두 사람은 쇼핑몰 2층의 복도 한 가운데에서 마주하고 있었다. 양쪽으로 늘어선 장식을 겸한 기둥이 복도를 이상하게도 좁게 보이게 한다. 그레인저는 총을 꺼내 드는 대신 양손을 들고 그녀에게 천천히 접근한다.

“가까이 오지 말아주세요.”

[요원님. 언제라도 저격할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알았어요. 대기만 하세요.]

유니언 공용 통신망을 통해 하위발성Subvocalizaion으로 지시하는 그레인저. 이미 창문 밖, 그리고 쇼핑몰의 고층 및 유리 천장 언저리 등 여러 저격 포인트에서 저격수들이 대기하고 있었다.

“헬렌. 제 이름은 진 그레인저에요. 에이다의 상관이죠.”

“그럼 절 잡으러 오셨겠군요.”

“맞아요.”

그레인저가 순순히 인정한다.

“헬렌. 전 당신을 죽이고 싶지 않아요.”

“그럼 절 내버려두세요.”

“헬렌. 세상에 나온지 얼마 안되었지만 당신도 알 거에요. 도망갈 수는 없어요.”

“아뇨. 도망갈 수 있어요.”

헬렌이 그녀의 말을 부정한다. 그레인저가 당황한다. 만들어진지 얼마 되지 않았기에 유니언의 힘을 모르는 걸까. 예산과 시간이 허락한다는 가정하에 유니언이 제거할 수 없는 존재는 손에 꼽을 정도다. 그러나 그렇게 생각하기에는 뭔가 석연치 않았다.

“해리스 씨가 그랬어요. 당신들의 말을 듣지 말라고.”

“헬ㄹ-“

“됐어요!”

헬렌이 말하며 그녀를 조준한다. 그레인저가 이 상황을 대화로 풀어갈 수 없다는 것을 짐작한다. 그녀가 의수를 마치 방패처럼 들어올린다. 헬렌의 권총과 그레인저의 머리와 심장 사이의 선을 의수가 가로막는다.

“타앙!”

늦지 않았다. 퍽, 하는 소리와 함께 권총탄이 연달아 그레인저의 의수에 박힌다. 권총탄의 운동 에너지가 그녀의 어깨 관절을 흔들어 놓는다.

“윽-“

[감독관님. 저격하겠습니다.]

[잠ㄲ-]

그녀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두 클론 중 한 명의 머리를 광선이 관통한다. 살과 뼈가 타는 냄새가 일순간 퍼지며 깔끔한 구멍이 뚫린다. 헬렌이 아니라 클론 쪽이었던 모양인지 머리에 구멍이 뚫린 쪽 만이 힘없이 쓰러진다.

“안돼!”

헬렌이 비명 지른다. 그녀가 그레인저에게 달려든다.

“헬렌! 그만둬요!”

그레인저가 그녀와 엉켜 바닥을 구른다. 헬렌의 공격은 머리로 생각한 것이 아니라 그녀의 유전적 기억Genetic Memory에 따른 것이 분명했다. 저격수가 있는 상태에서 상대와 근접하면 아군 오사의 위험 때문에 저격이 어려워진다는 단순한 원리에 입각한 본능적인 행동.

헬렌이 그레인저의 말을 무시하고 그녀의 몸을 찍어 누른다. 반사적으로 그레인저의 의수에서 카본 블레이드가 튀어나온다. 뼈로 새겨 만든 듯한 검이 공중을 가른다. 헬렌이 허리를 젖히며 아크로바틱한 동작으로 블레이드를 피한다. 그녀의 몸이 반동으로 제자리로 돌아오자마자 그녀가 어깨를 찍어 누른 상태로 그레인저의 이마에 권총을 겨눈다.

방아쇠에 걸친 손가락에, 힘이 들어간다.


“타앙!”


총격음이 쇼핑몰을 울린다.

“…?”

그러나 그레인저는 멀쩡했다. 그녀의 이마가 관통되는 일 따위는 일어나지 않았다.


뚝, 뚝-


그레인저의 옷에 피가 떨어진다. 헬렌의 가슴에서 피가 번진다. 그녀의 심장을 관통한 총알이 남긴 탄흔이 그레인저의 얼굴 옆에서 희미한 냄새를 피워 올린다. 그녀가 놀란 표정으로 총소리가 올린 곳으로 서서히 고개를 돌린다.

무언가 말하려는 그녀. 그러나 아무런 소리도 내지 못한 채 그레인저 위로 쓰러진다. 그레인저가 그녀의 입모양에서 무언가를 읽어낸다.


-대체 왜?, 라는 말.


[감독관님, 괜찮으십니까?]

[네. 전 멀쩡해요.]

그레인저가 헬렌의 몸을 밀쳐낸다. 어딘지 모를 안타까움. 그녀가 고개를 든다. 하은이 권총을 든 채 서있었다.

“고마워요. 요원. 에이다와 같이 간 게 아니었나요?”

하은이 천천히 권총을 내린다. 그레인저가 뭔가 이상함을 눈치챈다.

“요원?”

“그레인저 요원님. 다시 뵙게 되서 반갑습니다. 에이다 요원은 살아있나 보군요.”

그레인저가 당황한다.

무슨 소리를 하고 있는거지, 라는 생각을 하기도 전에 그녀가 이상함을 눈치챈다. 하은의 눈을 뚫어져라 쳐다보는 그녀.

“…당신…”

그녀의 눈 안에 붉은 색 -또는 초록색- 기운이 전혀 보이지 않는다. 그 뿐만 아니다. 움직임이 없을 때는 마치 석상처럼 서있는 하은과 달리 눈 앞의 여성은 살아있는 사람처럼 숨을 쉬고, 미세한 움직임을 보여주고 있었다.

그레인저가 즉시 권총을 꺼내 들어 그녀에게 겨눈다. 동시에 의수를 치켜들어 급소 부위를 가린다. 그녀가 날카롭게 묻는다.

“당신은 누구죠?”

“노하은입니다.”

“다시 한번 물을게요. 당신은 누구죠?”

[그레인저 감독관님?]

[죄송하지만 제가 명령하기 전에는 사격은 절대 금지입니다.]

[알겠습니다.]

그레인저가 거의 짜증에 가까운 감정을 느낀다. 자신의 앞에 있는 여성이 노하은이라고?

“노하은 요원은 제 부하에요. 지금 에이다와 같이 있어요. 마지막으로 물을게요. 당신은 누구죠?”

“전 노하은입니다. 다른 점이 있다면 이제는 ‘요원’이라는 호칭이 안 붙는다는 것 정도겠네요.”

하은이 시니컬한 목소리로 말한다. 그녀의 말투는 그레인저가 알고 있는 하은, 아니, 도로시와는 달랐다. 그 쪽이 아무런 감정이 없다면 이 쪽의 하은은 뭔가 조롱하는 말투다.

“…미안하지만 당신을 심문하기 전까지는 믿지 못하겠네요.”

“철컥.”

하은의 권총이 그레인저의 미간을 노린다. 동시에 엄청난 꺼림칙함이 그레인저의 등골을 타고 흐른다. 자신이 아는 노하은에게서는 느낄 수 없는 무엇인가.

-살기?

“그레인저 요원님. 죄송하지만 전 잡혀들어갈 의향은 없습니다.”

[감독관님?]

[사격 대기 하세요.]

[예.]

불안감. 그레인저가 도저히 떨칠 수 없는 불안감과 꺼림칙함을 느끼며 지시한다. 그러나 대화에서 물러서지 않는다.

“미안하지만 난 당신과 꼭 이야기를 해야겠어요. 필요하다면 당신을 무력화 시켜서라도 포박할 의향이 있어요.”

하은이 잠시 그녀에게서 시선을 거둔다. 유리 천장, 복도 너머, 다른 층과 이어지는 빈 공간. 그 곳을 하은이 훑는다. 저격수의 존재를 알아차린 것인지 그녀가 순순히 말한다.

“그레인저 요원님. 저를 사살할 수는 없을 겁니다.”

“그 이유는?”

그레인저가 되묻는다.

“왜냐하면, 저는 레콘키스타 작전이 어떻게 끝났는지 알고 있는 유일한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특히 그 일과 관련된, 류 국장의 행동에 관해서요.”

“…”

그레인저가 입을 다문다. 하은은 그레인저가 가진 제일 큰 약점을 찔러 들어오고 있었다. 바로 ‘무슨 일이 있었는가’ 에 대한 호기심이다.

“그렇기 때문에, 조건이 있습니다.”

“뭐죠?”

“저의 존재를 류 국장에게 알리지 않는 것, 그리고 일방적인 심문이 아니라 대화가 될 것. 두가지입니다.”

“…첫번째는 왜?”

“제 이야기를 들으면 알게 되실 겁니다.”

“좋아요.”

[사격 대기 해제. 잠시 오해가 있었던 모양입니다. 클론들이 개입되면 언제나 헷갈리네요.]

[알겠습니다.]

그레인저가 둘러대며 즉시 권총을 거둔다. 하은도 마찬가지다. 두 사람은 마치 이 곳에 같이 들어왔던 것처럼 천연덕스럽게 나란히 서서 걷기 시작한다. 그러나 두 사람 간에는 날카로운 경계심이 자리하고 있었다.



“…넌!”

에이다가 이시야마를 호송 차량에서 끌어내 바닥에 내친다. 직접 맞닥뜨리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지만 그녀는 이시야마의 위험성을 잘 알고 있었다.

“어이쿠야. 노인을 그렇게 취급하면-“

에이다가 그의 말을 듣지 않고 그의 이마에 권총을 연달아 쏜다. 초과학이 적용된 소음기가 권총의 격발음을 완벽하게 차단한다. 이시야마의 이마에 정확히 명중하는 탄. 그러나 그 탄환은 그의 두개골을 관통하지 못한 채 피부만을 찢고 튕겨 나간다.

“허허…”

그가 헛기침을 하며 천천히 일어난다. 하은이 즉시 달려든다. 그가 무엇인가 꺼내려는 듯 팔을 움직인다. 그러나 하은의 손이 훨씬 빠르다. 붉게 고열로 달아오른 그녀의 의수가 팔꿈치 아래에서 그의 팔을 절단한다.

“!”

절단된 팔이 순식간에 부풀어오른다. 피부가 터져 나오며 마치 클레이모어처럼 하은을 향해 수백개의 젤 덩어리라고 밖에 표현 할 수 없는 것이 쏟아진다. 메스꺼운 모습의 젤 덩어리들이 그녀의 의체를 덮친다. 젤이 접촉한 부분이 살짝 부식되더니 의체의 외피를 통해 스며든다.

[경고: 외부 요소 침투 감지됨.]

동시에 HUD에 경고 메시지가 뜨기 시작한다.

[보조 동력계 차단. 주 신경망 오버플로우. 에러: 483-]

무너지듯 하은이 무릎을 꿇는다. 이시야마가 재빨리 물러나 도망간다. 에이다가 조종하는 클론들이 그를 향해 사격을 가하지만 그의 몸은 마치 스펀지라도 되는 듯 총탄이 박힌 부분이 물렁해지며 별다른 타격을 입지 않는다.

“그럼 다음에 보세나!’

그의 즐거운 말투와 함께 호송 차량이 폭발을 일으킨다. 그 폭발에 휘말려 클론 한명이 즉사한다. 에이다가 정신을 차렸을 때는 이미 이시야마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에이다가 그를 내버려두고 클론 둘로 하은을 부축한다.

“전 신경 쓰지 마시고-“

“지금 이시야마를 잡기에는 장비가 불충분합니다.”

하은의 반발을 일축하는 에이다. 그녀의 말은 틀리지 않았을 것이다. 이시야마는 분명 철저하게 준비를 해온 것이 분명했다. 더 추격 했다가는 함정에 빠지는 꼴이 될 것이다. 어쩌면 디코이는 헬렌 쪽일지도 몰랐다.

[에이팍 소위. 지금 즉시 도로시 요원의 의체 정비 준비를 부탁합니다.]

[알겠습니다.]

이미 하은의 의체가 박살 나고 고장나는 것은 질릴 정도로 경험해 본 에이팍이다. 아마 컨스트럭트로 복귀할 때쯤 되면 필요시 의체의 90%를 교환할 수 있을 정도로 준비가 충실하게 되어 있을 것이다. 휘청이는 하은을 부축해 차량에 태운 에이다가 이번에는 직접 운전 하기 시작한다.



철컥, 하는 소리와 함께 꽤나 오랫동안 열리지 않았던 문이 열린다. 그 안에 들어서자 먼지가 조금 쌓인 것을 제외하고는 멀쩡한 집이 나타난다. 그러나 자세히 보면 ‘집’과는 조금 거리가 있는 공간이다. 숙련된 요원의 눈으로 보면 여기 저기 무기나 하이퍼테크 장비가 숨겨져 있는 공간이 있고 거기에 TV로 위장된 홀로그램 송신기, 영구보존식량 등이 보관된 것을 보아 장기간의 은신처로 쓰기에 알맞은 곳임이 드러날 것이다.

“세이프하우스로군요.”

“그렇죠. 일단은 여기서 지내 줬으면 좋겠네요.”

“알겠습니다. 이 정도로 화려한 감옥이라면 저도 큰 불만은 없습니다.”

여전히 시니컬한 말투. 그레인저가 끄덕이며 안전가옥을 나선다.

“부수지만 말아줘요. 내일쯤 다시 올 테니까. 그 때 자세한 이야기를 하도록 하죠.”

하은이 끄덕인다. 그레인저가 문을 닫는다. 문이 잠기며 그녀 전용의 엑세스 모드로 들어간다.

[진. 저입니다. 하은 요원이 부상당했습니다.]

에이다의 연락. 그레인저가 문을 쳐다본다. 그 안에는 멀쩡한 노하은이 있을 것이다. 헛웃음이 나올 정도로 이상한 상황이었다.

[…알겠어요. 에이팍 소위에게는 연락했나요?]

[네. 지금 곧바로 수리 작업에 들어간다고 합니다.]

[알았어요. 조금 있다가 보죠.]



“감독관님.”

“소위. 어떻게 되가고 있죠?”

정비용의 랙에 누워있는 하은을 보며 그레인저가 묻는다. 그녀는 아직도 약간 혼란스러웠다. 세이프하우스에 있는 하은과, 자신의 눈 앞에 있는 하은은 분명 다른 사람임이 분명했다.

“일단 현상 유지는 되고 있습니다. 일종의 나노 바이러스를 사용한 공격인 것 같습니다. 다행히 악성은 아니라서 해결책 자체는 쉽게 찾아낼 수 있습니다. 조금만 기다려주시면 해결책을 마련하겠습니다.”

“그렇군요.”

“…감독관님. 예전에 명령하셨던 일 말입니다만.”

에이팍이 조심스럽게 말한다. 그레인저가 하은의 의체가 슬립모드에 들어가 있는 것을 확인한 채 대답한다.

“두뇌 임플란트에 관한 일 말인가요?”

“네. 안타깝게도 두뇌 임플란트 자체에 대해서는 별로 알아낸게 없습니다. 하지만…”

그레인저가 끄덕인다. 에이팍이 손을 휘두르자 정비실의 홀로그램 테이블이 화려한 두뇌 스캔 패턴을 그려내며 번쩍인다. 그 중 기억을 담당하는 부위를 중심으로 해서 붉은 색으로 번쩍이는 부분이 눈길을 끈다.

“바이러스 공격으로 인해 도로시 요원의 임플란트의 보안 기능이 정지된 상태입니다. 덕분에 두뇌 및 강화 신경계를 완벽히 스캔할 수 있었습니다.”

그가 즐거워할 내용임에도 그의 표정은 전혀 그렇지 않았다. 다시 한번 붉은 색의 홀로그램이 번쩍인다.

“이건 신경 근사 복사의 흔적입니다.”

“그게 뭐죠?”

그레인저의 물음에 에이팍이 망설이며 설명을 시작한다.

“알고 계시겠지만, 클로닝을 할 때 육체 뿐만 아니라 정신까지 클로닝 하려면 두뇌의 정보를 그대로 복사해야 합니다. 아직까지 유니언은 두뇌의 활동을 유지시키면서 완벽하게 정지시키는 방법을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에 마인드 업로딩을 시작할 때와 끝낼 때의 뇌내 정보에는 불일치가 생기게 됩니다.”

“그래서 그 불일치를 해소하기 위해서 일종의 근사값을 집어넣는다는 건가요?”

“말하자면 그렇습니다. 프로제니터의 유전 기억 클로닝을 사용하지 않는다면 그 방법밖에 없습니다. 근사값을 계산하며 두뇌에 업로딩하면, 반드시 패턴화 된 신경 정보가 남게 됩니다. 클론에게는 복사의 흔적이 남고, 오리지널에게는 근사 작업 와중에 두뇌를 부분 부분 정지시켜야 하기 때문에 일종의 나이테 같은 게 남죠.

그레인저가 입술을 깨문다.

“그 말은… 도로시 요원의 클론이 있다는 건가요?”

“아뇨, 그레인저 감독관님.”

에이팍이 망설이며 간신히 대답한다.

“도로시 요원이 누군가의 클론이라는 겁니다.”



==

어서 스토리를 진행시켜야 해..